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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는데서 향락에 대한 집착을 보다

글/ 대법제자

[밍후이왕] 전 한동안 나는 갑자기 또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고 이런 상태가 내 수련 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 중복됐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날에 식사시간이 되면 머릿속에 무엇을 먹고 싶은지 생각났다. 반영되어 나온 것은 전부 고기가 들어간 밥과 요리였다. 그 시기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고기에 대한 집착심이 또 한 번 이끌려 폭로되고 있음을 발견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집착심이 생겨났다.

왜 이 마음을 제거하면 또 나오고, 나오면 또 제거하면서 늘 깨끗이 제거하지 못하는가? 나는 그 며칠 동안 계속 아주 곤혹스러웠다. 마침 내가 ‘전법륜’ 제7강의 ‘육식문제’에서 사부님 말씀을 보게 됐다. “그러므로 역대 고승(高僧)도 사람들이 육식하는 이 문제는 그 무슨 관건 문제가 아니며, 관건 문제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고, 집착심이 없다면 무엇으로 배를 불려도 된다는 것을 보아냈다.”[1] ‘배를 불리다’ 이 몇 글자가 특별히 눈에 띄었고 나는 내가 집착을 내려놓을 때 식사는 나를 놓고 말할 때 단지 배를 불리는 작용만 일으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그 집착심은 겨우 고기인가?

현재 물욕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속인들은 먹고 마시는 데에서 제멋대로 신선감, 자극감과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으며 듣기 좋게 이른 바 삶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비록 어릴 때부터 대법을 수련했지만 계속 사람을 유혹하는 이러한 ‘먹고 마시는’ 것을 견제했다. 그러나 사회에 들어와서 최근 몇 해 동안 그 속에 빠진 것도 몰랐다. 예를 들어 회사 모임, 동창생 모임, 연회 등, 심지어 나는 평소에 동창생들과 함께 매주 가서 외식도 하는데 한 끼 좋은 것을 먹는 것은 이미 간단한 ‘배를 불리다’가 아니었다. 내 식사는 점차적으로 내가 삶을 즐기는 일부분이 됐고 자신의 식욕을 방종할 때 속인 중의 유혹이 나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심지어 현재 식당 밥과 요리는 가격을 올리기 위해 대다수 모두 고기가 들어간 요리였고 이는 무형 중에 나에게 고기에 대한 집착심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했다.

가끔 수련생들과 함께 외식할 때 나는 일반적으로 모두 레스토랑을 찾고 세트메뉴 혹은 볶음밥을 주문한다. 연세 있는 수련생들이 밖에서 식사를 하기 아까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늘 밖을 향해 보았고 그녀들이 너무 절약하는데 이익의 마음이 중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녀들 앞에서 더 많은 음료와 디저트 등을 더 많이 주문하면서 자신이 ‘이익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를 과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자신은 즐기려는 마음의 통제 하에 그렇게 많은 가소로운 행동을 했으면서 또 자신이 이 수련생들보다 이 방면에서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연령대 젊은 수련생들은 대부분 이 문제가 존재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식사할 때 더욱 거리낌 없었고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우아하고 쾌적한 레스토랑을 선택하고 자신이 그날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식사를 마치고는 음료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는 과정에서 적어도 한두 시간이 걸린다. 왜냐하면 주변의 속인들도 모두 이러하기에 이것 또한 우리 정상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됐다.

이 향락심은 점차적으로 내 생활 속 기타 부분으로 침투됐다. 전자제품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로는 모자라서 또 노트북이 필요했고 이것도 모자라서 또 태블릿을 샀으며 이것도 모자라서 핸드폰 3, 4대를 샀다.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가. 나는 피곤하면 침대에 누워 인터넷에 접속하려 했고 노트북을 사용한다. 노래가 듣고 싶거나 동영상을 보고 싶으면 태블릿을 사용하고 위챗, QQ, 전화를 사용하려면 핸드폰이 필요했다. 왜 그렇게 많은 핸드폰이 필요한가. 나는 가장 빠른 시스템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또 나의 게으름을 가중시켰고 아울러 나로 하여금 인터넷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으며 나는 이런 것들과 놀기 바빠서 시간은 신속하게 흘러갔다.

동시에 물질적 향락은 또 좋은 물건과 어떤 재밌는 것을 보면 그다지 쓸모가 없어도 구매하게 됐다. 옷, 가구제품 등등인데 비록 속인의 그러한 브랜드를 추구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경제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것을 샀다. 그러나 또 늘 무슨 비싼 제품은 사용기간이 길고 품질이 좋다는 등의 이유를 댔고 이는 나로 하여금 한가하면 쇼핑몰에 올라가서 쇼핑하게 했다. 며칠 전 수련생이 쓴 문장을 보았다. ‘중국 스모그와 폼페이 소멸’이란 글에서 폼페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노는 방면에서 극도로 향락을 누려서 그들은 빠르게 소멸됐다고 했다. 자신에게 이런 향락심이 있음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화상은 고생을 겪을수록 더욱 쉽게 개공하며, 그 대화상은 향수(享受)할수록 개공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업력의 전화(轉化)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1] 수련인으로서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속인처럼 향락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수련 의지를 소모시키는 동시에 게으름, 안일함,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강화시킨다. 또 나와 같은 집착심이 있는 수련생들이 중시하기 바라고 자신의 생활 속의 매 한가지 일을 방종하지 말기 바라는데 그것은 수련에서 큰 누락을 형성하게 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7년 2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13/34300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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