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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 법공부를 한 수련체득 및 깨달음

-사존께서 저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을 갓 시작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사상이 단순하고 책 보는 속도가 빠르며 법이 마음에 들어왔다. 모순에 부닥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가 생각이 났고 이 단락 법이 사부님의 어느 저작에 있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비약적인 제고를 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법공부를 하는 것이 특별히 느렸고 가장 느릴 때는 한 시간에 ‘전법륜(轉法輪)’을 10페이지 밖에 못 보았으며 사상이 조용하지 못하고 잡념이 많아, 그야말로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법공부를 하면 졸려서, 늘 잠시 책을보다 잠시잠이 들었다가 했고,책을 여러차례떨어뜨리기까지 했다.

이치대로 말하면 나는 대학 졸업생이고 또 교사이기에 이런 법공부 상태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지 않은 어머니 수련생마저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끼셨다.

2년 전부터 업무가 비교적 수월해 졌기에 나는 장시간의 법공부를 시작했다. 간혹 법공부를 3, 4시간 했지만 매일 ‘전법륜(轉法輪)’ 한 강을 배우는 것은 나에게는 지나친 바람이었다. 줄곧 최근에 이르러서야 나의 이런 상황은 철저히 개변됐다.

아래에 나는 법공부를 한 경험과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 전후의 일부 현상을 여러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법공부는 ‘구함이 없어야 저절로 얻는다’

지난 주 월요일 나는 한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놓은 후 나는 이전의 잘못을 의식했다.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에 부합되지 못했고 수련과 일, 생활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진상만 잘하면 되는 줄 알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너무 낭비하는 줄 알았다. 나는 한숨이 나왔고, 알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이후 어떠하던지 막론하고 이 일을 합당하게 잘 하겠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아마 이 정념 때문인지 사부님께서 나를 깨닫게 하셨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사부님의 경문 ‘법을 배우다(學法)’가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내가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종류의 문제에 부딪히면 법공부를 통해 재빨리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알맞은 명인어록(名人語錄)을 선택해서 자신의 행동을 비춰보며 배우는 것과 같은데, 이는 수련자의 제고에 방해된다.”[1]

나는 법공부를 할 때 또 글자를 파고들고 앞의 구절을 똑똑히 알지만 늘 안심이 되지 않고 늘 똑똑히 알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한 번 보고 무작정 본 것을 다시 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에 아주 깊은 내포가 있고, 부동한 층차의 수련을 지도하는 아주 높은 것이 그 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한 글자 한 글자씩 파고드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1] 법에서 더욱 많은 법리를 깨달으려는 사심을 품고 천천히 배우지만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고 법을 얻지 못했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전법륜’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사상을 명석하게 하고 글자의 뜻을 알기만 하면 연속 다음 구절을 읽으니 단숨에 30페이지를 읽었다. 이것은 여러 해 동안 법공부 중 거의 하지 못한 것이다. 이날 나는 특히 마음이 편하고 기쁘며 머리가 똑똑하고 어떤 염두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한 줄기 청량수가 흐르고 좀 있다가 청량수가 또 흘렀다.정말 너무나 미묘했다!

구세력의 법공부에 대한 교란을 똑똑히 인식하다

이 몇 해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면 머리는 흐릿하고 반응이 느리며 사유가 연관되지 못하고 간혹 머리가 마비되어 사고를 할 방법이 없었다. 기억력이 부족하고 말이 끝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고 간혹 현실인지 꿈인지, 진짜인지 환상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그래서나는늘 매일 아침법공부를 하고자 했다.법공부를 마쳐야만 내 머리가 맑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이 구세력의 술책을 간파했다. ‘법을 배우면 머리가 영통해진다.’ 마치 법공부를 하는 것이 이 목적을 위한 것이며 법공부를 할 때 무의식 중 비정확한 상태를 개변하려는 추구하는 마음을 품게 하려는 것이다. 이 추구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구세력이 나를 강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우리가 법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하게 하고 어느 것이 구세력의 교란인지 더욱 더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나는 똑똑히 알았다. 법공부와 머리가 명석한 것은 필연적인 관계가 없으며 법공부시 어떠한 구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으면 머리가 명석해지는 것 역시 필연적이다. 사악의 교란이면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법공부와 수련은 ‘싸움에 임해서야 창을 가는 것’이 아니다

이어 나는 한 어린 수련생의 법공부 태도를 보았다. 몸이 괴로우면 재빨리 법공부를 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법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법공부 하려 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괴로웠고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몰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다른 수련생은 거울이니 나는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했다. 내가 본 그의 문제로 나를 찾아봐야 한다. 안으로 찾아보니 자신 수련 중의 한 가지 큰 문제를 찾았다. 역시 내 법공부 중의 한 가지 문제다.

오랫동안 나는 하나의 착오적인 관념이 형성됐다. 오늘 법공부를 하면 오늘의 상태는 좋다. 아침에 법공부를 하면 이날은 주견이 매우 뚜렷하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한다. 만약 아침에 시간이 없어 법공부를 하지 못하면 당연히 오늘 일은 속인의 일이든지 수련의 일이든지 잘 장악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대법의 힘과 지혜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 타당치 못하다는 느낌이 없었고 수련상태가 조성한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진상을 알리는 항목에 참여하면서 이런 상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간혹 자신이 법공부를 잘하지 못해 상태가 나쁘다고 느껴지면 참여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오늘 나는 내 이런 상태를 알았다. 법공부를 임무로 여기거나혹은 싸움에 임해서야 창을 가는 태도를 품었던 것이다. 일이 생기면 재빨리 법으로 대응하고 진상을 알리려고 재빨리 법공부를 했다. 지나갔거나 혹은 일을 다 하면 법공부를 하지 않고 심지어 시간이 있어도 법공부를 하지 않았다. 수련과 법공부는 정말 착실하게 해야 하며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고 싸움에 임해서야 창을 가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을 쓴 전후

수련과 업무, 생활의 관계를 어떻게 잘 배치해야 하는가는 신수련생이 직면한 문제다. 그러나 나는 수련 중에서 줄곧 이 관계를 잘 배치하지 못했다.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당연히 옳다. 그러나 나는 극단으로 갔다. 집안일은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기에 하지 않았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겨 될수록 데리고 다니지 않았으며, 업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만 하기 좋아하고 한 번도 자발적으로, 또는 그 외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시간을 낭비할까 봐 두려웠다. 내가 말한 그 대학동창이 어느 한 번은 나에게 자신의 걱정거리를 이야기하려 하자 나는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 나는 이전의 동창들과 매우 적게 연락을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이 바빠 시간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진상을 알리거나 법공부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이 현상은 진상을 알리는 한 항목에 참가할 때까지 쭉 이어오다가 비로소 천천히 개변이 됐고, 최근 나는내가 발정념을 하는 것 조차 시간을 낭비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깨어났다. 나는 발정념을 많이 해 이런 관념과 상태를 청리했다. 이어 법공부 상태를 돌파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바꾸었다. 나는 법공부를 잘하면 무엇이든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득했다. 집안일도 잘할 수 있고 일도 잘할 수 있으며 동창, 친구와 많이 왕래하는 것도 진상을 알리는 기초를 닦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 문장을 쓰려고 생각할 때 교란이 좀 있었다. 가장 명확한 한 차례 교란은 ‘너 문장을 써라. 써라! 문장을 써서 발표하면 너는 다른 사람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다’였다. 이 염두가 나오자 나는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부님의 법이다. 문장을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 자아가 이렇게 부풀어 올랐는가. 나는 재빨리 그것을 발정념을 해 청리했다.

나는 그것에게 너는 어떤 물건이냐고 반문했다. 어찌 이렇게 악독하고 이렇게 나쁜가?너를 형신전멸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문장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불필요한 집착심이 생기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명백히 알았다. 이것은 그것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 아닌가? 그것은 당신이 문장을 쓰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번에 나는 기필코 문장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오늘 오전 나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심성문제에 부딪혔다. 나는 한 가지 염두가 특별히 똑똑했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며 잘할 수 있다.

저녁에 나는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문장을 쓰다가 나는 자고 내일 이어서 쓰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잠이 오지 않았다. 비몽사몽간에 나는 갑자기 오래간 만에 법을 얻은 초기의 흥분과 행복을 느꼈다. “나는 법을 얻었다. 나는 법을 얻었다.” 나는 아이처럼 달리면서 격동되어 큰소리로 외쳤다. 희미하게 나는 아파트의 한 집에 들어갔다. 의식적으로 사부님의 집이며 사부님 모습의 생명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는 아내가 있고 아이가 세 명이 있었다. 그 후의 광경은 모호해졌다. 나는 갑자기 사부님은 자식이 한 명이 있는데 어찌 세 명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만약 분간하지 못하면 그에게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인지 물어보라고 하신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의식은 똑똑해졌다. 나는 연속 “리훙쯔(李洪志) 대사이십니까? 리훙쯔(李洪志) 대사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어 나는 엄숙하게 물었다. “당신이 여기에 노점을 차리고 또 단을 설치하는데 당신은 누구의 사부인가요? 어느 문의 사부예요?” 나는 그것들을 정념으로 청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줄곧 사부님께 빌었다. ‘리훙쯔 대사님, 저를 도와주세요.’ 나는 여러 번 외쳤다. 나는 단번에 힘이 생겼고 속인 여기까지 반영됐다. 바로 내 체내의 한 줄기 뜨거운 흐름이었다. 이때 한 가지 정보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전에 그를 따라 도를 배웠고 금생에 내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자 그들이 교란 작용을 일으켰다고 했다. 나는 이전에 어떻게 했든지 전부 단호하게 관계를 끊으며 금생에 내가 수련하는 것은 파룬따파이며 리훙쯔 대사는 나의 유일한 사부님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나는 깨어났고 완전히 깨어났다.

나는 먼저 발정념을 하자고 생각했다. 발정념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나왔다. 나는 오늘은 나에게 새로운 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사부님이신 위대한 리훙쯔(李洪志) 사존께서 또 나를 도와 오랜 연대 이래의 나와 연원이 있는 이 부패한 물건의 교란을 청리하신 것을 알았다. 발정념을 다 한 후 나는 컴퓨터를 열고 새벽에 이 문장을 썼다.

수련생들이 모두 펜을 들어 자신의 수련체득을 쓰기를 건의한다. 수련체득을 쓰는 과정도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만약 이 문장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일이 닥쳐서야 부랴부랴 법공부를 하는 상태를 이처럼 똑똑히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전에 나는 늘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수련의 길은 다르다. 오직 우리 마음에 법이 있고 자신의 가장 큰 능력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면 자신의 수련체득이 있다. 문장을 쓰는 것은 위대한 사부님의 불은호탕을 실증하는 것이고 위대한 법은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을 배우다(學法)’

원문발표: 2017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30/3449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