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칭(大慶) 대법제자
[밍후이왕] 근간에 협조인에 관련한 문장이 밍후이왕에 게재돼, 대륙 수련생, 더욱이 현지에 존재하는 일부 난잡한 현상을 언급했는데 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체에 중대한 누락이 나타났을 때 수련생들 각자는 정체를 위해 책임을 다 했는가?
혹시 어떤 사람은 그건 협조인의 일이거나 직접적으로 모순에 연관된 수련생의 일이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그 일에 우리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 일을 듣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떤 표현을 했는가? 수련인으로서 첫 번째로 내보낸 염두가 사람 마음이었는가, 아니면 정념이었는가? 실질상 그 염두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다! 필경 한 정체는 많은 수련생과 관련되는데 그 중 매 개인의 염두는 모두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에 정체에 발출한 자신의 그 염두를 홀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래에 세 가지 방면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신을 잘 닦으며 정념으로 문제를 봄으로서 정체가 손실을 적게 당하게 할 것을 일깨워주려 한다.
1. 자신과 대법, 사부님과의 관계를 바로 놓아야 한다
최근 들어 현지 협조인은 성내 각지에서 빈번하게 교류회를 열 뿐만 아니라 출발할 때면 언제나 차를 몰고 전 과정을 함께 하는 수련생이 있고, 먼 곳에 갈 때는 더욱 이러했다. 협조인에게 차를 몰아주는데 대해 시내, 시외를 누가 책임지는가 하는 배치 분공이 명확해야 한다. 모르는 사이에 협조인에게 차를 몰아주는 것은 고정적인 형식으로 돼 버렸다. 협조인은 더욱 사양하지 않고 큰 일, 작은 일 모두 기사 수련생을 찾는데 어떤 때는 날마다 나간다.
그런데 무조건 협조인에게 협력해 차를 몰아준 수련생에게 여러 정도로 문제가 발생했고 그 중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한 남자 수련생은 차를 몰고 협조인을 외지에 교류하러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도중에 차가 뒤집혀 사망했고, 나머지 세 사람(협조인을 포함)은 기절했다. 한 여성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협조인을 각지 교류 장소에 태워다 주다보니 기진맥진하며 법공부, 연공상태에 직접 영향 주었다. 한 번은 협조인이 그녀에게 성 소재지로 태워달라고 했다. 모 부서에 박해 자료를 배포하라고 하고는 자기는 밖에서 발정념 했다. 결국 배포하던 이 수련생은 납치당해 사악에 타협해 ‘보증서’를 썼다. 돌아온 후 심리적 압력이 너무 커서 병업 상태를 초래했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그해 겨우 37세였다. 다른 두 기사 수련생도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나 생명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제때에 깨닫고 더는 맹종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더욱 큰 손해는 빚어내지 않았다.
분명한 바, 함부로 다른 수련생을 이용해 차를 이용하는 것은 그 수련생의 시간과 재산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바르지 못한 사람마음을 자양하며, 또 사악에게 박해할 기회와 가능성을 주었는데 수련생 개인과 정체에 모두 해로운 것이다. 그러나 협조인은 오히려 말하기를, 또 어떤 수련생은 집을 팔아 차를 사서 그와 협력해 시내에서 운전한다고 했다. 때문에 기사 수련생의 죽음과 재난에 대해 협조인은 자신의 책임을 보지 못하고 모두 그들 개인 수련의 문제로 여겼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아냈는바 협조인에게는 자연히 그의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 수련생의 무원칙적인 협력은 오히려 협조인에게 함부로 차량을 이용하는 물질 조건을 준 것이다. 동시에 협조인에게 한 가지 심리적인 잘못된 인식을 조성해줬는바 협조인이 함부로 수련생을 이용하는 자체가 바로 자신과 사부님, 대법과의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한 것이고, 수련생과의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한 것이며, 본인 스스로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높이 본 것이다. 그리고 기사 수련생을 부르기만 하면 곧 오기에 그는 더욱 자신이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고 결국 전적으로 협조하는 사람이 생겼으며, 기사 수련생 역시 더욱이 운전해주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남다르다고 여기게 됐다. 그래서 편파적인 것과 손해는 쌍방에서 조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사 수련생도 대법과 사부님과의 위치를 바르게 놓지 못했고 법을 스승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기에 비로소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준 것이다.
또 있다, 우리 이곳의 한 수련생이 외지 세뇌반에 납치됐을 때 협조인은 수련생을 보내 그곳에 가서 집을 세 내어 발정념을 하게 했다. 그 중 한 곳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직접 집안에 들어가 조사했다. 그 후 수련생 몇이 열쇠를 비틀어 부러뜨려 문을 열 수 없게 된 후에야 협조인은 철수하고 돌아오는데 동의했다. 이처럼 몇 번이나 세뇌반 인근에 셋집을 맡는 행위는 수련생 가운데서 아주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협조인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는 방법은 옳은 것인가? 우리가 알다시피 보통 사악의 세뇌반은 모두 외진 곳에 숨어있기에 일단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아주 눈에 뜨인다. 한 번씩 사람을 바꾸면서 크고 작은 먹고 쓰는 물건을 한 가방 한 꾸러미씩 그곳으로 가져간다면 더욱이 이목을 끌 것이며, 직접적으로 안전 문제에 연루될 것이다. 이는 아주 이성적이지 못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관건은 많은 수련생이 자신과 대법, 사부님과의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해 모르는 사이에 협조인의 의지를 중히 보고, 대법에 대한 자신의 정오(正悟)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실은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면 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 정도를 더욱 고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자신에게 사고할 기회를 아예 주지 않고 직접 협조인의 어쩌면 법에 있지 않을 수 있는 배치에 복종해 자신이 제고할 기회를 잃고서도 느끼지 못한다. 이건 수련인의 유감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인은 반드시 수련의 기점과 태도를 중시해야 한다. 우선은 자신과 대법, 사부님과의 관계를 바로 놓아야 한다. 수련인이 전심전력할 것이란 오로지 사부님의 법뿐이지 무슨 고수의 조언이 아니며, 어느 수련생이 어떻게 요구한다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부님과 대법을 지키고 에누리 없이 믿어야만 사람 마음의 현혹을 물리칠 수 있다.
2. 대법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인식이 분명해야
한 때 외지 수련생이 향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는데 사부님께서 향의 재료 구성을 알려주셨다면서 각지 수련생 가운데서 비싼 값에 팔았다. 우리 이곳 협조인은 ‘사부님께서 주신 비방(祕方)‘이라는 말을 깊이 믿어 의심하지 않았고, 아울러 협조인 가운데서 널리 선전했으며 교류회를 열고 팔려고 했다. 수련생들이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후에 밍후이왕 수련생을 찾아 확인했고 공장 측에도 사부님께서 비방을 주셨다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으나 협조인은 그래도 믿지 않았다. 한 수련생이 공용 이메일을 이용해 이는 난법 행위라고 지적하자 협조인은 또 수련생이 이메일에서 견해를 언급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는 또 수련생을 배치해 한 불교 용품점에 현지 판매 총대리점을 설립했다.
그 때 많은 지역의 협조인 및 기타수련생이 이 판매에 참여했고 많은 수련생이 기만당해 이런 고가의 향을 샀다. 오늘까지도 협조인 신변 수련생이 여전히 수련생들 가운데서 향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
우선 말할 것은 이 일의 출현은 대법에 대한 수련생의 인식 정도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대법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우선 마땅히 똑똑해야 할 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전하는 것은 우주 대법이고 대법대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대도인데 어찌 제자에게 ‘비방’을 알려주실 수 있으며, 어찌 향 따위 같은 소도를 중히 보고 법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고 아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수련생은 요만한 일마저도 다 분명하게 볼 줄 모르며 심지어 거짓말 유혹을 맹목적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가? 수련에서 지름길을 걸으려 하고 기회를 엿보아 사리사욕을 차리려는 마음이 아닌가? 바로 어떤 사람이 사부님과 악수하면서 무슨 정보나 얻으려 하는 것처럼 사부님께서 주신 처방으로 만든 향을 사용하면 공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사부님께서 주신 처방이라는 말을 듣자 함부로 믿고 아무리 일깨워 주어도 듣지 않는가?
공이 자란다는데 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즉시 당신을 ‘삼화취정(三花聚頂)’에 도달하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이 문만 나서면 공은 곧 떨어진다. 그것은 당신 것이 아니며 당신이 수련해 낸 것이 아니어서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 표준이 거기에 있지 않아 누가 더하려 해도 더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완전히 자신에 의거해 수련해 낸 것이며 자신의 그 마음을 수련한 것이다.” 때문에 수련생은 반드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수련해야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며 밖으로 무슨 공이 자라는 고수와 묘책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할 말은, 여러분은 정체를 수호하는 의식이 분명하지 못하고, 정체를 위해 책임지는 마음이 강하지 못하다. 이런 일의 명목이 바로 사부님 명예를 비방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자각적으로 대법을 수호하고 사부님의 명예를 수호하며 사지도, 팔지도 않으며, 선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하도록 알려 줌을 해낼 수 있다면 이 일이 수련생 가운데 시장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바르지 못한 것은 중지될 것이다.
사실상 그건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외치는 수련생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서 그래도 사려하는데, 그 가운데는 어떠한 사람 마음이 섞여 있는지 수련생 자신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이러한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기에 비로소 바르지 못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정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대법 수련에 대한 수련생의 태도가 엄숙하지 못하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못하며,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전체 환경에 대해 재앙과 파괴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3. 이기심은 정체에 대한 무관심 부추겨
박해당하는 수련생에게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에 대해 현지 정체 중에서 일게 된 논쟁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됐고 지금까지 1년 넘도록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모순된 쌍방에서 한 쪽은 협조인 및 구출팀이고 다른 한 쪽은 수련생의 무죄 변호를 할 변호사를 선임한 몇몇 수련생이다. 모순의 초점이라면 협조인은 변호사 선임 문제는 일률로 구출팀에서 책임져야지 다른 사람의 참여는 모두 교란이라고 여겼다. 다른 몇몇 수련생은 구출팀에서 선임한 유죄 변호를 하는 변호사는 대법을 실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이 진상을 듣는데 장애를 조성한다고 여겼다. 협조인과 상의해 보려는 무죄 변호 변호사가 오히려 협조인에게 무시를 당하자 수련생 몇 명이 자발적으로 했다.
하지만 구출팀에서 착오적인 방법을 견지했기 때문에 잇따른 몇 개 사건에서 선임한 변호사는 유죄 변호를 했고 아울러 무죄 변호를 한 변호사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런데 협조인은 오히려 구출팀에서 아주 잘했다면서 구출팀과 현지 유죄 변호를 한 변호사를 외지에 추천해 외지 수련생의 ‘반박해’를 도와주었다.
이 변호사 선임 사건은 수련생들 중에서 엄청 큰 논쟁과 풍파를 조성했다. 그러나 쟁의의 근원은 협조인에게 있었다. 협조인은 도처에 가서 구출팀에서 선임한 변호사가 잘하고 있었는데 중도에 수련생이 교란했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왜 가로 막았는지는 밝히지 않고 구출팀에서 선임한 변호사가 유죄 변호를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협조인이 한 쪽만 감싸고 한 말은 직접적으로 넓은 면적의 수련생들에게 오해와 쟁론을 조성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더욱 많은 수련생들의 사람 마음과 편견 역시 폭로됐다.
어떤 수련생은 무원칙적으로 협조인의 한쪽 말만 믿고 물어보기조차 하지 않으면서 협조인의 비난에 따라 다른 수련생을 ‘교란’했다. 어떤 수련생은 웃음거리나 구경하자는 심리를 품어 말에는 빈정거리는 어투가 다분했으며, 이쪽이 잘못했다고 책망하고는 또 저쪽이 잘못했다고 질책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말하는데 마치 자신은 타인이어서 아주 분명하게 보아냈다는 듯하다. 더욱 많은 사람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면서 이 일은 자신과 관계없다고 여기고, 자신이 직접 진상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바르게 걷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청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변호사 선임은 선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변호사를 선임하면 법정에서 판사와 재판하는 것인데 어찌 그들을 구도할 수 있겠냐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모순된 쌍방을 맴돌면서 양쪽에서 착한 사람인척 한다. 무릇 이런 각종 사람 마음이 낱낱이 드러났으며 수련생으로서 안으로 찾는 표현을 완전히 잊었다.
그러나 정념의 각도로부터 보면 대법제자는 수련생에게 유죄 변호를 하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아야 한다. 속인이 선임하는 것은 속인의 일이고 우리는 오히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유죄 변호를 하는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것은 대법제자로서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하며 이는 쟁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치가 그곳에 놓여 있는데도 여러 수련생의 사람 마음이 쟁론을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릇 이 일을 들은 수련생은 모두 정념으로 대했는가? 필경 이는 정체의 일인데 매 수련생에게는 모두 한 몫이 있는 것으로서 그건 어느 팀, 어느 몇 사람의 일이 아니다. 비록 그 경지에 있지 않더라도 정체에 조금의 정념을 더해 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자기와 상관없다고 웃음거리나 구경하자는 사람 마음은 정체에 대해 무슨 작용을 일으키겠는가? 자기만 보호하려는 당문화 습관이다. 남의 미움을 받을까 걱정하며 남을 돌보면 자기에게 나쁘다면서 습관적으로 ‘조정자’로 나서서 주위 관계를 매끄럽게 처리하려 한다. 이건 엄청 큰 사심(私心)이 아닌가?
우리는 구우주의 특징은 사를 위한 것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신우주의 특징은 남을 위하는 것이며 사심이 없다. 수련인이 남을 위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찌 신우주에 들어갈 수 있고 어찌 원만할 수 있겠는가? 모순 앞에서 폭로된 사람 마음은 수련의 경지와 수련된 정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 어떻게 모순을 대하는가 하는 것은 더구나 수련인으로서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4. 사람마다 자신을 닦으면 전체 환경은 좋아질 것
수련인의 전체 환경의 좋고 나쁨은 여러 사람의 표현이고 여러 사람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수련 단체는 언제나 평온할 수는 없는 것이고 모순 발생은 불가피한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 중의 사람은 신이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버려야 할 사람 마음이 있는 것이다. 모순이 발생했을 때 법을 스승으로 삼고 자신을 찾아보며 부족함을 바로 잡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사람마다 자신을 닦으면 전체 환경은 좋아질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협조인이 자신에게 다른 수련생들을 도와주게 했다는 명의로 교류회에서 혼자서 도맡아 발언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면 왜 선의적으로 본인을 일깨워 주지 않고 비슷한 장소에 참가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는가? 일깨워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음 번에 또 그렇게 따라 하면서 아울러 적극적으로 인원을 선동해 참가하게 했다. 이런 교활한 심리를 수련인의 정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발언은 난법으로서 심각한 착오인줄 분명히 알면서도 오히려 제지하지 않았는데 이는 수련생에 대해 좋은 것인가? 장시간 이렇게 해나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 잘못이 그래도 한 사람으로 초래된 것인가? 수련하는 단체에서 한 사람의 잘못이 열 사람에게 보였는데 열 사람은 모두 일깨워 주거나 저지하지 않았다면 그 열 한 사람의 잘못은 곧 정체적인 편파를 형성하게 된다. 오직 여러 사람이 정체를 책임져야만 정체 환경은 비로소 좋아질 수 있다.
또 협조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당했을 때, 혹은 수련생에게 억울함을 당했을 때 기타 사람은 어떻게 대했는가? 선의적으로 안으로 찾아보도록 도와주었는가 아니면 그를 대신해 불평이 분분해 도처로 다니면서 해석했는가? 해석에 집착하는 수련생은 한 가지를 홀시했다. 어쩌면 수련생이 누구를 억울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누구를 억울하게 만들지 않으시며, 신은 누구를 억울하게 만들지 않는다. 또 마치 속인이 중병에 걸렸을 때와 같은 심리상태마저 다 내려놓을 수 없단 말인가? 그럼 곁에서 구경하는 수련생도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모두의 마음이 이끌리지 않아야만 정체에 재난을 적게 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질투심, 과시심을 장시간 버리지 않았다. 뒤에서 납치당한 수련생에 대해 의논하기 좋아하고 함부로 수련생에게 무슨 부족함이 있어서 납치당했다고 추측하는데, 직접 사악의 편에 섰다는 것도 모른다. 인위적으로 정체에 혼란한 요소를 추가하는 것은 수련인으로서는 더욱 홀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속인 속에서도 ‘군자는 정정당당하다’는 말이 있는데 수련인의 소질은 마땅히 속인보다 높아야 한다. 진정으로 수련인의 자비로 수련생을 대해야만 모든 대법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희망과 중대한 부탁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 속에는 우리 정체에는 많고 많은 편파가 생겼고, 한 번 또 한 번의 장기적인 논쟁이 발생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매번의 큰 모순은 모두 협조인과 관계있고, 어느 사람과 관계있는 것 같지만 실질상에서는 정체 환경의 혼란과 편파는 절대로 한두 사람의 협조인으로 조성된 것은 아니고, 또한 모두 모순을 직접 발생시킨 수련생에게 덮어씌울 것도 아니며, 더욱 많은 수련생의 사람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온다는 법리를 가르쳐 주셨다. 그렇다면 정체 중에 발생한 모순을 알고들은 수련생에 대해 말한다면 만약 저마다 모두 자신을 닦고 모두 자신이 이 사건에서 법에 있지 않았던 염두를 찾아내고 제때에 바로 잡았더라면, 그리고 기타 수련생에게 정념으로 문제를 보라고 선의적으로 일깨워 주었더라면 당신은 정체에 정념 하나를 더해 준 것으로 될 수 있다!
여러분이 모두 엄격하게 자신을 닦고 자각적으로 이기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을 버리며, 부족함을 보면 묵묵히 원융하고 보완하며 몇 사람, 몇 십 명, 백 여 명이 정체에 정념을 주면 정체 환경이 그래도 나쁠 수 있겠는가?
이상은 자신의 옅은 인식이므로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2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1/342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