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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고 선을 좇아 과거의 원한을 모두 풀다

글/ 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 7월에 운 좋게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전법륜’을 한 번 본 후 이것이 바로 내가 찾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 법을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설사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꼭 끝까지 수련하고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확신한 후 수련을 시작했고 사부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했다.

오빠는 파룬궁 박해가 시작되기 전, 우리 시 공안계통에서 요직을 담당했다. 2000년 6월, 현지 공안은 나를 베이징에서 데려왔고 이 소문은 현지에서 크게 들끓었다. “모모 국장 여동생도 파룬궁을 수련하여 베이징에서 압송됐어.” 시장, 시 위 서기도 그를 찾아가 “모 국장, 당신 여동생을 좀 단속하면 안 돼요? 더는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고 베이징에 가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했다.

그 후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했을 때 나 역시 수많은 고생을 했다. 구치소, 세뇌반에 갇혔다가 다시 구치소에 11개월 지난 후 3년 판결, 5년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에 대해 오빠는 너무 체면을 구긴다고 여겼다. 2001년 봄, 나는 그에게 15페이지 되는 진상편지를 썼다. 그 결과 그는 나보다 아래 항렬인 사람들을 모두 불렀고(우리 집은 대가족이다) 내 아들도 불렀다. 생질은 보고 난 후 나에게 “이모님, 이 편지를 보면 적어도 이모님을 8년 판결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모님은 공산당을 공격하고 장쩌민을 공격했는데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아시나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체득, 파룬궁이 무엇인지, 공산당이 어떤 나쁜 일을 했는지 상세히 알려주었다(그때는 무엇이 진상 알리기인지 몰랐다). 아들이 오빠 집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삼촌이 왜 너를 그 집에 불렀어? 너에게 편지를 보여주었어?”라고 묻자 아들은 보았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어때? 도리가 있어?”라고 묻자 아들은 소리를 길게 끌어 올리며 “잘 썼어요. 수준급이고 도리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수많은 일 앞에서 오빠는 체면을 구길 대로 구겼다고 여기면서 하루가 멀다고 나와 친척 관계를 끊는다고 했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한 해 사계절 선물을 모두 남편, 아들, 며느리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2012년 7월 12일, 경찰은 우리 집을 수색했는데 이번에 모두 다섯 집을 수색했다. 이틀 후 오빠는 우리 집에 전화했고 마침 내가 받았다. 그는 “이제부터 우리 집에 오지 마. 구정, 8월 15일에 모두 오지 마. 파룬궁을 하겠으면 오빠를 버려.”라고 했다. 나는 “알았어요. 오빠 말 들을게요.”라고 했다. 그 후, 명절 때마다 한 번도 그를 빠뜨린 적이 없었지만 모두 가족들이 가져갔고 그는 한 번도 우리 집에 답례 방문을 하지 않았다.

2015년 4월, 새언니가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맨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 중에 몸과 마음을 다하고 돈을 내고 힘을 썼다. 아들은 꽉 찬 엿새 동안 차를 몰고 손님을 맞이했다. 우리는 대가족인데 육친 중 8명이 천 리 밖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기차를 타고 오거나 자가용을 몰고 왔는데 나는 일일이 잘 안내해 주었다. 일을 마친 후 900위안(약 16만 원) 되는 돈을 내어 음식 대접을 해주었고 그들을 위해 호텔에 방 몇 개를 예약해주었다. 먼 곳에서 온 이런 사람들은 응당 오빠 집에서 식사 다섯 끼를 해야 했지만 한 끼만 먹었다. 나는 과거의 나쁜 감정을 따지지 않고 오빠를 위해 그들을 맞이했으며 선물을 준비해 사람마다 주었다.

이 일을 통해 오빠는 진정으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됐고 수련자의 사심 없이 만물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흉금을 보았다. 5월 집안 잔치 때, 그는 뭇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이후 네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나는 지지할 거야. 나는 여전히 네 오빠이고 너는 여전히 내 좋은 여동생이야. 자주 놀러 오고 언제든지 환영해.”

사실 모두 사부님의 위덕이고 대법의 크나큰 복이다.

17년의 정법 수련 중, 순탄하지 않은 길에서 시련을 겪었는데 심성이 승화된 기쁨이 있는가 하면 관을 넘지 못했을 때의 괴로움도 있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호와 대법의 감화로 모두 넘어왔고 지나올 수 있었다.

진심으로 사부님의 가호와 고생스러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28/3394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