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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야외 연공을 말해보자

글/ 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금년 원단 그날, 밍후이왕에서 수련생의 교류 문장 ‘야외 연공의 옳고 그름’을 보고 나도 자신의 견해를 말해보려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언급하셨다. “내가 듣기에 어떤 곳에서는, 이미 나와서 연공을 하고 있다.”[1] 내가 여기건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만약 나와서 연공할 수 있다면 그건 구세력에 대한 부정이고, 대법제자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박해는 ‘이젠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경지에 닿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연이어 걸어 나와 연공하는 것을 보셨을 뿐만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는 사부님 어투에서 한 가닥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야외 연공을 견지할 수 있는 자체가 바로 장쩌민 및 사당의 박해 정책에 대한 부정이다. ‘7.20’ 박해 이후부터 우리 이곳 610과 공안, 주민센터 등 사악한 세력은 나에 대한 소란과 박해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대법 책을 수색해 몰수하고, 전화 소란과 비판투쟁회(나는 한 국유기업의 부서 지도자였기 때문)를 열었고, 2002년에 와서는 나를 구치소에 넣었다. 원인이라면 내가 수련을 포기한다는 태도 표시를 하지 않았고 아울러 우리 집에서 대법진상 자료와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을 폭로한 진상 CD를 수색해냈기 때문이다.

2003년, 구치소에서 나온 후, 나는 사업을 잃긴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대량의 시간을 갖게 됐다. 많은 지인들과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모두 “아직도 파룬궁 연마를 하세요?”라고 묻는다.(뜻인즉 이런 고압적인 박해에 직면해 당신 아직도 감히 파룬궁을 연마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웃으며 대답한다. “지금 나는 출근도 못하는데 연공을 안 하고 뭘 하겠어요?” 정말이지 그때부터 나는 줄곧 야외 연공을 견지했다.

야외 연공을 견지하게 되면서 한 동안 사상 투쟁을 겪게 됐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환경이 느슨하지 않았다. 당시 환경은 참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초일목(一草一木)마저도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붙어서 당신이 길을 걸어가면 나뭇가지조차 당신의 얼굴을 후려치고 그 풀조차도 당신을 걸어 넘어지게 했으며, 공기는 모두 사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2]였다.

어느 때 한 번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내(대법 수련에 들어서지 않았음)는 산책을 나갔다가 작은 수림에 도착했다. 이곳 환경이 아늑함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연공했다. 아내는 두려운 마음이 매우 중해 내가 과시심으로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다고 다투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내 마음 속에 확실히 사당의 박해 정책에 대한 거부, 비승인, 거들떠 볼 가치도 없다는 사상이 있었고, 네가 나에게 수련하지 못하게 하면 나는 한사코 연마할 것이고, 네가 나를 박해하면 나는 곧 반박해할 것이라는 이런 한 가지 반역 심리가 있었다. 이런 것도 역시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는 이지와 지혜가 부족한 것이고 자비, 자상한 표준에는 더구나 도달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후 나는 야외 연공은 잘못이 아니며 야외 연공을 해 사당의 박해를 저지하는 것 역시 잘못이 없고, 아름답고 상서로운 파룬궁 공법을 세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더욱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관건은 자신의 사상과 동기를 모두 대법의 법리로 바로 잡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대낮에 야외 연공을 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 봄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야외 연공을 견지했다. 우리 집 아파트 곁에는 작은 수림(작은 화원이기도 하다)이 있는데 날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아침 단련을 하거나 놀기도 하는데 나는 늘 이곳에서 연공했다. 야외 연공을 견지하는 것이 바로 사당 박해에 대한 부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야외 연공은 좋은 점이 많고도 많다. 춘하추동을 막론하고, 추위와 무더위를 막론하고 바깥에서 연공하면 모두 천지와 융합하고, 우주와 공생하는 느낌을 갖게 되고, 집에서 연공할 때처럼 사면의 벽과 천정이 단속하는 그런 감각이 완전히 없다. 밖에서 연공하면 바람소리, 새 소리와 자동차의 웅웅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것이 연공에 대한 교란으로 여겨지지 않고 반대로 그건 대법과 우주 만사만물이 자연적으로 화목하게 존재하는 것임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핸드폰 속의 연공 음악을 켜 놓고 사부님 구령을 들으면서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연공 상태에 들어갈 때, 한 동작, 한 자세에서 모두 연공 구결 중의 현묘함과 신성함을 체험하게 된다.

야외 연공은 두려운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야외 연공은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로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일정압백사(一正压百邪)’[3]인 것이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고발당하지 않을까?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을까? 이 때문에 박해당해 구치소에 갇히지 않을까 등등 이런 가설에 대해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연공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단지 두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부류는 파룬궁을 연마해 보지 못해 그들은 당신이 연마하는 것이 무슨 공법인지 모르므로 고발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한 부류는 파룬궁을 연마했던 사람으로서 그는 우리의 수련생이거나 한 때는 우리의 수련생이었을 것이므로 그들은 더구나 당신을 고발하지 않을 것이다. 야외 연공은 오히려 아주 안전하다.

두 가지 예를 들겠다. 한 번은 우리 아파트 단지 이웃이 아내에게 내가 늘 작은 수림에서 연공한다고 알려주었다. 아내는 나 때문에 걱정돼 가족들의 느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표현이라고 나를 꾸짖었다. 나는 그녀에게 야외 연공의 안전성에 대해 말해 주자 그녀는 더는 잔소리하지 않고 상관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내가 회의 전시센터에 일을 보러 갔다가 찾으려는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나는 광장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연공했다. 내가 2장 공법 터우딩포룬을 할 때 나는 누가 내 앞에 서있는 것 같아 눈을 떠보니 한 수련생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와 외지에서 사업하는 며느리(역시 수련생)가 이곳 구경을 왔다가 며느리가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연공하는 것이 파룬궁이라고 했다. 이 수련생은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인지 가보자.” 그래서 내 앞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광장에서 두 셋씩 다니는 사람들은 내 앞을 지나가면서 아예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수림 앞에서 연공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일부 사람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10여 년 동안, 무슨 공을 연마하는지 묻는 사람이 늘 있었다. 그러면 나는 파룬궁이라고 알려준다. 어떤 사람은 연공하지 못하게 하지 않냐고 말하면 곧 진상을 알려준다. 어떤 사람은 이 때문에 진상을 알게 됐고 심지어 삼퇴까지 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권하며, 또 어떤 사람은 더는 말하지 않고 몰래 가버리기도 했다. 지난해 장쩌민 고소를 한 후 현지 공안국의 두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장쩌민 고소에 관한 일을 물었다. 내가 집에 없었기에 전화로 나에게 아직도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어디서 연마하는지 물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그녀(610의 한 여경, 일찍이 많은 대법 수련생을 박해함)에게 알려주었다. “저는 날마다 연공합니다. 이는 제 생명 중의 가장 중요한 과목입니다. 집에서도 하고 밖에서도 합니다. 어디서 연공하고 싶으면 그곳에서 연공합니다!” 확실히 이러하다.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정념정행 하니 사악이 오지 못했고 어디서 연공하든 다 되었다. 두 아들이 모두 성 소재지에 살고 있으므로 해마다 아내와 함께 며칠씩 묵기가 일쑤였다. 그곳 아파트 단지 내에는 노천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단지 곁의 하천 강변은 모두 사람들이 쉬는 곳과 아침 단련을 하는 곳이었다. 매번 가기만 하면 나는 날마다 이런 곳에서 연공을 견지했지만 그 어떤 교란도 당하지 않았다. 나는 야외 연공을 할 때 현지 수련생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진상을 알릴 때 현지의 두 수련생을 만났는데 수련생 지간의 그런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야외 연공에 관해 내가 비록 이렇게 많은 말을 했지만 여러분이 모두 나와서 연공하라고 선동하는 것은 아니며, 여러분이 모두 나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 대륙의 형세는 아직도 아주 험악하고 사당의 박해는 아직도 중지되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곳은 아직도 매우 엄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 대법제자가 걸어가는 수련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한 것이므로 오직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을 배우고 사람을 따라 배우지 말아야만 유일하게 정확한 것이다. 더구나 밍후이 통지에 확정된 전 세계 아침연공 시간은 개변되지 않았으므로 우리 모두 밍후이 통지에 따라 제 시간에 아침 연공에 참가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야외 연공을 견지한 것 역시 내 상황에 따라 한 것일 뿐이므로 보편성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나 역시 수련생이 밖에 나와 연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만약 수련생에게 나와서 연공하고 싶은 염원이 있고 따라서 현지의 환경과 개인의 심성을 모두 잘 파악할 수 있다면 그럼 될수록 나와서 연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현 단계에 야외 연공은 많은 대법제자가 모여 함께 연공하기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분산되어 연공하는 것이 그래도 적합할 것 같다. 우리는 모이면 형체를 이루고 흩어지면 입자라고 말하지 않는가? 앞으로 조건이 성숙되면 우리는 함께 모여 연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는 각종 그림과 문자를 인각으로 새길 수 있고, 또 천국악단을 설립해 대법의 노래를 연주할 수 있는 등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는 대법의 아름다움, 성스러움, 신적을 인간세상에 펼쳐보임으로서 사람들에게 영원히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와 은혜에 감사드리게 할 것이다.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4-2003년 애틀란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2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6/3426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