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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착실히 수련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후이전

[밍후이왕] 1999년 7월 20일, 장씨 집단의 미친 듯한 탄압과 박해 이후 외지의 수련생이 사부님의 ‘북미 대호수지구 법회 설법’과 진상 자료를 보내왔다. 차츰 일부분 수련생이 걸어 나와 법공부 팀을 건립했다. 수련생은 나를 신임하여 나에게 각 팀에 자료를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장기적으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어떤 항목은 근본을 보장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 주셔서 할 줄 알게 되다

우리 몇몇 수련생은 교류를 통해 장기적으로 외지 수련생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큰 복사기 한 대를 구입하였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대법제자가 배포한 진상 자료를 보고 자주 대법제자의 집을 수색하고 교란했다. 수련생은 진상을 아는 속인을 찾아 기계를 속인의 집에 놓았다. 그는 매일 가서 자료를 만들어 우리 집에 가져 왔고 나는 매 법공부 팀에 보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인이 기계를 놓지 못하게 했다. 나는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기에 속인의 보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 몰래 자발적으로 기계를 집으로 옮겨 와 현지의 진상 자료 제작을 분담했다. 후에 한 수련생은 내가 접촉하는 수련생이 많고 우리 집에서 자료를 가져가는 사람이 많기에 자료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기계를 가져갔다. 며칠 지나지 않아 현 공안국 경찰은 불법으로 우리 집에 쳐들어와 사부님의 설법과 진상 자료 등을 수색해 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떠돌이가 되었다.

한 수련생이 나에게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건의’ 경문을 보내 왔다. 우리 둘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천안문에 갔고 경찰에게 붙잡혀 현지 구치소에 납치당해 반년 넘게 박해를 당했다. 당시 대부분의 수련생이 세뇌반과 구치소에 갇혔다. 우리는 세인이 진상을 알아야 구도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하다가 생명이 위험해져서야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후 수련생이 나에게 선을 권하는 편지를 보내왔는데 매우 잘 썼다. 현지의 자료점이 파괴되었기에 나는 그 편지를 베껴서 사람을 구했다. 남편은 그 진상편지를 보더니 무서워서 얼른 되돌려 보내라 하고 수련생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6살 난 딸아이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었다. 외지에서 공부하는 큰딸은 자주 전화를 걸어 내가 집에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잡혀갈까 봐 온 가족이 불안해했고 가정환경은 매우 긴장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악을 폭로하고 세인(世人)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 역시 단지 대법(大法)과 제자들이 감당한 박해를 설명하는 것일 뿐, 그의 근본적인 목적은 세인을 구도하는 것이며, 그 중생의 두뇌 속에서 사악이 주입한 독해(毒害)를 제거하여 그가 장래에 대법(大法)을 적대시하여 도태될 위험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이는 대법제자가 박해를 감당할 때에도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위대한 자비의 체현이다.”[1]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은 나의 염원을 이끌어 내었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우선 내 집에서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울 것이다.’ 수련생은 나를 도와 우선 가정용 소형 복사기를 구매해 주었다. 당시의 환경은 매우 긴장되었고 입구에는 자주 잠복하는 사람이 있었다. 기계를 어디에 놓아도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가족들 몰래 방구들에 구덩이를 파고 기계를 넣은 후 위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이불을 덮어 놓았다. 나는 남편이 출근한 후 기계를 꺼내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복사할 때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비록 집안이었지만 여전히 깜짝깜짝 놀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우스운 일이었다. 한번은 백지가 나와서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지에는 복사를 할 줄 아는 수련생이 없었고 수리점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공장에 전화했는데 잉크가 다 떨어졌으니 토너를 열고 잉크를 채우면 된다고 했다. 당시 나는 뭐가 토너인지, 어떻게 잉크를 채워 넣는지도 모른 채 온 얼굴과 두 손이 새까매졌다. 문제에 부딪히면 사부님께 가지 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사부님께서는 그때마다 지혜를 열어 주셔서 나는 할 줄 알게 되었다. 자료를 만들 때 속인의 일을 생각하거나 좋지 않은 마음에 이끌리기만 하면 기계는 고장이 났다. 내가 안으로 찾고 자신을 귀정하면 일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자료를 만들다가 남편에게 들켰는데 남편은 노발대발했다. 나는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해서 기계를 버리려고 했다. 남편은 이혼을 언급하면서 나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당시 나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는 말했다. “기계는 버리면 안 돼요. 버리면 당신에게 안 좋아요. 당신이 기어이 이혼하겠다면 이혼해요. 기계는 내가 가져갈 거예요.” 그는 내가 이혼을 할지언정 진상 자료와 사람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자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의하라고 하면서 출근할 때 문을 잠갔다. 그 후부터 나는 집에서 당당하게 진상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두 딸도 나를 지지했다.

수련생들의 자료 수요량은 점점 많아 졌고 자료의 종류도 모두 갖추길 바랐다. 나는 연이어 코팅기, 시디롬 복제기, 컴퓨터 등 여러 가지 기계를 추가했다. 처음에는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조금씩 인터넷 접속을 배워 다운받고 진상 자료와 소책자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호신부를 만들고 CD를 구웠다.

당시 현지에 기술을 아는 수련생이 없어서 외지의 수련생이 시간을 내어 한번 가르쳐주러 왔고 나머지는 자신의 끊임없는 실천과 모색에 의거해야 했다. 흔히 첫날에 배운 것은 이튿날이면 잊어 버려 다음 날에 또 새로 배워야 했다. 진상 자료와 소책자는 배우기가 좀 쉬웠지만, 호신부와 인터넷 봉쇄 돌파프로그램, 큰 파일을 내려 받아 동영상을 만들어 다시 CD에 굽는 것은 좀 더 어려웠다. 밍후이왕에서 내려 받은 교과 과정도 알아볼 수 없었다. 아이가 어쩌다 집에 돌아오면 매 하나의 실행과정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노트에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갈 때 나에게 만들지 말라고 말한다. 큰 글도 몇 자 모르고 병음도 몰라서 자신이 가면 또 모를 테니 학력이 높은 사람을 찾아 만들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나는 반드시 배워낼 수 있을 거야.”

한번은 내가 수련생을 도와 시디롬 복제기를 설치했는데 무슨 원인인지 열리지 않았다. 수련생이 전문가를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무슨 원인일까?’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나사가 너무 길어 걸려서 열리지 않는다고 점오해 주셨다. 나는 기뻐서 수련생 집으로 달려갔다. “사부님께서 점오해 주셨는데 나사가 너무 길어서 걸렸대요.” 우리가 나사를 바꾸자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CD가 한 장 또 한 장 구워져서 나왔다. 사부님의 도움에 감사드렸다.

어떤 때는 나처럼 학력이 낮은 노년 수련생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에게 학습버전 소프트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제작과 CD 굽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잘 몰랐다. 나는 수련생이 너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내가 워드 파일을 CD에 붙여넣기를 할 줄 안다면 수련생의 컴퓨터에 복사해 주어 굽기만 하게 할 텐데,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내 컴퓨터에 워드파일 세 개가 생겼다. 열어 보니 완성된 CD용 션윈 파일이었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여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하지만 파일은 완전히 CD의 중심에 놓여있지 않았고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수련의 길에서 자신을 완전히 대법 속에 놓지 않았고 대법을 위해 뭘 하고 수련생을 도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점화해 주신 것이다.

나는 자신이 대법의 한입자로서 반드시 자신을 대법 속에 놓고 대법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곧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대법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설치를 배우는 중에 자신을 수련하다

밍후이왕에서 원래의 XP 더블 시스템에서 Win7 더블 시스템으로 바꾸고 서서히 Win8, Win8.1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한 협조인은 우리 수련생 4명에게 외지에 가서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수련생 두 분은 XP 더블 시스템을 설치할 줄 알지만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른다. 기술 수련생이 가르쳐 주어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원래 컴퓨터에 익숙했던 아이콘도 이름이 바뀌어 ‘컴퓨터’는 ‘계산기’가 되었다. 원래는 파일을 열기만 하면 실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오른쪽 단추에 관리자 방식으로 운행한다. 기록을 해도 따라갈 수가 없었고 배울수록 혼란스러웠다. 우리 둘은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떻게 배우겠냐며 아예 메모도 하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기술수련생에게 USB를 사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사지 않았다. 수련생이 말했다. “그렇게 많은 시스템은 우리 둘은 무리입니다.”

나는 수련생의 말도 맞는다고 생각되었다. 어려움에 부딪혔다고 그만두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2] 사부님의 법은 나를 일깨워 주었다.

대법은 나에게 신심을 주었다. 며칠 후 외지의 다른 한 수련생이 와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 수련생은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고 나는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메모하다가 tc_new 에서 막혔다. 수련생은 영어로 ‘아이 아이’라고 했다. 나는 중문의 병음도 모르고 당신이 말하는 ‘아이’를 쓸 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또 영어를 말했고 나는 배울수록 혼란스러웠다. ‘마법사를 설치하다’까지 썼을 때 또 쓸 수 없었다. 수련생은 나에게 빗자루를 그려서 대체하라고 했다. 외지의 수련생이 시간을 내어 한 번 가르쳐 주었고 나머지는 자신의 끊임없는 실천과 모색에 의거해야 했다. 흔히 첫날에 메모하여 배웠지만, 시스템을 설치할 때면 또 잊어버린다.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할 때 나는 다른 한 수련생과 협력하여 한 사람은 메모를 읽고 한 사람은 마우스를 클릭하여 실행했다. 시스템을 설치한 다음 프린터를 설치해야 했다. 모든 것이 끝나면 컴퓨터를 다루는 수련생에게 기계를 켜고 끄는 법, 인터넷에 접속하고 프린트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우리 둘은 자주 거리에서 만두나 빵을 사서 점심을 때운다. 그 수련생은 더욱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 학교의 작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라 하고 대법의 일을 위해 부르면 언제든 달려왔다. 차를 몰고 비바람에 상관없이 어디든 다 갔다. 나는 수련생의 묵묵한 헌신에 탄복하고 감동했다.

배우는 것은 어렵고도 고생스러웠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고생은 바로 수련인의 필수과목이 아닌가? 이는 한 가지 기술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생을 구도하고 사악을 억제하는 예리한 무기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

지금 우리는 모두 독립적으로 시스템을 깔고 프린터 및 모든 설비를 설치할 수 있다. 자료점의 기본적인 기능을 나는 거의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자료를 다운받고 프린트하고 동영상을 제작하고 CD를 굽고 탁상달력을 만들었다. 또한 매년 션윈 CD를 제작하고 여러 가지 진상 카드와 진상 호신부를 만들고 수괘(樹掛) 및 진상 전시판 제작 등 진상을 알리는 항목의 소모품도 독립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수련생은 자주 나를 찾아 프린터를 수리하고 자료점을 건립했다. 시골의 수련생이 경제적 조건이 나쁘면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기계를 보내 주었는데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법공부가 적어지고 서서히 일을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무감각하게 일을 하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 닦을 줄도 몰랐다. 한 수련생은 가정 자료점을 건립하고 싶지만 가정환경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들이 야간작업을 들어간 사이에 나에게 기계를 수리해 달라고 했다. 그날 나는 점심을 먹고 곧 수련생에게 프린터를 설치해 주러 갔다. 저녁에 법공부팀에서 11시까지 법공부하고 가게에 빵을 사러 갔더니 이미 문을 닫았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춥고 배도 고파 속으로 좀 귀찮았고 안 좋은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더러 잠을 자지 말라는 건가? 3시 50분에 연공도 해야 하는데.’

그는 나에게 소면을 삶아 주었다. 12시 발정념이 끝나고 프린터를 열어 보니 토너에 에어가 차 있었다. 바늘로 바람을 뺐지만 계속 있었다. 나는 수련생에게 물었다. “당신 화났어요?” 그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는데 토너 속의 에어가 왜 끝없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우선 마음을 닦고 그다음에 기계를 수리해야 한다고 하면서 먼저 안으로 찾으라고 했다. 한시가 다 되어 가기에 잠깐 자자고 했다. 후에 수련생은 또 무한잉크 공급기를 한 세트 사다가 나에게 갈아 달라고 했다. 바꾸고 나자 기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나는 바꾼 무한공급기를 다른 한 수련생에게 주었는데 토너 병에 에어가 없었다. 일체는 정상이었다. 이때도 나는 여전히 수련생을 원망하면서 안으로 찾지 않았다. 이 일을 회상하면 정말로 수련생에게 미안하다. 수련생이 압력을 무릅쓰고 자료를 만드는데 내가 화를 내서 무한공급기가 못 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번 또 한 번 수련생을 원망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2] 법에 대조해 보니 나는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다. 밖으로 보고 밖으로 찾았다.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조급한 마음, 원망하는 마음, 수련생이 나를 의존한다고 원망하는 마음, 성급하게 성공하려는 마음에 늘 단번에 수련생이 알게 가르치려 했다. ‘사부님 저는 해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드렸다. 지금 나는 수련생을 가르칠 때 수련생의 연령에 따라, 학력에 따라, 받아들이는 능력에 따라 알맞게 가르치고 있다.

68세의 노년 수련생이 한 분 있었는데 조금씩 가르쳐 작년에 밍후이왕에 접속하고 CD 굽는 법을 가르쳤고 올해에는 여러 가지 자료를 프린트하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반복적으로 수련생들에게 삼퇴 명단을 쓰는 법도 가르쳤다. 그들은 이름을 쓸 때 당, 단, 대를 구분하지 않았고 구두점을 표시하지 않았다. 나는 또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가르쳤는데 어떤 때는 노수련생의 바탕화면에 있는 프로그램을 다 삭제한 적도 있었다. 나는 곧 새로 깔고 알 때까지 반복적으로 가르쳤다. 지금 수련생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원래 법공부 팀의 8명을 놓고 말하면 대부분은 학력이 없다. 58세의 노년 대법제자는 비교적 젊은 편이다. 7송이의 꽃이 피었는데 그중에는 70여 세의 수련생도 있다. 그는 공부를 한 적이 없지만 컴퓨터를 샀다. 지금 그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자료를 만들 수 있다. 기다리지 않고, 기대지 않고, 묵묵히 서로 협력한다.

대법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부님의 가지 하에 모두 아주 잘하고 있다. 그들은 또 자발적으로 새로 들어온 수련생에게 필요한 진상 자료를 분담했다. 우리 집의 가정 자료점은 안정적으로 걸어 왔다. 사악의 박해가 아무리 심해도 여태껏 운행을 멈춘 적이 없다. 위대하신 사존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가지해 주셔서 오늘까지 안정되게 걸어온 것이다.

지금 나는 깨달았다. 내가 조용히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성취시킬 때 대법은 나에게 지혜를 내려준다는 것을. 모르던 것도 알게 되고 못하던 것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정진요지2 – 정치가 아니다(不政治)’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4/3403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