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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딸에게 맞은 후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팡저우(方舟)

[밍후이왕] 딸이 나에게 심성관을 넘게 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15년 중국에는 장쩌민 고소 물결이 일었다.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17년째 계속되는 박해 가운데서 나는 검은 소굴에 10년 동안 불법으로 수감당했다. 나는 현지에서 박해를 가장 심하게 받은 대법제자 중의 한 사람이므로 당연하게 장쩌민을 고소할 수 있다.

나는 장쩌민 고소장을 정리하여 양고(최고 검찰원과 최고 법원)에 우송했다. 후에 신분증 복사본을 첨부해야 한다기에 나는 또 신분증을 복사하여 다시 한 번 우송했다. 재빨리 양고의 수령했다는 영수증을 받았다. 그때 장 소송 인원수는 아직 5천명도 안 되었다.

양고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범법 행위를 하였다. 많은 기소장이 현지 공안국에 되돌아와 각지에서는 장쩌민을 고소한 대법제자가 공안국의 소란과 납치를 당하는 일이 연달아 나타났다.

하루는 공안국에 출근하는 큰딸의 전화를 받았다. 딸은 그곳에서 고함쳤다. “엄마 또 무슨 일을 저질렀어!” 나는 즉각 장 고소 일인 줄 알아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장쩌민을 고소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딸이 외쳤다. “두고 봐요!”

잠시 후에 딸이 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동을 벌였다. “가만히 잘 살기는 싫고,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지……,” 욕설을 하는 한편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마구 나에게 던졌다. 심지어 가위도 나에게 던졌다. 나는 머리는 피했으나 손에 찔렸다. 그녀가 욕하는 그 더러운 말은 엄마인 나조차 입으로 옮길 수 없었다. 마치 원수를 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흉악한 눈길을 보니 그건 평소의 살뜰하고 효성스럽던 그 딸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쳤다. “너 그만하지 못할까!” 그녀도 외쳤다.” “그만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뚜렷하게 기세가 죽었다. 그랬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나를 움켜잡고 밖으로 떠밀었다. 나를 문밖에 떠밀고는 말했다. “가요, 돌아오지 말아요, 옷도 가지지 말고 입은 옷 그대로 가요.” 내가 말했다. “집은 내 것인데 뭘 믿고 나를 쫓아내는 거냐?!” 그녀가 말했다. “엄마 거라도 엄마는 살지 못해요!”

화가 치민 나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감옥에서 경찰이 이보다 더 험하게 때려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에게 그래도 진상을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자기 친딸에게서 매를 맞고 욕을 먹다니! 억울함과 슬픔이 그야말로 뼈를 깎는 듯했다. 줄줄 흐르는 눈물은 어찌해도 멈출 수 없었다. 문 앞에 서서 한동안 냉정해진 후 아들 집에 갔다.

아들 내외는 여행을 가서 나 혼자 그의 집에 머물렀다. 방금 발생한 일을 반성해보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거의 20년을 수련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만나게 됐는가? 수련인이 만난 일은 우연한 일이란 없다. 이 집은 내 원래의 단층집이 재개발되어 분배받은 것으로써 넓고도 밝아서 살기에 너무나 좋았다. 특히 오는 손님마다 모두 몇 마디씩 칭찬하곤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딸한테 쫓겨났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 저는 수련인입니다 그 집은 태어날 때 갖고 오지 못하고 죽을 때 갖고 가지 못하니 며칠 잠깐 살다가 가버리겠습니다. 전 가지지 않겠습니다.”

큰딸은 평소에 아주 효성스러워 늘 나에게 옷이며, 과일 등을 사 왔다. 내가 감옥에 있는 7년 동안 그 애는 늘 나를 보러와서는 돈을 넣어 주고 관계를 통해 먹을 것을 보내왔다. 하지만 내가 신념을 견지한 연고로 장기간 박해를 당하자 나의 수련에 대한 그녀의 불 이해를 조성했고 나는 수련생과의 왕래와 사람 구하는 일을 모두 그녀 몰래 해왔다. 내가 장 씨 집단에 이렇게 심각한 박해를 당하였기에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는 그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다. 악인이 이해하지 못하여 나를 박해하는 것은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녀는 내 딸인데 놀랍게도 이렇게 나를 대하다니 나는 마음이 싸늘해졌고 그녀에 대한 이 정이 나의 가슴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또한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산둥에 있는 둘째 딸 집에 가기로 했다. 법정 인간이 오지 않으면 나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눈물을 흘리며 이 마음 아픈 곳을 떠났다.

산둥에 도착해 둘째 딸에게 울면서 이 일을 말했다. 둘째 딸은 화가 나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이렇게 엄마를 대하면 지옥에 갈 거야! 언닌…….” 그 애 언니도 그쪽에서 울면서 말했다. “나도 엄마가 연공하는 걸 반대하지 않아, 지금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데 엄마가 장쩌민을 고소하는 건 스스로 일거리를 찾는 게 아니냐? 엄마는 감옥에서 숱한 고생을 하시고 나오신 후 내가 엄마에게 경문을 찾아다 드리지 않았어?…….” 나는 들으면서 가슴이 꿈틀했다. 큰딸도 구하지 못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둘째 딸 집에서 나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자신을 찾아보았다. 집에 있을 땐 사람 구하는 일 때문에 날마다 바쁘다 보니 아주 오랫동안 진정으로 조용하게 자신을 찾아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으로 찾는 법보를 주셨는데 나는 도리어 이 법보를 아주 적게 썼다. 아들 집에 살 때 작은 자료점을 만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프린터와 컴퓨터를 얻어오지 못하니 며느리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아들, 며느리는 모두 아주 지지하면서 여태까지 거절하지 않았으며찬찬히 가르쳐 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며느리는 사람 구하는 일을 도와주어서 정말 복이 있는데 만약 나의 큰딸도 이런 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둘째 딸은 외지에 있어서 만나기 어렵지만, 큰딸은 현지 공안국에 출근하면서 또 노동교양소에 대법 제자를 압송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나는 그녀가 진정으로 진상을 알고 대법에 지은 죄를 회복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큰딸은 내가 대법에서 많은 이로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긴 하면서도 여전히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엄마가 파룬궁을 연마했기에 몸이 좋아져서 내 돈을 적지 않게 절약했어요,” 하지만 당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공산 사당의 사악함을 깊이 알고 있기에 내가 박해당할까 두려워했고 그녀의 일이 영향 받을까 두려워했다. 내 집이 재개발이 되어 분배받은 아파트는 그녀 집과 아래 위층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실내 장식을 다 해준 후 나를 새집에 가 살라고 했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새집에 간 후 나의 자료점이 영향을 받을까 걱정됐고, 그녀가 나의 일에 관여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의 재삼 독촉을 못 이겨 지난해 새집에 들어갔다. 새집에 이사 간 후 나도 몹시 기뻤다. 방은 넓고 밝았으며 장식도 잘하여 친척 친구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아 나도 마음이 흐뭇했다.

영화 장면처럼 한 장면 한 장면씩 나의 머리에서 되풀이됐다. 나는 내가 새집에 집착하니 딸이 나를 쫓아내고, 딸에 대한 정에 집착하니 사악은 그녀를 지배하여 나를 때리고 욕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스스로 자신은 이젠 정을 내려놓았다고 여겼는데 그럼 왜 이 일을 말하기만 하면 우는가? 그것은 내가 딸에 대한 정을 원한으로 바꾸었는데 그건 아직도 정 속에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큰딸은 내게 수련생과 연계하지 못하게 했고, 내가 법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그녀는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공안국에서 빼앗아 간 대법 책을 찾아다가 나에게 집에서 보라고 했다. 후에 그녀는 나의 위층에 이사 가게 되어 나는 겨우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집이 너무 커서 큰딸은 며칠에 한 번씩 와서는 집을 청소하고, 옷을 사주고, 맛있는 걸 사주고, 나는 모녀의 정을 느꼈고 또한 이런 정을 누렸다.

구세력은 나와 딸의 정을 이용하여 나를 단속했고, 나는 심지어 아주 오랫동안 수련생과 정정당당하게 접촉할 수 없었다. 후에 나는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했는데 될수록 큰딸을 속였다.구실이란 그녀가 성격이 강해서 그녀와 화를 내고 싶지 않고 번거로움이 싫다는 것이었다.

장 고소를 나도 원래는 그녀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감히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측면으로 암시하면서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박해를 당했으니 나는 장쩌민을 고소해야겠다, 모두 장쩌민 혼자서 조성한 것이다, 장차 나에게 보상해야 한다. 나는 백만 위안(약 1억 7천만 원)을 받겠다!” 그녀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많은 돈을 엄마 어떻게 쓰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너희에게 나누어 주겠다.” 그녀가 말했다. “나 좀 많이 가져야겠어요, 내가 엄마에게 관심이 가장 많았거든요.” 내가 말했다. “그래!” 나는 이렇게 한 것을 그녀에게 알려준 것으로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녀에게 정면으로 진상을 똑바로 알려주지 않았고, 내가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한 것을 그녀에게 감히 정정당당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나는 온종일 사람 구하는 일에 바빴지만, 오히려 지척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진상을 똑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 성격이 강해 감히 장을 고소하는 일을 알려주지 못했고 정정당당하게 직면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딸들을 사람 구하는 일에 참여시키고자 한 것은 그들이 대법에서 좋은 점을 얻게 하려는 것이 매우 큰 일부분이었는데 실은 진정으로 그들을 구하는 것은 그들이 대법 진상을 알고, 장 고소의 진상을 알게 하여 그들을 정의의 한 편에 서게 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에게 이로운 것이다.

나는 예전에 자기 딸에게 잘해주는 것은 단지 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게 하는 목적은 매우 큰 부분에서는 사적인 것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녀는 나와 다툴 때 나를 ‘너무 이기적’이라고 욕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면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정과 사적인 것을 청리했다, 딸을 일반적인 중생으로 보고, 자아적인 감수를 내려놓으며, 오직 이 생명만을 구도하고자 했다. 나의 자비심은 정말로 나왔다. 딸과 나는 큰 연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내 딸로 안배한 것은 인연 관계 말고도 틀림없이 그녀가 흐리멍덩할 때 나에게 그녀를 일깨워주라는 것이지 그녀와 화풀이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대법도의 각도에 서서 그녀를 구해야 하고 그녀에게 좋은 미래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딸과 다툰 근본 원인이 나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구세력은 인연 관계를 이용하여 나를 끌어내리려 했고, 사부님께서는 이 인연 관계를 이용하여 나를 제고시키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큰딸은 지금 속으로 틀림없이 몹시 괴로워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주도적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전화에서 엉엉 울면서 말했다. “엄마, 언제 돌아오실지 내가 비행기 표를 예약할게요…….”

나는 일체 은원을 선해 하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야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아직도 뭔가를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나는 비록 내가 마땅히 사람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큰딸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또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지만, 정작 그녀를 만났을 땐 나는 내가 아직도 그녀를 태연하게 대면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녀를 보니 마음이 곧바로 불편했다. 내 몸에 아직도 미워하는 물질이 존재했고,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그것을 느끼게 하셨으며, 나에게 근본적으로 제거해 버리게 하셨다. 나는 딸과 아래 위층에서 살았는데, 나는 사상 속에서 내 공간장의 미워하는 물질을 제거하고, 행위상에서 그녀를 웃으며 대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그를 잘 대해주며, 자신의 감수를 내려놓으라고 강요했다. 나는 그녀에게 보신탕을 끓여주고 이불을 햇볕에 말리고……, 그녀의 기분이 좋을 때면 나는 그녀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 주었으며, 대법이 박해당하는 진상, 대법제자가 왜 장쩌민을 고소하는지, 국내외 대법 홍전과 사악 우두머리를 고소하는 형세……. 등을 말해 주었다.

나는 내가 그녀를 잘 대해 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닦고 있다. 서서히 나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더는 그녀를 잘 대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그녀를 배려하면 자연적으로 그녀를 잘 대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정념이 강하지 못하여 늘 사람의 관념에 방해를 당했다. 딸이 공안국에 출근함으로 많은 일은 그녀가 보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관념이 바뀐 후에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로서 가장 성스러운 일이므로 그녀의 명백한 일면은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 명백한 일면이 그녀를 지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NTD TV를 설치했는데 그녀가 보고 나서 말했다. “엄마네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요, 방송국이 다 있네요!” 그건 파룬궁의 방송국인 게 아니라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프로젝트라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프린터, 컴퓨터, 나 스스로 만들어 낸 진상 정기 간행물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두 동생은 대법에 대한 태도가 모두 아주 좋은데 오직 너만은 나를 걱정하게 한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파룬궁을 연마한 후 아무 병도 없다. 이는 진법진경(真法真经)이다. 그러나 네가 화를 내면 아무 말도 감히 할 수 없다. 네가 대법과 대법 사부님에 대한 불경스런 말을 한 것은 자신에게 큰 죄를 빚어준 것으로서 너는 갚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다. “그럼 어떡해요?” 나는 사부님께 사죄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부님 법상 앞에 가서 깊이 허리 굽히며 절을 하고는 말했다. “사부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밍후이왕에 ‘엄정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이 과거에 말하고 했던 대법과 대법 사부님에게 불경스런 언행을 전부 폐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게 가장 좋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겠어요, 실명으로 하지요, 아무튼 세상에는 같은 이름이 아주 많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일찍 그렇게 사납던 딸이 이렇게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리라고는 생각 밖이었다. 이렇게 아주 쉽게 대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이전에 늘 딸이 진상을 알고 대법을 믿어주기를 고대했는데 이 일체가 정말로 눈앞에 발생했을 때 나는 도리어 아주 차분했고 단지 위안을 느꼈을 뿐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내 딸을 구해준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날마다 모두 사람을 구한다고 말하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느라고 바쁜데 실은 이 일체가 해낸 것이 아니라 닦아낸 것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사부님의 ‘홍음 2’의 시 한 수가 생각난다.

도 중 행(道中行)

대도가 세간에서 펼쳐지나니

미혹 속의 생명을 구도하는 도다

명(名) 정(情) 이(利)를 씻어버리거늘

어떤 난이 성스러움을 가로막을 쏘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중생구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는 매우 깊이 느꼈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소감>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24/3434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