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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공부를 중시하고, 인위적으로 마난을 증가하지 말아야 한다

글/ 타이완 대법제자

우리가 알다시피, 대법제자가 연 법회는 성스럽고 장엄할 뿐만 아니라 법회에 참가한 수련생의 개인 수련에 대해서 몹시 큰 촉진 작용을 한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2013년 뉴욕 법회 참가 후, 내 몸에서 발생한 경력인데 법 공부 방면에서 어떻게 걸어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의 환경은 비교적 단순했고, 자신이 학교에서 기숙하는데도 무슨 큰 압력이 없었다. 그래서 늘 법 공부의 아름다움을 느끼곤 했다. 군 복무를 할 때, 초기의 한동안은 법 공부할 수 없었지만, 두석 달 후에는 환경에 적응되어 군에서 법 공부 연공을 할 수 있었다.

퇴역한하루 후에 나는 사회사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다음엔 기타 현시의 건설현장 사업을 하게 됐다. 건설현장의 일은 바쁘고 번잡하여 적응되지 못했고, 자신이 대법 책을 들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단체 법 공부할 때거나 어떤 구체적인 항목에 참가하기 전에라야 책을 들고 볼 희망이 있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도 여전히 법 공부를 계속 견지할 수 없었다. 그때의 수련상태는 신 수련생과 같아 법 공부에 대한 태도는 봐도 좋고 안 봐도 거의 괜찮은 것 같았다. 어떤 땐 마음속의 요행 심리 상태가 자신에게 알려 준다. 괜찮아, 이전에 본 대법 책 내용이 아직도 인상이 있으니 여전히 자신을 대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2016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노수련생이기에 한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안 되는데, 수련이 잘된 그 부분은 이미 갈라놓았기 때문이며, 선천적인 위치에 밀어놓은 공(功)은 당신이 법(法) 속에서 정념을 가해야만 비로소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법공부를 하지 않고 법을 떠나면 지휘할 수 없는데, 그것은 법의 힘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또 법 공부를 하지 않고 일만 하는 이도 있다. 세 가지 일을 모두 해야 하는데, 만약 일만 하고 법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하는 것이다.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하면 원만에 이를 수 없으며, 단지 덕을 쌓을 수 있다. 덕을 쌓고 복을 쌓아, 내세에 복이 있는데, 바로 이러하다. 원만에 이를 수 없다면, 그럼 이것은 헛되이 한 것이 아닌가? 수련인이 수련하지 않아서야 하겠는가? 마음속에 법을 담고, 진상을 알려야 비로소 사람을 구도되게 할 수 있고, 하는 말에는 비로소 진감력(震撼力)이 있게 된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늘 아침에 깨어날 때면 생각한다. 어찌하여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났을까? 언제 가야 이전처럼 그렇게 정진하는 동력이 있을까? 날마다 법 공부할 수 있고, 이전처럼 그렇게 책상 스탠드의 따뜻한 불빛 아래 대법 책을 읽으면서 심신이 법 속에 푹 잠길 수 있었던 그때를 회복할 수 있을까. 잇따라 이 염두는 또 당일 속인의 사업을 할 생각에 파묻혀 버렸다.

2013년, 나는 수련생과 함께 그해 5월의 뉴욕 법회에 참가하여 사부님께서 친히 법회에 왕림하셔 하신 설법을 듣는 행운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어렴풋한 잠결에 한 목소리가 나에게 묻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출국 한 번 하기가 쉽지 않은데, 너는 뭘 원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어?” 나는 속으로 즉각 대답했다. “만약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법을 얻은 초기의 정진하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나에게 큰 변화가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타이완에 돌아온 후, 사업은 마찬가지로 바빴고 동시에 또 출국하여 국외 현장에 가야 했으므로 법 공부는 여전히 할 사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더는 제멋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사존님의 현장 설법을 막 들은 제자가 아닌가!?

바로 이렇게 되어 2013년 9월 나는 크게 한 번 넘어졌다. 하루는 우리 회사의 한 현장에서 일이 생겼다. 이웃집 아홉 가구가 꺼져내려 많은 이웃이 항의하고, 신문에 내고, 천 오라기로 묶고 하며 현장에 투입됐다. 처음으로 뉴스에서만 볼 수 있었던 비이성적 장면에 봉착하여 심리 압력이 무척 높았으며, 이는 나에 대한 충격이 너무 심각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나는 책을 들고 법 공부했다. 왜냐하면,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날마다 한 강씩 공부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 대보름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집착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수련생은 드러내고, 어떤 수련생은 드러내지 않은 채 마음속에 담아두고 집착할 뿐 드러내지 않는데, 나중에는 그도 풀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사악은 당신을 더욱더 이상하게 만드는데, 당신을 크게 곤두박질치게 할 것이며 당신이 곤두박질치게 된 것을 평생 잊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것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정도까지 집착하지 말라. 문제가 생기면 또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어보는데 사실은 바로 당신들의 집착이 조성한 것이다. 사부가 책임질 것이다.”

그 후부터 법 공부하는 규율은 회복됐지만 나는 오히려 위독한 환자 같았다.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어느 날엔가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 난을 없애줄 것을 바랐다. 더욱이 날마다 현장에 가서 이웃들의 장황히 늘어놓는 비난과 원망에 직면하면 마음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다행히, 처음에는 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마침내 법공부는 규율이 있게 되고,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됐다. 당일 얼마나 늦게까지 바삐 보냈다 하더라도 그래도 틀림없이 법 공부는 견지했다. 그럼 이 번거로움은 얼마나 오래 지속했을까?

내가 날마다 법 공부를 견지한 지 열 달이 지난 후 이 번거로움이 갑자기 전기가 있게 되었다. 그중의 어느 일요일, 9가구 중 세 가구에서 우리와 화해했다. 더 일 년이 지난 후 9가구 전체가 화해했다. 후기로 갈수록, 대법에 대한 마음의 비중은 조정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수련의 각도로 보면, 매일의 법 공부를 견지한 후 얼마 안 되어 세 개의 부동한 항목의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활동상의 일을 협조했다. 매체 사업에서 5년간 기계와 소프트웨어를 다루었는데 그저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른 하나의 계통과 제작 관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밀어주시어 가는 듯했다.

인상이 가장 깊은 것은, 그때 매 하나의 항목에 써야 할 자재가 도착하는 날이면 언제나 건설 현장의 거주 가구들과 만나는 날이어서 그야말로 자재가 손에 닿는 날이면 마도 내려옴으로 자재에 너무 강한 기대와 환희심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이상은 개인 법 공부 방면에서 걸어온 길을 여러분과 조금 교류하여 수련생들께서 더는 이런 굽은 길을 걷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동시에 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해한 것인데, 우리가 사업 항목 가운데서 발휘할 수 있는 효력, 지혜와 능력은 정말 법에서 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치려 한다. 부족한 것은 아낌없이 시정해 주길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문장발표: 2017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3450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