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법공부를 엄숙하고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은 수련의 기초이다

글/ 후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 ‘7.20’이전에 법을 얻은 제자이고 엄중한 박해를 받은 적이 있으며, 검은 소굴에서 일시적으로 흐리멍덩하여 굽은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사부님의 광대한 은혜와 자비는 나를 다시 수련의 길로 걸어 들어오게 하셨다. 그러나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환경이 비교적 긴장했고 가정 압력도 커서 두려운 마음도 아주 무거웠다. 후에 착실하고 이성적으로 법공부하면서 끝내 이 상황을 돌파했다.

1. 법공부할 때의 심태를 바로 잡다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한동안 법공부할 때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책을 들기만 하면 하품이 나오고 몇 페이지를 배우지 못하고 졸았다. 엄중할 때는 또 법공부할 때 책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아예 책을 덮고 잠을 자면서 또 마음속으로는 오늘 내가 법공부는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를 어찌 법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법공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또 한가지 정황이 있었는데 바로 법을 읽을 때 늘 빠지게 읽거나 글자를 보태거나 잘못 읽었다. 수련생이 지적해 주어도 나는 개의치 않았고 많이 지적하면 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이것이 바로 법공부를 엄숙하고 이성적으로 대하지 못한 것이다.

사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책의 내용은 몇 개 학습반에서 말한 법을 한데로 합친 것이다. 모두 내가 말한 것으로서 구절마다 모두 내가 말했고, 모두 녹음테이프에서 한 글자 한 글자씩 뽑아냈으며, 한 글자 한 글자씩 옮겨 적은 것인데, 모두 나의 제자, 수련생이 나를 도와 녹음 중에서 받아 쓴 것이고, 그런 다음 내가 다시 한 차례 한 차례씩 수정했다.”[1] “내 책 속의 매 한 글자는, 얕은 층차에서 본다면 法輪(파룬)이고, 깊은 층차에서 본다면 그건 바로 나의 법신이다. 심지어 편방(偏旁)과 부수(部首)마저도 모두 단독적으로 당신의 입을 거쳐 읽을 때면 그 역시 같지 않다. 많은 사람은 이미 공을 아주 괜찮게 수련해서 읽은 글자는 모두 형상이 있으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法輪(파룬)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일반 책이 아니다. 물론 층차가 모자라면 여전히 안 된다. 당신으로 하여금 책을 읽고 법 공부를 하게끔 하는 자체가 바로 제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心性(씬씽) 수련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성(理性)으로 법을 인식하는 자체 역시 제고이다.”[2]

지금 나는 깨달았는데 이 법은 사부님의 아주 많은 심혈이 깃들어 있고 책 속의 매 한 구절, 매 한 개 글자가 모두 지극히 엄숙하다. 모두 지극히 심각한 내포가 있다. 대법제자로서 법공부를 엄숙하고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이 자체가 바로 심성 문제였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체 공(功), 일체 법은 모두 책 속에 있는 것이라, 대법(大法)을 통독(通讀)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3] 그러나 진정으로 사존께서 말씀하신법리의 깨달음과 공력을 얻으려면 자신을 끝없는 법력 속에 용해시켜야 하고 엄숙하고 이성적인 성심의 상태에서 법공부를 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우리가 법을 읽을 때 자신이 더 보탠 글자는 어떠한 내포와 법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글자가 누락되거나 글자를 잘못 읽으면서 즉시 수정하지 못하면 자신의 수련에 손실이 있는 것이다. 하여 나는 이 몇 해 동안 매일 법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세수하고 손을 씻고 이를 닦아서 경사경법을 표한 후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했다.

2. 법공부하는 시간과 양을 최대한 증가하다

나는 매일 7시가 넘어서 출근하고 오후 5시가 넘어서 퇴근한다. (명절 휴가 제외) 집에 오면 거의 7시가 넘었다. 낮에는 법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어 저녁에 법공부 한다. 낮에 업무 시간이 너무 길고 회사에서는 또 휴식 공간을 제공하지 않아서 비교적 피곤하다. 저녁에 법공부하는 것은 대다수 형식적이고 법공부를 얼마하지 못하고 졸았다. 법을 잘 배우지 못해서 신체 상황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면에서도 갈수록 차했다. 나는 알고 있다. 자신이 만약 법공부에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나의 문제는 ‘고생이 두렵다’에 있었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가늠하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배우는 속인으로 비교해도 자신은 아주 차했다. 역사상에 소진극주(苏秦刺股/소진으로 허벅지를 찌르다),양평착벽(梁衡凿壁/양벽에 구멍을 뚫다),손강영설(孙康映雪/고생속에서 열심히 공부함)이란 말이 있다. 현재 중국 대륙에는 목표를 가진 수많은 고3 학생들이 다들 새벽 한 시, 두시까지 공부하지 않는가? 그들은 속인 중의 지식을 얻기 위해 이렇게 근면하게 노력하는데,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할 천명을 지닌 대법제자로서 이 만고에도 얻기 어려운 우주대법 ‘전법륜’을 잘 배우고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면 더욱 근면하게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사존께서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명시한 적이 있으시다.

“잠깐 쉼에도 자아 성찰하고 정념을 더하며

부족함을 똑똑히 알아 다시 정진할지어다”[4]

하여 나는 자신에게 반문했다. 내가 하루 24시간 동안 두 시간을 내어서 법공부하는 게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나는 더는 수련의 길에서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곤한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수면 교란을 대처하기 위해 나는 일부 방법을 생각했다. 예를 들어 꿇어앉아서 책을 보거나 혹은 제1장 공법을 연마하거나 혹은 겨울에 찬물로 세수하거나 진한 녹차 커피를 마시는 등등이다. 이런 방법은 비록 우둔해 보이지만 나는 오로지 대법에 손실을 조성하지 않으려면 법공부할 시간을 짜내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조금 적응이 어려웠고 천천히 습관되니 괜찮아졌다. 그러나 낮에는 조금 졸렸고 출근해서 잠깐의 휴식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을 조금 잤다. 다른 사람들의 수다를 들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현재 나는 기본상 이렇게 하고 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나가서 9시까지 진상 전화를 하고 법공부를 한 강의 하고 그다음 밍후이왕에 들어간다(휴식으로 간주함). 밤 12시 발정념을 한 후 제5조 공법을 연마하고 다시 법공부하고 법을 외운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발정념하고 동공을 연마한다.

사실 마음상태를 정확하게 바로 잡으니 법공부한 성과가 선명해졌다. 그 미묘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나는 전에 ‘수련인은 덕을 중히 여겨야 한다’에 대해서 단지 이익에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 이런 방면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할 때 이 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연공(煉功)은 德(더)를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연공할 때 당신이 좋은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쁜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가장 좋기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1], “당신의 공(功) 안에 어떤 것들을 넣는다면 당신이 연마(練)해 낸 그것이 좋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시커멓지 않을 수 있겠는가?”[1] 나는 단번에 ‘덕을 중히 여기다’에 더욱 깊은 인식을 하게 되었다. 원래 연공할 때 한마음이어야 하고 허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덕을 잃는 것이고 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에게 연공과 발정념을 할 때 한마음으로 할 것을 요구했다. 그날 발정념하고 연공할 때 전보다 아주 청성해짐을 느꼈다.

또 이 단락을 읽게 되었다. “수련하는 사람이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면 제도(度化)하기가 무척 어려우며 곧 자신을 망치기 쉽다.”[1] 나는 내심에서 깜짝 놀랐다. ‘수련인은 자신을 잘 가늠하는 것이 지극히 관건적 이었다!’ 어떠한 일에서도 모두 자신을 잘 파악해야 한다. 큰 모순과 마난에서 자신이 단번에 꿰뚫어 보아야 하고 또 잘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부 사소한 일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결과는 한 걸음 한 걸음 큰 번거로움을 가져온다. 내 곁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속인인 이성과 만날 때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언어 면에서 제멋대로 했고 행위에서 신중하지 못하다가 결국 정당하지 못한 남녀관계로 발전했으며 수련생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만약 계속 이대로 나간다면 갈수록 번거로움이 커지는 것이 아닌가?

나 자신도 가끔 수련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농담을 하면 좀 지나서 피를 토한다. 이는 사부님의 점화이시다. 마땅히 수구에서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사상 면에서 여전히 중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입을 잘 관리하지 않아 불필요한 농담을 하고 또 피를 토하곤 했다.

지금 나는 반드시 수구에 주의할 것이다. 위의 두 문장의 법을 나는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지만 왜 전에 읽었을 때는 이렇게 명확한 인식이 없었을까? 관건은 이전에 법공부할 때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3. 법리에 명백하고 정념이 강하면 대법제자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몇 해 동안 법공부를 비교적 착실하게 하여 나의 수련상태는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자신의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단호함과 견지, 법 속에서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여 회사 상사와 동료들은 나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다. 가족들도 바뀌어 모두들 대법을 인정했다. 다섯 명의 친척이 대법수련에 들어왔고 온 가족이 모두 복을 얻었다. 친척 중에 진상을 알고 삼퇴한 이들이 절대다수였다. 나도 걸어 나와서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동시에 또 현지에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부분을 해냈다. 현지 수련법회를 주최했었고 박해받은 수련생 구출에 참여했다. 두 번은 몇십 명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렸고 또 현지에서 47명을 삼퇴 시켰다. 이는 내가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린 가장 큰 한차례였다. 자신은 또 주변 도시의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했다. 법 속에서 온 정념이 강하니 교란과 박해도 갈수록 적어졌다.

2014년 ‘610’ 요원이 회사에 와서 나를 세뇌반에 보내서 박해하려고 했다. 회사 몇몇의 상사는 힘을 합쳐 기고만장한 그 악인을 돌려보냈다. 며칠 뒤 한 상사가 나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고 내가 공공장소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좋은 점을 말할 때 ‘610’에 신고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현재 이 일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는 “이후에 일할 때 전략적인 방법으로 주의하여 그 사람들에게 틈을 타게 하지 말라.”라고 했다. 바로 이렇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정황 하에서 박해는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깊이깊이 알고 있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로 제자는 비로소 이 난을 벗어난 것이다.

다른 공간에서 정사대전은 또 얼마나 첨예하겠는가. 절대로 사악은 올바름을 이기지 못한다! 올해 상반기에 몇몇 ‘610’ 요원이 회사에 찾아와서 장고소 때문에 왔다고 했다. 나의 장고소 편지는 3일 만에 베이징에서 접수되었다. 그들은 이번에 와서 나에게 장고소에 대해 감히 명백히 말하지 못했고 흐지부지하며 나에게 어떠한 손실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내가 검은 소굴에서 나왔을 때의 상태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나는 자신이 현재 비로소 정법시기 대법제자 같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러한 변화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대법의 위력에서 온 것이다.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다. 정법시기의 시간과 사람을 구하는 기연은 곧 사라진다. 우주 중에서 이 거대한 사명을 완성하려면 매개 진수제자가 정말로 마땅히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길에서 어떻게 진정으로 법공부의 역량을 확대시키고, 어떻게 자신의 생명 모든 것이 하루빨리 100% 우주 대법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지. 대법제자를 승화시킬 수 있고 우리가 우주 사명을 완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한 부의 대법이다.

이상은 개인수련의 깨달음이고 층차의 제한으로 적절치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파룬따파 의해-베이징 파룬따파보도원회의에서의 건의’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사:‘홍음2-이지 각성’

문장발표: 2016년 12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9/33867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