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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깨달음, 명리에서 벗어나다

글/ 중국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길을 나서면 누군가 어디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퇴직했냐고 묻는 것이 가장 두렵다. 속인이 보기에 아주 쉽고 일반적인 문제지만 왜 나는 이토록 대답하기 어려워하는가? 이유는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십몇 년 전에 직장에서 해고됐기 때문이다.

비록 십여 년 동안 이른바 ‘공직자’ 자리에서 물러난 후 구걸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위 두 문제를 물어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피하고 싶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보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며 사람을 구도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왜 중생 앞에서 슬슬 피하고만 싶어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인가? 우주 중에서 이것은 제1의 칭호이며 제일 위대한 생명이다.’[1]고 말씀하셨다. 이토록 성스러운 칭호를 짊어지고 천지 사이를 거닐고 있는데 왜 위축돼 있는가? 이것은 내심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제1의 칭호’의 함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이른바 공직, 직위를 대법제자 신분보다 더 중시해서가 아닌가? 공직이 무엇인가? 다만 하나의 신분으로서 안정적인 수입이 있고 퇴직 후 복지가 있는 것으로 이런 것들을 귀납하면 결국 명리정(名利情)이 아닌가?

나는 줄곧 자신이 명리를 담담히 보았다고 여겼는데 명을 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입이 많지는 않았지만 돈을 자료점에 내놓아 자료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게 했다. 하지만 깊숙하게 뿌리를 캐보면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명리를 아주 중하게 여겼다. 다만 조금 담담할 뿐 속인에 비하면 오십보와 백보의 관계로 뿌리를 건드리지 않았고 그 최저 기준까지 가지 않았을 뿐이다. 이 명리 집착의 뿌리를 깊이 캐내지 못했기에 대법제자의 신성함도 깨닫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왜 신(神)을 볼 수 없는가 명리(名利)에서 벗어나면 눈멀지 않으리’[2]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법을 외우기는 했지만 다만 이론으로 배웠을 뿐 현실 속에서 명리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이 없었다. 즉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이 여기에 앉아 있다고 해서 당신을 곧 수련자라고 할 수는 없다. 사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에 그치지 않으며’[3]와 같았다. 최근 신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사람마음의 자그마한 변화가 곧 제고’[4]라고 말씀하셨다.

20여 년 동안 대법 주위에서 문만 조금 만졌으니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셨겠는가. 그래서 어제 노수련생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사부님의 은혜 보답하기 힘들고 무겁구나, 작은 풀 줄기가 봄날 태양의 은혜를 어찌 보답하랴,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해, 대법에 동화돼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거라네’ 이 노래를 부를 때 목메어 울었다.

사부님께서는 위대하시고 법은 위대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4-하늘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유럽법회에 보내는 축사’

원문발표: 2017년 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0/3406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