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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병업 교란을 받는 수련생들은 한 가지 문제를 사고해보기 바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장기간 병업 교란을 받고 있는데 이미 6년이나 지속됐다. 처음에는 거동이 불편하다 이후에는 전신 근육이 위축됐고 지금은 전혀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6년 동안 정진하기도 하고 소침, 낙관, 방황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시종일관 한 가지는 확고히 믿었다. 법이 신통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나를 지켜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럼 대체 어디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는가?

처음에는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했고 힘이 닿는 데까지 일부 진상을 알리는 일을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신체 상황은 매일 나빠졌다. 노력해 안으로 찾았고 그동안 확실히 아주 많은 사람 마음, 집착을 제거했지만 신체는 갈수록 나빠졌다. 대체 어디가 부족한가? 이 문제는 시종 날 따라다녔다. 어렴풋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똑똑히 몰랐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자신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내가 하루라도 법공부, 연공을 하지 않으면 매우 불안해했는데 회상해보면 이 6년 동안 모두 이러한 마음이 있었다. 왜 이런 심리가 있는가? 이런 불안은 정말 자신이 정진하지 않아서, 사부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자세히 회상해보니 자신이 당시 불안해 할 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쳐지나갔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한 가닥으로서 ‘또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구세력이 박해하지 않을 리 있겠어?’ 아주 빨리 스쳐지나갔고 이어서 비교적 바른 생각이 나타나 이 바르지 않은 생각을 덮어버렸다.

자세히 찾아보니 법공부, 연공할 때 이런 심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수련의 기타 방면에도 거의 모두 이런 심리가 있었다. 예를 들면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았을 때 잠재의식 속에 이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아 구세력이 나를 박해하지 않을까? 가족들과 모순이 발생해 심성을 지키지 못했을 때 머릿속에 ‘잘못됐어. 또 심성을 지키지 못했으니 구세력이 이로서 나를 박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또 예를 들면 내가 사용하는 대법 책은 몇 년 전에 수련생이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한 것으로 조금만 물이 묻어도 글씨가 흐릿해졌고 어떤 글씨는 이미 뚜렷하지 않았다. 갑자기 어느 날 흐릿해진 글씨를 다시 인쇄해 붙여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래야만 경사경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실제 목적은 정말 내심으로 경사경법을 위한 것인가? 깊이 찾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줄곧 구세력이 박해한 원인을 찾고 있었고 찾다가 이 부분까지 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사경법 같지만 사실은 구세력의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구세력의 존재를 승인했기에 그것은 작용을 일으켰으며 그것을 마음에 둘수록 더 큰 작용을 일으켰다.

병업 상태가 나타나 지금까지 나는 확실히 그것을 속인의 병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로 이러하기에 더욱 현혹하게 만드는데 자신이 병을 위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위해 수련하는가? 지금 똑똑히 보아냈는데 바로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 수련한 것이다. 이는 병 치료를 위해 수련하는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그러므로 나처럼 장기간 병업 교란을 받고 있는 수련생들은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수련하고 있는가? 이는 기점 문제이자 궁극적인 문제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수련 목적은 자신을 원만하게 하는 과정 중 조사정법하고 중생 구도하는 것으로 이 목적에서 빗나갔다면 바로 법에서 빗나간 것이다.

나는 비록 병 치료하려는 마음은 내려놓았지만 구세력의 박해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려놓지 못해 시종 구세력의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 수련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 역시 기에 불과한데 아무리 많이 채집한들 뭐가 어떻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공원에 가서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나는 연공(練功)할 필요 없이 내가 이렇게 걸어가면서 거둬들이기만 하면, 나는 곧 연마(練)가 끝난다. 기를 얻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는 기를 바로 공이라 여긴다. 다른 사람이 그의 곁에 가면 그의 신체에서 서늘함을 느낀다. 그 식물의 기는 음성(陰性)이 아닌가? 연공인(煉功人)은 또 음양평형을 중시하는데, 그의 몸에는 온통 송진 냄새지만 그래도 자신이 연마(練)를 잘 한다고 생각한다.’[1]는 것처럼 사실 수련의 방향에서 빗나간 것이다.

지금 우리를 교란하는 생명은 모두 삼계 내, 층차가 지극히 낮은 생명들로서 우리가 하루 종일 그것들을 에워싸고 수련하니 어찌 층차가 제고되고 돌파해 넘어갈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토록 집착하고 이것을 고집하고 있으니 전혀 법에 있지 않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2]라고 사부님께서는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연공인(煉功人)은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을 주장한다. 일종의 무위(無爲) 상태의 수련으로서, 오직 당신이 心性(씬씽)을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의 층차는 돌파되며, 당신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면 바로 집착심이 아닌가?’[1]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사부님께서는 명확히 우리에게 시련을 돌파할 수 있는 관건이 바로 내려놓음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럼 왜 나는 내려놓지 못하는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다 지금 깨닫게 됐는데 바로 속인의 그런 유위(有爲)적인 마음과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속인이 좋은 직장을 찾으려고 하면 방법을 생각해 인맥을 찾고 뒷거래를 한다거나 애가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을 찾아 보충시키거나 병이 생기면 약을 먹고 병원에 가거나 민간 처방을 찾는 등이다. 요컨대 속인이 문제나 시끄러움에 부딪치면 늘 밖으로 구하면서 권력, 타인, 혹은 약물에 의거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자신의 방식과 노력, 게다가 외부의 힘을 빌려 무엇을 얻으려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수련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수련자는 무위를 말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른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 어떤 문제나 어려움에 부딪혔든 모두 안으로 찾고 심성에 공을 기울이며 집착을 내려놓고 심성이 제고됐다면 사부님께서는 자연히 문제와 어려움을 없애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기(功在師父)’ 때문이다. 수련자가 만약 속인의 방식으로 수련중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해결할수록 더 시끄러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속인의 이런 유위적인 관념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비로소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이용해 구세력의 교란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사실 여전히 자아(自我)를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으로 다만 이용한 것이 법의 것이기에 스스로 법에 있다고 여긴 것이다.

어떻게 속인 중에서 형성된 그런 유위적인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를 하는 것인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3]고 알려주셨다. 또 하나는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기초 위에서 마음을 닦고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을 수련하는 것이다. ‘각종 정보의 교란하에서, 각종 광경의 유혹하에서 당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1] 속인의 복잡한 환경 중에서, 중생들의 천차만별의 표현 중에서 겉모습을 통해 수련의 본질을 보아내고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그 무엇도 수련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인식에 한계가 있기에 법에 있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원문발표: 2017년 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24/3434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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