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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법을 외운 후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7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0년이 돼오는데 최근에야 비로소 법을 외우면 좋은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최근 법 외운 일부 체득과 얻은 인식을 써내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고 참고로 제공하고자 한다. 부족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이번에 법을 외운 건 보름 전부터다. 당시 한 해외 수련생이 쓴 법 외운 체득을 봤는데 법 외운 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양이 대폭 향상됐다고 했다. 이는 나에 대해 영향이 컸다. 그동안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데 큰 방해가 있는 것 같고 늘 탈퇴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늘 입을 열지 못하고는 이후에 또 후회했다. 그리고 자신의 수련상태도 아주 좋지 않았다. 법공부할 때 흐리멍덩하고 마음에 닿기 힘들고 꿈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이 적고 대머리가 된 것을 봤다. 자신도 그것은 ‘췌파(缺發)-머리카락이 적다는 뜻인데 發와 法의 발음이 비슷하니 법이 적다는 뜻을 말함)’라는 것을 점오해 준다고 깨달았지만 배우고 싶어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법에 동화된 정도가 부족해 평소 늘 사람의 마음들, 집착, 욕망을 통제할 수 없었고 정말로 수련의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고 드디어 다시 한 번 법을 외우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번이 처음 법을 외운 건 아니다. 1999년 전에 법을 외운 적이 있고 몇 년 전에도 계속 외운 적이 있지만 외워낸 적이 없을뿐더러 매번 아주 어렵다고 생각했고 법을 외워도 마음에 닿을 수 없었고 기계적으로 마지못해 외우는 느낌이었고 전혀 기억되지 않아 외우면 아주 빨리 잊었다. 이런 이유로 시간이 너무 걸리고 효과가 좋지 않고 또 통독하는 시간이 지연돼 한 번 또 한 번 법 외우는 것을 그만뒀다. 이후에도 수련생이 쓴 법 외우는 체득을 여러 번 봤지만 다른 사람이 몇 번 외웠다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나 스스로는 전혀 해낼 수 없고 시간이 오래되자 더욱 마비됐고 자신을 아예 법 외우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법 외우기 전에 일부 심성관을 넘고 있었는데 넘기지 못했고 아주 호되게 넘어졌다. 이후 안을 향해 찾으면서 근본원인이 자심생마, 잘난 체, 강렬한 자아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발정념할 때 이 사악한 물질들을 제거하는 데 매우 중시했다.

그리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신기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기억할 수 있고 이전의 그런 아주 힘들고 아주 어렵다는 느낌이 없고 법 외우는 과정 중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의 표면의 뜻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오, 원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런 뜻이었구나, 내가 원래 잘못 이해했구나. 오, 이 한마디는 이렇게 말한 것이었구나, 원래 틀리게 외웠구나. 아니, 이런 한마디가 있었구나, 외울 때 빠뜨렸구나……”라는 말들이 나왔다.

그제야 법을 마음에 닿게 외웠을 때의 그런 상쾌함과 기쁨, 오묘함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끊임없이 한 층 또 한 층의 방해를 돌파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틀 전 가부좌할 때 한 장면의 점화가 있었다. 한 지역이 있는데 화염산 같았고 붉은 불꽃이 솟아오르고 마그마가 퍼지고 있고 쓸쓸하고 공포스러웠는데 갑자기 이 지역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일부분부터 천천히 파릇파릇해지고 생기발랄해지더니 마지막에 완전히 변했다…… 진정으로 법에 동화했기 때문에 우리의 세계는 아마 정말로 이처럼 천지가 개변했을 것이다.

요즘 머릿속에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법에 동화할 수 있다’는 한마디가 떠오른다. 이전에 법 외울 때는 잘난 체하는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수련 중에서 바로 이런 상태였다). 이전에 법공부하고 법을 외울 때 전혀 경건하고 존중하지 못했고 머릿속에서 가끔 법을 의심하고 믿지 않는 사악한 생각도 들었다. 법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글자를 빠뜨리고 구절을 빠뜨리고 또 글자를 보태거나 단어를 보태며 심지어 사부님의 말씀을 개변했다. 스스로 한마디 외워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꾸며낸 것이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법을 이렇게 힘들게 외운 거였다. 원래 사상 중 그 사상업, 무신론, 당문화의 관념, 그 자아, 잘난 체하는 사악한 부패물질이 방해하고 가로막고 있었다. 이번에 법을 이렇게 마음에 닿게 외울 수 있는 것은 이번에 법 외우기 전에 자심생마, 잘난 체하고 강렬한 자아를 제거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과 관계있다.

지금 제1강을 다 외우고 제2강의 제1소절을 외우고 있다. 보통 매일 소리 내어 읽은 후 시간을 추가해 법을 외웠고 법을 외울 때 완전히 법을 외워내야 하고 책을 보지 않고도 외워낼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하게 요구했고 원래처럼 말 타고 꽃구경하는 듯이 대충대충 보고 지나가지 않았다. 만약 책을 보지 않고 정확하게 외워낼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외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열심히 착실하게 외웠고 외우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다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반복적으로 외웠고 ‘진도’를 앞서가지 않고 수량을 추구하지 않았다. 지금 이미 외우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닿지 않고 외워내지 못할 때 자신에게 변이되고 사악한 물질이 있어 바로잡아야 하거나 제거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복적으로 읽고 기억하고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하면 법은 꼭 나를 도와 변이된 사상을 바로잡아주고 사악을 제거해준다. 내가 조용한 마음으로 반복적으로 외울 때 갑자기 알게 되고 이해되고 청성해지고 단번에 기억할 수 있게 됐으며 계속해서 외우면 아주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상태는 반복적으로 몇 번 나타났다.

그리고 외워 내려가지 못할 때 또 다른 정황, 즉 아주 많이 글자를 보태거나 빠뜨리거나 사부님 설법의 표면 뜻을 개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흔히 곰곰이 정확하게 묵묵히 읽으면 또 외워 내려갈 수 있다.

이렇게 한 단락, 한 소절, 한 강을 외우면 진정으로 법을 익숙하게 기억할 수 있고 외웠던 부분은 아무 때나 다 능숙하게 외워낼 수 있고 수시로 법공부할 수 있는 목적을 이룰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아주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 들고 법 외우는 것에 대해서도 갈수록 신심이 있게 된다.

외워낸 부분을 평소 시간이 있을 때, 예를 들어 길을 걷고 자전거를 타고 차를 타고 한가하고 식사할 때……모두 반복적으로 외우고 틈만 있으면 외우고 설령 5분만 있더라도 몇 마디 외울 수 있고 한 단락을 외울 수 있다. ‘법 외우는 것은 원래 하나의 기쁨이로구나!’를 체득했다. 매일 1강을 배운 후 아무리 해도 좀 더 배우고 싶지 않은 상태가 없어졌다. 시간을 다그쳐 법 외우기 때문에 지금 비로소 시간은 그렇게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비로소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비로소 대법을 얻은 것은 그렇게도 귀중하다는 것을 느꼈고 천천히 ‘수련을 처음과 같이’[1]하는 상태를 조금 체득하게 됐다.

시시각각 법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욕망, 집착들을 제거하려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나타난 모순 중 점차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진상을 알릴 때 생각이 그렇게 많지 않게 됐고 지혜가 생기자 이 한동안에 삼퇴를 권하면 다 탈퇴를 동의했다. 원래 방해가 컸던 것, 아무리 알려도 탈퇴하지 않았던 데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탈퇴하는 데로 변했다. 그리고 기타 진상항목을 할 때 머리를 쥐어짜는 상태가 없어졌고 법에 용해될 때 지혜는 정말로 계속 쏟아져 나왔다. 또 한동안 법 외운 후 읽을 때도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또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집착하는 사람 마음도 어느새 없어졌다.

이 한동안 법을 외운 후 좋은 점이 아주 많고 정말 뚜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전법륜’을 다 외운 후 이 교류문장을 쓰려고 했는데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땅히 자신이 인식한 것을 제때에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체득을 써내 수련생들과 서로 나눈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밍후이왕의 교류문장은 정말로 우리에 대해 일깨움과 촉진 작용이 있다.

장기적으로 마난에 처해 있어 의기소침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할 수 없거나 나처럼 수련의 방향을 찾을 수 없는 수련생들이 모두 와서 법을 외우길 건의하고 싶다. 오로지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해야만 비로소 법이 우리를 본질적으로 개변할 수 있다. 지금 법을 외우는 과정은 사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수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체득했다.

여기에서 또 일부 법 외우는 데 장애가 있는 수련생과 2가지 문제를 교류하려고 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문제, 법 외우는 시간의 여부 문제다.

1. ‘기억력이 좋지 않다’에 관한 인식

알고 있다. 법 외우는 것을 말하면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기억력이 좋지 않거나 연령이 많거나 지식이 많지 않다며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수련생이 ‘논어’의 첫 몇 마디는 아무리 외워도 잘 외워지지 않고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고 교육수준도 낮지 않지만 나는 자신의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법을 외워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활 중에서도 늘 까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법 외우는 것을 통해 관념이 개변됐고 이번에 ‘기억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 발정념해 자심생마, 잘난 체 등 사악한 부패물질을 정념으로 제거했다. 이 사악한 물질들이 내가 법공부하고 법을 얻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잘난 체하는 자아를 내려놓았고 공손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법공부하고 법을 외웠다. 그러므로 법의 위력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법에 동화되고 자연적으로 쉽게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동안 일할 때 이런 상태가 나타났다. 매일 아침에 내가 해야 할 많은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고 일부러 기억한 것도 아닌데 뭘 해야 하면 순차대로 했고 이전처럼 이것저것 잊지 않았다.

원래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은 두뇌와 사상 속에 인간의 감정과 욕망, 집착, 사람의 마음이 너무 많고 속인의 더러운 부패물질이 너무 많아 주왠선이 이 부패물질에 의해 대뇌와 갈라져 있어 늘 대뇌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나타났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우리의 수련, 법공부하고 법 외우는 것은 바로 대뇌 중의 모든 좋지 않은 물건들을 제거해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은 속인의 한 가지 표현 방식일 뿐 수련인에 대해 나이의 많고 적음, 교육수준의 높고 낮음(물론 글 읽을 줄 모른 것 제외)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문제는 사악이 방해하고 있는 외에 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발정념하면 방해를 제거할 수 있고 법도 우리를 도와 사상업을 제거할 수 있고 주의식을 확고하게 할 수 있어 머리가 청성해지고 머리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처럼 표현된다.

연세가 많은 수련생이 적어도 먼저 ‘논어’를 외우고 ‘홍음’을 외우고 한번 해보고 해내면 정말로 어렵지 않다고 건의한 바 있다.

2. 법 외우는 시간의 여부는 완전히 자신이 결정하는 것

사실, 법 외우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도 사악의 우리에 대한 방해이고 나쁜 생각이 막고 있다. 법 외울 시간이 아주 많지만, 시간을 법 외우는 데 쓰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지금 발견했다. 자신을 포함한 많은 수련생은 ‘많은 시간’이 있지만 어떻게 쓸지 모르고 낭비하고 있고 속인의 책을 보고 동영상을 보면서 ‘여분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동태망에서 속인의 뉴스를 훑어볼 수 있고 집 앞뒤에다 정성스레 꽃을 가꾸고 채소를 심을 수 있고(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고 취미다) 할 일 없이 소침해 앉아있을 수 있고 수련생과 이런저런 속인의 대화를 몇 시간 동안 할 수 있다……

지금에야 비로소 법 외울 수 있는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돈을 아끼는 사람이 많지만 돈보다 셀 수 없이 귀중한 시간을 아낄 줄 모른다. 특히 정법시기 최후의 시간을. 법 외울 시간이 있는가 없는가는 정말로 완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이전에 이런 그릇된 관념이 있었다. 이렇게 두꺼운 법을 언제 다 외워낼 수 있을까? 언제 다 외울까! 그래서 ‘어렵다’고 겁을 먹어 감히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해 법 외우는 것을 막았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외우고 언제 외워낼 수 있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법 외우는 것은 임무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며 끊임없이 법에 동화하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 법을 더 외우면 큰 수확이 있고 무량한 중생이 이를 통해 구도되고 영원한 삶을 얻는다.

이 밖에 법 외우는 과정 중 체득을 수련생과 나누려고 한다.

1. 법을 외우려면 반드시 결심을 굳게 내리고 장애와 방해를 제거해야

법 외우는 자체가 바로 수련 과정이기 때문에 과정 중 장애와 방해가 있다. 그것들을 반드시 제거하고 돌파해야지 쉽게 포기하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법 외우는 첫날, 금방 ‘전법륜’을 들고 외우기 시작했는데 조용히 앉아있던 가족(수련생)이 명령을 받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큰 소리로 전화하기 시작했고 한참 통화했다. 처음에 좀 귀찮아했지만, 이것은 방해이니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바로 의식하고 신속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외우자 바로 머리에 들어갔다. 이튿날 금방 ‘전법륜’을 들고 외우기 시작했는데 맞은편 아파트에서 록음악을 크게 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큰 소음이었지만 영향받지 않고 의념으로 배후의 사악을 해체하는 공능을 내보내자 소음이 점차 작아졌고 외우는 것이 머리에 들어갔다. 사흘째는 이웃집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흘째는 개가 미친 듯이 짖어댔다. 한마디로 말해, 갖은 방법을 다해 사람 혹은 물건을 이용해 연속 나흘간 방해 시도가 있었으나 영향받지 않고 다 법을 외웠다. 나중엔 이런 외부적인 방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머릿속에 갑자기 ‘지루하다. 더는 반복적으로 외우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하나의 방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자신을 단속해 또 외우기 시작하자 단번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어졌고 또 법의 아름다움에 녹아들게 됐다.

어느 날, 외워내지 못한다는 걱정이 떠오르고 어느 날 또 법을 외워 지나치게 흥분하는 상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법 외우고 법에 동화하는 데 방해가 되는 동시에 배후의 사람의 마음을 없앨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정념으로 대하기만 하면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고 아주 빨리 없어진다.

2. 비교하는 마음이 있어선 안 돼

이 마음은 우리가 법 외우는 데 아주 큰 방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 다른 수련생이 며칠에 한 번 다 외우고 하루에 얼마나 외울 수 있는지 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러워하고 비교하고 임무를 완성하고 ‘진도’를 빠르게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 결과, 법 외우는 것이 형식에 그치고 또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법을 외우는 중에 끊임없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방해를 이겨내고 있고 열심히 착실하게 승화하고 있고 사부님의 대법은 끊임없이 내게 지혜를 주고 있고 나의 수련하는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으며 망연함과 소침함 속에서 정신을 차려 분발하고 정진하게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위대한 대법은 우리가 소중히 아껴야 하고 시간을 들여 외워낼 만한 가치가 있다. 수련생이여, 더는 망설이지 말고 시간을 다그쳐 법을 외우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문장발표: 2017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4/3460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