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겪은 난관은 가족에게서 온 고난을 포함해 직장에서 오는 고난, 신체적인 박해, 수련생 사이의 모순과 장벽, 그리고 자신의 완고한 사람마음의 집착 등이다. 어떤 것은 현재까지 완전히 돌파하지 못했고 어떤 때는 수련이 아주 고달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법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진정으로 수련한다면 길이 아무리 좁아도 반드시 걸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법 노동교양이 끝난 후부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 나는 또 새롭게 원래 직장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20년이 됐다. 비록 원래 부서는 아니지만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왔다.
내가 있는 학교는 12년 동안 교장과 서기가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나는 평소에 교직원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이용해 진상 알리는 외에 교사자격 회복을 요구하는 기회를 통해 학교 상급과 교육청에 진상을 알렸다. 담당자가 바뀔 때 마다 나는 재신청을 했다. 어떤 때는 상부에 신청해 교장, 부교장, 서기, 다시 교육청, 지역 610으로 가야했고 어떤 때는 학교 내부에서만 신청했는데 이런 방식을 합치면 거의 다섯 번 정도 된다. 어떤 교사는 당신이 다시 신청해도 공산당은 당신이 수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결과를 추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 진상을 알릴뿐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비록 나는 현재 직원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학교라는 환경이 갈수록 느슨해졌다. 바쁘지 않을 때 사무실에서 교란을 받지 않고 책을 보면서 법을 배울 수 있고 학교에서 매주 국기게양식에 오랫동안 참석하지 않았으며 전 교직원 70%가 이미 삼퇴를 했다.
나는 수련이 순조롭지 못했다. 한번은 한 학생에게 진상을 알리고 ‘전법륜’을 주면서 가져가서 보라고 했는데 학생 부모가 고발했고 610, 파출소, 교육청 6~7명 일행이 학교에 와서 나를 박해했다. 내가 그들의 물음에 협조하지 않고 답하지 않았으며 진상만 알렸기에 약 한 시간 만에 나를 박해하려는 목적을 해체했다.
또 한 번은 집착이 있어 세뇌반에 붙잡혀가 박해를 받았다. 그 안에서는 진상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세뇌반 규정에 협조하지 않고 단식해 6일 만에 정념으로 걸어 나왔다. 돌아온 후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했고 학교에서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또 한동안 내가 나태했기에 지역 610은 교육청을 협박해 우리 학교에서 ‘사이비교’ 전시판을 설치하고 직접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했다. 듣자하니 먼저 우리 학교에서 한 다음 다른 학교를 돌아가면서 중생에게 해독을 끼친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학교 서기를 찾아가서 진상을 알리고 전시물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상부에서 하는 것이기에 말로는 철수한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나는 밍후이왕에 우리 지역 교육청을 포함한 다른 지역 교육청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나는 며칠 동안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또 한 차례 밍후이왕에 이 일에 관해 직접 우리학교의 이름을 폭로했고 동시에 인근 구 610요원 전화번호, 우리 학교 관련 상사 전화번호, 교육청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밍후이왕에 발표한 다음 날 학교는 즉시 모든 게시물을 철거했다.
나는 모두 매번 교란을 받은 후 왜 틈을 타게 했는지 반성하고 누락을 찾아냈으며 집착이 있는 곳은 교훈을 얻어 다시 정진해 점차 더 성숙해졌다.
2015년에 장쩌민고소 열풍이 일기 시작했고, 나도 2015년 6월에 장쩌민고소에 참여했으며 매우 빠르게 접수됐다는 회신을 받았다. 2개월 지난 후 어느 날 610국가보안 요원이 내가 일하는 학교에 찾아와 먼저 교장, 서기를 찾아 상황을 파악한 후 나를 찾아와 그들과 함께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들이 내가 장쩌민을 고소했기에 왔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이야기 하라고 했으나 그들은 학교에서는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정정당당하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들과 함께 그들의 차를 타고 파출소로 갔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그들은 나를 방으로 데리고 갔는데 내가 보니 심문하는 곳이었고 안에는 범죄자가 앉는 특수의자가 있었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기에 그 의자에 앉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그들의 의자를 당겨서 앉게 했다.
이후에 또 한사람이 왔는데 말투가 난폭했다. 내가 장쩌민을 고소한 것은 ‘무고’라고 하면서 내 법률조례가 상세하다면서 어디서 다운받은 것인데 다른 사람들 것이랑 같다는 등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은 ‘안건이 있으면 입건하고 고소가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를 실행 중이니 나는 당연히 고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 한 국가보안원이 컴퓨터를 켜고 기록하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컴퓨터가 아무리 해도 켜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물은 문제에 대해 두 가지만 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 나는 장쩌민고소장을 부친 적이 있다. 둘째 고소장 내용은 모두 진실이고 모욕한 것이 아니며 기타 문제는 모두 대답할 수 없다.
이후에 들어온 사람이 가고 남은 두 국가보안원이 나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들은 그렇게 사악해 보이지 않았지만 듣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런 것(진상을 가리킴)을 말하지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들 중 한명은 1999년 파룬궁을 박해할 때부터 그 일을 쭉 해왔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수련생들을 선하게 대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진상을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말하지 않을 때에는 묵묵히 발정념을 했다. 오후가 되어 그 중 한명이 전화를 받더니 나에게 장쩌민고소장을 몇 번 부쳤냐고 물었고 내가 대답하자 그는 전화기에 대고 한 번이라고 말했다. 퇴근시간이 거의 됐을 때 그는 또 전화를 받았고 그 후에 나에게 집에 가도 된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오전에 국가보안원이 나를 찾아온 동시에 또 다른 한 무리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내 컴퓨터를 검색했고 또 내 방을 수색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 다행히 평소 내가 가정환경을 좋게 유지했고 늘 부모님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고소장을 쓸 때도 부모님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다가 부모님에게 알렸다.
그것은 부모님께서 아시면 내 방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그런 일이 발생해 부모님은 놀라긴 했어도 비교적 이지적으로 경찰들을 대했고 그들이 내 컴퓨터를 검색하려 했지만 비밀번호를 몰라 열지 못해 가져가려 할 때 부모님은 언제 돌려 주냐고 물었고 그들은 오후에 돌려준다고 했다. 그날 오후 어머니는 그들에게 가서 컴퓨터를 달라고 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내가 파출소에 가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다음 날에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했고 이후에 그 일로 서기, 교장을 찾아가 내가 왜 장쩌민을 고소했고 내가 파출소에서 겪은 일과 집이 교란 받은 상황을 알리면서 경찰이 법을 위반하고 있고 나는 법률을 수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나는 지역구에 가서 컴퓨터 반환을 요구하는 기회를 이용해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 중 한 여경은 전에 어머니가 가서 컴퓨터를 달라고 했을 때 비밀번호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었다. 나는 그 여경에게 컴퓨터는 내 개인 물품이고 사람마다 사적인 비밀이 있는데 내가 사적인 것을 컴퓨터에 담아 비밀번호를 걸어 놓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면 빨리 비밀번호를 말하라면서 검색해보고 바로 돌려준다고 했다. 나는 컴퓨터 안의 것은 모두 합법적인 것이고 당신들이 한 것은 모두 불법이기에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컴퓨터를 이미 시 국가보안대에 가져갔다면서 거기에 최신 기기가 있어 비밀번호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사악이 영원히 비밀번호를 풀지 못하게 발정념을 했다.
이후에 한 수련생이 그 일을 알고 그의 아들이 컴퓨터 전문가라서 비밀번호를 푸는 데 몇 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내가 열지 못한다고 하는데 당신은 된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박해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녀는 듣고 나서 즉시 “그래요, 열지 못하죠”라고 말했다. 이후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내 컴퓨터 비밀번호가 너무 복잡해 열지 못했다고 했다.
수련 중에서 나는 매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아침 연공을 보장하고 발정념과 시시각각 안으로 찾아 심성을 수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갈수록 심각하게 알게 됐다. 수련은 고리를 하나씩 거는 것인데 진상을 알리는 일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조금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평소 나는 교육청과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의했고 계속 진상편지를 부쳤으며 수련생들에게 협조해 진상전화를 하게 하는 등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나에게 이런 안정된 환경이 있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이 장쩌민을 고소해 박해가 가중된다는 글을 볼 때 나는 사부님 말씀을 굳게 믿고 사부님 말씀대로 해야만 안정되고 바르게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더 굳게 믿게 됐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4/3377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