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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운전기사의 이야기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파룬따파를 수련한 10여 년 동안, 때때로 사부님의 호탕한 은혜와 대법의 성스러움, 초상함을 느끼곤 합니다. 여기서 나는 대법수련 중에 나와 가족에게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모친께서는 늘 허리, 다리가 몹시 아팠다. 전족(여자의 발을 어릴 때 싸서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2, 30미터를 걸어도 앉아서 쉬어야 했다. 1997년 무렵 대법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두 번 보고 난 어머니는 3일째 날에는 스스로 걸어서 1리도 넘는 이웃 마을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봤고 또 혼자서 걸어 돌아오셨다.

대법은 이렇듯 병을 떼고 몸을 건강히 하는 빠른 효과가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사부님께 또 대법에 깊은 탄복과 감사를 느꼈고, 다른 가족도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2003년 말, 늘 나가서 차를 모는 나는 집에 돌아와 설을 보냈다. 대법의 신기함이 아내의 몸에서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장기적으로 변비가 심각했는데 4일이나 8일이 돼야 한 번씩 배변했고 매번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대법을 시험 삼아 해본 후, 변비 현상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그때로부터 정상으로 회복됐다. 여러 해 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완고한 병이 주사도 약도 쓰지 않고 그저 파룬따파를 수련하겠다는 일념만 가졌는데 즉각 나았다. 친인이 직접 경험한 것은 내가 중공 사당의 대법에 대한 이 몇 년의 선전이 모두 비방과 날조이고 모욕적인 공격이라는 것임을 즉각 알게 했다. 파룬따파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도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내가 수련한 후에는 더욱 많은 신기한 경험이 있게 되었다.

썩은 살이 다시 살아났다

2005년 나는 차에 짐을 싣고 광저우로 갔다. 차의 짐을 부리고 나서 또 한 공장에 가서 창문에 쓰는 알루미늄 재료를 실었다. 차에다 1미터 높이로 꽉 박아 실은 후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다가 그만 자빠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뒤를 잡았는데 마침 알루미늄 화물의 모서리를 잡았다. 예리한 알루미늄 단면에 두 손과 팔을 긁혀 피범벅이 돼버렸다. 찢기어 커다란 상처가 난 손바닥에는 옥수수 알맹이만 한 살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당겨서 뜯어버리려다가 상처가 더 크게 찢어질까 봐 이 살덩이를 그대로 놔두었다. 그리고는 얼른 장갑을 사다가 끼웠다.(공상이므로 사장이 돈을 내야 했지만 나는 자신의 돈을 썼다.) 장갑 안에다 화장지를 쑤셔 넣어 피가 흘러나오지 못하게 했다.

여관에 와서 장갑을 벗고 핏물을 씻었다. 여관 주인이 보고 말했다. “상처가 이렇게 중한데 감히 물로 씻어요? 얼른 병원에 가보지 않고! 광저우는 날씨가 무더워서 병원에 가서 손을 처치하지 않으면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날 거요.” 나는 웃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며칠 후 밀어 넣었던 살점이 제대로 붙지 않아 주위의 피부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시커멓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여관 주인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늘 손을 코에다 갖다 대고 썩은 냄새가 나나 맡아 보았다.

대략 열 며칠이 지난 후 오른손을 추켜들고 또 냄새를 맡아보려 하는데 그 꺼멓던 살점의 색깔이 이미 정상으로 된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매끈하고 반듯하게 완전히 회복됐다. 중간에는 또 분명하게 손금마저 다 있었고, 주위 연접된 곳은 한 줄 한 줄 불규칙적인 반투명의 허물이 있었는데 마치 작은 꽃송이를 손바닥에 그려 놓은 듯했다. 이 ‘작은 꽃송이’는 대법의 초상함을 보여 주었고, 열 며칠 검게 썩었던 살은 스스로 제 자리에 들어가 다시 살아났다! 이는 가장 진실한 것이다! 이 ‘작은 꽃송이’는 오늘까지도 나의 손바닥에 피어 있어 손만 들면 볼 수 있다.

자동차 기어가 물러나다

2007년일 것이다. 한동안 나는 차를 몰고 외지에서 현지로 화학비료를 운송했다. 어느 날 물건을 다 부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나의 파트너ㅡ윤 씨라고 부르는 다른 한 기사가 말했다. “오늘 오후는 집에 돌아왔으니 짐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내일 당신과 짐 주인이 아래 향진에 가서 짐을 부리고 나는 집에서 쉬겠다.” 나는 듣고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왜 이 정도로 막돼먹었지? 먼젓번에 실어 온 짐도 내가 부리고 그는 집에서 휴식했는데, 이번에는 응당 내가 쉬고 그가 짐을 부려야 한다. 비록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에 그와 다투지 말아야 하지만 나는 날마다 밖에서 뛰어다니기에 집에 한 번 가기가 쉽지 않다. 내일은 가족과 함께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해야 할 텐데.

그와 논쟁하려고 말이 밖으로 막 튀어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남과 좋은 점을 다투지 말아야 한다, 매번 손해 볼 때마다 왜 늘 이렇게 많은 이유로 다투는가? 이건 옳지 않다. 나는 아무런 이유와 구실도 없이 이 이익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남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속의 불평과 미움도 없어지고 아주 태연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러죠, 내일 내가 가서 차를 몰고 당신은 집에서 쉬세요.” 그는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한 참 후에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대략적인 뜻은, 사장의 다른 한 차가 어제 집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짐을 다 부리고 곧 출발하려 한다. 그러나 기사 한 사람이 일이 있어 집에 돌아갔으니 기사 한 명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지금은 오직 한 기사만이 집을 나서 우리 이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으니 기사 윤 씨는 이번에는 집에 가지 말고, 윤 씨더러 먼저 그 차를 따라가 며칠 일하고 나는 자기 차를 몰고 집에 가서 짐을 부리라고 했다. 저번에 윤 씨는 그 차에서 또 6, 7일 일한 후에야 집에 돌아가서 하루 휴식할 수 있었고 나는 다른 기사를 기다리느라고 도리어 집에서 사흘이나 휴식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이익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우리가 심성을 제고했다 해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이익을 잃으라는 것은 아니었다.

이튿날 화물의 주인은 차로 나를 데리고 아래의 갑, 을 두 곳에 가서 화물을 부리기로 했다. 화물 주인은 5, 60세의 우람한 체격의 사장이었다. 차에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만 차에 있어서 교란도 없고 하니 차에서 그에게 진상을 알려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성으로부터 갑이란 곳에 이르기까지 한담만 했을 뿐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그럼 갑이란 곳에서 화물을 부리고 다시 말하자. 하지만 갑에서 을이란 곳에 이르기까지 나는 여전히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을에서 짐을 부리고 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해주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절반 정도 길을 왔을 때 나는 생각했다. ‘후! 나의 심성은 제 위치에 이르지 못했구나. 반시간 더 가면 집에 도착하겠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는 진상을 제대로 알려 줄 수 없으니 아예 그만두자’ 막 생각을 마쳤는데 갑자기 ‘찰칵’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차는 관성으로 인해 앞으로 굴러갔다. 나는 귀를 기울이며 자세히 들었다. 차의 변속기나 혹은 어느 곳이 고장이 생긴 줄로 여겼다. 한참이나 들어도 이상이 없기에 계속 앞으로 달렸다. 막 몇 초를 달렸는데 또 ‘찰칵’하고 먼젓번과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분명히 보아냈다. 변속 레버가 최고 속도로부터 자동으로 빈 위치로 돌아와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 차는 몇 달이나 몰았지만 이런 고장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즉각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내가 노력하지 않고 말하고 싶으나 입을 열지 못하는 걸 보시고 차가 연속 두 번이나 멈춰 서게 함으로써 내가 입을 열고 진상을 알려 주도록 격려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나 다 알고 계셨고, 나의 심리 활동을 사부님께서는 환히 보고 계셨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점화하시는 걸 봐서 이 사람은 틀림없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신심이 크게 증가되어 즉각 그와 진상을 말했다. 원래 그는 퇴직하기 전에는 우리 현 생산자료 회사의 주요한 지도자이고 당원이었다, 반시간 동안의 진상 알리기를 통해 집에 도착하기 몇 분 전에 마침내 그는 사당 및 그 부속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고 구원됐다.

또 언급할 것은 내가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자 그 차는 또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무사하게 차를 몰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너를 보호하고 계시는 것 같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무사하게 차를 몰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너를 보호하고 계시는 것 같다.” 평소에 만날 기회가 없는 사촌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그렇다. 어머니가 대법 수련을 시작한 후부터, 나는 아직 대법을 얻지 않았는데도 사부님은 나를 보호해 주셨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집안이 혜택을 받는다.”[1]고.

그 한 번은 다른 기사가 차를 몰고 나는 운전석 오른쪽에 누워서 잠을 잤다. 우리의 차는 추돌했다. 순간 기사는 자기 쪽은 피하고, 내가 누운 쪽을 앞에 주차하고 있는 큰 화물차에 처박았다. 내가 누웠던 방석까지도 변형됐지만 나는 상한 데가 없었다. 이후 내가 어머니께 일의 경과를 말씀드렸더니 한 목소리가 어머니께 말해주었다. “큰 파룬이 그를 보호해 주었다.”라고.

자신이 법을 얻은 후 나는 사부님의 매번마다의 보호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2010년, 차에 실은 화물이 너무 많아 차의 중량이 130톤을 넘었다. 날이 곧 밝을 무렵,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쪽잠을 자면서 꿈을 꿨다. 꿈의 정경은 현실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이 차는 화물을 너무 많이 실어 통제하기 어려워 내리막 커브에서 차가 넘어져 길 왼쪽 도랑에 빠졌다. 깨어나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 수련을 하며 사부님 보호가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실었으니 나는 유달리 주의해야 했다. 점심에 화물 부릴 지점에 곧 도착하게 됐을 때 화물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차 검사를 해야 하니 나더러 빨리 달리라는 것이었다. 그때 차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였다. 갑자기 십여 미터 앞에서 오른쪽으로 달리던 대형 삼륜차 한 대가 아무런 신호도 넣지 않고 운전기사가 머리도 돌려 보지 않은 채, 갑자기 왼쪽의 작은 길로 꺾어 들며 나의 앞길을 죄다 막아 버렸다. 나는 대경실색했다. 이렇게 무거운 차는 1, 20미터 거리에서는 멈출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곧 발생할 큰 사고를 보면서 나는 운전대를 꽉 틀어잡고 브레이크를 꽉 밟으며 눈을 뻔히 뜨고 삼륜차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얼른 사부님께 구원을 바라면서 입으로 연속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울면서 외쳤지만, 속으로는 도리어 생각했다. 이번엔 끝장이야, 사부님을 부른 것도 너무 늦었고, 거리가 너무 가까워…… 내 차가 삼륜차에 막 부닥치려는 순간, 굼뜨게 달리던 삼륜차가 오히려 대번에 차를 완전히 돌려놓아 직진 길에서 벗어났다. 내 차도 삼륜차에 바짝 붙어서 천천히 멈춰 섰고, 아무런 위험도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나는 그곳에 멈춰선 후 한동안 꼼짝 않고 있었다.

불법은 끝이 없다! 사부님은 너무도 자비하시다. 피할 길 없는 큰 사고 앞에서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나를 도와 또 한 번 큰 재난을 넘게 해 주셨다. 그때의 정경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무서웠다. 감격의 눈물이 마냥 흐르기만 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의 사장님과 동료들

수련 중의 한 대법제자로서 아직도 많은 방면에서 잘하지 못한 곳이 있고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는 생활, 사업에서 진, 선, 인에 부합되는 행위 표현이 있기에 우리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존경과 탄복, 인정을 자아내게 한다. 이 때문에 대법제자는 어디에서 일해도 모두 무척 환영을 받는 것이다. 법을 얻은 후 몇 사람의 사장들이 다 나를 신임했고 좋아했으며, 심지어 대법제자가 그들에게 일해 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늘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2014년 나는 사당 졸개에게 납치당해 한 달간 수감된 적이 있었는데 현임 사장이 전력을 다해 구출했다. 곳곳에 연줄을 대고, 공안, 법원, 구치소로 뛰어다니며, 자신이 돈을 내어 예물을 보내고 했는데 적어도 4, 5천 위안(약 66만 ~ 82만 원)은 썼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돈 1만 위안(약 165만 원)을 그에게 주면서 나를 구출하는 데 쓴 돈을 갚아주려고 했다. 그는 아무것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구출 조치가 타당하지 못해 원래는 한 이틀이면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을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헛고생을 시켰다면서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차 수리하는 곳에는 수련생 누님이 살고 있었다. 나는 차를 수리할 때면 늘 누님한테 가서 한참씩 앉아 있곤 했다. 2015년 장쩌민을 고소한 후, 나는 일도 없고 해서 한 달 동안 차 모는 것을 중지했다.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을 때 그 누님한테 다시 갔다. 누님이 말했다. 장쩌민 고소 때문에 사당이 대법제자에게 소란을 피우고 납치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몹시 걱정했다면서 하루는 나의 사장을 만나자 나의 소식을 물었다고 한다. “모모가 잘 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보이지 않네요.” 그러자 나의 사장이 말했다. “잘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렇게 훌륭한 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그에게 일이 생긴다면 내가 그들과 목숨 걸고 해내겠어요!”

후에 복을 얻은 이야기

갑: 어느 날 밤 중, 나는 차를 멈추고 관례대로 검사하던 중 아주 낡은 타이어의 여러 겹 철사가 닳아 끊어져 곧 폭발하게 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얼른 “파룬따파 하오”를 염하면서 차를 몰았다. 과연 타이어는 폭발하지 않았고,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얼른 낡은 타이어를 바꿔버렸다.

을: 지난해 겨울의 가장 추운 어느 날, 내가 주유소와 아직 5, 6킬로 떨어져 있을 때, 발동기가 갑자기 ‘후룩후룩’ 하면서 움직이지 않기에 들여다보니 기름이 전혀 없어 곧 꺼지려 했다. 나는 얼른 ‘파룬따파하오’를 염했더니 차가 또 달리기 시작했고 주유소까지 순조롭게 운전했다. 그렇게 추운 날, 불이 꺼지면, 기름을 사러 가야하고, 기름을 넣고, 배기하고 원유 수송관을 소통하려면 고생이 막심한 것이다!

병: 내가 어제저녁 ‘파룬따파하오’를 염했더니 정말 효험이 있었다. 내가 모는 그 차는 소기(燒氣-가스연료)하는 차로서 동력이 그리 크지 못해 매번 큰 구덩이에 가서 95톤의 광분(탄가루)을 실어도 올라오지 못했고, 언덕을 오를 땐 가다 시동이 꺼진다. 그런 다음 다시 시동을 걸고 굴착기가 뒤에서 밀어주어야 비로소 올라올 수 있다. 어제 저녁에는 105톤을 싣고 언덕을 올라올 때 나는 염두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한 번 또 한 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대법 사부님 하오!”를 염했더니 굴착기가 밀지 않고도 아주 쉽게 웅웅 하면서 올라왔다. 지금 나는 매번 그 곳에 가서 화물을 실을 때면 염하는데 염하지 않으면 그 언덕을 나는 감히 오를 생각을 못 한다.

정: 어제 저녁 우리 차 몇 대는 강철공장에 철분(쇳가루)을 싣고 갔다. 새벽 한, 두 시경 강철 공장에 도착할 무렵 우리는 모두 졸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몇 사람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 너무 졸리니 우리 모두 ‘파룬따파하오’를 염하고 선생님께 강철공장에서 오늘 저녁은 화물을 부리지 말게끔 해주시고 우리가 좀 자게 해달라고 빌자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몇 사람은 차를 운전하면서 한쪽으로는 “파룬따파하오”를 염하면서 리(李) 선생님께 빌었다. 강철공장에 이르니 접수 인원이 말했다. “오늘 저녁은 화물을 부리지 말고 당신들은 먼저 잠을 자시오, 날이 밝으면 다시 봅시다.” 파룬따파하오를 염하니 정말 영험했다!

지금 많은 사람이 모두 중공의 사악함을 분명히 보아냈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늘 ‘파룬따파하오’을 염하며 재난을 제거하고 복을 받고 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문장발표: 2017년 3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의 신기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9/3440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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