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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점과 함께 어려운 15년을 걸어지나오다

글/ 중국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3년 나는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고 밍후이왕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밍후이왕에 오른 수련생의 교류문장은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일부 구체적인 일에서 법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수련의 길을 점점 착실히 걸을 수 있게 됐다.

길을 바르게 걸으니 사존께서 걸음마다 보호해주시다

밍후이왕에 접속해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자료점(資料點: 자료 만드는 곳)은 한 가지 원칙을 잘 파악했다. 밍후이왕 자료가 아닌 것은 절대 만들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우리가 만든 진상 자료는 모두 밍후이왕에서 다운로드한 것이기에 사악은 자료점에 빈틈을 타지 못했다.

사악이 대법제자를 가장 엄중하게 박해하던 그 몇 해는 우리가 가장 바삐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때 위험 앞에서, 사악 앞에서 매번 모두 평온하게 지나와 나는 한 번 또 한 번 대법의 위대함과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를 체험했다.

한 번은 소모품을 사갖고 돌아올 때 사복경찰이 차를 운전해 내 길을 막았고, 한 번은 내가 ‘9평 공산당’ 한 상자를 갖고 농촌으로 갈 때 한 무리 사람들이 차를 운전해 나를 가로 막았지만 매번 사악 앞에서 나는 유난히 태연하게 몇 마디 말로 그들을 다급히 떠나가게 했다. 그때 내 수련상태는 그렇게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위험 앞에서 놀라지 않고 마음에 당황하거나 두려운 감이 전혀 없었다. 이후 나는 사존께서 나를 가지해준 것이고 사존께서 사악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임을 깨달았다.

어느 해 3, 4월 경찰이 톨게이트에서 버스를 가로막고 검사했다. 모 지역에 진상 자료를 가져다주려면 이 톨게이트를 지나야 했다. 이전에 나는 종이박스로 자료를 포장했는데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이 톨게이트를 지나갈 때 이곳에 경찰이 있는 것을 보고 버스를 막고 검사하지 않았지만 나는 경각성을 높이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이번엔 큰 여행 가방을 썼다. 버스를 탈 때 매표원은 나에게 “당신 가방을 나 여기에 두고 당신은 뒤에 가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버스가 톨게이트에 이르렀을 때 경찰이 버스를 막고 검사했다. 한 경찰이 앞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걸어가면서 양쪽을 한 번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 승객이 그에게 당신들은 뭘 검사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폭죽을 검사한다고 했다.

설 기간이 이미 지난 3, 4월에 무슨 폭죽을 검사하는가? 나만 속으로 그들이 진상 자료를 검사한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톨게이트 양쪽에 대법을 공격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그 기간 우리 현의 수련생들 사이가 좀 혼란스러워 내가 자료를 전달하는 경로를 사악에게 누설한 사람이 있었는데 심지어 종이박스로 담아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들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톨게이트에서 가로막고 검사할 때 주로 종이박스를 검사한 것이다. 사존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종이박스로 자료를 담았을 것이고 아주 큰 번거로움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착실하게 심성을 수련하니 고생 속에 기쁨이 있다

3년 동안 우리 자료점은 소모품을 상자로 사들인 다음 상자로 밖에 자료를 가져다주었다. 많을 때 한 번에 5, 6상자를 보냈다. 해마다 설 전후면 안전검사원이 늘 승객의 가방을 열고 인화성 물품, 폭발성 물품, 유독성 위험물을 검사했는데 우리 자료를 담은 상자는 검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내 상태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다.

사당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에서 자료점은 줄곧 그들이 중점적으로 박해하는 목표였다. 이에 자료점 수련생은 자신을 엄격하게 잘 수련해야 했다. 시시각각, 사사건건 법으로 자신을 대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걸어지나오기 아주 어려웠다. 나는 항상 자신을 점검하면서 자신에게 아직 어떤 내려놓지 못한 사람마음이 있는지 보았다. 나는 여러 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잘 수련하지 않고 잘하지 못해 자료점이 파괴된다면 난 법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지자 책임감이 더 강해졌고 수련도 더 엄숙하게 대할 수 있었다. 법공부를 통해 끊임없이 법에서 제고되어 점차 내 심성은 안정됐다. 1. 태연하게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었고, 2. 인간세상의 모든 것에 좌우 되지 않았으며, 3. 나는 아무 것도 중히 보지 않고 마음에 사존과 대법만 있었다.

걸어나와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 날부터 나는 자신이 장래 인간세상에서 어떤 결과가 있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사존을 따라 끝까지 가고 모든 것을 사존의 배치에 따를 것이라 결심했다. 집착이 없고 자아도 없이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에 감당한 책임이 점점 중해져 나는 날마다 자신의 이런 정념을 강화했다. 밍후이왕에서 보도한 전국 각지 자료점이 파괴된 정황을 볼 때마다 나는 모두 아쉬웠다. 한 번 또 한 번의 침통한 손실은 정말 가슴 아팠다. 다른 사람의 교훈을 거울로 삼아 나는 절대 그 길을 밟아서는 안 된다. 2005년부터 우리 자료점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자료점 사람이 아닌 수련생은 아무도 자료점에 오지 못하게 했다.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이 배후에서 자신을 의논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때 사악이 얼마나 발광하던지 나는 확고한 정념을 가졌다. 우리 자료점은 반드시 사존의 정법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갈 것이다.

장기간 자료점에서 일하면서 시시각각 안전에 주의해야 했기에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습관을 키웠다. 직업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안전에 불리한 일을 하면 조급하게 다른 사람을 자극하는 말투로 말했는데 스스로도 선량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땐 통제할 수도 없었다. 주위 수련생의 수련 상태가 좋지 않으면 더 조급했고 근심했으며 심지어 일부 좋지 않은 일을 연상했다. 어떤 때는 흥분해 다른 사람을 질책했고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는 나중에 후회했다. 자신이 너무 수련을 잘하지 못했고 수련생을 포용할 줄 모른다고 후회했으며 늘 강렬하게 다른 사람을 고치려 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모른다. 난 심성을 지키기 어려웠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이후에 사존께서 나에게 용량을 넓히라고 점화해주어서야 진정하게 자신의 문제를 인식했다. 사존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들은 어떤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한다.”[1] 그 후 주위 수련생의 수련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수련생의 부족함을 보지 않고 먼저 애써 자신을 수련했다. 수련생을 거울로 삼아 자신에게 어디에 부족 점이 있는지 보았고 다그쳐 법공부를 하여 가급적 법에서 제고하여 구세력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또 심혈을 기울여 수련생을 관심했고 도와주었으며 호의적으로 법리에서 수련생과 교류했다. 이렇게 해야 정체적으로 공동 제고할 수 있으며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료점에 번거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교훈을 받아들여 이후에 각 지역에 자료를 가져다주는 일을 나 혼자 감당했다. 각지 수련생의 안전을 위해 나는 거의 날이 어두운 후 그들이 있는 곳에 갔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밤에 돌아오기 힘들어 그들이 있는 곳에 하룻밤 묵고 이튿날 어떤 땐 날이 밝기 전에 떠나갔다. 어떤 곳엔 이미 10여 년 유지했다. 여러 번 다니다보면 우연하게 수련생 이웃을 만날 때도 있는데 어떤 수련생은 두려워 나에게 오지 말아야 할 때 왔다고 원망했고 어떤 수련생은 불쾌한 얼굴로 상대했다. 처음에 나는 좀 괴로웠다. 속으로 내가 몇 십리를 달려서 당신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러 왔는데 수년간 엄한 혹서, 비바람을 마다하고 다녔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나를 대하냐고 생각했다.

이후 생각해보니 나의 입장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그럼 나는 그들을 많이 생각해야 하고 그들에게 압력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후 더 늦게 가고 더 일찍 떠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불평 불만스런 마음이 즉시 사라졌다.

어느 한해 이미 겨울에 들어섰다. 어느 날 저녁, 난 한 수련생의 집에 갔다가 이튿날 날이 밝기 전에 그의 집을 떠났다. 자전거를 타고 막 마을을 나서는데 갑자기 한 가닥 찬바람이 불어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찬바람이 뼈를 에이는 것 같았다. 옷을 엷게 입은 데다 30여 리 길을 가야 했고 앞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컴컴해 내 마음은 단번에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에게 쫓겨난 것 같은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즉시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속인이 아닌데 고생을 두려워해서 되겠는가?

이때 나는 사존의 법이 생각났다. “당신은 알아야 한다. 나는 줄곧 말했다. 대법제자가 문제를 볼 때는 반드시 반대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삼계는 반대로 된 것이지만 당신들은 올바르게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속인들이 좋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 여기를 떠나려는 생명으로서 수련인에게는 바로 좋은 것이다. 당신이 속인과 같은 생각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영원히 속인이며 당신은 영원히 여기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마난 그것은 마침 당신이 제고하는 기회이다. 만약 당신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침 당신이 난관을 넘기고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기회이다.”[2]

사존의 법을 생각하니 그런 가라앉은 기분이 갑자기 사라졌고 춥던 느낌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오히려 행복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큰길에 들어서 즐거워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망망한 안개를 가르며 끝없는 어두움을 뛰어넘었다. 사존께서 내 손을 잡고 광명으로 향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암흑 속에서, 큰 안개 속에 20여 리를 가자 마침내 서광이 보여 저도 모르게 기뻤다. 대법을 수련해 정말 행운이다!

사존께서 나를 구해주어 박해를 모면하다

이후에 밍후이왕에서 자료점이 곳곳에 꽃필 것을 요구해 우리는 조건이 되는 수련생을 도와 자료점을 세워주고 큰 자료점 설비도 일부 나누어주어 우리 자료점 일을 많이 덜었다.

이후에 돈을 절약하기 위해 자료점은 아주 허름한 곳으로 옮겼는데 얼마 되지 않아 양식하는 사람이 입주했다. 그때 우리 세 집은 전기 계량기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기에 우리와 다른 한 집에서 각자 계량기를 하나씩 설치해 매달 전기세는 먼저 두 개 나눠진 계량기 전기세를 계산하고 나머지를 양식업 하는 사람이 지불하기로 했다. 우린 텔레비전, 냉장고가 없었기에 매달 전기 사용량이 아주 적은데 그들은 우리가 전기 계량기에 부정당한 수단을 썼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해 여름 각별히 더워 일하지 않을 때 우린 문을 닫고 방에서 법공부하고 법을 외웠는데 잠시 후면 더워서 온몸에 땀이 났다. 아무리 더워도 우린 선풍기를 감히 켜지 못했다. 우리가 선풍기를 쓰기만하면 계량기 숫자가 올라가 그들이 우리를 번거롭게 굴 것이고 우리에게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밤 12시까지 법을 외우고 발정념 한 후 침대에 누워 손에 파초선을 들고 부채질했다. 너무 피곤하면 잠깐씩 자고 더우면 깨어나 잠깐 부채질하고 너무 피곤하면 또 잠깐 잤다. 이렇게 종일 견지하자 며칠이 되지 않아 내 온몸에 땀띠가 났다. 나는 아무리 더워도 2016년 여름에 선풍기를 한 번도 쓰지 않기로 이미 결정했다. 내 몸에 온통 땀띠가 나 늘 가려워 참기 어려웠지만 온 여름 한 번도 선풍기를 쓰지 않았다. 이후에 그들은 사사로이 전기 계량기를 바꾸었다.(우리가 원래 쓰던 계량기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했음.) 월초 계량기를 검침할 때 새로 바꾼 계량기 전기 사용량이 증가되지 않은 것을 보고 그들은 우리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사악은 전기 사용량으로 우리에게 속인과 모순이 발생하도록 시도했지만 노린 기회가 타파되어 그들의 음모는 달성되지 못했다.

어느 날 점심이 지난 후 법공부할 때 그곳에 앉으니 온몸에 땀이 나 옷이 다 젖어 나는 러닝셔츠를 벗고 등을 드러내고 법을 외웠다. 몇 분 외우지 않았는데 갑자기 차가운 냉기가 몸에 들어왔다. 나는 즉시 이것은 사악에게 빈틈을 보인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얼른 러닝셔츠를 입었다. 나는 등을 내놓고 법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법에 대한 불경이다. 잠시 후 온몸이 차가웠고 독감에 걸린 것처럼 머리가 아프고 이튿날 콧물이 나고 가래가 나와 나의 법공부, 발정념을 교란했다.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았는데 구세력은 여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자료점의 일이 일부 홀가분해져 우리도 늘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다. 어떤 때 나도 고향 일대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고향은 편벽해 다른 수련생들은 그곳에 잘 가지 않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있으면 내가 많이 가자고 생각했다. 하루는 내가 요 며칠 고향에 한 번 가려고 확정했는데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은 한밤중에 내가 집에서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열 몇 명의 한 무리 경찰이 들어와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어 난 깨어났다. 당시 나는 이것이 교란이라고 생각하고 구세력이 내가 고향으로 가서 사람 구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 이틀이 지난 저녁, 난 고향에 가 자료를 배포하고 집에 묵었다. 새벽 2시 좌우 갑자기 내가 사는 방에 한 무리 경찰이 뛰어 들어와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면서 일어나라고 했다. 이 장면은 꿈과 똑같았다. 그제야 나는 사존께서 사전에 나에게 사악이 나쁜 일을 할 것이니 집으로 가지 말라고 점화해준 것임을 알았다.

그들 두 개 현의 국가보안대대 책임자와 두 파출소 경찰이 나를 납치하는데 참여했다. 그들은 나를 인근 현의 한 파출소로 끌고 가 내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다. 몇 년 동안 그들은 발광적으로 나를 찾으려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는데 오늘 나를 납치했으니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득의양양해 했다. 인근 현 국가보안대대 한 사람은 기뻐서 노래까지 불렀고 즉시 전화해 그들 상급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내가 왜 납치됐는지 생각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는 줄곧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하지 않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일마다 이지적이고 경각성을 높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우선 사존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간 사존께서 나를 고심하게 배양하고 구도하면서 여러 모로 나를 보호하셨는데 난 수련의 길을 잘 걷지 못해 마굴에 떨어졌으니 사존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사존께서 사전에 나에게 위험을 피하라고 점화해주셨는데 나는 교란으로 여긴 것이다. 이 모든 번거로움은 구세력이 내가 그 당시 법공부할 때 법을 존중하지 않은 빌미를 잡고 한걸음씩 박해를 만든 것이다. 먼저 법을 잘 배우지 못하게 하고 발정념을 잘하지 못하게 하여 사악을 해체할 강대한 힘이 없게 한 다음 나를 박해한 것이다. 금후 나는 더 엄격하게 자신의 수련을 대해야 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3]

나는 사악의 박해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사존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완성하지 못했으니 꼭 벗어나야 한다. 나의 길은 사존께서 배치하신 것이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해주실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외출한 것처럼 갈 때가 되면 가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몸 좌우 양쪽에 빛나는 빛을 보았다. 나는 사존께서 나를 보호하고 가지해주신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 8시 경, 두 ‘협경(協警, 경찰 보조)’이 내 몸 곁에 따라다니며 나를 지키는 정황에서 나는 파출소에서 걸어 나왔다. 사존의 보호로 나는 아주 빨리 구세력의 마수에서 벗어나 날이 밝은 후 또 자료점으로 돌아왔다.

법을 중히 여겨 가족이 혜택을 보다

어느 해인가 우리 자료점의 일이 아주 많을 때 가족이 나에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수술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이는 구세력이 나에 대한 교란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장남인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가 어머니 옆에서 보살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나는 가족과 상의하고 먼저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지 말고 어머니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게 한 다음 다시 보자고 말했다.

다음 나는 구세력이 어머니를 이용해 나를 교란하는 것을 제거하는 발정념을 했다. 어머니는 60여 세인데 여태껏 내 수련을 반대한 적이 없었고 박해가 시작됐을 때 어머니 말은 정의감이 있었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 돌아가신다 해도 이 생명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 때문에 대법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하는데 나는 어머니와 중생을 달리 보아서 되겠는가? 반드시 이 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시간에 사람 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어머니 보살피러 간다면 어머니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나는 사존의 설법이 생각났다. “당신 앞뒤의 모든 일을 모두 사부가 당신에게 책임져 주고 있는데 당신이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당신이 걱정한다고 될 일인가? 당신이 배치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말해서 될 일인가?”[4]

내가 어머니에 대한 정을 완전히 내려놓고 사람 구하는 일에 몰두할 때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병이 좀 나아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1년 후 어머니는 정상으로 회복되셨다.

10여 년 동안 나는 사람마음, 정으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지 않고 어머니에게 한 번 또 한 번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드렸다. 거기에 다른 대법제자들이 어머니에 대한 관심과 생활상의 도움으로 어머니는 더 분명하게 누가 선량하고 누가 악하며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 인식하셨다. 2016년 초 사존께서는 나에게 어머니를 법을 얻게 하라고 점오해 어머니는 법공부를 시작하셨다. 내 다른 가족도 잇따라 대법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존의 크나큰 은혜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이전에 나는 늘 주위 수련생에게 말했다. “우리가 사존께 죄송한 일을 할 뿐 사존께서는 영원히 우리를 섭섭하게 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떤 때 나는 속으로 사존께 말씀드린다. “사부님 시름 놓으세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 사부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10여 년의 비바람을 지나고 수많은 단련을 겪는 한 걸음마다 사존의 심혈과 고심한 제도가 스며있다. 지금 이 모든 것을 돌이켜 보면 스스로도 감격의 눈물을 억제하기 어려우며 감개무량하다. 망망한 안개, 망망한 어둠 속에서 사존께서 나를 이끌고 귀항하고 있고 머나먼 길, 긴 밤을 사존께서 나를 이끌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있다.

사존,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8-2008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즈 사부님의 시: ‘홍음2-사도은(師徒恩)’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17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6/345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