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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선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노년 대법제자로 올해에 80세이다.

대법이 나를 환골탈태하게 하다

1995년 병원에서 나에게 병세가 위독하다는 진단을 내렸고 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서 20여 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하고 사경을 헤맸다.

사람들은 나의 장례를 치르기만을 기다렸다. 직장의 동료들은 내가 가망이 없는 것을 보고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중 한 사람이 ‘전법륜’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꼭 보라고 했다. 나는 글을 몇 자 알지도 못한다. 온종일 4페이지 밖에 못 보았지만 이날 꿀잠을 잤다. 이튿날에는 음식이 당겼고 먹고 나서 계속 보았다. 후에는 앉을 수 있었다. 사흘째 날에 또 보자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당장 숨이 넘어갈 듯한 사람이 전법륜 몇 페이지를 보고 살아나다니! 이렇게 되자 주변 지방과 우리 공장에 놀랄만한 뉴스가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불광(佛光) 속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광명의 길에서 걷게 되었다.

대법은 나를 건강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젊게 해주었다. 이전에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지금은 온통 새까만 머리카락이고 두 손과 두 귀밑머리의 검버섯이 모두 없어졌다. 피부는 희고 곱게 변해 수련생들은 나에게 젊어졌다고 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서늘한 날씨에는 예쁜 바바리코트나 외투를 입고 더운 날씨에는 몸에 맞는 원피스에 굽이 반쯤 높은 구두를 신으면 발걸음이 가볍고 생기가 넘친다. 진상을 듣는 사람들은 나를 그저 50~60세로 보는데 어떤 사람은 나를 교사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대학교수라고도 한다.

사실 나는 어려서 동냥을 하며 자랐기에 문맹이다. 대법이 나를 환골탈태하게 해 주었고 나의 지혜를 열어 주었다. 하루는 법을 베끼다가 머리를 드니 옆에 한 꾀죄죄한 여자아이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누더기를 입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풀이 몇 가닥 붙어 있었다. 나는 의심스러워 물어보려고 했다. “너는 누구니? 어디에서 왔니? 어째서 이 모양이니?” 막 물어보려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이는 내가 아닌가? 대성통곡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꿇어앉아 흐느끼며 말했다. “나에게 오늘이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겁니다. 어떻게 보답하겠습니까, 오로지 정진 실수(實修)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악을 부정하자 대법이 신의 위력을 나타내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일당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나는 이 일대 경찰이 중점으로 감시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나를 집에 구금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대로 지켰다. 책을 못 보게 하고 연공을 못하게 했다. 마당에 경찰차 두 대가 멈춰 있는데 내가 연공만 하면 즉시 체포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장 보러 가면 두 사람이 따라다녔다. 저녁 8시에 그들이 떠나면 나는 즉시 문을 잠그고 녹음기를 꺼내 연공을 시작했다. 이때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나는 3층에 살고 있다. 연공음악이 울리자 두 대의 경찰차 위에 세 층의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정연하게 줄을 지어 빼곡하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의 사람은 현대인의 옷차림새이고 중간층은 오사시대(五四時代)의 중국의 겉옷 복식이며 머리는 땋아서 틀어 올리고 또 전모(氈帽)를 쓴 남자도 있었다. 맨 위층은 모두 선녀인데 그들은 나와 함께 제1장부터 제5장까지 연공을 마쳤다. 음악이 멎자 이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 장관은 8일 저녁 동안 나타났다.

2000년, 나는 진상자료를 인쇄하고 배포하다가 납치당해 불법적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판결을 받았다. 구치소에서 서명하라고 했지만, 글을 쓸 줄 모르기에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 5명이 차례로 다가와 강제로 나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들은 힘이 가장 센 간수 둘을 불러왔다. 이 두 사람이 금방 다가오자 나는 갑자기 사망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경찰 4명이 죽은 사람 다루듯이 나를 구급차에 던져 넣었다. 그 바람에 나의 골반 뼈가 부러져 공안 병원에서 치료했다. 나는 속인처럼 입원하여 치료해서는 안 되고 연공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 보호를 요청했다. 40일 입원한 기간에 낮에는 침대에서 가부좌하고 밤에는 침대에서 내려와 4장 동공을 하면서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병실에 6명이 입원해 있고 또 책임지고 지키는 두 사람이 있었지만 40일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아도 누구도 몰랐다.

퇴원한 후 5천 위안(한화 약 86만 원)의 벌금을 내고 보호관찰로 넘겨졌다. 집에 돌아온 후 그들은 24시간 교대로 나를 감시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매일 대법을 비방하는 신문을 읽어 주었다. 이렇게 되면 나는 법공부도 못하고 연공도 못하는데 어떻게 산단 말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나의 집을 제2의 교도소로 만든 것이다. 나는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날 밤, 나는 바로 그들의 눈 밑에서 교도소가 되어버린 집을 뛰쳐나왔다. 기차를 타고 천 리 밖의 친척 집에 갔다. 친척도 수련생이라 이때부터 나는 떠돌이가 되어 또 몇 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이듬해 우리 집이 철거되어서야 돌아왔다.

제1선에 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진상 거점 그곳이야말로 제1선이며, 진상을 알리는 제1선이다.”[1] 나는 중국의 대법제자는 마땅히 모두 걸어 나와서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제1선에서 빨리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큰 거리 작은 골목, 길옆 정거장, 공원, 슈퍼, 학교, 병원, 자유시장은 모두 내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곳이 되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법공부팀에 참가하는 것 외에 매일 법공부를 3강씩 하고 정시에 발정념을 했다. 사람을 구하러 나가기 전에 우선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나의 지혜를 열어주고 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연이 있는 사람을 나의 옆에 안배해 주시고 제자를 보호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매일 무사히 갔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삼퇴 명단이 있고 몇 년 동안 매일 이러했는데 비바람도 가로막지 못했다.

하루는 공원으로 가다가 노인 5명이 햇볕을 쬐면서 한담하는 것을 보았다. 돌보는 사람도 옆에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말을 들으니 그들은 모두 노간부였는데 자연히 모두 당원이었다. 한 사람을 대면하면 말하기 좋은데 여러 사람을 대면하면 힘들다. 어떻게 하지? 반드시 그들을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가지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발정념 하면서 몇 바퀴 돌고 그들에게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듣고 모두 탈당에 동의했다. 재삼 고맙다고 했다.

나는 친척 집에 놀러 다니는 습관이 없다. 일이 있으면 아들, 딸들에게 응대하라고 한다. 지금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친척, 친구와 동료네 집에 간다. 매번 선물과 대법자료를 들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데 효과가 매우 좋다. 누구네 아들, 딸이 결혼하거나 어른 생신, 아이의 한 달 잔치(過滿月), 대학에 합격하거나 출국하여 축하하는, 무릇 사람이 많은 곳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았다.

우리 집 친척과 친구는 외지에서 간부를 하고 있는데 가족에 당원이 많다. 허베이(河北)성, 둥베이(東北), 신장(新疆)에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방법을 생각해 당신이 구도할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2] 나는 외지의 친척, 친구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자녀들은 걱정되어 말했다. “어머니는 이 연세에 몇백 리, 몇천 리 밖에 가면 견디지 못할 겁니다.” 나는 생각했다. ‘법이 있고 사부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허베이에 여러 차례 갔다. 거기에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얼빈(哈爾濱), 헤이룽장(黑龍江), 중-러 국경선, 중-북 국경 관문, 우루무치(烏魯木齊) 신장 경계선의 작은 소도시에 가서 진상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신장에 가는 기차에서 여행 중인 10여 명의 ‘노홍군(老紅軍)’을 만나 그들에게 공산당의 사악을 말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말해 주었다. 마지막에 그들은 모두 삼퇴했다. 나는 원정할 때마다 몇십 명 또는 근 백 명의 삼퇴 명단을 갖고 올 수 있었다. 가장 적을 때도 20명은 되었다. 크고 작은 가방의 자료를 다 배포하고 나면 적합한 곳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써 놓는다.

우리 마을은 그 해에 중국공산당이 소위 ‘지방 호족을 타도하고(때려 엎고), 토지를 분배하고, 지주를 투쟁한’ 가장 심한 지역이다. 나의 둘째 할아버지 댁에 삼촌이 다섯 명 있었는데 둘은 탈출하고 셋은 자주 나무에 묶여 비판 투쟁 당했다. 둘째 할머니는 투쟁 당해 사망했다. 나는 큰 할아버지네 집에 살았는데 남자들은 죽는 사람은 죽고 도망간 사람은 도망갔다.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자주 끌려나가 비판 투쟁을 당했다. 당시 18~19세인 언니가 비판 투쟁 당할 때 한 촌민이 언니의 몸에 더러운 것을 붓는 걸 직접 보았다. 다른 한 촌민은 언니의 얼굴에 검댕을 발랐다. 문화혁명 때 온 가족은 또 비판 투쟁 당했다.

몇십 년이 흘렀으니 은혜와 원망도 끝을 맺어야 하겠지. 거기에 파룬궁이 없는데 구하겠는가, 구하지 않겠는가?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말하건대 수련인은 적이 없다. 당신들은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는 몫이 있을 뿐”[3]. 그리하여 나는 연회를 마련하고 크고 작은 촌 간부와 당・단원을 청했다. 연회석에서 그들에게 파룬궁은 무엇이고 공산당은 무엇이며, 톈안먼 분신자살은 가짜이고, 구이저우(貴州) 장자석(藏字石), 중공의 생체장기적출, 무엇 때문에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하려 하는가, 하늘의 뜻에 따르면 평안을 보장받는다는 것과 파룬궁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것을 알려 주었다. 그들은 알아들었고 모두 실명으로 삼퇴했다. 두 번째로 연회를 마련하여 같은 방법으로 또 일부 사람을 탈퇴시켰다. 후에 또 집집이 다니며 과자 한 봉지와 대법자료를 주면서 노년 부녀자와 아이들을 삼퇴 시켜주었다. 온 마을 50~60호 되는 사람들이 모두 진상을 알고 80%의 사람이 삼퇴를 했다.

몇 년 이래 제1선에서 사람을 구하면서 감동적인 사례가 매우 많다. 자료를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사람, 전법륜을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 당장에 공법시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세 사람은 진상을 잘 받아들였는데 나를 어머니로 삼았다. 그들은 진정하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면서 모두 좋은 사람이고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하였다. 그리고 파룬궁을 연마하는 어머니가 있으면 매우 자랑스럽다고 하면서 격동되어 나를 덥석 안았다.

십몇 년 동안 나는 사부님의 가지와 가호로 오늘까지 걸어 왔다. 대법에 감사드리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조사정법은 우리가 사부님과 맺은 서약이고 사전의 염원으로서 바로 오늘날에 실천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일은 이미 최후에 이르렀고, 나마저도 너무나 조급한데, 당신들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러나 최후에는 울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4] 수련생들이여, 우리는 사부님을 실망케 해 드리지 말자. 최후의 시각에 태만하지 말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3년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 – 20년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7 – 시카고 시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6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14/3389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