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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을 멍하게 지내다가 깨어나 바른 길을 걷다

글/ 중국 파룬궁 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34세이고 양쯔강 남쪽 한 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음료수 장사를 한다. 어려서 놀기 좋아하고 공부하기 싫어했다. 1997년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닌 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해 나는 15살이고 할아버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하셨으며 호기심에 할아버지를 따라 함께 파룬궁을 배웠다. 나는 단지 동작만 따라 배웠고 며칠 후 노는데 정신이 팔려 연공도 견지하지 못했다.

2001년 할아버지는 파룬궁을 수련해 ‘610’(중국공산당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설립한 게슈타포 같은 불법 기관)에 붙잡혀 감금됐다. 610은 할아버지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수련하지 않는다고 하면 집에 돌려보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20여 년간 마을 당서기셨고 매달 월급을 받는다. 610은 수련하면 월급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체포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할아버지는 카드놀이를 하고 술을 마시던 데서 카드놀이도 끊고 술도 끊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하고 좋은 분으로 변했다. 할아버지의 고난은 단번에 나를 일깨워줬다. 나의 인성이 깨어났다. 할아버지가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됐는데 체포당하는 것을 보고 파룬궁은 반드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얻기 힘든 것이고 사람이 모르는 깊은 함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수련을 견지하지 않고 멍청하게 포기한 것을 후회했다. 이때 파룬궁을 소중히 여기게 됐고 진정으로 수련을 하게 됐다. 그해 나는 19살이었다.

1. 몇 해 동안의 나쁜 습관을 철저히 고쳐

나는 5,6살부터 집안 돈을 훔쳤다. 10위안, 20위안 등을 훔쳤다. 처음에 할아버지, 부모님 주머니에서 훔쳤고 이후에는 금고에서 훔쳤다. 그때 돈을 훔친 후 먹을 것을 샀다. 자주 부모에게 발각돼 매를 맞았다. 부모님은 나를 어찌할 바 모르셨다. 좋은 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각종 방법으로 나를 교육하고 바로 잡으려 해도 나를 개변시키지 못하셨다.

1993년 정월에 나는 11살이고 사촌누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사촌누나의 용돈 10위안을 훔쳤다. 사촌누나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부모님은 나에게 잘못을 시인하라고 했고 사촌누나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자존심이 강해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바늘로 내 손바닥을 찔렀고 손바닥을 의자에 치며 나에게 또 훔치겠냐고 물었다. 당시 고통은 뼈를 깎는 듯했다. 이렇게 해도 내 나쁜 습관을 바꾸지 못했다.

정식으로 수련한 후 한번은 아버지가 삼촌 집에 가서 큰 플라스틱 대야를 가져와 오리에게 먹이를 주라고 하셨다. 내가 삼촌 집에 대야를 가지러 갔을 때 한 무더기 대야가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닥 한 상자에 한 뭉치 돈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2,3만 위안이나 됐다. 나는 단번에 돈에 대한 욕망이 올라왔다.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돈을 보지 못했다. 이 돈으로 나가서 한바탕 놀 수 있을 돈이었다. 당시 마음은 들끓었고 단번에 돈을 모두 가져가 밖에 나가 놀고 싶었다. 나는 자세히 생각하지 않고 일단 본능적으로 돈을 집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착실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문득 지금은 수련인이고 이전의 나쁜 아이가 아니니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돈이다. 이것은 내가 꿈에도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머릿속에서 줄곧 싸우고 있었고 마음도 들끓었으며 좀 아쉬웠다. 또 돈을 집으려 했다. 이때 목소리 하나가 나에게 알려줬다. “당신이 연공인이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점차적으로 우주특성에 동화하여 당신의 그런 좋지 않은 것을 끊어버려야 한다.”[1]

대법 사부님의 법은 나를 문득 정신 차리게 했다. ‘맞다! 나는 연공인이지. 나는 나쁜 습관을 끊어야 하고 진정한 좋은 사람으로 돼야 해.’ 나는 자신에게 명령했다. ‘내려 놔라!’ 이렇게 나는 돈을 내려놓고 또 잡았다 내려놓았다. 이렇게 몇 번 거듭했다. 마침내 유혹을 뿌리치고 과거의 멍청했던 나와 이별했다. 다시 정정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철저히 몇 년간의 나쁜 습관을 바꾸었다. 그 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주 위험했구나. 만약 파룬궁 법리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무슨 얼굴로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

2. 28일 단식으로 반박해를 했어도 생명이 유지

2000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심하게 박해했다. 우리 마을의 리(李) 촌장은 적극적으로 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를 따랐다. ‘610’은 선량한 할아버지를 붙잡아 한 달간 감금했다가 석방했다. 할아버지가 붙잡힌 후 리 촌장은 밭에 비료를 뿌리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독사에게 물렸다. 그의 집에 돈이 있어 몇 명 독사 전문가 의사를 청해 우한(武漢) 큰 병원에서 피를 바꿨어도 결국 생명을 잃었다. 마을에서도 파룬궁을 박해해 업보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후 그의 외동아들도 아무 이유 없이 사망했다.

리 촌장의 업보 사례로 많은 마을 사람이 진상을 알게 됐고 마을 간부도 우리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환경은 아주 편안했다. 수련생의 소개로 일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수련생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머물렀고 몇 개월 머물러 있었던 수련생도 있다.

2001년 봄, 한 떠돌이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지금 많은 자료가 610에게 파괴됐어요.” 나에게 자료를 만들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즉시 응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나는 부모님에게 나가서 일자리를 찾는다고 했다. 부모님은 속으로 알고 내가 박해 당할까 봐 극히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결심을 했고 부모님이 답하기 전에 떠났다.

나는 수련생을 따라 외지에 왔고 집을 임대해 자료를 만들었다. 당시 환경이 열악해 자료점도 자주 이사했다. 한번은 우리가 한 마을에서 이층집을 임대하고 사람은 위에서 살았다. 설비가 소음이 커서 지하실에 설치했다. 지하실은 1년 내내 물이 스며들어 우리는 펌프를 사서 물을 빼고 자료를 만들었다. 우리 6명 수련생은 서로 협조하고 소모품을 사는 사람, 자료를 만드는 사람, 설비를 수리하는 사람, 진상 자료를 운송하는 사람이 있다. 당시 우리가 만드는 자료는 파룬궁 서적을 포함해 파룬궁 진상DVD, 각종 진상자료를 만들었고 수량이 컸다.

환경이 열악해 우리 자료점은 610에게 미행됐다. 2003년 7월 어느 하루 현지 파출소는 우리 수련생 6명을 모두 구치소로 납치했으며 이를 큰 사건으로 만들려 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줄곧 단식해 반박해를 했고 28일 단식을 했다. 온몸의 근육이 수축됐고 가죽밖에 남지 않았다. 의사는 창자가 함께 엉켜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더 감금하면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다. 파출소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를 고향 파출소로 보냈다. 고향 파출소는 계속 불법적으로 나를 박해했다. 외지 경찰이 말했다. “생명이 위독하니 더 감금하면 죽어요.” 그래서 파출소는 나를 의사인 삼촌 집에 보냈다.

삼촌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는 잠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링거를 맞아야 하며 유동식을 먹어 위장 기능이 회복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죽으면 안 된다. 아직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나는 확고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 관여해주신다고 생각하고 링거를 맞지 않았다. 나는 삼촌에게 죽을 좀 끓여 달라고 했다. 삼촌은 죽을 끓여 나에게 가져다 주셨다. 나는 단번에 한 그릇을 먹었다. 먹을 때 복부가 좀 고통스러웠지만 사부님께 제자를 보호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 먹을 때는 괜찮아서 이어서 며칠간 죽을 먹었다. 처음에는 배변이 어려웠다. 단식으로 줄곧 배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후 며칠간 배변할 수 없었고 한 달 동안 배변하지 못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죽을 먹고 며칠 후 자동적으로 배변한 것이다. 처음에 배변은 딱딱해 배변하기 고통스러웠지만 며칠 후 정상으로 회복됐다.

그 후 신체는 불법 감금 전보다 더 잘 회복됐다. 의학 상식으로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파룬궁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보호해 주신 것이다.

3. 취객에 난도질을 당해 여러 곳에 중상을 입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2007년 나는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한 살 때 경제가 어려웠다. 나는 상가에서 오토바이를 외상으로 구매했다. 어느 야밤에 음료수 가게 문을 닫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30여세 취객이 내 앞에 와서 흉악하게 나에게 강둑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뒤에는 또 그의 친구가 있었다. 그들이 선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고 야밤이라 데려다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취객이 번쩍이는 칼을 빼들었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즉시 뛰기 시작했다. 당시 슬리퍼를 신어 빨리 뛰지 못해 단번에 그에 따라잡혔다. 그는 나에게 칼을 휘둘렀고 내 생명을 위협했다. 나는 급히 손으로 그의 칼을 막았다. 왼손과 왼쪽 팔이 칼에 찔렀다. 취객은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칼을 내 머리로 내리쳤다. 당시 번쩍이는 칼날이 순식간에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칼은 빗나갔다. 온몸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내가 죽을 것 같자 취객은 친구와 도망쳤다. 나는 칼에 맞아 쓰러졌고 몸부림쳐 일어나서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쓰러져 기절했다.

어둠속에 목소리 하나가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러 나는 병원에 이송됐다.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머리에 칼날이 종잇장 두께 정도 더 들어갔다면 당신은 식물인간이 됐을 거예요.” 왼쪽 손의 힘줄도 모두 칼에 찔려 끊어져 왼쪽 손은 느낌이 없었다. 의사는 힘줄을 잇기는 했지만 손에 감각이 돌아오지 않으면 불구가 된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를 구해달라고 요청드렸다. 나는 불구자가 되면 안 된다. 아직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다음 날 손을 움직일 수 있었고 머리도 똑똑해졌다. 같은 병실 사람이 말했다. “젊은이는 빨리 회복하네.” 넷째 날 나는 집에 돌아가 연공하고 싶어서 의사를 찾아가 퇴원을 요구했다. 의사는 놀라며 말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퇴원할 수 있어요?” 통장에 돈이 없고 돈을 빌릴 수도 없다는 나의 주장으로 의사는 퇴원 수속을 해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끊임없이 ‘전법륜’을 읽었고 점차 체력이 회복됐다. 사부님께 대단히 감사했다.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구해주시고 나에게 또 새 생명을 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아내는 직접 내가 중상을 입고 정상적으로 회복한 과정을 보았다. 이런 신기한 변화를 보고 아내도 아주 탄복했다. 내심에서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믿고 2010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아들은 어려서 나를 따라 수련했다. 온 가족은 파룬따파의 불은(佛恩)에 젖어 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대단히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안 계시면 오늘의 나는 없고 사부님께서 안 계시면 오늘 내 행복한 가정은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6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28/3326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