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전화 안전에 대해 몇 년간 교류를 많이 했지만 사람들은 주의하지 않는다. 전화 안전에서 ‘안전’에 대해 과분하게 강조하다 보니 정념에 대한 교류는 소홀히 하게 됐고, 어떤 수련생은 전화 안전에 너무 지나치게 걱정해 전화 안전으로 수련생 사이에 모순과 간격이 생겼다.
전화 안전은 마땅히 주의해야 하지만 전화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수련생을 만나면 우리도 마음이 산란해지면 안 되고 법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정말로 법에 있으면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전화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몇 명 수련생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 지역에 있지 않는 한 수련생은 이메일함에 접속할 줄 모른다. 나를 만나자마자 전화를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자신의 전화를 사용하라고 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두려울 것이 뭐가 있냐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니 그에게 더 빌려주지 않았다. 만약 익명으로 일부 수련생에 한해서 말하고 비교적 이성적인 수련생은 나는 꺼리지 않는다. 이후에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수련생에게 내가 두려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더 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이후에 그는 다른 수련생에게 내 연락처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이렇게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를 대했다. 그에게 말해도 그가 듣지 않고 화를 내도 소용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정념으로 대했다. 그가 전화가 오면 나는 일반적으로 받지 않고 혹은 핸드폰을 끄거나 다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침착하게 그에게 말한다. 왜냐하면 질책과 원망은 아무 소용이 없고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구세력은 당신이 마음이 움직인 것을 보고 전화를 거는 수련생이 더욱 교란해 서로 원망 질책하게 해 간격을 형성하게 할 수 있다.
수련인은 무슨 일을 만나든 모두 우연한 일이 아니고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교란당하는 수련생이 이때 자신의 마음이 법에 부합되는가? 이 일에서 나의 어떤 마음을 제거하려 하는가? 다른 수련생이 이지적이든 이지적이지 않든 우리는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
나는 외출할 때 일반적으로 핸드폰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 수련생의 집이고 대법을 실증하려는 일을 하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핸드폰 안전도 기타 일과 마찬가지이다. 2004년 말 내가 막 자료를 만들 때 단지 1회 주간을 제작했는데 내가 외출 1시간 후 집에 돌아오니 도둑을 맞았다. 당시 수련생이 나에게 많은 종이, 토너, 2대의 프린터를 사주었다. 또 사부님 법상이 있고 많은 물건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임대한 집인데 두 칸의 방이 있다. 내가 돌아와 보니 세 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그때 나는 두려워서 혼이 날아갈 듯 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안 돼, 주의식이 빨리 돌아와야 해.’ 정신을 차린 후 일은 여기에서 매듭짓고더는 발전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긴장되지만 이지적으로 대법의 물건을 옮겼다. 차를 찾아 한 무더기 물건을 모두 옮겼다. 이지적이어야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
전화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일부 수련생을 만나면 마음은 심하게 흔들린다. 이때일수록 반드시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요소가 있다.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이지적으로 대해야 한다. 속인 사회의 모든 것은 대법을 위해 개창된 것이고 우리는 단지 이지적으로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개인의 인식이고 정확하지 않는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26/3393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