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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련생의 ‘문제’를 늘 지적하기 좋아하는 습관을 고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번은 법공부 팀의 수련생 세 분이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교류 내내 내 문제에 대해서만 말했다. 가장 날 자극했던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강압적’이라는 말이었다. 한 수련생은 법공부 팀에서 틀리게 읽었을 때 내가 지적해 주면 속으로 언제나 마음이 ‘덜컥’해서(확실히 법을 읽을 때 나는 거의 틀리게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이 틀리게 읽을 때 지적해주는 횟수도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늘 수련생이 틀리게 읽자마자 정확한 글을 말해준다) 이후에 그녀가 한마디를 다 읽은 후에 지적해주면 안 되냐고 특별히 제기했다. 수련생의 말은 틀리게 읽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스스로 고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련생 세 분이 말할 때 마음이 줄곧 조용했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수련생들의 나에 대한 의견이고 오랫동안 쌓인 것이며 이 기회를 이용해 한꺼번에 쏟아놓은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 우연이 아니고 내가 다른 수련생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내게 꼭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수련생이 말한 것을 겨냥해 머릿속에서 대응하는 말이 나타나거나 상대방의 언어에서 폭로된 문제를 볼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생각이 나오면 바로 배척했고 ‘진아(眞我)’가 아니라고 승인하지 않았다.

이어서 자신을 찾을 때 처음에 ‘다음 법공부할 때는 어떻게 해야지’라는 어쩔 바를 모르는 느낌이 들었다. 표면상 법공부할 때 틀리게 읽은 것을 지적해주는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물었다. ‘이것은 내가 어느 방면에서 돌파하고 개변해야 하는가?’ 이때 사부님 설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사당 국가에서 나온 사람은 자신에 대한 그러한 보호심리가 아주 강하며, 일부 문제에 대해 표현하는 마음 역시 아주 강렬한데, 국외에서는 이렇지 않다.”[1]

바로 이 ‘일부 문제에 대해 표현하려는 마음’이 강렬했던 것이다. 속인 중 나는 사유가 엄밀하고 주견이 있으며(바꿔 말하자면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변명할 수 있고 언제나 자기 말을 합리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련 중 수련생과 교류할 때마다 자신의 인식을 말할 수 있었다. 즉 언제나 할 말이 있고 표현상의 말투, 사용상의 단어가 긍정적이고(바꿔 말하자면 절대적) 문제를 제기하면 언제나 한 마디로 정곡을 찌른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시어머니, 동서에 대해 말했었는데 그녀가 다 말한 후 나는 “배후에 무슨 마음이 있는지 의식했어요?”라고 물었다. “몰라요.” “질투심이요.” 수련생은 듣고 멍했다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죠”라고 했다. 나는 “문제를 찾을 때 확대경으로 찾아야 비로소 똑똑히 볼 수 있고 깨끗이 없앨 수 있어요”라고 했다. 개인 수련 중 자신이 이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찌 확대경으로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한 수련생이 “무슨 일이 있을 때 말하고 싶어도 압력이 있을까 봐 당신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어찌 수련생에게 압력을 주었을까? 수련생이 앞에서 말한 강압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위는 사당문화가 내 몸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설법 중 사부님께서는 대륙에서 나간 대법제자는 하루빨리 사상을 개변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럼 아직도 대륙에 있는 대법제자는 더욱 자신의 문제를 정시하고 사당문화의 나쁜 영향 하에 형성된 관념과 사유방식을 자발적으로 개변하고 자기 몸에 있는 사당문화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해야 하지 않는가.

이전에 사부님 학습반에 참가했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의 말투, 선심, 홍대한 자비로움을 또 생각하자 그 시각 자신의 언행이 수련생에게 가져다준 상처를 생각하니 부끄러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에 수련생 몇 분의 입을 빌려 지적해 준 것이므로 이 문제를 정시해야 하고 자신을 개변해야 할 때가 됐다. 다음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할 때 다른 사람이 읽을 때 자신이 또 튀어나오는 대로 말할까 봐 줄곧 입술을 물고 있었다(몇 시간 물고 있어 물집도 생겼다). 누가 글을 틀리게 읽을 때 말하지 않자 다른 수련생이 말했고 이전에 말하지 않던 수련생도 이번에 말했다. 1강을 다 배우고 책을 덮자 수련생은 “오늘 이 공간장은 정말 평온하네요”라고 한 마디 했다. 그렇다. 내가 변하자 수련생들도 변한 것 같았다. 이어서 교류할 때도 줄곧 입술을 물고 있었고 이번에는 듣기만 하고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할 말 있어요?”라고 3번을 물어봤는데 다 간단하게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다른 한 수련생도 “큰 언니, 오늘 왜 말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 할 말이 없어요. 다 좋으니 듣고만 있으면 되죠”라고 했다. 이 말을 할 때 마음이 아주 평화롭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일 후에 자신에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없어졌고 법을 읽을 때 소리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더욱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한 수련생(수련생 세 분이 날 찾아와 교류할 때 그녀도 마침 그 자리에 있었다)도 “이번에 당신은 정말로 변했네요. 이전에 다른 사람과 말할 때 늘 ‘그런 게 아니에요’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네요”라고 했다. 수련생이 말해주지 않으면 이전에 무의식 중 다른 사람을 부정하고 자신을 긍정한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내게 솔직하게 말해준 수련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수련자는 영원히 자신을 닦는 것으로, 사람마음의 자그마한 변화가 곧 제고이며, 뭇 신들이 다 볼 수 있다.”[2]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마땅히 매번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기회를 소중히 아껴야 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개변해야 한다. 설령 아주 작은 변화라도, 사람의 마음을 연마해 없애고 대법에 동화하고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에서 착실하게 매 걸음을 내디디면서 조사정법 중 앞으로 가는 매 걸음을 잘 걸어야 한다.

이상 말한 것은 교류하려는 뜻이고 적당치 않은 곳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기 진심으로 바란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유럽법회에 보내는 축사’

원문발표: 2017년 5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4/3466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