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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실증 항목에서 협조하고 심혈을 기울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의 납치를 어떻게 보는가

내가 처음 수련생 구출 항목에 참가할 때, 조바심이 생겨 빨리 수련생을 구출해 내려했다. 수련생이 왜 납치됐는가에 대해 ‘그 수련생은 반드시 누락이 있다’는 데만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때로 주변 수련생과 함께 수련생의 ‘누락’만 찾는 것에 빠졌다. 단번에 부정적 요소가 우리 공간장에 가득 찼다. 법공부를 통해 수련생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고 안으로 찾아야 하고 수련생의 ‘누락’을 왜 내게 보여주었는가? 나도 이런 유사한 상황이 있는지 봐야 한다.

수련생이 납치된 요소는 사실 아주 많다. 편파적으로 이 일을 생각하면 안 된다. 여기에 수련생 개인적인 원인도 있고 또 정체상 원인도 있으며 또 수련생의 수련상태에도 원인이 있고 역사상 원인도 있다. 지금 깨달았는데 수련생의 납치는 수련생의 수련환경의 변화이고 사람의 관념으로 수련 중의 현상을 보면 안 되며 사람의 좋고 나쁨으로 이 일을 평가하면 안 된다. 사실 수련생은 어디에서나 모두 수련하고 있다. 속인의 사유에서 벗어나 이 일을 생각하면 마땅히 대면해야 하는 것은 대면해야 하고 그것을 수련 중의 평범한 일로 보고 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하는 것은 안으로 찾으며, 마땅히 진상을 알려야 하면 진상을 알리고, 마땅히 사람을 구해야 하면 사람을 구하며, 마땅히 권리를 쟁취해야 하면 권리를 쟁취한다. 속인의 말로는 반(反)박해다. 수련인으로 보면 자신이 걸어야 할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것을 박해로 보면 박해이고 그것을 수련 중의 한 과정이라고 보면 그것은 수련중의 한 과정이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으면 어떻게 수련인을 박해할 수 있는가?

수련생을 구출하는데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련생 구출에 참가한 나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나는 관념을 바꾸고 사람의 사유에서 벗어나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나는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수련생의 가족, 변호사, 공검법(공안, 검사, 법원) 등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들을 진상을 기다리고 있는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려야 하는데 신경을 쓰고,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순정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항목을 대단한 항목이라고 생각했고 마치 대단한 책임을 감당한다고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나는 발견했는데 나는 단지 이런 경로로 진상을 알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수많은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보통 수련생과 마찬가지다. 단지 진상을 알리는 단체는 비교적 겨냥성이 있다.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협력에서, 모두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독선적이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마음을 닦아버렸고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게 됐다. 자신을 수련생 중에 놓았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데 힘썼다.

마음을 쓰다

‘마음 써서 하는 것’에서 나는 깊은 소감이 있다. 사실 수련하면서 나는 때로 겉으로 일하고 보기에 일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대충한 것이고 단지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속인은 나에게 말한다. “당신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담아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비록 속인 중의 일이지만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점화해주신 것이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한 수련생이 나와 협조하게 하셨다. 나는 이 수련생에게서 마음을 써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법률상 일은 나는 모른다. 그는 스스로 가서 자료를 찾고 먼저 파악하고 다시 관련 부서를 찾아간다. 일부 정보에서 그는 끝까지 확실하게 수행하고 수련생의 말만 듣고 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에 고소 자료를 넣을 때 한 부의 고소 자료는 여러 부서에 전달해야 했다. 서로 다른 부서가 주목하는 내용은 다르다. 지금 나는 서로 다른 단체에 대해 자료를 다르게 해야 그들에게 진정으로 진상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장쩌민 고소장부터 착수했다. 나는 고소장 통상 부분을 자세히 읽고 장쩌민 집단이 법을 위반한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됐다. 당시 나는 장쩌민 고소를 열심히 했지만 통상 부분은 대충 스쳐지나갔고 자세히 보지 않았다. 많은 수련생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진지하게 통상 부분을 읽고 개인 부분을 써야 비로소 장기간 우리 머릿속에 형성된 정확하지 않는 관념을 제거할 수 있다. ‘열심히 하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고 스스로도 혜택을 본다. 때로 자문한다. “오늘 당신은 경찰국에 가서 파출소 사람을 만난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겼는가? 나는 그에게 똑바로 진상을 알렸는가? 왜 똑바로 알리지 못했는가? 나의 어떤 마음이 아직 순정하지 않는가, 아니면 어떤 문제에서 자신이 근본적으로 똑똑하지 않는가?”

수련생 사이의 협조

수련생A를 알기 전에 많은 수련생은 내 앞에서 수련생 A가 법을 잘 배웠고 법리를 잘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함께 협력할 때 나는 수련생A의 말을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수련생A는 말하는 것이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련생 사이에서 A에 대한 말이 많은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다 있었다.

하루는 함께 법공부를 할 때 수련생A는 한바탕 자신의 견해를 발표했다. 나는 속으로 거부했다. 내심은 심하게 들끓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법공부를 할 때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이 있는지를 찾았다. 사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개의치 않았지만 그가 말하기만 하면 듣기 싫었다. 우리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이런 간격을 갖지 않겠습니다.” 또 안으로 찾으니 나는 A에게 관념이 있었다. 그의 언어 중에 내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이 일에서 벗어나 이 일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이 이 한 층차 중에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가 그처럼 높은 층차 중까지 수련하지 못했을 때, 그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층차가 결정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도 승화해 올라갈 수 없다.”[1]

내가 듣기 싫어하는 원인은 나의 수련 층차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을 찾았다. 수련생A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누구를 배려하지 않는다. 마침 나의 이 마음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확고하게 일념을 보냈다. 어떤 원인으로 수련생 사이에 조성된 간격인지 막론하고 나는 인정하지 않겠다. 한순간 나는 온몸의 세포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느꼈다. 그 후부터 나와 수련생A 사이에 그런 간격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수련생A는 우리 법공부 팀에 줄곧 영향을 주었다. 우리 법공부 팀의 수련생은 줄곧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 수련생이 어떻게 함께 협력해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한동안 A가 나타나면 늘 수련생B를 특별히 주목하고 B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한다. B에게 법에 있지 않는 많은 일을 일깨워주었고 언어가 치열하다. B는 때로 해석했지만 A의 강세에 제지된다. 때로 수련생C도 B를 위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C는 나에게 말했다. “A와 B는 역사적으로 원한이 좀 있네요.” 이것은 이미 수련생이 함께 교류하고 협조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C는 A에 대한 협력 형식에 불만이고 그가 실제적인 행동에 참가하지 않고 오히려 협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한다며 A를 제외해 버리자고 건의했다.

우리 몇 사람이 함께 협력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함께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역사상 일부 연원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협력은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에 매 사람이 일으킨 작용은 다르다.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해 우리가 마땅히 성취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며 우리는 책임을 똑똑히 인식해야 비로소 서로 간의 견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동안 나와 수련생C는 B를 보고 있었는데 A가 말한 문제가 존재했다. 우리는 함께 수련생B를 찾아가 교류했다. 하지만 교류에서 B의 문제가 바로나에게 존재하는 문제였다. 나는 자문했다. 나는 수련생B에게 관념이 있지 않았는가? 이런 관념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수련생A가 지적한 문제가 나에게도 있지 않는가? 나도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가? 수련생B는 수련생A에게 숭배심과 의뢰심이 있다는 것을 찾았다. 나도 있지 않는가? 나는 이 일에서 어떤 작용을 했는가? A가 B에 대한 표현에서 수련생이 다른 사람을 위해 걱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조급해 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매 사람은 모두 사부님께서 관여하시고 있다. 우리는 무조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자신의 공간장을 바로 잡아야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잘한 것이다. 자신의 바르지 않는 요소는 다른 사람에 영향을 준다. 우리가 본 수련생의 문제는 수련생의 진실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모두 함께 협조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련생도 다 있다. 매 수련생은 모두 자신의 것을 깨닫고 매 수련생은 자신이 있는 경지에서 협력해 일을 한다. 정말로 자신이 있는 경지의 표준에서 다른 수련생을 요구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음’의 법리를 깨닫게 하셨다. 비록 우리는 서로 다른 경지에서 수련하지만 각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도 함께 협력해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대법의 지혜이고 우리가 반드시 닦아야 할 것이다.

이상은 개인 층차의 깨달음이고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6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12/3371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