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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은 신수련생의 거울이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5년 수련을 시작한 신수련생이다. 수련 전에는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거만하며 인색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법공부의 심도가 깊지 않았을 때 관을 넘기면서 많은 굽은 길을 걸었다. 특히 가정의 마난 속에서 늘 재빨리 제고하지 못하고 거의 매번 미적거리며 제대로 제고하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심지어 심한 모순에 부딪쳤을 때는 수련생으로서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집착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의 일면에서 어쩌지 못하고 울면서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기도 했는데, 참으로 자신의 그런 못난 모습을 스스로 탓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1] 였다. 그로부터 모순에 봉착하여 넘기기 어려울 때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를 했는데, 어떤 문제도 풀 수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사존의 보호와 대법의 법리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왔다. 수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고, 참을 수 없는 지경에서 눈물을 흘리며 참아낼 수 있었으므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고, 안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수련의 본질과 생명의 참뜻을 알아가게 되었고, 집착을 버린 후의 소박한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일부 얕은 인식이나마 이 자리를 빌려 감수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나는 젊은 수련생으로서 결혼과 수련을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했으므로 결혼생활 중에 많은 모순들이 나타났다. 나는 평소에 사회에서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나의 그런 자세는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그랬다. 하지만 수련자는 다른 사람에게 선해야 하고, 남을 위해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개변을 일으켰다. 남편은 성격이 민감하고 거칠기 때문에 때때로 나에게 모순을 가져다줬는데, 잘못은 남편에게 있었는데도, 매번 남편은 화를 내며 나를 질책했다. 처음에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다투고 싸웠다. 그러면서 속상해서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나 수련생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2]는 말씀대로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어느 부분에서 자신이 잘 못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심성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수련인의 안목으로 문제를 대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더는 모순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기본적으로 자신을 제고시키는 기회로 삼았기 때문에 남편과 다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3] 그것은 수련자의 표준으로 볼 때 자신을 강제로 억압한 것이지, 마음에서 우러나 참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누가 잘못한 것인지 누가 우월한지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마음속의 쟁투심은 여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비록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인내심과 양보하는 마음으로 남편과의 다툼이 줄어들게 되었으나, 근본적인 집착심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에서 돌출돼 나왔다. 바로 날이 갈수록 남편을 얕잡아 보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생활 속에서 미워하는 행동과 말씨와 표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남편과의 관계는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가정의 분위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긴박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는 서로 눈에 거슬렸다. 남편은, 내가 너무 강압적이고 이기적이며, 여성답지 않게 거칠게 말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남편은 게으르고 시시콜콜 따지고, 책임감이 없고 인색하며,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 등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모두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내가 모두 제고해 넘겨야할 관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관은 넘기가 너무 어려워서 매번 넘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어렵지 아니하나 마음 버리기 어렵노라 그 많은 집착 어느 때나 끊을꼬 고해(苦海) 끝없음을 모두 알거늘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나니 어이 속세를 벗어나랴”[4]를 반복해서 외웠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마음을 끊임없이 찾았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뛰어난 것으로 보였는데, 남편이 매일 생각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는 것이 무책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1년여의 수련을 통해 스스로가 상대적으로 좀 좋게 변한 것임을 잊었다. 남편은 세상기풍에 이끌려 있는 속인인데, 어찌 나의 표준으로 그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사존께서는, 수련인은 반드시 자신을 수련해야지 다른 사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 주셨다.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흠을 보는 것인데, 그런 흠이 나 자신에게는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연공을 견지하지 못하는 것이 게으름이 아닌가? 매일 자신이 너무 많이 지불해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것이 아닌가? 정법시기에 마음을 다하여 세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억울함을 당해서는 안 되고 좋은 말만 들으려는 것은, 소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지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말을 마음에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쟁투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 자신이 바로 스스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 것이었다. 남편은 하나의 거울이었다. 나의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그런 결점을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보게 하여 그것을 제거하도록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보다 더 큰 것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내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말세의 속인과 비교한 것이 아닌가? 수련인의 표준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로우셨고, 나를 혐오하지 않으셨고 포기하지도 않으셨으며, 시시각각 나를 보호해주셨고, 나의 제고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 이것이 바로 각자의 자비와 선임을 나는 황송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법은 우리에게, ‘남을 위하는 생명이 되고, 선을 수련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혐오하는 마음이 있는 근원은 ‘선(善)’이 부족해서 조성된 것이다. 나는 생활 속에서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개변되기를 요구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원망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잘 대하는 것은 정과 사적인 것을 위하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존께서는 “비(非)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이고, 마음이 있으면 비(悲)가 아니다(無非是人心,有心不是悲).”[5]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의 집착심이라도 버리지 않았다면, 사람의 마음이 나의 언행 속에 섞여 있어서,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상대방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은 하나의 거울처럼 나의 여러 가지 사람 마음과 부족함을 비추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집착심을 수련으로 제거하려고 노력한 뒤부터는, 모순 속에서 화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억울한 마음이 없는 수련자의 참음으로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존께서는 안으로 찾고 안으로 닦을 것을 강조하셨는데, 원래 모든 문제는 자신의 생명을 승화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층차의 한계와 개인의 얕은 깨달음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시드니 법회 설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끊다’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5-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지>수련체득>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8/3439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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