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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방법이 없는’ 배후에 있는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 과정에서 ‘어찌 할 방법이 없는’ 상태가 나타났는데 줄곧 자연 현상이라 생각하고 중시하지 않았다. 최근 1년간 수련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몇 차례 나타났다.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모르고 슬럼프가 온 것 같고 어떻게 해도 넘어가지 못하고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정법 종결을 기다리고 있는가?” 최근 이가 심각하게 흔들려 비로소 근본적으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 나의 어찌 할 방법이 없는 표현

이가 떨어지는데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10여년 전 50여세 때 어떤 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속인 중의 현상은 잇몸이 좋지 않은 것이다. 당시 개의치 않았고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십몇 년 중 이가 하나씩 흔들리고 안 되면 뽑아버렸고 혹은 스스로 빠졌다. 지금 열몇 개가 남았다. 나는 이에 관한 꿈을 몇 번 꿨다. 꿈에서 이가 또 떨어지려 하고 몇 개 혹은 모든 이가 떨어졌다. 꿈에서 낙담했고 이런 생각을 했다. 틀니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현실에서 이가 빠지려 할 때 발정념도 하고 이와 대화도 하고 그들에게 견지하라고 하며 함께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한 번도 효과가 없어 마지못해 포기하게 됐다. 어찌 할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이것은 자신의 업력에 의해 조성된 것이고 혹시 구세력의 요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서 나의 의견을 ‘수렴’ 했기에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다.

수련생의 병업에 대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수련생이 엄중한 병업이 있을 때 수련하지 않는 가족은 강압 아래 병원에 보내 화학 실험, 수혈, 수액, 응급처치, 투약, 여러 가지 제한을 실시한다. 속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발정념을 해야 하고 다음번 수혈 시간을 정한 시간보다 길게 해야 한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혈청이 낮아 병원에 거듭 데려가 수혈을 했다. 비록 입으로는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정공을 하고 발정념을 할 때 졸리고 손이 넘어지고 주의력이 분산될 때가 있다. 이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신 차리자 , ‘멸’을 말하기 전에 주의식은 이미 어디로 간지 모르고 정말로 어찌할 방법이 없다.’

진상을 알려도 속인이 믿지 않고 삼퇴에 동의하지 않을 때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에게 여러 번 진상을 알렸어도 몇 년 동안 탈퇴하지 않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는 심리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그녀)는 구할 수 없고 방법이 없다.

또 많은 사례가 있는데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2. 어찌 할 방법이 없는 근원을 파헤치다

관념에 통제돼 일부 일의 발전을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속인은 각종 관념이 있는데 엄중한 병에 걸리면 물론 병원에 가야하고 이가 좋지 않고 흔들리면 떨어지고 잠이 적으면 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련인은 이런 관념이 제고에 장애가 된다.

주의식이 강하지 않고 일사일념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다. 일사일념을 수련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표면에서 알고 있지 잘못된 관념과 생각이 나타날 때 형식적으로 ‘이러면 안 된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에만 그친다. 순간에 나타난 관념을 붙잡고 깊이 근원을 파헤치지 못하고 제거하지 못했다.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못했다. 2001년 아침 나는 구치소에서 박해당할 때 같은 감옥의 한 수련생이 5년을 수련했는데도 아직 가부좌가 힘든 것을 보고 말했다. “당신은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다.” 몇십 년이 지났다. 나는 자주 그 수련생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에 대한 느슨함이 이미 습관으로 된 것 같고 마땅히 제고해야 할 기회는 구실을 대고 넘어갔다. 신체와 정신 상에서 고생을 하지 못하고 고생하려 생각하지도 않는다. 고층차에서 고생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고생을 하면 피하려 하고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1]를 해내지 못했다.

구하는 마음이 있다.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흔히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일을 하면 결과를 구하고 급히 성과를 얻으려 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흔히 어찌할 방법이 없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자신과 수련생 병업에서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주변의 중생이 구도되기를 기대한다. 보기에 중생을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다. 진상을 알릴 때 구하는 마음이 있고 눈앞의 성공과 이익만 급급히 보고 ‘위덕’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며 타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는 마음이다.

백분의 백 신사신법이 아니다. 전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 내가 신사신법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련이 좋지 않고 층차가 낮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사부님을 믿지 않은 것이다. 비록 층차가 낮지만 노력하면 사부님은 신변에 계신다. 우리 점오 상태인 수련생은 어떤 정도로 믿으면 어떤 정도의 결과가 나타난다. 돈오하는 대근기지인은 세포가 잠겨 있어도 굳게 믿고 있다.

3. 어떻게 이찌할 방법이 없는 상태를 돌파하는가?

어찌할 방법이 없는 각종 근원 사이에는 서로 연관성이 있고 제고 방면에서 상부상조한다.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문제를 발견하는 데만 머물러 있고 적극적으로 그것의 근원을 파헤치지 않아 심성 제고의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련 상태는 경박하고 표면에 머물러 있다. 지금 인식했는데 진정으로 자신의 나쁜 물질을 제거하려면 문제가 나타난 후 구체적인 조치를 생각해내야 하고 시시각각 자신이 해낼 것을 요구하고 해내어야 비로소 수련이다.

진정으로 신사신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수련한다 함은,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깨달음 하나로 일관한다는 것인데, 미혹 속에서 닦는다. 서방에서는 믿음을 말하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음을 말하며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2] ‘미신’, ‘미신’은 사실 가장 소중한 것으로 ‘미혹 속에서 믿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기적을 쉽게 보여주시면 십악불사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믿게 된다. 예를 들면 수련인이 모두 ‘병’ 현상이 없으면 그 미혹이 깨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 중의 사람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반본귀진하기 위한 것이므로 또 오성(悟性)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이 확실하고 확실하게 모두 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그도 가서 수련하는데, 곧 오성 문제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수행(修行)하는 것을 또 함부로 사람이 보게 해서는 안 되며,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데, 다른 사람 역시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다.”[3] 사람이 미혹 속에 있어 비로소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 하사가 있고 미혹 속에서 수련하기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는’[4] 중사가 있고 때로 믿고 때로 의심하며, 또 근면하게 행하는 상사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깨달음에 의해 원만을 이룬다.”[5]

‘믿음’을 해결하려면 법을 많이 배워야 한다. 책을 읽는 것이 법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임무완성식이라면 소용없고 진정으로 법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법을 외우는 방법으로 ‘전법륜’을 읽고장절을 외우지 못하지만 한 단락씩 외운다. 또 밍후이왕 수련생의 글을 많이 본다. 수련생의 대법 수련에 관한 인식과 그들이 실천에서 보여준 확고한 행위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나처럼 단독 수련 상태는 밍후이왕이 없으면 오늘까지 견지하기 어렵다.

“주의식은 반드시 강해야 한다.”[6]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主意識(주이스)가 대뇌를 더욱 심하게 통제할수록 다른 생명은 역시 끼어들지 못한다”[3] 그러므로 반드시 주의식을 통제해야 하고 나쁜 것이 끼어들게 하면 안 된다. 순간에 나타난 정확하지 않은 일사일념을 붙잡아야 한다. 그가 머리만 내밀면 의식하고 즉시 배척하고 부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체는 또 층층이 미시적으로 표면공간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지 않은가? 모두 사상을 산생할 수 있다.”[7] 자신의 신체에서 층층이 나타난 나쁜 사상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층층이 제거해야 한다. 동일한 나쁜 사상은 반복해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번 제거해야 하고 매 층 미시적인 공간에 모두 있고 끊임없이 견지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집착심은 처음부터 수련하면서 끊임없이 이 방면의 일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살 때 거스름돈이 많이 오거나 1등 경품을 뽑거나 타인이 나의 돈을 가져갔거나 등등이다. 줄곧 지금까지 이 방면의 일이 있는 것은 이익지심을 아직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유형의 생명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는데, 당신은 오히려 당신 사상 내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당신은 자신이 이렇게 하려고 한 것으로 여긴다.”[8] 동시에 구세력은 수련인의 누락을 붙잡고 끊임없이 수련인의 사상에 나쁜 생각을 집어넣는다. 자신 이외의 생명이 작용을 일으키면 자아와 분간해야 하고 그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가지지 않고 그것을 배척하고 반대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쁜 생각이 나타나고 발정념을 할 때 주의력이 분산되면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왜 또 주의력이 분산되는가?’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고 ‘내’가 딴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다른 공간의 그런 난잡한 나쁜 생명이 ‘나’를 억제한 것이고 그들이 작용한 것이다. 나는 ‘우둔’한 방법을 택했다. 그들이 나타나면 거듭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멸한다. 발정념을 할 때 주의력이 분산되면 ‘주의식이 어디에 갔는가? 빨리 오라! 사부님은 중생과 많은 제자를 데리고 구세력과 교전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보고 있다!’ 하면서 분산된 주의력을 끌어들인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자아가 아닌’ 것을 습관적으로 배척해야 비로소 갈수록 좋아진다.

근본적으로 가상의 사물이라고 인식한다. 예를 들면, 병업 현상이 오면 구세력이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그것은 감히 올라가지 못하고 먼저 그에게 공을 조금 주어 시험해 본다. 그는 추구하여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공이 왔으며, 병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보니 아주 좋았으며, 마치 연주할 악곡의 전주(前奏) 같았다: 그는 가지기를 원하는구나. 그럼 내가 올라가자. 올라가야 많이 주고 통쾌하게 줄 수 있다.”[3] 신체에 막 상황이 나타나면 즉시 그것을 부정한다. ‘이것은 나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나의 일념의 차이가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수련인은 병이 없다. 이런 표현은 가상이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그것을 배척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승인받지 못하고 강제로 박해하는 것은 법을 범하는 것이다.”[9] 만약 다소 견정하지 않고 망설이고 제때에 그것을 배척하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것은 정말로 온다.

신의 표준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않을수록 어찌할 방법이 없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우리의 목표는 신으로 수련 성취하는 것이기에 일마다 일사일념에서 신의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 어찌할 방법이 없는 일에 부딪히면 생각한다. 만약 신이라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했을까? 동시에 어찌할 방법이 없을 때 안으로 찾고 자신의 집착심이 무엇인지 본다. 예를 들면, 이가 흔들린다면 수구하지 않은 것과 “입의 집착 없도다.”[10]를 생각해 봐야 한다. 진상을 알릴 때 타인이 듣지 않으면 자신의 자비심이 부족한가를 봐야 한다. 수련생의 병업 현상이 지속되면 자신이 밖으로 보는가를 봐야 한다.(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보는 것) 혹은 수련생의 집착심에 집착하는지 봐야 한다. 발정념을 할 때 손이 넘어지고 주의력이 분산되면 오랫동안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봐야 한다.

관념을 바꾸자. 사람의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신이 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성불하라 하고 당신에게 수련하라고 한 만큼, 수련 중에서 당신은 당신의 후천적인 관념을 제거해야 하며, 당신을 대체한 사상업력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11] 발정념을 해 자신을 청리할 때 나는 생각한다. 당신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당신들을 죽게 만들겠다. 그런 후 나는 ‘사(死)’를 꼭 붙잡고 멸한다. 한 종류의 사상이 머릿속에 반영되어 나오면 즉시 분석한다. 누가 이렇게 생각했는가? 이것은 사람의 관념, 아니면 난잡한 생명인가? 법의 표준은 무엇인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 자체가 사람의 관념에 의해 조성된 것이고 습관적으로 사람의 ‘불가능하다’라는 사유로 문제를 생각하고 신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속인의 관념을 돌파해야 점차 신의 사유가 형성되고 비로소 속인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수련생은 이미 무수한 이런 기적을 만들었다.

이상은 나의 현재 층차 중의 체험과 방법이고 법에 부합되지 않는 점은 수련생께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마음 고생’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왜 볼 수 없는가’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따파의해-장춘 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13년 미국국제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9]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10]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도 중에서’

[1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7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4/346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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