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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대법 책은 소중한가? 소중하지 않은가?

‘경사경법의 엄숙성을 재언급’을 읽고 생각나는 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경사경법(敬師敬法)의 엄숙성을 다시 말해 보자’를 읽은 후 나는 경사경법이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심각하게 의식했다. 문장에는 수련생이 대법 책을 놓는 것에 주의하지 않고 대법서적 보관과 사부님 법상을 존중하지 않고 이런 문제의 엄숙성을 의식하지 못해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혀 병업 형식으로 수련생 신체를 박해하거나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생명을 잃은 사실을 언급했다. 요 몇 해 많은 수련생이 이 방면의 교류 문장을 많이 썼다.

여기에서 나는 다른 한 가지 문제를 말하고 싶다. 어떤 수련생은 대법서적과 물품을 다른 수련생에게 보내 보관하게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교류하려 한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올해 어머니(수련생)가 집을 이사하게 됐는데 나는 방에서 대량의 대법 서적, ‘밍후이 주간’, 일부 지나간 진상 자료 및 물품을 찾아 냈다. 그 중 일부분은 수련생이 어머니 집에 보관한 것이다. 어머니는 어떤 대법서적은 누가 어머니 집에 두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서적을 잘 보관하지 않아 눅눅해지고 먼지가 앉았고 누렇게 됐다. 내가 알기로는 수련생은 책을 어머니 집에 둔 후 거의 가지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수련생은 어머니 집에 둔 후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나를 도와 집을 이사한 한 수련생은 잘 보관하지 않은 이런 대법서적을 보고 화를 내며 말했다. “수련생은 이곳에 책을 보내고는 본인과 관계없는 것처럼 물어보지도 않는데 이는 법을 버린 것이 아닙니까? 이는 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중요한 위치에 놓은 것이 아니잖습니까?” 수련생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후 누가 책을 보내겠다고 하면 받지 마십시오. 책을 잘 보관하지 않으면 당신도 업을 짓는 겁니다.” 수련생은 화가 나 한 말이지만 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내온 대법 책을 펼쳐 보았는데 많은 책은 조기 판본이라 글씨를 고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수련생이 글씨 고치기 번거로워 새 책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낡은 책이 자리를 차지하니깐 낡은 책을 어머니에게 보관시킨 것이 아닐까? 말은 보관해달라고 했지만 사실은 버린 것이다.

여기에 틀림없이 경사경법 문제가 존재한다. 반영되어 나온 것은 우리의 대법에 대한 태도, 대법 서적에 대한 중시 정도다.

내가 알기로는 수련생이 책을 어머니수련생에게 보내면서 늘 하는 말은 “당신 집이 넓으니깐 책을 이곳에 두겠습니다”였다. 당신은 재물이나 소중한 물품을 다른 곳에 보관하고 줄곧 묻지 않는가? 당신은 은행카드 하나라도 없으면 집을 샅샅이 뒤집을 것이 아닌가? 우리 한 번 대법서적과 소중한 물품 및 재물을 대하는 태도를 대비해보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린 대법을 어떤 위치에 놓았는가? 우린 대법 서적과 물품을 소중히 여겼는가? 우린 대법서적을 되는대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함부로 둔 것이 아닌가?

대법 서적이 곰팡이가 끼고 눅눅해진 것은 어머니수련생에게 책임이 있다. 그럼 책을 보낸 수련생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책을 가져올 때 심태를 우린 열심히 찾아봐야 한다. 두려운 마음이 없진 않은지? 글씨 고치기 번거로워하는 마음이 없진 않은지? 남아도는 책이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나는 수련생에게 깨우쳐주고 싶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대법 책을 다른 수련생에게 둔다면 당신은 어느 때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글씨 고치는 것이 번거롭다면 당신은 수련인의 책임을 다 했는가? 남아도는 책이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본인 집은 잘 치울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위사위아(爲私爲我)의 표현이 아닌가? 책을 보관한 사람을 위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사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있다면 우린 이런 마음을 닦아버려야 하지 않는가?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 게다가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린 정말 수련생이나 친구 집에 둔 대법 서적과 물품을 물어보거나 봐야 한다. 이는 경사경법 문제와 관련된다.

어떤 수련생은 대량의 주간을 농촌 친척 집 창고에 두는데 창고는 습하고 쥐가 물어뜯고 벌레가 물 수 있으며 더러운 물건이 책 위에 흩어져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신성한 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비의 각도에서 말해도 속인이 보관을 잘 못해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 대법제자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수련생은 말했다. “어느 날 나는 우리 집 울안에 대법 책 한 보따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수련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법 책을 울안에 던져 넣고 줄곧 가지러 오지 않은 것입니다. 수련생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사는 곳이 있으면 어찌 책 둘 곳이 없겠습니까?”

중국대륙 수련생은 모두 해외 제자를 아주 부러워한다. 해외 제자가 사부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대륙 수련생은 사존을 아주 그리워한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조기 사부님 학습반을 따라 다닌 수련생이 회상한 문장을 보면 사부님께서 그녀 집에서 밥 한 번 드셨다고 했는데 얼마나 행운입니까? 사부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다면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겁니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부님을 존중한다는 내포에는 사부님 말씀을 존중해야 되는 것도 있다. 사부님 말씀이 바로 법이다. 나는 우리는 법을 존중하는 것을 사부님을 존중하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고 이해한다. 우리 가상해보자. 사부님께서 당신 집에 간다면 당신은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옷을 깨끗하게 입고 내심은 경건함과 존경으로 넘칠 것이다. 대법 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사부님을 존중하는 표현이다. 진일보 말하면 수련인은 사존의 법신이 당신 집에 계신다는 것을 다 알 것이다. 대법 책의 글씨 배후에는 모두 신이 있다. 우린 어떻게 대했는가?

고대 수련인은 경서 한 권을 얻으면 아주 소중히 여긴다. 고대 사찰의 경서 두는 곳도 늘 청소한다. 대법제자는 진정한 경서를 얻어 새 생명을 얻었다. 제자들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 99년 후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생명으로 대법을 보호하면서 대법을 가장 높게 보았는가? 우리는 대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경사경법 역시 천상의 생명이 대법제자를 가늠하는 하나의 표준이다!

우리 대법, 생명과 몸 이외 것과의 관계를 잘 생각해보자. 어떤 때 우리가 법을 첫 자리에 놓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람 중의 명리, 득실, 관념과 두려운 마음에 엉켜 자아를 집착하면서 본인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법을 사부님으로 여기지 않고 법리에 따라 수련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일에 봉착하면 박해를 받을 때를 포함해 어떤 수련생은 몸 밖의 것인 일자리, 안전, 육친 정, 이익 등을 첫 자리에 두어 두려운 마음 때문에 사악과 타협한다. 심지어 대법을 포기해 만고의 기연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대법이 우리 생명을 만들었다! 신체(神體)를 다시 만들고 생명이 회귀하려면 대법에 의거해야 한다. 대법에 대한 우리 태도를 바르게 하려면 대법 서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경사경법하고 법을 사부님으로 여겨야 한다. 이는 우리 수련과 연관되며 정말 아주 엄숙한 문제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주의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3/3407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