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칭징(輕淨)
[밍후이왕] 중국에서는 사당문화의 영향 때문에 사람들의 투쟁 이념이 심각하게 표현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받은 ‘강자가 왕’, ‘정글의 법칙’이라는 대인 관계 논리는 오늘날 이 사회를 극도로 긴장된 상태로 치닫게 했고, 싸울 때도 아주 격렬하게 됐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런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절대 져주지 않고 질투하고, 이치를 따져가며 용서하는 법이 없고, 심지어 화풀이하려고 총칼을 휘두르는 것도 있다. 말할 때는 함부로 남을 깔보며 자기 입장을 내세운다. 일상생활 속에서 숱한 모습이 대부분 이렇다. 나는 수련한다면서도 사상 깊숙한 곳에서 역시 늘 싸우는 마음이 올라오는데, 어떤 때는 일반인보다도 심각하다!
수련하기 전, 나는 어릴 적에 TV를 보면서 시비를 잘 따지는 인물을 동경했다. 그들은 아주 강했고 남을 말로 이겼는데, 말을 워낙 잘해서 상대방의 말문을 닫아버리는 것으로 관중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남몰래 그들을 우상처럼 숭배했다.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번번이 어른들로부터 말썽부리지 말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왜 그러냐고 추궁당하면 이유를 말하지 못했고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 그 뒤로는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앞으로 시비를 논할 때 유리할 만한 말들을 기억해뒀고 복습까지 해서 필요할 때 써먹었다. 그럴 때마다 득의양양했다. 그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논리를 들이대며 죽으라 따지고, 심지어는 말발을 더 세게 하려고 인신공격도 한다. 책과 TV에서 스스로 진리라고 여겨지는 말들을 수집해 매일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누가 만약 이 문제를 토론하려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할 것이다’, ‘이 문제는 당연히 이렇게 보고 저렇게 분석해야 한다고 말해야지’ 한다. 남이 결국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 같으면 스스로 흐뭇해서 나 자신이 꽤 좋다고 여기고,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기분 나빠서 그가 나보다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매번 친구와 이야기할 때면 그를 낮게 보고 나는 높게 보며 끊임없이 말한다. ‘왜 이런지 너 알아?’, ‘너 말이야,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건지 알아?’, ‘내가 말한 것이 이렇지 않단 말이냐?’ …… 어떤 때는 목소리가 격앙돼서 그야말로 싸우는 것 같아 주위 사람마저 말린다. 마음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는 늘 내가 한 말이 일리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콧대가 높아진다.
수련을 시작한 뒤로, 일정한 층차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남과 싸우려는 마음이 담담해졌고 내려놨다고 여겼는데 실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논쟁하려는 생각, 말투, 설령 진상을 알릴 때도 과격한 단어를 쓰거나 여러 비유를 써서 상대방을 누르려 하고, 반문하는 화법을 거듭 써서 나 자신이 진실하다고 피력하려 한다. 상대방에게 내 어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거나, 심지어 어떤 때는 상대가 부정하기만 하면 속으로 반감이 생겨 이런 식 저런 식으로 풀이해서 반드시 자신을 실증하려 한다. 그래도 그가 수긍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서는 내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구할 수 없는 게 아니냐며 더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랬던 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자신이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수련을 잘하지 못해 자비로운 마음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중생구도를 하겠는가 하면서 스스로 원망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이 일반인보다 못하다고 여겨졌다.
싸우려는 심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끔 꿈에서도 그랬다. 한번은 꿈에서 내가 고교 시절 수업을 듣던 교실에 있었다. 정치수업 시간이었는데, 말하는 건 모두 악랄한 공산당을 떠받드는 내용이라 나는 듣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나는 줄곧 정치수업을 듣지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강단에 선 선생님이 갑자기 파룬궁을 화제로 삼았다. 나는 듣고 나서 즉시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나 대들었다. “파룬궁이 선생님에게 무슨 잘못한 게 있습니까. 이 사회에 있는 나쁜 사람들은 왜 놔두죠? 잘 보세요. 지금 유독 식품, 유독 백신, 유독 공기, 무엇에나 다 독이 있지만,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어째서 당신이 비판하는 대상이 됐습니까?! ……” 내가 퍼부은 말들은 욕설에 가까웠다. 반발. 오랫동안 참고 억눌렸던 게 폭발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선생님은 말문이 막혔고,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 울컥하던 느낌은 꿈에서 깬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또 몇 번 꿈에서 남과 다투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했다. 싸우려는 심태와 원망하는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나는 꿈속에서 완전히 딴사람 같았다. 이 싸우려는 마음이 왜 이렇게 강한지 의문이었다. 평소에는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득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떤 수련인은 낮에는 괜찮게 할 수 있으나 꿈속에서는 잘못한다고 한다. 그가 사상 깊은 곳에서 아직 착실하지 않기 때문에 꿈속에서 그가 착실한지, 착실하지 않은지를 검증해 본 것이다.”[1]
평소에는 체면이 강해서 남들이 나를 지적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감춰져 있었다. 이 싸우는 마음이 건드려지면 기타 집착심은 억지로 억제됐다가 강화하는 게 습관이 됐다. 이전에는 별로 타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정말 처지를 바꿔 생각해본 후에야 비로소 반문 화법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방에게 자신과 이야기하기 싫게 하며, 심각할 땐 무리한 사태를 가져오고, 심지어 상대가 자신과 견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나는 중생을 구해야지 밀어버려서는 안 된다! 반문 화법에 주의하지 않으면 타인이 대화 중에 권태감을 느끼고 반감을 살 수 있다. 이건 사당문화다. 사악한 당이 주입한 요소를 진상을 알릴 때 섞어 넣었으니 내가 하는 말이 순수하고 선할 수 있겠는가? 배후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없앨 수 있겠는가? 반문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싸우는 마음이 폭로돼 나온 것이다. 논리를 대며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고 남에게 반문하고, 말할 때 격동되는 건 바로 남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이건 싸우자는 게 아닌가? 매번 이 생각이 들면 후과가 두려웠다. 나와 대화했던 친구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단지 내가 무서워 말을 못 했을 뿐이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건 사악한 공산당의 가짜, 악, 투쟁(假, 惡, 斗) 사상이 아닌가?
나는 이 싸우는 심태가 이제는 단지 집착심을 넘어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식했다. 수련 후 자신에게 있던 사당문화가 완전히 벗겨졌다고 여기고 주의하지 않는 사이에, 내가 쓰는 표현법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어투에서, 바로 이것이 구세력에 약점을 잡혀서 싸우는 마음이 강화됐다. 그래서 진상을 듣는 사람들이 대법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게 했고 인정하지 않게 했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중생을 구하는 것이지 중국공산당 이 악당과 싸워 폭로하려는 게 아니다.
그때부터 반문 화법이 해롭다는 것을 인식했고 이런 싸우는 심보를 품고서는 중생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 마음을 반드시 버리고자 했다. 나는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매 순간 언어 사용에 주의하고, 말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할 줄 알고, 이 말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인지, 완곡하면서도 적절한 표현을 유지하고 뜻을 잘 전달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반문 화법을 적게 쓰면서 내 어투도 평온하고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싸우는 심태가 돌출되는 것도 확실히 적어진 것을 느꼈다.
싸우는 심태는 말할 때 외에도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언어가 싸우려는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뿐만 아니라 말 한 마디에 주의하지 않으면 싸우려는 마음 외에도 여러 불순한 마음이 섞여 나와서 남이 들을 때 기분 나쁘거나 반감을 주게 되는데, 이러면 진상을 알리는 데 장애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사상에는 약점이 있다. 여러분은 장기간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도 이 문제를 발견했을 것인데, 바로 선입견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2]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첫인상이 나쁘면 이후의 것을 판단하고 분별하는 데 장애를 조성할 것이다. 진상을 알릴 때도 그렇다. 가끔 어떤 때는 대법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만나는데, 사람들은 대법제자의 일언일행에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구도받을 수 있다. 법을 실증한다는 것은 내 이해로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언행에서 수련인에게만 있는 특유의 기질을 드러내는 것도 포함한다! 대법제가가 지닌 이런 것은 바르지 못한 숱한 요소들을 제거해 분위기를 바로잡고 비할 바 없이 높은 불법(佛法)을 사람에게 펼쳐 보일 수 있다! 바른 생각을 즉시 상대방 사유의 깊은 곳으로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하고 선한 말과 자비로운 마음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 – 씬탕런방송토론회설법’
문장발표: 2017년 4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7/3452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