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예전에 어린제자가 다시 수련으로 돌아와 정진하는 것을 보고, 과거 어린제자였던 나, 지금은 청년 대법제자로서 된 나는 기쁘고 위안이 된다. 수련생 교류와 자신의 수련에서 보면 어린 제자는 흔히 법공부와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문제는 마땅히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 소소한 이야기와 약간의 수련체험을 글로 적어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가부좌를 하니 여드름이 사라지다
어릴 때부터 수련했기에 사춘기에 내 피부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왼쪽 얼굴에 많고 작은 여드름이 나타났다. 그때 반박해 초기라 밍후이를 볼 조건이 없고 고등학교 학업이 바빴다. 주변 같은 나이의 어린 제자는 수련을 그만두거나 정진하지 않게 됐다. 수련에서 독립하지 못한 어린제자는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됐고 나는 어떻게 법에 따라 자신을 대조해 수련해야 할지 몰랐다.
속인은 매운 것을 먹으면 여드름이 난다고 하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매운 것을 먹었는데 여드름이 없었다. 어떤 수련생은 내가 귀엽고 피부가 부드러워 내 얼굴을 꼬집기 좋아해 업력을 나에게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전에도 수련생이 네 얼굴을 만졌는데 그때는 여드름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화장품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으로 바꿨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원인을 찾다보니 마음도 더욱 초조하고 괴로워 여드름은 더욱 많아졌다.
어느 날 너무 괴로워 순식간에 이것은 피부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마음은 제거해야 한다. 속으로 ‘상관하지 않을 테니 될 대로 되라’라고 생각하고 가부좌를 했다.
반시간이 지난 후 수련생이신 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와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얼굴의 여드름이 사라졌네. 피부도 반들반들해.” 나는 믿지 않았다.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가부좌를 조금했는데. 이때 엄마가 거울을 나에게 가져다주셨다. 거울 속의 나의 얼굴은 불그레하고 여드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여드름 흔적도 사라지고 새로운 피부로 바뀐 듯 했다. 너무 신기했다.
가부좌를 할 때 얼굴이 뜨거웠고 불편했다. 당시 나는 개의치 않았다. 피부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은 것이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나쁜 물질을 제거해 주셨다. 나는 순식간에 집착심을 내려놓은 기쁨을 느꼈다.
억울함을 당했어도 태연하다
고등학교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대청소를 한다. 학교에서는 대청소 후 검사하고 매 반에 점수를 준다. 담임선생님은 학생 각자가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매 사람에게 고정적인 임무를 배치했다. 나는 강당 청소를 감당했다. 다른 청소를 할 때 강당을 이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칠판을 지우거나, 분필을 가져가거나, 걸레와 물통을 가져갈 때, 어떤 학생은 강당에 서서 전등과 선풍기를 닦아야 했다. 그러므로 다른 학생이 일을 마친 후에 해야 한다.
나는 학교 신문편집부에 선발돼 매주 금요일 대청소를 한 후 집중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대청소와 충돌이 나지 않고 편집부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담임선생님이 침실을 검사할 때 이 상황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나에게 다른 학생과 바꾸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위층 룸메이트와 임무를 바꿨다. 선생님도 동의하셨다.
얼마 후 금요일 자율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아 말했다. “오늘 우리 반 대청소 때 점수가 깎였어. 강당에 물이 있기 때문이야. 임무 배급표를 보니 강당은 네가 책임졌네.” 나는 머리가 무거워졌고 재빨리 해석했다. “강당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친구와 바꿨어요, 제가 책임진 부분은 ………” 하지만 선생님은 “하지만 배급표에 네 이름이 쓰여 있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손을 따라 보니 작은 칠판에 대청소 점수와 내 이름이 있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해 나는 놀랐다. 속으로 의아하고 억울했다. 선생님은 내가 룸메이트와 임무를 바꾼 것을 잊으셨을까? 게다가 이것은 선생님이 제안하신 것이다. 동시에 룸메이트에 대한 원망심이 나왔다. 내가 가벼운 임무를 너에게 주고 힘든 일을 감당했는데, 3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임무를 잘 완수하지 않았다니. 게다가 자발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나에게 누명을 씌우다니? 전 학교 대청소 검사에서 우리 반의 고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고 점수를 얻지 못하게 하다니.
내가 분노와 억울함을 털어놓기 전에 담임선생님은 떠났다.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선생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는지 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불공평하고 답답한 느낌이었고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수업 중이라 친구와 말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한참 불평하고 있다가 갑자기 의식했다. 이 생각에 따라가면 안 된다. 자신에게 말했다. ‘억울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체면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며 오해를 감당하고 억울함을 감당해야 한다. 룸메이트는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선생님도 우리가 임무를 바꾼 일을 잊어버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함과 원망심은 여전히 억누를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더 불편했다. 자신의 정념을 강화하고 마음을 수련하고 심성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로 봐야 한다. 우연한 일은 없다. 사부님의 법을 외우면서 억제하고 억울함을 배척하고 원망심도 배척했다.
2, 3분 이렇게 지속하고 갑자기 한순간 그런 나쁜 사상은 모두 사라졌고 머리는 텅 비게 됐고 마음속으로 감동과 기쁨이 생겼다. 본래 1초 전에 아주 고통스러웠고 억울했지만 1초 사이에 사라졌다. 1초 전후 완전히 다른 경지였다. 룸메이트를 질책하려는 생각이 없었고 자신의 억울함을 해석하지 못해 불평하는 마음이 없었다. 무조건 자신을 수련하는 기쁨을 체험하게 됐다.
법을 외우니 번거로움이 사라지다
청년제자로서 우리 대다수는 어려서 어른 수련생에 이끌려 수련했다. 일부 깨달은 법리는 엄격하게 말하면 어른의 인식을 복사한 것이며 혹은 인터넷 교류문장을 배우며 얻은 것이다. 사실 내심 경지는 어른 수련생의 경지와 교류 문장을 쓴 수련생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착실히 수련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주 보고 들은 환경 아래 형성된 인식이다. 그러므로 자신에 구체적인 문제가 생기면 법을 대조해 자신을 수련할 줄 모르고 안으로 찾을 줄 모른다. 그러므로 법을 잘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최근 걸어나와 정진하고 있는 청년 수련생은 법을 잘 배워야 하고 거듭 기억을 강화해야 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방면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 수련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람은 비로소 힘이 생기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법공부에서 일부분을 나누어 공유하려 한다.
사상업이 많기에 ‘전법륜’을 읽을 때 정신 집중이 안 된다. 그러므로 몇 년간 나는 줄곧 ‘전법륜’을 외웠다. 한동안 일과 수련의 관계를 잘 평형시키지 못해 법을 외우는 것을 느슨하게 했다. 비록 엄마 수련생과 함께 통독하지만 줄곧 단체 법공부도 느슨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태는 간혹 좋지 않다. 얼마 전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고민하는 문제가 나타났고 갈수록 법을 외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책을 보면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억지로 책을 보아도 마음에 닿게 법을 배우지 못하고, 대법을 우주 특성과 두꺼운 한 층의 물질로 격리해 아주 고통스럽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일면은 아주 조급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밤에 반드시 법을 외우겠다고 다짐했다. 밤에 나는 ‘전법륜’을 들고 외우기 시작했다. 노력해 정신을 집중시키고 주의식을 강화하니 빨리 한 단락을 순조롭게 외웠다. 나는 한 단락을 외운 후 반복해 12번을 외운 후 다음 단락을 외운다. 내가 3번 외웠을 때 나의 고민과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또 외울 때 머릿속의 한 층의 막이 사라졌다. 머릿속은 가벼워졌고 어떤 물질이 용해됐다. 몇 번 외운 후 머릿속은 투명하고 시원하며 편안한 느낌이다. 신심은 가벼워졌고 안정되고 광명의 경지로 진입된 것 같다. 마음속이 희망으로 충만됐다.
사실 법을 외우면서 이런 일은 자주 나타나고 때로 상태가 좋지 않으면 법을 외우면서 상태가 좋아진다. 경지는 자동적으로 신성한 경지에 도달하고 법을 외울 때 자주 법이 입체적으로 나타나며 사유와 마음은 법을 외우면서 말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생긴다. 자신 사람의 일면이 우세를 차지하고 사상업이 대뇌를 교란하여 극복하기 어려울 때 주의식을 강화하고 확고하게 법을 외워야 한다.
마지막에 청년 수련생이 쉽게 태만해 지는 두 가지 경우를 말하겠다.
우선 연공이다. 연공도 느슨히 하면 안 된다. 내가 관찰했는데 박해 전 그해 주변의 어린 제자는 연공을 중시했다. 어떤 부모 수련생은 “어린애는 어린애의 상태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지금 청년이 되어서는 어떤 구실로 연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해 전에 나는 우리 지역에서 연공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결가부좌를 했고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1시간을 초과했다. 최근 몇 년 2장과 5장을 하면 입정할 수 있다. 느낌에 연공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 전 한번은 교류문장을 보고 수련생은 연공을 많이 하라고 건의했다. 나는 어느 하루 포륜을 2시간 했다. 연공을 한 후 온몸에서 열이 난다. 이전에 겨울에 손발이 차가웠고 자기 전에 전기장판을 이용해야 했으며 물주머니를 2개 사용해야 했다. 손발이 따뜻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에 아주 큰 에너지가 나를 에워싼 듯 했다. 나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수면 효과도 좋고 늦어진 생리도 왔다. 연공에 대한 요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이후 마음을 조용히 하고 연공을 해야겠다.
줄곧 걸어온 어린 제자는 지금은 청년 수련생으로 됐다. 주변에 학업, 사업, 감정에 미혹된 수련생을 보고 걱정된다. 또 끊임없이 정진하고 돌아온 과거 어린 제자를 위해 갈채를 보낸다. 우리 과거 어린 제자가 끊임없이 정진하고 세속의 가상에 미혹되지 않으며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사명을 완성하기를 희망한다.
이상은 자신의 각도에서 옅은 견해이고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이 시정해 주시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청소년이 대법을 배우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6/3404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