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퇴직한 초등학교 교사이고 올해 70여 살이며 1996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 나는 엉덩이 뼈 살균성 괴사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땅에 내려온다 해도 쌍지팡이를 짚어야 했으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날마다 자리에 누워서 온종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어 남편의 보살핌에 의지해야만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4달이 되자 다리를 가부좌 할 수 있었고, 열 달이 되자 꿇어앉을 수 있었다( 원래의 다리는 곧은 다리어서 굽히지 못해 대소변은 작은 의자에 앉아야만 볼 수 있었음) 1년 후에는 쌍지팡이를 철저히 버리고 스스로 층계를 오르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빨리 걸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은 말 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자료점의 작은 꽃이 활짝 피다
2003년에 남편이 사망해 나는 혼자 살게 됐다. 2009년 협조인 수련생은 조건이 좋은 것을 보고 교란하는 사람이 없으니 가정 자료점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건의했다. 나는 협조인에 협력해 컴퓨터, 프린터를 사들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난처한 일이 있었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컴퓨터를 만져본 일도 없는데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1] 이렇게 위대하신 사부님이 계시는데 내가 무엇인들 배워내지 못하겠는가? 기술 수련생이 인내심 있게 날 가르쳐 주었고 나는 마음으로 배웠다. 얼마 안 되어 CD를 굽고, 소책자를 만들며, ‘9평공산당’ 책을 인쇄하고 CD표지, 스티커, 호신부를 인쇄하는 기술을 배웠다. 오직 사람을 구하는데 필요하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 없이 했으며 고생과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침 9시에 기계를 작동해 줄곧 저녁 7시 반이면 기계를 껐다. 사부님 도움으로 할수록 순조로웠고 할수록 더 하고 싶었다.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자료를 잘 만드는 보증
대법 일을 잘 하려면 우선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셨다. “대법제자로서 정법 일을 잘하고 자신의 일체를 잘 원만하게 하자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얼마나 바쁘든지 반드시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원만의 최대 보증이다.”[2]
처음에 나는 자료를 만드는 한편 법공부를 하다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법공부가 마음에 닿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아침에 법을 외우고 아침식사 후 법공부를 하며, 법공부를 마치고 나면 자료를 만들었는데 조금도 적게 만들지 않았다. 우리 집은 또 법공부 장소여서 매일 저녁 단체로 한 강씩 읽었고, 나 스스로 낮에 두 강씩 읽었다. 한편 나는 시간을 내어 법을 베꼈다. 이 몇 년 사이 ‘전법륜’을 12번 베꼈고, 각지 설법은 아직 세 권을 다 베끼지 못했을 뿐이다. 4권 ‘홍음’도 다 베꼈고 어떤 것은 두 번씩 베꼈다. 신논어는 27번 베껴 쓰고 ‘전법륜’은몇 번을 베껴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신논어가 나오자 나는 곧 외우기 시작했다.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했기 때문에 자료를 만드는 게 뜻대로 됐고, 만들어 낸 자료는 깔끔하고도 아름다웠다. 내가 만든 자료는 내 주위 각 팀에 공급될 뿐만 아니라 외지 수련생에게도 지원됐다. 어떤 수련생은 늘 베이징, 톈진, 상하이, 광저우로 친척 방문 갈 때마다 모두 많은 자료를 갖고 가서 사람을 구한다. 나는 만들기만 하면 7, 8백 혹은 5, 6백 권씩 만든다.
교란에 직면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 나는 아들딸의 교란을 당했으나 시종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큰 아들은 외지에서 사업하는데 2014년 돌아와서 설을 보냈다. 내가 자료 만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하지 못하게 했다. 큰 아들은 떠날 무렵 내 컴퓨터를 큰 딸 집에 감추어 놓았다. 나는 컴퓨터가 없어진 것을 보고 큰 아들이 한 짓임을 알아챘다. 나는 전화로 그에게 내놓으라고 했더니 시인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말했다. “네가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또 새 것을 살 거야.” 나중에 그는 여동생에게 컴퓨터를 나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큰 딸은 컴퓨터를 돌려 줄 때 많은 듣기 어려운 말을 했다. 내가 자료를 만들면 그녀 사업에 영향 준다, 그녀 딸이 대학에 가는데 영향을 준다는 등 말을 했고 또 모녀 관계를 끊겠다고 위협했다. 그 때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속으로 발정념을 했다.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누구도 나를 개변시킬 수 없다. 자료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는 것은 가장 훌륭한 일이다.
딸이 간 후 나는 사람마음이 올라와 한바탕 울었다. 이후에 나는 이건 나에게 심성을 제고해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해야 한다. 이튿날 큰 딸은 나를 자기 집에 와서 식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기쁘게 갔다.
이상은 대법자료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의 조그마한 체득이다. 적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축사’
원문발표: 2017년 5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9/3472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