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 전 나는 성미가 급한데다 심장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신경 쇠약 등 각종 질병까지 있어 괴롭다 못해 사는 게 죽기보다 못했다. 나는 인생의 의의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를 가장 이해할 수 없게 한 것은 내 자신이 의사로서 큰 병원과 그렇게 의술이 고명한 전문가가 곁에 있는데도 오히려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내가 인생에 대해 비관하고 실망하고 있을 때, 다시 말해 1993년 3월, 나는 운 좋게 파룬따파를 만났다. 대법은 나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었고 나는 재빨리 건강을 회복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20년 동안 나는 건강해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대 맞지 않아 국가에 대량의 의료비를 절약해주었다. 수련을 거쳐 심신이 정화되고 도덕이 승화됐으며 일마다, 곳곳마다 남을 배려하면서 한 번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않았다.
사업에서 근면하고 진지했으며 심신이 홀가분했다. 동료와 환자들은 모두 내가 파룬따파를 배운 후 젊고도 예뻐졌다고 말한다. 나를 찾아 치료하는 환자는 갈수록 많아져 언제나 점심 퇴근 때까지도 줄을 서지 못한 환자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휴식도 마다하고 환자를 치료해주어 환자가 보다 일찍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다. 환자들도 몹시 감동해 식사를 대접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일일이 사절하면서 알려주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사부님께서 저에게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셨으므로 번거로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후에 식사를 대접하려는 환자의 생각을 단념하도록 하려고 나는 아예 도시락을 갖고 출근했다.
환자들은 모두 나를 아주 존경했다. 나 이곳으로 오면 모두 치료뿐만 아니라 또 파룬따파 진상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또 ‘삼퇴’(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에서 탈퇴)할 수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사업하는 다른 두 수련생과 서로 협력해 직장의 수 백 명 직원을 ‘삼퇴’시켰다.(전 병원에서 오로지 사당 문화의 중독이 가장 심한 네 명이 탈퇴하지 않았을 뿐임.) 내 친척 90여 명도 사당(邪黨) 조직에서 탈퇴했다. 나는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준 중생들 때문에 기뻤다. 나는 날마다 모두 불광 속에 흠뻑 잠겨 있다. 해마나 나는 우리 시 ‘선진 직원’으로 선정됐다.
우리 집은 6남매다, 언니 하나, 오빠 넷, 나는 막내다. 2007년에 나는 퇴직했다. 직장에서는 나를 재임용하려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81세이신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데 언니, 오빠는 모두 자기네 가정이 있고 사업이 몹시 바빠서 어머니를 돌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어머니께서 편안한 만년을 보내도록 돌봐야 한다. 2008년 나는 어머니에게로 이사를 가 함께 살았다. 날마다 어머니의 기거를 보살피는 동시에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날마다 시간이 빠듯한 감을 느끼긴 했지만 마음은 아주 기쁘고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이제 나이도 많으니 젊었을 때 모아 두었던 금은 장식품을 네 오빠들에게 나누어 줄란다. 지난 해 한 번 이미 나누어주었는데 너에게 알리지 않았다. 너는 무슨 의견이 없니?”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난 엄마의 딸인데 난 아무 생각도 없어요, 난 대법을 배운 후 이런 물건을 모두 담담하게 봐요. 오빠, 올케들에게 주는 걸 동의해요.” 어머니는 또 나에게 시 중심에 있는 80평 되는 건물을 넷째 오빠에게 주겠다면서 동의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아주 조용하게 말했다. “엄마, 집은 엄마 것이니 누구를 주든 다 엄마의 권리예요, 저는 찬성해요.”
오빠 올케들은 알고 나서 모두 말했다. 누이동생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으니 집은 마땅히 누이동생이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제가 자원한 것이고, 뿐만 아니라 저는 집이 있으므로 전 갖지 않겠습니다.”
1년 후 어머니는 소뇌 위축으로 마비되어 자리에 눕게 되셨다. 나는 날마다 어머니에게 세수, 머리 빗기, 식사를 먹여드려야 했다. 어머니는 대소변을 볼 줄 몰랐고 늘 손에 대변을 쥐어 손, 몸, 이불. 벽에 발랐다. 나는 더러운 줄도 모르고 깨끗이 씻겨드렸다. 올케들은 늘 말한다. “막내 동생은 우리 집에 큰 공을 세웠어요. 어머니를 이렇게 깨끗하게 모시니 정말 고마워요.” 나는 “감사를 드리겠으면 우리 사부님께 드리세요,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어요”라고 말했다. 오빠들은 우리에게 이렇듯 훌륭한 여동생을 갖게 한데 대해 대사님께 감사 드렸다! 오빠 올케들은 모두 대법이 좋음을 인정하고, 그들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대법 진상을 알려주기도 했다. 기쁜 것은 친척과 친구들도 모두 ‘삼퇴’에 동의해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 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1]라고 가르치셨다. 2015년 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보살핀 7년 동안 나는 어머니와 오빠들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빠들은 토론을 거쳐 어머니께서 생전에 모아두셨던 20만 위안에 달하는 돈의 절반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말했다. “어머니를 돌봐드린 것은 제가 자원한 것이며 우리 6형제 자매는 모두 엄마의 아들딸이므로 나누겠으면 공평히 나누세요.” 오빠들은 나를 타이를 수 없었으므로 내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빠들은 또 돈을 주며 나에게 관광을 하며 좀 쉬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호의를 전부 사절했다.
사부님께서는 곳곳마다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셨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나는 오빠들 몰래 어머니 집에서 이사했다. 넷째 오빠, 넷째 올케는 알고 나서 눈물을 흘렸다. “막내 동생, 여기서 살아. 우린 영원히 동생을 쫓아내지 않을 거야.”
20년 비바람 속 수련 가운데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든, 대법 수련을 하려는 결심을 동요해 본 적이 없다. 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딜 수 있는 데는 모두 사부님의 무수한 심혈이 침투돼 있다. 인류의 어떤 언어로도 모두 사존에 대한 제자의 감사를 표할 수 없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줄곧 가호해 주시어 제자가 조사정법, 중생구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온몸에 업력투성이인 제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진선인으로 가르쳐 좋은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날마다 신성한 세 가지 일을 하게 해 신의 길에서 행복하게 걸어가도록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도중’
원문발표: 2017년 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소감>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3411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