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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佛恩) 속에서 성장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퉁위(童宇)

[밍후이왕] 1994년에 나는 8살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매일 나에게 억지로 쓰고 검고 걸쭉한 한약을 한 사발씩 먹이셨다. 아버지에게 전염된 B형 간염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온몸에 검은 농이 흐르고 흐르는 곳마다 피부가 썩었다. 이후 힘들게 완치했지만 또 갑상선 질환에 걸렸고 이후에 또 간염에 걸렸다. 나는 간염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오래 계셨는데 왜 돌아오지 않는지 몰랐다. 아버지가 왜 얼굴색이 누렇고 눈빛이 흐리며 바짝 여윈지 몰랐다. 그해 말 할머니가 상하이에서 돌아오시더니 아버지에게 파룬궁을 가르치셨다. 병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면 파룬궁이라도 배워 보라고 하셨다.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완쾌되셨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을 띠셨고 나에게도 약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따라 수련해보라고 하셨다. 이렇게 나는 1995년 초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신체 증상은 파룬따파를 수련 후 완쾌됐다. 그리하여 20여 년 수련의 길을 시작했다.

유쾌한 어린 시절

나는 시종 한 가지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6살 때 어머니가 가족 앞에서 나에게 내가 신은 신발이 어떤 색상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보고 검정색(사실 빨간색임)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할머니에게 “이 아이는 지능이 낮아요. 몇 번이나 가르쳐 줬는데 지금까지 색깔도 분간하지 못하고 숫자도 기억하지 못해요. 학교에 가면 어떻게 할지…”라고 걱정하셨다.

파룬궁을 배운 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서 나는 성적이 줄곧 좋았다. 부모님은 중고등학교를 나오셨고 그해 문화대혁명을 만나 내 학업을 돌봐줄 수 없었다. 나는 학원에 가본 적이 없지만 매번 장학금을 탔고 수학은 더욱 우수했으며 전교에서 1,2등에 들었다. 어머니는 내 성적을 자랑스러워하셨고 아버지도 나에게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셨다고 하며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 그러므로 여태 성적을 개의치 않았고 대법 책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고 학교에서 갈등이 생기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찾고 억울함과 손해를 봐도 웃음으로 넘겼으며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때 나는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법공부를 하며 사부님 동영상을 보았고 신수련생에게 동작을 가르쳤다. 당시 생각하니 매일 즐거웠다. 내 몸의 증상은 파룬따파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완쾌됐다.

침묵하던 소녀시절

1999년 7월 내가 성 중점 고등학교에 입학해 집에서 재미있게 여름방학을 지내고 있었을 때였다. 어느 날 출근하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오셨다. 동시에 많은 경찰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 집에서 많은 대법 책을 압수해갔다. 그들이 간 후 아버지는 가슴이 아프지만 두려움 없는 모습이 역력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정부에서 대법을 모욕한다며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가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어리다며 동의하지 않으셨다.

얼마 후 아버지는 기차에서 납치당하고 감금됐다. 얼마 후 직장에서도 제명당하셨고이후 3년 불법노동교양을 당하셨다. 경찰은 불법적으로 거듭 우리 집을 수색했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협박했으며 주변 친척과 친구가 모두 거짓말에 속아 점차 우리를 멀리했다. 2년이 되지 않아 어머니의 직장도 없어지고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밖에 나가 막노동을 하셨다. 남자가 하는 운반 작업을 해 한 달에 600위안을 버셨다. 어머니는 일이 비록 힘들지만 일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셨다.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3년 후 나는 가볍게 성 중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사이에 나는 학교에서 침묵했지만 외할머니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다. 그러므로 학교의 불량한 습관에 물들지 않았다. 생활이 어렵기에 입는 옷에 신경을 쓰지 않고 3년간 교복 두 벌만 입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교복 여동생’이라고 불렀다. 한번은 같은 반 개구쟁이 남학생이 전반 학생 앞에서 나에게 못생겼다고 욕하고 옷차림도 추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말한 것이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말에 동의한다고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는 놀라 도망갔다.

불법 감금을 8번 당한 아버지

고등학교 간 후 아버지는 감옥에서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노동교양소의 어떤 일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고 나를 독촉해 수련에 정진하라고 하셨으며 친구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이가 모두 떨어진 것을 보았다. 이후에 아버지는 기타 친척에게 노동교양소의 박해 상황을 이야기하셨다. 경찰에 고문당하고 작은 방에 감금됐으며 겨울에는 방이 추워 얼음이 얼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몇 평방미터 작은 방에서 핍박으로 뛰어야 했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나는 몰래 울고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아버지 말씀을 마음속에 늘 담아뒀다.

몇 개월이 지나 가족의 짧은 재회는 또 박탈당했다. 아버지는 또 3년 불법노동교양 받으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노동교양을 받아 지금까지 불법적으로 8번이나 감금되셨다. 내가 대입시험을 볼 때 아버지는 또 노동교양을 당하셨고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를 보러 가지 못하게 했다. 내 마음이 분산될까 봐 단지 편지만 쓰게 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에 학급10명 사이에서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나는 점차 점수에 집착했고 법공부는 갈수록 적게 했으며 쟁투심, 질투심이 나왔다. 공부는 갈수록 힘들었고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다. 매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통스러워 할 때 나는 갑자기 대법 책을 보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다. 그 후 매일 법공부를 하고 다시 공부를 했으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의 일생은 이미 배치해 놓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적과 결과에 집착하지 않자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얼마 후 나는 대입 시험 수석으로 중점 대학교에 입학했다.

박해로 사망한 어머니

어머니는 2007년부터 파룬따파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우리 온 가족은 대법의 불광에 젖어 있었다. 이 사이에 나도 몇 년 명리정(名利情)에 미혹돼 있었다. 수련에 해이해졌는데 다행히 결국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2014년 가정에 큰 일이 또 발생했다. 어머니가 경찰의 박해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어 아버지도2015년 또 불법 감금돼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계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와 아버지는 힘들게 생활했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으로 1년 내내 고통 속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또 납치돼 구치소에 감금되자 텅 빈 집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나는 거실에 앉아 통곡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 이때 내 눈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한 길은 가족정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한 갈래 길은 대법 책을 보고 정진하며 집착심을 내려놓고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두 번째 길을 택했다.

불은(佛恩) 속에서 성장

많은 사람은 내가 가정이 파탄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포기하지 않는 점에 의혹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겪지 못한 신기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래 한 가지 예를 들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번은 점심 때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갈 때다. 내가 자전거를 밀고 길을 건널 때 빨간 신호등 인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달려와 나와 자전거를 들이받았다. 당시 나는 공중 1미터 높이까지 튕겨 올랐다가 땅에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후 나는 자전거가 어떻게 됐는지 걱정됐다. 일어나 자전거 쪽으로 뛰어갔다. 집안 경제조건이 좋지 않아 자전거가 망가지면 어머니는 돈을 더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몸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자전거 바퀴가 망가진 것을 보고 다시 수리할 수 있기에 안심했다. 자전거를 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머리를 들어보니 이미 주변에 사람들과 경찰차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족에 전화를 걸라고 하고 기사에게 돈을 배상하라고 하며 또 나에게 몸을 검사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사부님 설법에서 사부님 법신이 나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고 괜찮다고 했다. 얼굴과 팔, 무릎에 상처를 좀 입었다. 한 목격자가 말하기를 그렇게 높이 튕겨 올랐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 있냐고 했다. 사고를 낸 기사도 나에게 병원에 데려가 검사하겠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하고 가려 할 때 경찰의 간섭 아래 하는 수없이 차량번호를 기록했다. 그제야 그들은 나를 집으로 보냈다. 집에 돌아간 후 나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수업을 하러 갔다.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

파룬따파를 수련 후 사부님께서는 자주 나에게 다른 공간의 정경을 보여주신다. 그것은 정말로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성했다. 그러므로 나는 대법에 시종 확고했고 의심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17년을 박해당했다. 우리 가정은 박해당해 집과 가정을 잃었다. 다행히 자비로운 사부님의 가호 아래 나는 불은(佛恩) 속에서 점차 성장했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어린이제자마당>청소년이 대법을 배우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6/3315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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