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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아 의식 못했던 사심을 없애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심은 사람에게 습관적인 사유를 형성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은 아주 분명하게 보지만 본인의 부족한 점은 잘 느끼지 못하고 늘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옳다고 여긴다.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로움과 위대한 지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적인 나를 제거할 것인지를 가르쳐주셨다. 바로 안으로 찾는 것이다. 그러나 형성된 이기적인 사유 때문에 본인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인식하기 아주 어렵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한 번은 이웃 수련생과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교류할 때 수련생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우리 부근에서 배포하지 말아주세요. 이곳에 배포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어서 화제는 부근 지역사회에 있는 CCTV 문제로 이어졌다. 수련생이 또 말했다. “내가 배포할 때 CCTV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나는 멍해졌다. 방금 나에게 배포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당신이 부근에서 자료를 배포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이 일이 이렇게 지나가긴 했지만 나는 자꾸 수련생이 본인 말 속에 문제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나도 이런 감춰진 이기적인 생각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기엔 자료를 낭비할까 우려하는 것 같지만 본인의 편리를 도모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수련생이 품질이 나쁜 용지를 샀는데 프린터에 용지가 걸려 프린터가 망가질까 걱정된다면서 당신의 프린터에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물었다. 나는 “그럼 남은 용지를 가져오세요. 테스트해 볼게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수련생은 품질 나쁜 용지를 전부 가져왔다. 그때 나는 “다 가져왔네”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받았는데, 프린트하는 과정에 용지가 걸리는 현상이 나타나 애를 먹었고 많은 시간을 낭비해서 아주 화가 났다. “수련생이 너무 이기적이다. 그녀 시간은 시간이고 본인 프린터에 문제가 없으면 그만인가? 질이 좋지 않은 종이를 전부 나에게 주다니?” 싸우지 않기 위해 며칠 참으면서 마음에서 배제했다. 마음이 평온할 때 수련생과 교류했더니 수련생은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프린터가 좋다고 여겨 당신에게 다 주었습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이런 종이가 나에게는 그와 같은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수련생의 이기심이 나의 앞에서 분명하게 표현됐다.

나는 자신을 반성했다. 왜 여태껏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과 행위는 확실하게 몰랐지? 안다고 해도 이렇게 나의 마음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이것이 사심이 아닌가? 그래도 수련생이 이기적이라고 탓해야 하는가? 이것이 자신의 사심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가르치셨다. “나는 늘 말하는데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모두 자신을 생각하고, 설령 이 문제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당신이 보았을 때 모두 자신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당신이 전진하는 길에 당신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1] 사심은 자신에게 이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주체의 사상을 교란할 것이다.

한 수련생은 나에게 그녀와 협력하는 한 수련생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나도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고 수련생을 위안하는 말을 몇 마디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 3자가 보아도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 그들이 모순이 발생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보게 됐는가, 나에게 어떤 마음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도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가.”[2] 제3자라도 무조건 자신을 찾아야 하는데 당사자인 쌍방임에랴? 상대방의 그런 부족한 점은 모두 자신이 제일 싫어하고 제일 용납할 수 없는 것인데 내가 어찌 그녀와 같아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같은 정황에 부딪혔을 때 상대방과 같은 행위를 취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사한 생각이 스치지는 않았는가?

상대방의 그런 부족한 점을 보고 자신을 찾지 않으면 자신의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어찌 제거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고집하면서 모두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이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집착을 버릴 기회를 놓친다면 수련생 사이에 간격이 생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3] 지금 안으로 찾는 것이 정말 법보라는 것을 체험했다. 집착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련생 사이에 간격도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3] 리훙즈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원문발표: 2017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3/3460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