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중에 있는 수련생을 도운 체험’을 읽은 후의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 2017년 2월 20일 게재된 ‘난 중에 있는 수련생을 도운 체험’을 읽고 깊은 소감이 있었다. ‘마난 중의 수련생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하지 말라.’ 이에 아주 동감이다. 아래에 곧 내가 ‘안으로 찾다’, ‘낡은 사유방식을 개변’한 체험을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A수련생 집에 병업 중인 외지 수련생 C가 며칠 머문다고 들었다.(C는 큰 병원에서 검사를 했다). A수련생이 출근하므로 곧 나보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일에 부딪쳤을까? 꼭 내가 제고해야할 요소가 안에 있는데 내 어떤 마음을 겨냥해 왔는가? 우연한 일은 없다.
이튿날 정월 15일에 수련생 B, 수련생 C와 부모 수련생 3명이 수련생 A집으로 왔다. 수련생 B는 수련생 C의 병업 정황을 소개하는데 작년에 수술했고 지금은 또 큰 병원에 가 검사했으며 진단이 어떻게 나왔다고 했다. 나는 진단이 어떠하다고 다른 수련생들에게 말하지 말고 모두 박해이고 병업 가상이니 승인하지 말고 수련생에게 좋지 않는 물질을 주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수련생 C가 휠체어에 앉은 채 아파트로 들어 올릴 때 뼈만 앙상하게 남고 배에는 배농관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심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재빨리 안치했다.
많은 수련생이 온 것을 보고 C의 정신 상태는 조금 나아졌는데 작은 그릇에 담긴 죽을 반그릇 먹었다. 이전에는 수액을 놔서 유지했다. C는 나에게 말하기를 병원에서 아무것도 검사해내지 못했는데 곧 소업이고 또 속인 집에 있을 생각이 없으며 수련생 집에서, 정진하는 수련환경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1. 안으로 찾는 것은 자기를 찾는 것
여기에 온 수련생이 모두 수련생 C에게 정념을 강화하고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며 안으로 찾기를 권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법리의 깨달음이 좋은 협조인을 찾아 마난 중의 수련생을 도우려 했다. 법공부를 할 때 그 협조인이 왔는데 그는 상황도 파악하지 않고 곧 쉴 새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일부 법리에서 마난 중의 수련생에게 ‘안으로 찾으라’라고 하며 병업 중인 수련생의 관건은 안으로 찾지 못한다고 했다. 그 협조인은 병업 수련생의 접수 능력을 보지도 않았고 수련생들이 법공부를 하자고 건의하자 그 협조인은 시간이 없으며 또 몇 병업 수련생들에게 가봐야 한다고 급히 가버렸다.
내가 여기서 일깨워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숭배 받는 협조인과 나를 포함한 관련 수련생들은 모두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한다.
이때 내가 갑자기 발견한 것은 마난 중의 수련생을 도와 ‘안으로 찾다’는 것은 정말로 법으로 강제로 수련생을 압박하는 것이다. 자신의 관념으로 수련생을 요구하다 보면 질책하게 되고, 수련생의 어떤 방면을 깔보고 부지불식간에 곧 구세력의 편에 서있게 된다. 사악은 또 박해의 틈을 타서 병업 중인 수련생의 마난을 가중시킨다.
이때서야 내가 똑똑하게 의식한 것은 안으로 찾는 것은 자기를 찾는 것이고 자기를 수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를 실증하는 이 사람 마음을 찾아야한다. 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은 새로운 환경을 열어주는 것인데 같이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는 것이다. 오직 법에서 정념을 확고히 해야 사악과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지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1] 동시에 자기도 제고를 가져올 수 있다.
2. 낡은 사유방식을 개변
나는 사부님께 점화를 바라며 도움을 청했다. ‘제 어떤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까?’ 법공부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동시에 또 일종의 흑색물질이 존재하는데, 우리 여기에서는 업력(業力)이라 하고, 불교 중에서는 그것을 악업(惡業)이라 한다.”[1] 중에서 내가 ‘악업’ 이 두 글자를 봤을 때 마음이 동했다. 내가 ‘양성’과 ‘악성’의 구별점을 찾았던 것이다. 내가 마난 중의 수련생 표면 현상을 볼 때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렇게 심한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대뇌에서 나온 사유는 곧 물질이다.”[1]라고 하셨다. 사실 내심 깊은 곳에서는 이 가상에 이끌려 이 병을 승인한 것이다. 내가 만난 일부 마난 중의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지 못한 것은 곧 그들 자신의 정념이 부족하고 혹은 업력이 너무 큰 것이며 넘기 어렵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구세력은 아마도 그의 빈틈을 잡고 박해하는데 그러나 그의 병업에서 나의 어떤 마음을 찾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나는 나의 내심 깊은 곳에서 이 병의 경중 가상을 분별하면서 실제로는 이를 병으로 인정한 것임을 알았다. 스스로 법리가 명석하지 못하고 신사신법(信師信法)에 틈이 생긴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연공인인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 당신이 구하여 병을 얻었다면 그 병은 눌려 들어갈 수 있다.”[1]
우리는 수련인이므로 에너지가 있다. 병업 마난 중의 수련생이 관을 넘기지 못하면 정말로 우리 마음과 관계가 있다. 동시에 관찰한 것은 수련생지간에 병업 마난에 있는 사람을 논할 때 역시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병원 검사상 어떻다고 하고 무슨 병이라고 하면 듣던 수련생이 놀라서 ‘아’하고 놀란 소리를 낸다. 입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듣는 수련생들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심하다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수련생보고 병업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을 부탁하면 그 수련생은 그가 무슨 병이냐고 반문한다. 마치 병업의 경중, 성질을 가늠해 경하면 발정념이 효과를 보고 중하면 효과가 적다고 생각하면서 한 마디 한다. “관건은 본인이 정념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수련생은 병업 수련생에게 “좀 좋아지셨나요?”라고 물으며 사람마음으로 증세를 관찰한다. 가족 수련생은 병업 수련생의 고통을 보고는 내심이 따라 움직이면서 마치 병이 중하니 사람의 정으로 문제를 보는 것처럼 한다. 또 수련생 사이에 “○○가 아주 중한 병업에 있어 지금 어떠한 방도도 없어요”라고 의논하기도 한다. 각종 사람 마음의 표현을 종합하면 근본적으로 이 병업 가상으로 조성한 것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병근(病根)은 이미 떼어버렸고, 남은 요만한 검은 기, 그것이 스스로 나오게 하여, 당신에게 고만한 난(難)을 겪게 하며, 고통을 좀 받게 하는데, 당신이 조금도 감당하지 않는 이것은 안 된다.”[1] 이는 신사신법에 틈이 생긴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대로 ‘병근을 이미 떼어버렸다’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병이 있을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의 경중, 성질을 분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병업 수련생의 증상, 진단, 표정, 표현이 어떠해도 곧 그런 검은 연기가 밖으로 나오는 가상이 아닌가? 중하고 악성이라고 들으면 내심 깊은 곳은 곧 어떤 방도도 없는 상태가 된다. 관건은 그 습관적인 사유방식의 가상에 따르는 그 ‘병근’인 것이다. 자신의 사상 사유의 깊은 곳에서 완전히 뿌리를 뽑아내지 못한 그 ‘병근’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대법은 무엇이든 다 해결할 수 있다. 나는 깨달았는데 일부 병업 수련생들이 관을 넘기지 못한 것은 법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의 신사신법의 마음이 아직도 확고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하나의 진정한 연공인은 마땅히 고층차에서 문제를 보고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면 안 된다.”[1]고 하셨다. 자기를 연공인으로 여기고 안으로 찾고, 정념으로 부딪힌 일체 문제를 대하며, 확고하게 백분의 백 신사신법한다. 병업 마난 중의 수련생이 소업과정이 어떠하더라도 우리가 확고하게 할 것은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2]이다. 마난 중의 수련생은 대법제자가 결정한다. 정념으로 구세력의 교란박해를 청리하고 곧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한다. 정념으로 마난 중의 수련생을 가지하고 그의 일은 곧 나의 일인 것이다. 구세력이 우리의 마음이 바르고 모두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곧 자동으로 철수할 것이다.
곧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사람마다 모두 안으로 수련한다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心性(씬씽)에서 찾고, 무엇을 잘하지 못했으면 스스로 원인을 찾아 다음번에 잘할 것이며,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할 것이다.”[1] “만약 사람마다 모두 내심을 향해 수련한다면, 그럼 확연히 달라진다.”[1]이다.
한 점의 체험이며 교류를 위한 것이므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15/3443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