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 시간과 자아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
최근 일부 열려 수련하는 수련생이 문장에서 장래 어떤 사람은 남아 계속 조사정법 일을 한다고 언급했다. 수련생 사이에 일부 논쟁을 일으켰다. 수련생은 문장을 통해 자신이 보고 알고 있는 것을 글로 적는 것은 정상이다. 관건은 우리가 집착하지 말고 무엇을 추측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장래 남든 가든 어쨌든 모두 사부님의 질서 있는 배치이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그중 하나다.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은 왜 이런 일에 집착심이 생기는가? 아직 ‘사(私)’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자신 미래에 대해 중히 보는 것이다.
사부님 말씀이 기억났다. “여러분 알다시피 불(佛)·신(神), 그는 중생을 위해, 우주의 이익을 위해 그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모두 포기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탄연(坦然)하며 움직임이 없다.”[1] 우리 수련의 목적도 대법을 위해 책임지고 중생을 위해 책임지는 고급 생명이 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정말로 모든 저층차에서 형성된 이기적인 마음과 변이된 물건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대법에 동화되고 진정으로 중생을 위해 책임지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미래 인간세상에 남고 가는 것은 개인 생각으로 모두 사부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을 원융한다. 우주와 중생의 수요를 보고 정한다. 절대 사람처럼 망념이 생기지 않고 자신을 한 부류(가고 안가고)에 분류해 넣으면 안 된다.
세간 수련, 특히 몇 년 동안의 박해를 받으며 대륙 대법제자는 어느 정도로 박해를 받았고 일부는 엄중하게 박해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해가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록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형식의 시간에 대한 집착심은 모두 사악에 틈을 탈 수 있게 한다. 심지어 각종 마난을 불러온다. 모 지역에서 수련생이 이 방면에 누락이 생기면 사악이 박해하는 구실로 된다. 교훈은 심각하다!
반대로 인간 세상에서 더 많은 마난을 당해도 수련인으로서는 별 게 아니다. 왜냐하면 수련인은 장래 영원불멸하는 곳으로 돌아간다.(이 방면에서 사부님께서 ‘도항’에서 말씀하셨음) 금생 대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장 큰 행운이다. 그러므로 수련인으로 마땅히 개인의 체득을 중히 보지 말고 우리의 책임과 사명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야 한다.
2.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호칭을 소중히 여기자
어떤 수련생은 금생 박해로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인 친구와 친척 앞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전생을 상상하거나 소설을 보며 ‘위안’을 찾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찬란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금생의 ‘뜻을 이루지 못한’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사실 우리는 법에서 알게 됐다. 인류 역사에서 우리는 대단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하늘에서 각종 층차의 서로 다른 불도신(佛道神)이었다. 하지만 과거 우리가 서서히 걸어내려 온 것과 인간의 윤회 과정에서 어떻게 대단하든 그것은 모두 과거이며 모두 한 생명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호칭에 어울려야 한다. 그것이 대단한 것이다. 지금의 모든 것을 잘해야 우리 생명이 진정으로 미래로 걸어갈 수 있고 아름다운 우주로 걸어갈 수 있으며 미래 영원한 우주에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지 못하면 아무리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평범하지 않는 경력이 있어도 정법에서 승인되지 않고 혹은 모두 제거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처럼 큰 법리가 인간세상에서 재현된 것이 아니고 천지개벽 이래 있은 적이 없으며 우주가 천지개벽한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1] “이런 일은 기회가 많지 않고 나 역시 늘 이렇게 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 시간이 매우 보람찼다고 여길 것이다.”[2] 이상의 두 단락 사부님 말씀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인간세상에서 우주 대법을 널리 전해 우리는 비로소 가장 운이 좋은 생명이 된 것이다. 이것은 만고의 기연이다! 우리가 어느 층차에 있든 생활이 어쨌든 모두 중요하지 않고 이런 것을 중히 보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대법에 정확한 위치를 줘야 한다.
진정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함과 책임을 알게 되면 사람 속에서 수련하며 세인을 대면하고 각종 눈총을 받고 변명을 해도 근본적으로 그런 비굴한 심태가 아니다. 자비롭고 위엄 있게 모든 것을 대면할 수 있다.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함과 책임감을 알게 됐고 개인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일에 부딪히면 더욱 정진하고 노력하는 심태로 모든 시련과 일을 대면할 수 있다. 많은 관과 어려움은 쉽게 넘길 수 있다.
3. 정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다
수련인으로 인간세상에서 수련하면 일부 관과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이런 것을 만날 때 만약 오로지 참고 청리하면 대다수 효과는 그리 좋지 않다. 여러 번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정법의 기점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면 많은 관과 어려움에서 쉽게 걸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체에 괴로운 증상이 나타나면 우리는 먼저 자신이 어디 부족한 면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탔는지 봐야 한다.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찾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원인은 우리 자체의 누락뿐이 아니고 사악 박해의 요소가 포함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발정념을 해 교란을 청리하고 정법 각도에 서서 자신이 부딪히는 문제를 대해야 한다.
우리가 신체의 괴로운 표면을 청리하는 것은 개인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통제하는 낡은 생명이 우리를 교란해 정법에서 소멸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속인이 나를 오해하여 대법에 대해 오해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정법, 중생을 구하는 각도에 서서 이타적인 기점에서 문제를 보면 문제는 잠시 표면적으로 심각하게 보이고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견지하면 많은 가상은 쉽게 해결된다.
만약 평소 우리가 문제에 부딪힐 때 정법과 중생 구도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보면 우리 자신 소우주와 주변 환경에 모두 바른 영향을 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미국서부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4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5/3451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