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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에 좌우지 되지 말자

글/ 중국 대법제자 제위(潔宇)

[밍후이왕] 부모님의 집은 보모를 고용했다. 아버지와 올케는 마음이 맞지 않았다. 보모 아주머니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그 둘을 화해시키려 하다가 오히려 보모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게 됐다. 원인은 간단하다. 올케가 보모 앞에서 우리 식구들의 뒷담화를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평소 우리 아버지를 협조하던 숙모도 아버지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깜작 놀랐다. 보모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힘들겠어요. 무슨 일을 해도 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감동했다.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타인을 위해 생각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지금 이런 현상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반드시 나의 수련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집착심이 있는가? 마음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아봤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의 트집을 잡으려 하는 마음이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타인을 얕보고 심지어 타인을 질투한다. 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도 진심이 아니며 표면에 머물러 있다. 사람은 일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밖으로 찾는다. 습관이 양성된 후 자신의 사유가 된다. 타인을 원망하고 뒷담화하면 사실 타인이 대한 좋은 점을 잊은 것이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이익에 서서 일을 보는 것이다.

올케가 아버지를 원망할 때 아버지는 남동생의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까지 키워줬고 심지어 중학교 때도 점심 식사를 준비해 줬으며 용돈도 많이 줬다. 보모가 아버지가 성격이 좋지 않다고 원망할 때 아버지는 10년을 하루 같이 큰 수술을 한 어머니를 돌봐왔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성격도 갈수록 나빠지고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숙모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고 너무 길게 말해 자신의 통화요금이 많이 나가게 한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자주 숙모에게 돈과 물건을 주어 그들이 섭섭하게 하지 않게 했다. 내가 수련생 앞에서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 수련생은 말했다. “당신이 불법 감금될 때 한번은 당신 아버지가 길에서 나를 보고 당신을 말할 때 울었어요.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마음이 짠했죠. 당신 아버지는 당신을 매우 아껴요.”

사실 진상은 내가 본 것처럼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인연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를 촉진했고 수련인은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해야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다. 타인을 원망하고 타인의 결점을 들추면 안 된다. 나는 어떻게 올케, 보모, 숙모를 보야 하는가? 나는 육친정에 따라 반대로 그들을 질책해야 하는가? 그러면 나는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심지어 속인보다 못한다. 그렇다. 그것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면 안 된다. 나는 마찬가지로 선한 마음으로 그들의 장점을 봐야 한다. 모든 일은 나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다.

속으로 상대방이 정말로 문제가 존재한다고 하면 완전히 선한 마음으로 교류하고 소통하지 못해도 타인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방식을 바꿔 대하고 자신을 잘 조절하면 된다. 나는 이 점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은 확대된 것 같고 그런 원망 질책은 마음속에서 종적 없이 사라졌다. 타인의 각도에서 서서 문제를 봐야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내가 출근할 때 아이를 아버지에게 며칠 맡겼는데 아이는 며칠 거듭 설사했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도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보모가 남고 가는 문제에 대해 나는 보모가 우리 집을 위해 진심으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남는데 동의한다. 심지어 아버지는 보모에게 월급을 올려줬다. 그녀가 내 앞에서 누구의 뒷얘기를 할 때 내가 웃고 지나고 말을 하지 않으니 보모도 할 말이 없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타인의 감정을 위해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됐다. 타인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보고 이기적인 자신을 돌파해야 한다. ‘사부의 은혜’에 대한 소중함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가? 나는 연속 이틀 밤 아픈 이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속으로 사부님께 외치며 울었다. 나는 진심으로 사부님께서 고생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이런 약간의 고통을 사부님께서 얼마나 많이 감당해야 하실까? 유언비어가 돌고 대법을 중상할 때 우리는 또 마땅히 어떤 순정한 마음으로 사부님을 대해야 하는가?

사람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 실물적인 본질을 볼 수 있고, 자신 몸에 존재하는 집착심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수련해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정말로 더 없이 넓은 세상이다!

적절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허스!

원문발표: 2017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7/3409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