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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 상주하는 노인 수련생과 교류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의 한 자녀 정책으로 말미암아 지금 퇴직 연령에 이른 사람은 자녀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손자를 갖게 됐다. 외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자녀는 졸업 후 대부분은 모두 외지에 남아 사업하게 되어 손자를 보살피는 임무는 부모에게 떨어졌다.

우리 이곳의 1999년 7.20 전에 법을 얻어 정진하던 여러 노인 수련생은 모두 차례로 고향을 떠나 외지에 가서 자녀의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단체 수련 환경을 떠나 낯선 땅에서 장기간 현지 수련생과 연락을 취할 수 없었고, 밍후이왕을 볼 수 없어 거의 독수(獨修)하는 수련상태에 처해 있었으므로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없어 무척 고민에 휩싸이곤 한다. 어쩌다 고향에 돌아온 그들을 보면 상태가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인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또 새로 할머니가 된 수련생이 외지로 손자를 보러 가게 됐다. 떠나기 전에 침울해서 나에게 말했다. 새 환경에 가서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고, 정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도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고 수련환경을 떠나서 어떻게 해야만 정진의 상태를 유지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 조사정법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 외지에서 돌아와 휴식하고 있는 장 언니와 만나 이 방면에서 그녀가 비교적 잘 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그를 데려다 이 방면에서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해 유사 상황이 있는 수련생에게 격려가 되게 하려 했다.

1. 새로운 환경에서도 사람을 구하는 사명 잊지 말아야

장(張) 언니는 유능하고 노련하며, 사유가 민첩하고, 걸음걸이가 정정해 머리만 희끗하지 않다면 70이 넘은 사람이라고는 보아내지 못한다.

그녀는 여러 해 전에 남방에 가서 손자를 봐주고 있지만 날마다 세 가지 일을 빼놓지 않고 한다. 현지 수련생과 연락할 수 없게 되자 손으로 스티커를 써서 날마다 야채를 사러 갈 때면 길을 따라 가면서 붙였다.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해마다 며느리 휴가 때면 그녀는 휴식하러 집에 돌아오면서 삼퇴 명단을 수련생에게 넘겨주어 인터넷에 올리게 했다.

작년 7월에 고향에 왔을 때 그녀는 외지에서 고향 수련생에게서 최고 검찰원에 장쩌민을 고소한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어 진상 알릴 때 알게 된 이웃 시 수련생을 세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찾아가 장쩌민 고소 템플릿을 가져다 그대로 다 쓴 후 현지 우체국에 배달하는데 성공해 자기도 대법 노정을 따라가게 됐다는데서 무척 기뻤다.

집에 돌아온 후 장쩌민 고소는 실명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가명으로 씀).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실명으로 쓴 장쩌민 고소 편지를 써냈지만 이제는 때가 늦었다. 고향의 모든 우체국을 다 뛰어다녀 봐도 상부의 통지로 이런 편지는 일률로 발송을 중단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다른 시 우체국에 가 보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웃 시에 가서 몇 바퀴 돌아도 우체국을 찾을 수 없었고 한 마음씨 고운 여성이 전화로 알려줘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는 몹시 무더운데다 목까지 말랐으나 그녀는 줄곧 찾고 찾다가 갑자기 수림 사이로 ‘중국’이란 두 글자가 나타났다. 수림을 가로질러 나가니 바로 눈앞에 ‘중국 ○○우체국 ○○분국’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점심시간이라 대문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후 출근 시간에 한 중년 여성이 그녀를 접대하고 편지를 보더니 말했다. “언니, 한 발 늦었어요, 어제 우리는 이런 유의 편지는 일률로 발송을 중지하라는 통지를 받았어요. 다행히 제가 언니를 맞았으니 그렇지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상사에게 전화 한 통을 걸면 곧바로 경찰이 와서 언니를 연행했을 거예요. 스스로 고생을 찾아하지 말고 어서 집에 돌아가 편안한 날을 보내세요.” 장 언니는 그녀에게 왜 장쩌민을 고소하는지에 대한 진상을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연거푸 났기에 그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사존에 대한 장귀신의 비방,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속으로 몰래 결심했다. 오늘부터 어느 때 고소장을 보낼 수 있다면 그 때부터 밥을 먹는다. 반드시 고소하겠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길을 떠나 70여리 밖에 있는 친정집 소재지에 가서 부치기로 했다.

신변의 수련생이 그녀 상황을 알게 된 후 인터넷으로 고소장을 부칠 수 있는 수련생과 연락해 제때에 고소장을 발송해 주었다. 그녀는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루 빨리 장쩌민을 사법 처리하기 위해 나도 자신의 한 몫의 힘을 낼 수 있게 됐어요.”

2. 억울한 오랜 감옥살이에도 사람 구하는 일 잊지 않다

한 번은 한 수련생이 딸집으로 가는 길에 여관에서 등록 수속을 할 때 신분증에서 정보가 나와(신분증을 만들 때 현지 경찰이 대법제자에게 기록해 넣은 것), 잠시 후 두 경찰이 오더니 그녀 가방을 뒤져 ‘전법륜’과 10여권의 진상 주간이 나오자 즉각 인근 파출소로 잡아갔다.

그 때는 저녁 무렵이라 그녀를 잡아간 경찰이 책임자에게 요청했다. “그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놓아줍시다.” 책임자는 가방에 자료가 있으니 놓아줄 수 없다고 했다. 잠시 후 죄인을 후송하는 대형 밀폐트럭이 오더니 그녀를 트럭에 밀어 넣었다. 앉고 나서야 자기가 두 여경 사이에 끼어 앉았고 맞은편에는 돌격용 총을 멘 남자 경찰이 호시탐탐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곁에는 한 마리의 커다란 셰퍼드가 앉아 있음을 보았다.

야밤에 전신무장한 한 무리 사람이 손에 아무것도 쥔 것이 없는 70여 세 할머니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런 정경에 마주한 수련생에게는 두려움이란 조금도 없었다. 자신은 사부님 요구대로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주변은 에너지로 가득 찼다.

차는 시교 외진 곳 감옥으로 달려갔다. 경찰은 철문을 열고 또 한 방의 문을 열고는 그녀를 밀어 넣었다. 그녀는 바닥에 사람이 빼곡히 누워 자고 있었는데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자 수감자들이 연속 깨어났고 그녀에게 무슨 일로 갇혔냐고 물었다. 그녀가 아직 대답도 하기 전에 한 교도관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야, 당신들과는 달라!”

이후에 교도관에게 진상을 알려줄 때 알게 됐는데 먼저 이곳에 갇혔던 대법제자가 이미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 후부터 그녀는 여러 방면으로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이며 그래서 시작에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말했다.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 마음도 적었고 그저 사람을 구하겠다는 이 일념만 있었던 것입니다. 낮에는 심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고, 밤이면 잤는데, 며칠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고, 새로운 얼굴이 보이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어요. 22일째 저녁에 이르러 총 14명을 탈퇴시켰더니 경찰이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떠날 때 감옥 책임자가 언니에게 물었다. “당신은 얼마나 큰 인물인가요? 그렇게 많은 고위 간부가 전화로 당신을 위해 도움을 주길 바랐어요.” 할머니의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중, 세 사람은 명문대학 교수이고, 두 사람은 박사후(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 연구하게 하는 중국 학제의 하나)이고, 한 사람은 박사여서 그 책임자는 아주 놀랐던 것이다! 남편이 이미 사망한 한 농촌 할머니가 이렇듯 우수한 아들딸을 배양했고 대법에도 이렇듯 확고하며 또 이렇게 큰 인내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줄곧 물었다. “당신은 자녀를 어떻게 교육했어요? 어떻게 교육했어요?”

집에 도착하자 자식들은 어머니를 에워싸고 걱정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권했다. “우리는 대법이 억울함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어머니는 이렇게 많은 연세에 자녀들을 위해 한 평생 고생하셨는데 지금은 조건이 이렇게 좋으므로 만년에는 복을 누려야 해요.” 언니는 자식들에게 말했다. “명리는 아무리 좋다고 해도 몇 십 년이야. 장귀신이 대법을 파괴하고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데 천리가 용서하지 않아! 선과 악에 직면해 사람마다 모두 선택해야 한단다. 선의 한 면에 서야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고 덕을 많이 쌓아야 생명이 영원할 수 있다!” 자녀들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어머니에게 앞으로 안전에 많이 주의하라고 타일렀다.

언니는 말했다. “몇 번이나 고향에 돌아와도 아들한테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후에 법공부가 깊어가면서 아들이 사는 곳은 수련생이 적고 진상을 아는 사람이 적으므로 내가 그곳에 갈 필요가 더욱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역시 내가 조사정법하는 사명일 것이며, 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한 길일 것입니다. 대법제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안심하고 살게 됐다. 외지에서 혼자 수련하는 상태를 개변하려고 가기 전에 컴퓨터를 사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렇게 하자 날마다 삼퇴 명단을 제때에 발송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때에 사부님 신경문을 볼 수 있었고, 제때에 밍후이왕에 올린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볼 수 있게 되어 사부님과 전 세계 대법제자가 신변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지금 정법은 마무리에 닿았다. 우리 모두 사부님 당부를 명심하자. “사부가 말한 세 가지 일은 모두 매우 중요하다. 여러분이 최후의 이 한 단락 길을 더욱 잘 걷기를 희망한다. 그런 잘한 사람들은 느슨해지지 말라. 느슨해지지 말라.”[1]

장 언니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한 갈래의 길을 걸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외지에 상주하는 노인 수련생에게 참고를 제공해 함께 정진하려는데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소감>수련경험>진상으로 세인구하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16/3443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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