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념을 지키고 신사신법하며 참답게 자신을 수련하다

글/ 랴오 시 대법제자 칭신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는 제자이다. 파룬따파는 내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을 줄 알고, 법으로 자신에게 요구할 줄 알며, 신사신법은 반석처럼 견고하다. 아래에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위대한 사존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나누고자 한다.

1. 신사신법으로 병업을 제거하다

2015년 가을의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가슴 아래가 몹시 가려웠으며, 통증도 조금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긁었다. 긁힌 부위가 심하게 아파 거울에 비춰 보니 조그만 붉은 뾰루지 두 개가 나 있었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튿날 오후에 오른쪽 갈비 아래와 오른쪽 뒷등에도 붉은 뾰루지가 났을 뿐만 아니라, 뾰루지마다 마름모 모양의 흰 물집이 있었다. 갑자기 이 뾰루지가 마치 속인이 말하는 사반창(蛇盤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실치 않아 한 노인 수련생에게 전화로 물었다(그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노인 수련생은 내가 말하는 증상을 듣고 나서 어떻게 아픈가를 물었다. 나는 즉시 그녀의 말을 자르면서 “아주머니, 난 아주머니와 같지 않아요. 고마워요”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관념을 형성하여 그것을 강화시킬까 봐 그랬다. 원래는 수련생에게 발정념 도움을 요청할까 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을 구하느라 분초를 다투는데 나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수 없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낮에 진상 알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에는 법 공부하고 발정념했으며, 밤이면 한 시간에 한 번씩 밤새 발정념했다. 가사 일은 빠짐없이 했기에 남편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일을 속인에게 말하면 자칫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또한, 나는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대법제자는 건강하고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사흘째부터는 일신이 무력하고 허리를 펼 수 없었으며, 앞가슴과 등이 몹시 아팠으며, 으슬으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편이 이때 출장을 갔다. 나는 ‘당신이 어쩌면 출장을 가나요? 하다못해 집에서 나에게 밥이라도 끓여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자 즉각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어찌 속인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이것은 자신을 환자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는 자비로운 사부님과 대법이 있지 않은가? 남편이 집에 없는 것은 마침 좋은 일이 아닌가? 나는 스스로 뭐든지 조금 먹으면 되는 거다. 시간을 내어 마음을 깨끗이 하여 법 공부하고 발정념하고 사부님의 시를 외웠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1] 신사신법하니 발정념도 순수했다. 저녁에는 한 시간 정도만 잔 것 같았다. (몇 번의 짧은 시간을 합쳐서)

5일째 되는 날, 정공을 연마할 때 천목에 한 환경이 나타났다. 한 숲속의 공터에 말목 두 개가 있었다. 말목 사이에는 철사가 매어져 있고 철사에는 뱀 같은 검은 물건이 걸려 있었는데 죽은 것이었다. 내게서 2m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이 광경은 겨우 0.5초 정도의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속으로 내가 다 낫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나를 박해하는 사령을 제거해 주신 것이다. 나는 감동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감사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동시에 나는 이럴 때일수록 느슨해서는 안 되며 계속 발정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6일째 되는 날엔 아프지 않았으며, 그 붉은 뾰루지는 딱지가 앉아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8일째는 깨끗이 다 떨어졌고, 뾰루지는 보이지 않았으며, 붉은 자리만 남아 있었다.

얼마 후 나는 이 경험을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아주 놀라워하는 모습이었으며, 조금은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그도 3년 전에 이런 것이 몸에 자랐는데, 약 한 달 넘어서야 나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날이 흐리거나 좀 차가우면 등과 앞가슴이 아직도 불편하다. 그 사이 2천여 위안을 썼으며, 병원 네 곳을 찾아다니면서 치료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남편은 무척 놀라워하며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왜 조금도 몰랐을까? 내가 좀 봅시다……”라고 했다. 훗날 남편은 탄복하며 “대법은 정말 신기해. 당신은 당신 사부님의 좋은 제자야. 잘 수련하시오. 나는 앞으로 파룬따파의 덕을 보게 되었어! 나는 남편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이것은 주위의 가족과 세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참답게 자신을 찾아보았다. 무슨 이유로 바르지 못한 상태가 나타나게 되었을까? 결국엔 여전히 당 문화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쟁투심 같은 것이다. 지금은 별로 쟁론을 벌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불복한다. 나는 성격이 고지식하여 종래로 말을 에둘러 하지 않는다. 대법제자라면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말은 자비롭고 평온하게 해야 상대방이 잘 받아들인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잘하지 못한다. 이것은 일종의 쟁투심이다. 당 문화의 요소는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데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런 것을 인식한 후 집에서 늘 ‘해체당문화’와 ‘9평공산당’ 녹음을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듣고 식사하면서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조하고 자신을 점검해보았더니 효과가 정말 좋았다.

2. 대법이 좋다는 것을 행동으로 실증하다

2016년 섣달,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 경비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기에(아파트 주민과 모순이 발생하여) 청소하는 사람이 없어, 바람에 날려 온 비닐봉지와 더러운 종이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날부터 내가 정원 청소를 담당했다. 눈이 두 번 내렸는데, 내가 혼자서 이른 아침부터 눈을 쓸었으며, 자동차에 쌓인 눈도 깨끗이 쓸어 주었다. 내가 허리를 폈을 때 무의식중, 2층 베란다에서 한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웃는 것을 보았으며, 아침 운동하러 나가는 사람은 모두 나를 칭찬했다. 새 경비가 올 때까지 이렇게 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신을 믿는 사람, 불교를 믿는 사람, 기타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지만, 믿는 데만 그칠 뿐, 무슨 일을 해야 할 때면 오직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제자만이 나서서 난처한 국면을 해결하여 묵묵히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뿐이다.

나는 장거리 열차를 타고 출장 갈 때는 매번 하차하기 전에 침대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승무원의 부담을 덜어준다. 한번은 남자 승무원이 침대를 정리하러 왔다가 내가 반듯하게 개 놓은 이불을 보고 몹시 놀라면서 “누님, 이건 누님이 갠 거죠? 나보다 더 반듯하게 갰네요. 여러 해 동안 일하면서 백 명 중에 한 사람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젊은이는 몹시 감동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경지를 어디든 가서 실제 행동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실증함으로써 대법제자의 칭호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초래한 교란

올해 정월 18일, 딸이 갑자기 전화로 그녀 시어머니가 까무러쳤다고 하면서 나와 남편더러 와서 애를 봐달라고 했다. 마침 20여 일 후에는 외손자의 생일이어서 어차피 가야 하기에 우리는 이튿날 딸집으로 갔다.

20여 일이 지난 후 사돈댁은 좀 나아지긴 했으나, 가끔은 또 까무러치곤 했다. 나는 그녀에게 병원에 가서 왜 까무러치는지 진단해 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병원에 가기 싫다고 하면서 좀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사돈댁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초저녁부터 밤중까지는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놀거나 마작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늘 밤 11시나 12시까지 자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밤 1시를 넘길 때도 있었다. 원래부터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닌 데다 늘 이렇게 하니, 튼튼한 사람도 지탱하기 어려울 것인데 그녀는 더더욱 지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도 땅도 낯선 이곳에 와서 현지 수련생과 연락을 취할 수 없어 전화로 진상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땐 연공을 하는데 애가 깨어 제대로 연공할 수 없었으며, 발정념도 몇 번밖에 하지 못했다. 만약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자기 할 것만 한다면 내가 거기에 왜 갔겠는가? 애를 보러 간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조급하다 못해 입에 물집이 생겼다. 그때야 나는 아들을 위해, 딸을 위해 애를 보는 수련생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없이 말을 얼마나 쉽게 했던지…… 나는 그때야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생각했다. 딸에게 곤란이 있으면, 부모가 된 우리는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크게 비난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나는 사돈댁의 상태를 관찰하였다. 관건이 되는 이 때에 이런 일이 나타난 것이 바로 교란이다. 딸의 집에 40여 일간 있었는데, 사돈댁은 병원에 가서 진찰받지 않고, 조금 나은 것 같으면 나가서 마작을 한다. 사돈댁은 그녀의 집 부근에 셋집을 구해줄 테니 늘 와서 외손자를 봐달라고 했다. 나는 이 일체는 분명히 구세력이 그녀를 이용해, 내가 더욱 많은 시간을 이용해 사람을 구하는 것을 교란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완곡하게 사절했으며, 남편은 나와 의논하지도 않고 나흘 앞당겨 집에 가는 차표를 끊었다. 그때 사돈댁은 또 까무러치고 토했다. 나는 구세력이 이런 형식으로 가상을 만들어 내게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꾐에 넘어간다면 나는 돌아가지 못한다. 그때 딸이 내게 “엄마와 아빠는 그냥 돌아가세요. 시어머니는 별일 없을 거예요. 지금 잠들었으니 쉬고 나면 곧 나을 거예요. 나는 관건이 되는 때에 이런 말을 해준 딸이 무척 고마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가 하늘의 주(主)인가

층층이 법을 떠난 자

스스로 천궁의 주(主)라 하네

제자리로 돌아갈 시기 이미 다가왔나니

누가 아직도 어리석은지 보리로다”[2]

사부님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집에 돌아온 며칠이 지났지만 딸 집은 별일이 없었고 나의 근심을 들어주었다. 내 주위 수련생들도 나의 환경이 좋다고 부러워할 때, 나는 별생각 없이 “나는 정말 근심이 없고, 정말 사돈댁에 감사하다. 만약 사돈댁이 애를 봐달라고 하면 그럼 아무래도 봐줘야 할 게 아닌가?”라고 했다. 법에 있지 않은 이 말이 곧바로 교란을 불러왔다. 이것은 나 자신이 구한 것이 아닌가? 이번 교훈을 통해 일사일념, 매 한 마디 말은 모두 법에 있어야 한다는 것의 중요함을 체험하게 되었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자신을 잘 파악해야 한다.

정법은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으며, 나도 대법에서 20여 년을 수련했다. 나는 내게 이러한 기연이 있는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내가 층층 전생(轉生)하는 중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며, 그 덕분에 이번 생에 이르러 법을 얻어 자신의 서약을 실현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만고의 기연을 내가 만났다. 나는 이 ‘기연’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부터 오늘에 이름은 / 오로지 이 한 차례를 위함이어라”[3]

이상 교류에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정념정행’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무미’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매화(원곡)’

문장발표: 2017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소감>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6/3461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