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병업 중에 처한 수련생과의 교류
글/ 중국 수련생 쩐루(眞如)
[밍후이왕]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수련생은 장기간 병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는 사람도 있다. 함께 어려운 시절을 걸어온 수련생으로 마음이 아프다. 내가 법을 얻은 초기 A수련생의 경험은 마침 의학 방면에서 대법을 실증했다. 오늘 나는 이 경험을 글로 적어 지금 여전히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수련생과 함께 나누고 싶고 괴로움에서 걸어 나와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흐름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가 법을 얻은 초기에 발생한 2가지 일이다.
A수련생은 한 큰 병원의 외과주임이다. 어느 하루 B수련생이 그를 찾아와 자신이 하지정맥류가 심하다며 수술을 원한다고 했다. 주임은 B수련생의 상황을 알고 법에서 그와 교류했다. 우리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신체를 청리해 주셨으며 우리는 병이 없고 신체가 불편한 것은 소업이고 좋은 일이다. 우리는 병이라고 보면 안 되고 가상에 미혹되면 안 된다. 교류를 통해 B수련생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수술을 포기했다.
2개월 후 B수련생은 또 외과 주임을 찾아와 병이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다리의 혈관이 수시로 터질 것 같다며 수술을 원한다고 했다. 주임은 수련생으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말했다고 생각했고 상대방이 자신을 속인이라고 생각하면 의사로서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과주임은 직접 수술을 담당했다. 그는 피부를 절개한 후 수술 부위를 찾아 메스로 절개하려 할 때 놀랐다. 메스로 3번이나 절개하려 했는데 절개하지 못했다. 마치 철사를 자르는 것 같았다. 방법이 없어 마지막에 수술용 가위로 수술을 마무리했다. 주임은 오랫동안 외과 수술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상황에 부딪혔다. 수술 후 그는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나쁜 일을 한 것 같았다. B수련생 신체가 이런 정도를 변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을 절개했구나.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B수련생이 오성이 나쁘다고 원망했다. 그 후 외과주임은 줄곧 일종 자책감이 남았다.
또 한 번은 외과주임이 악성종양 환자를 수술했다. 수술 중 환자의 악성종양은 한 층의 두꺼운 막으로 단단히 싸여있었다. 종양 근처에 암세포에 침투된 흔적이 없다. 종양 근처의 내장조직은 아주 깨끗했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드물다. 이렇게 큰 악성 종양이 어찌 다른 조직을 침투하지 않았는가? 그는 불가사의 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회진을 할 때 외과주임은 어제 수술한 환자 몸에 파룬 휘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급히 물었다. “파룬궁을 수련하세요?” 상대방은 답했다. “네!” 주임은 듣고 마음이 무거웠고 암암리에 원망했다. “당신은 연공인인데 왜 수술을 했어요?” 속으로 탄식했다. 사부님께서 이미 그의 신체를 이런 정도로 개변시켰는데 아쉬운 것은 제자가 깨닫지 못하고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사부님의 일편고심(一片苦心)을 저버린 것이었다. 정말로 아쉽다! 1년 후 이 환자는 또 주임 앞에 나타났다. 이때는 건강이 나빠져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검사 후 진단을 내렸는데 악성종양이 이미 전이됐다.
우리는 법을 얻는 동시에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신체를 청리해 주셨고 수련 중 신체에 나타난 병적 상태는 우리가 층차를 제고하기 위해 설치한 고험이다. 신체상 감당은 이전에 지은 빚을 갚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부분 감당하셨으며 단지 조금만 남겨 우리 층차 제고에 사용한 것이다. 물론 고험은 크고 작은 것이 있지만 크든 작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층차를 제고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련생은 병업관을 오랫동안 끌다가 넘기지 못한다. 비록 표면에서 그는 약을 먹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았지만 그(그녀)는 속으로 병이라는 것을 줄곧 의심하고 있다. 우리의 일사일념은 다른 공간에서 층층의 생명이 똑똑히 볼 수 있다. 사부님도 보고 계신다. 표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누구도 방법이 없다. 개별 수련생은 줄곧 착실한 수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이익 앞에서 속인과 함께 다투고 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배포하며 삼퇴하는 것을 정진의 표준으로 삼는다. 신체에 병업 상태가 나타나면 대법을 의심하고 사부님을 의심하며 관을 넘기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감당하고 사부님을 원망한다.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는데 왜 이런 상태가 나타나는가?
앞의 두 가지 사례는 의학 방면에서 사부님께서 확실히 우리를 위해 신체를 청리해 주셨고 신체를 연화해 주셨으며 신체에 나타난 병적 상태는 가상이고 고험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사실 신체상 시련이든 생활 속 시련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제고를 위해 설치한 것이다. 우리가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으며 무조건 안으로 찾는 이 점만 해내면 넘길 수 없는 관이 없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15/3456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