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법을 얻었을 때를 회상하며
글/ 산둥 대법제자 춘옌(春燕)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고 한다.”[1]고 말씀하셨다. 주말시간을 이용해 우리 일행 네 명은 시골에 가서 그곳 몇 명 수련생과 교류를 진행했다. 함께 애초 법을 얻었을 때의 과정을 회상하고 그때의 느낌을 되찾음으로서 정법 최후 단계에 더욱더 힘내고 용맹정진해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려 했다.
1. 수련하려면 상사가 돼야 한다
A수련생은 77세 되는 노년 수련생으로서 ‘7.20’ 전에 법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를 소개했다. 당시 나는 하루 세 끼를 적게 먹을 지언정 술 세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됐다. 당시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배웠는데 내 아들도 배웠고 나에게 홍법을 했다. 대법을 배우면 술을 먹지 말아야 했는데 1997년 섣달, 친척집에 갔을 때 나는 친척에게 말했다. “오늘 점심, 술 좀 차려주세요. 오늘 같이 마시는 이 술은 이 생에 마시는 마지막 술이 될 겁니다. 오늘 돌아간 후 나는 파룬궁을 배울 것이고 저녁부터 술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9년이 지났고 정말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노자는 말했다. ‘상사(上士)가 도(道)를 들음에 근면히 행하고, 중사(中士)가 도를 들음에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하사(下士)가 도를 들음에 대소(大笑)하거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 “상사(上士)가 도를 들으면, 간신히 정법을 얻었는데, 오늘 수련하지 않고 어느 때를 더 기다리겠는가?”[2] 그러기에 나는 수련생에게 “나는 상사가 될 겁니다. 수련하지 않으면 몰라도 수련했으면 상사가 될 겁니다”라고 했다.
법을 얻은 후 지금까지 사악이 구치소로 붙잡아가 21일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못한 외에 나는 매일 ‘전법륜’ 두 강을 읽고 5장 공법을 단번에 마쳤는데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2. 법공부를 하기 위해 글자를 익히다
B수련생은 여 수련생으로서 올해 61세이고 역시 1997년에 법을 얻었다. 그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글자를 몰랐는데 자기 이름과 남편 이름마저 몰랐다.
그녀는 말했다. 그 해 추수 후에, 남편은 사부님 설법 테이프를 갖고 왔는데 남편이 들을 때 나도 같이 들었다. 남편보다 더 열심히 들었는데 어찌 이렇게 잘 말씀하시는가 싶었고 한 판을 다 들으면 또 다음 판을 듣고 싶었다. 어느 날 밥을 하면서 들었는데 너무 열심히 듣다 보니 밥솥이 탄 것도 몰랐다. 남편을 따라 연공을 배웠고 남편이 단체 법공부 때 수련생들과 돌아가며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안달이 났다. 난 일자무식이니 어떻게 하지? ‘전법륜’을 받쳐 들고 줄곧 보았는데 남편과 아들은 내가 글자도 모르면서 책을 본다고 비웃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나는 꼭 보고 싶었다.
어느 날, 방법 하나를 생각했다. 노트와 펜을 찾아 ‘전법륜’ 제1강 첫 번째 단락을 한 글자 한 글자 노트에 ‘그렸다.’ 정말로 ‘그렸다!’ 나는 글자마다 모두 내가 만든 발음과 부호를 그려놓았다. 이 부호는 병음도 아니고 오자도 아닌데 마치 상형문자처럼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오직 나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빠져든 것처럼 밤낮을 불문하고 글자를 그렸는데 노트 몇 권을 그렸다.
40일, 전체 40일이 걸려서 제1강 첫 번째 단락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 내가 먼저 읽겠다고 하자 수련생들은 웃으면서 “당신은 글자도 모르면서 어떻게 먼저 읽어요?”라고 했다. 나는 첫 번째 단락은 읽을 수 있기에 자신감에 넘쳐 아주 유창하게 읽었다. 수련생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며 신기하다고 했다. 이렇게 첫 단락 글을 익힌 후 사부님께서는 나머지 글들을 모두 내게 가르쳐 주셨다. 단체 법 공부에서 돌아가며 낭독할 때 온 ‘전법륜’에서 글자 몇 개만 몰랐고 이후에는 모두 다 알게 됐다.
한 동안 ‘전법륜’은 읽을 수 있었지만 다른 곳에 있으면 여전히 몰랐다. 지금은 거의 어디 글이든 모두 알게 됐다.
3. 너는 왜 계속 그를 아프게 해
C수련생은 올해 61세이고 ‘7.20’ 전에 법을 얻었다.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 남편의 반대가 매우 심했는데 법공부와 연공이 농사일을 지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골 가정주부로서 집에서나 밭에서나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히 이걸 할 겨를이 어디 있냐고 남편은 말했다. 그녀는 이후 그러던 남편이 법을 얻은 경과를 얘기했다.
내가 법을 얻은 후 우리 집에 연공장을 세웠다. 그 며칠 남편은 이가 아파 밥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우리가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을 보면 그는 화를 냈다. 나는 그가 화를 내든 말든 우리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그날 저녁 연공을 마치고 수련생들이 떠나간 후 나도 자러 갔다. 그는 이가 아파 잘 수 없어 소파에 앉아 우리가 정공(靜功)하던 모습대로 따라서 다리를 올려놓았는데 그것도 결가부좌를 했다. 금방 다리를 올려놓고 두 손으로 제인(結印)하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왜 계속 그를 아프게 해?” ‘쑥’ 갑자기 그 ‘아픔’이 소파 아래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아프지 않았다. 남편은 놀라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으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나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줄곧 내가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반대했기에 어찌 하루 사이에 변했는지 나는 매우 의아해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전날 저녁 직접 겪은 일을 알려주었고 이렇게 남편도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4. 법 속에 용해되니 정말 행복하다
D수련생은 우리 여기에서 가장 젊은데 올해 쉰 살이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었는데 우리 이 지역에서 제일 먼저 법을 얻었다. 법을 얻은 후 이 법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 번 현성 모 기업에 법회 참가하러 갔을 때 회의장에 도착하자 ‘제세(濟世)’와 ‘보도(普度)’를 재생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게 무슨 음악인지 몰랐지만 들은 후 울고만 싶었다. 그때 나 자신도 왜 이렇게 울고 싶은지 의아했고 정말 어느 곳을 찾아 한바탕 울고 싶었다. 지금 그 음악 속에 사부님의 자비가 있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사부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억만 년의 기다림 속에 끝내 사부님께서 오심을 기다렸다. 우리 사람의 일면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명백하지 못하지만 우리 명백한 일면은 어찌 사부님의 호탕한 부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을 얻은 후 나는 끊임없이 홍법했고 우리 집에 법공부 팀, 연공장을 세웠다. 제일 많을 때 우리 집에서 법공부, 연공하는 수련생이 50~60명이 됐다. 나는 원래 깨끗한 것을 좋아해 매일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은 후 수련생들이 법공부, 연공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이것 역시 경사경법 문제와 관련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성스러운 법을 우리는 공경하고 우러러보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다 보면 땀이 많이 나는데 만약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같이 법공부할 때 퀴퀴한 땀 냄새가 많이 날 것이다. 사부님께서도 ‘전법륜’에서 이 방면의 법을 말씀하셨는데 ‘입정할 수 없게 하는 모든 교란과 수련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전부 심한 교란으로 여겼는데, 누가 만약 파ㆍ생강ㆍ마늘을 먹었다면 냄새가 너무나 심했다.’, ‘누가 만약 이런 것들을 먹었다면 강렬하고도 아주 자극적인 냄새가 날 것인데, 가부좌에 영향 주고, 사람의 입정(入定)에 영향 주어 사람의 연공(煉功)을 심하게 교란했다.’[2] 나는 수련생들을 엄하게 요구했는데 누가 하지 못하면 직접 지적하면서 다음번에 잘하라고 했다. 수련생들은 우스갯소리로 “대법을 배우려면 양말 몇 켤레를 더 사야겠네요”라고 말했다.
비록 말은 이렇게 해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모두 공경하기 비할 바 없는 마음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그때 우리는 사부님의 무슨 설법이든 책을 들었으면 길고 짧음을 불문하고 단숨에 다 읽었다. ‘전법륜’도 한꺼번에 다 읽었는데 늘 밤새 ‘전법륜’을 다 읽고 이어서 5장 공법을 연마했다.
그때는 정말 한 순간도 법공부하는 것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밭에서 잡초를 제거할 때도 녹음기를 허리에 차고는 밭을 갈면서 법을 들었다. 땀이 흘러내리면 머리를 흔들어 땀방울을 흙에 뿌리쳤는데 전혀 고달프지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으며 온 심신이 상쾌했다. 그것은 사람 전체가 법속에 용해된 후의 행복이었다.
세 시간은 금방 지났고 우리는 여전히 애초 법을 얻었을 때의 회상 속에 빠졌다. 작별인사를 할 때 모두들 이번 교류가 정말 좋았고 수련 초기의 느낌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만고의 기연을 우리는 놓치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 크나큰 감당으로 바꾸어 온 이 제한된 마지막 시간에 어찌 나태해져서야 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3] 우리는 꼭 사부님의 말씀대로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함으로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7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4/3404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