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중앙기관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퇴직했다. 당시 중앙기관 연공장은 많은 기적이 나타났는데 이런 것은 모두 현대과학의 영역을 돌파했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타파했다. 기관의 많은 간부도 이 연공장으로 계속 들어왔는데 연공 인원이 가장 많을 때는 60~70명에 달했고, 국장급 이상만 해도 20여명이나 되었다.
나는 늘 생각했다. 파룬궁은 정말로 고덕대법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병고의 시달림에서 해탈시켜 주면서도 돈 한 푼 받지 않는데 이는 오늘날 세상에서 누가 할 수 있는가? 만약 전국 국민이 다 파룬궁을 연마한다면 개인에게, 가정에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사회도덕도 매우 크게 승화될 것이다.
1. 모든 병이 다 사라졌다.
나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는 품행과 성적이 다 우수한 학생이었고, 대학에서는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정치의 험악함을 알게 됐다. 지방에서 중앙기관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경험하면서 과장급에서 부장급 사람을 접촉하면서 인생의 어려움, 인간 세상의 험난함을 체험했고, 신체도 갈수록 나빠졌다. 40대에 신체는 아주 나빠져 몸속에는 종양이 자라고, 심장, 위, 허리, 다리에 모두 병이 있었다. 특히 혈색소는 겨우 4.6g이었다. 늘 머리가 어지럽고 아주 허약했다. 병원도 많이 찾아가 약도 적지 않게 먹었지만 병이 낫지 않아 모든 약은 무용지물인 것 같았다.
1997년 연공한 후, 몸이 재빨리 호전됐다. 가장 신기한 것은 혈색소가 너무 낮아 물건을 보면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보였는데 연공을 한지 겨우 일주일이 된 날 아침, 공원에 들어서자 갑자기 눈앞의 정경이 모두 밝아졌고 내 마음도 밝아졌다. 체력도 회복이 아주 빨라 날마다 지치고 피로하던 상태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모르는 사이에 나의 질병은 다 없어졌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으며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나의 아들은 간질이란 진단을 받아 일 년 내내 약을 먹어야 했고 약은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이어서 부작용이 몹시 컸다. 약을 먹은 후에는 온 종일 흐리멍덩하다. 나는 아이의 병을 몹시 걱정했다. 이런 병은 일생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 때나 자주 발작하면 생명이 위험하다. 나는 연공을 막 시작했던 때라서 많은 도리는 몰랐지만 이 공은 꼭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사부님 설법 녹화를 보는 학습반에 참가했고 잇따라 아들의 창백하던 얼굴도 겨우 며칠 사이에 불그레하게 변했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아들의 병도 기적처럼 나았다. 의학적으로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나는 일찍이 전문가에게 물은 적이 있는데 이 병은 세계적으로 불치병에 속하고 낫기가 아주 어렵다고 했다. 점차 활발하고 건강하며 굳센 젊은이로 커가는 아들을 바라보고 후에는 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귀염둥이까지 낳은 것을 보면서 나는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집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했다. 사부님의 고생스런 구도와 대자대비에 감사했지만 사부님은 우리의 돈 한 푼도 받지 않으셨다.
2. 위독한 환자인 노간부 건강을 되찾아
한 퇴직한 노간부는 그 해 70대였다. 그녀는 암, 심혈관 질환, 신경 기능장애 등 십여 종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 의사는 어느 한 가지 병이든 모두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날마다 한 줌씩 약을 먹어도 병은 낫지 않았고, 또 대소변이 실금돼 전부 남편의 세심한 보살핌에 의지하며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후에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하고 반년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모든 병이 다 사라지고 모든 약을 다 중지했으며, 게다가 걸음이 날듯이 가벼웠고 혈색이 좋았다. 그의 한 쪽 팔은 유선암 수술로 들 수 없었는데 어느 한 번의 연공 때 갑자기 들려져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신기한 변화를 보고 많은 노인들이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다. 그 노간부도 자동적으로 공을 가르치는 책임을 감당했다.
3. 모두들 정말로 탄복했다
기숙사에는 노년 직원이 있는데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도 성질이 팔팔해 집에서는 남편과 맞지 않아 늘 싸우는데 몽둥이 싸움까지 한다. 남편은 참을 수 없어 이혼하고 말았다. 그녀의 화풀이는 또 이웃에게로 돌려져 이웃과 늘 싸웠고 심지어 이웃집 편지마저 찢어버렸고 또 아래층 이웃에게 물을 쏟아 부었다. 이웃은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는 건드릴 수 없다면서 파룬궁이 사람을 착해지게 가르친다는데 정말 그녀를 개조시킨다면 모두들 정말 탄복하겠다고 했다.
이 노인은 성질이 나쁠 뿐만 아니라 신체는 더욱 나빠 엄중한 3고 환자이다. 특히 당뇨병을 앓아 신체 면역력이 떨어졌다. 감기에 걸리면 3개월이 돼도 낫지 않아 계단을 내려오지도 못한다. 그녀 스스로도 삶에 의미가 없다고 여겨 죽을 생각마저 했다. (이는 그녀가 수련 심득에서 말했다)
방금 언급한 언니의 권고로 그녀는 연공을 시작했다. 짧은 몇 달 사이에 그녀의 신체는 굉장히 큰 개변을 가져와 모두 정상이 됐다. 혈압도, 고지혈증, 혈당도 다 정상이었고 사람도 뚜렷이 젊어졌다.
그녀는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채소를 살 때 이리저리 고르다가 남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슬쩍 훔치기도 했다. 연공 후, 그녀는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채소 파는 사람은 정말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부터 어두울 때까지 움집 같은 곳에서 겨울이면 보일러도 없고 여름이면 에어컨도 없이 살면서 가정을 먹여 살리려고 일 년 내내 고생하는데 정말 쉽지 않다면서 야채를 살 때면 이전처럼 고르지 않았고, 또 두 세 번은 그녀에게 잔돈을 더 주자 그녀는 다 돌려주었다. 이는 이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야채 장사꾼은 모두 감동되어 지금은 아주머니 같은 사람이 아주 드물다고 했다.
그녀의 심성이 제고 됐으므로 사부님은 그녀에게 천목을 열어 주었다. 어느 날 그녀는 흥분해서 알려주었다. 어제 저녁 그녀가 정공을 연마할 때 눈앞에 갑자기 커다란 눈 하나가 나타났는데 곧추 세워진 눈은 맑고 투명했으며, 깜빡깜빡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더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또 9개의 별이 7색 빛을 뿜는 것을 보았는데 그 색깔은 지금껏 본적 없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그녀는 격동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원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정말이었다.
연공 몇 달 후, 피부는 매끄럽고도 부드러웠고 사람도 젊어졌으며, 마음은 온화하고 자신감 넘쳐 남을 따뜻하게 대했다.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은 정말로 그녀를 개변시켰다고 말했다.
4. 많은 노간부가 계속 연공장에 들어오다
연공함에 따라 사람들의 몸에 모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한 쌍의 노부부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특히 남편은 일 년 내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금 움직이려 해도 먼저 청심환을 먹어야만 했다. 그들은 연공 후 몸이 건강해지자 집에 남아있던 약을 남에게 줘버렸다. 또 한 노인은 귀가 먼지 여러 해 됐는데 연공한지 얼마 안 되어 청력을 회복했다.
한 노인 노동자는 허리 디스크가 20여년이 됐다. 평소에 층계를 내려올 때 남편이 휠체어로 그녀를 밀어야 했다. 연공 사흘 후 놀랍게도 그녀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 아래층에 물을 갖고 가서 꽃에 물을 주었다. 그때부터 허리가 완전히 나았다. 이곳에는 또 적지 않은 3고 환자가 있는데 의사에 따르면 반드시 평생토록 약을 먹어야 했다. 연공 후. 모두 건강이 회복됐고 모두 더는 약을 먹지 않게 되었다.
연공장에는 또 적지 않은 기적이 나타났다. 5~6명이 천목이 열려 돌고 있는 파룬을 보았고, 붉은 빛을 보았으며, 자색 안개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고,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연공장에는 의학 영역의 초상적인 현상이 수없이 많아 사람을 격동시켰다. 나는 늘 생각했다. 파룬궁은 정말로 고덕대법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병고의 시달림에서 해탈시켜 주면서도 돈 한 푼 받지 않는데 이는 오늘날 세상에서 누가 할 수 있는가? 만약 전국 국민이 다 파룬궁을 연마한다면 개인이나 가정에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사회도덕도 매우 크게 승화될 것이다.
그 때 나는 또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듯 병이 없이 가벼웠다. 날마다 연공을 마치고 나면 정신이 맑고 기분이 상쾌했으며, 게다가 생명은 희망과 광명으로 넘쳐 났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생각한다.
5. 위대한 불법은 중앙기관의 강당에 울려 퍼졌다
1999년 7월 20일, 우리는 강당에서 사당 중앙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1호 문건을 들으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 중 두 개의 주요 내용으로 하나는 사부님 경문 ‘미신을 다시 논함’이고, 다른 하나는 301병원 원장 리치화(李其华)의 한 편의 심득 체험이었다.
리치화는 중공에서 가장 일찍 양성한 의학 전문가로 후에는 301병원 원장을 맡았다. 그의 아내는 엄중한 3고 환자였다. 그는 전국에서 가장 좋은 병원, 가장 훌륭한 의료 조건, 가장 훌륭한 의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내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한지 2~3개월 후, 신체는 놀랍게도 신기하게 좋아졌다. 입술이 붉어졌고, 모든 약을 다 중지했다. 아내의 변화를 보면서 베테랑 의학 공직자로서 감탄을 금할 수 없어 파룬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공법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미신에 대한 견해를 언급할 때 그는 말했다. 과학이 아직도 탐구하지 못한 영역은 아주 많다. 그러므로 과학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을 미신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기공에서 나타난 많은 기이한 현상이 바로 과학이 아직 탐구하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그는 말했다. 병이 있으나 병원에서 치료 효과가 없는 사람은 파룬궁을 연마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고 나는 권고한다. 어쩌면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강당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나의 가슴은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불법의 홍대한 자비, 위엄과 지혜를 느꼈다. 놀랍게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곳의 중생이 불법을 듣게 했고, 이곳 중생의 머릿속의 낡은 관념을 타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비판’은 텅 비고 내용이 없었다. 오직 그런 “미신, 어찌 미신인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당 교육을 받아도 여전히 이렇듯 미신이니 세계관에 문제가 있다”는 등등의 군(軍)·정(政) 우두머리의 말참견만 있을 뿐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나는 많은 사람이 모두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아주 이치가 있다. 리치화 원장이 한 말은 사실이고 근거가 있으니 무슨 잘못이 없다. 동료가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당신 오늘은 기색이 아주 좋아 보인다고 했다.
후에 이 1호 문건은 기록 보관소에 봉인돼 부장급 이상의 간부만 볼 수 있었다.
나흘 동안 생각과 판단을 거쳐 진선인 수련의 이 길을 나는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설령 사부님이 속인이라 할지라도(이는 당시의 나의 인식) 나는 사부님 은혜에 감사할 것이고 사부님을 존중할 것이며, 사부님을 해치고 대법을 해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념이 분명해진 후, 나는 또 ‘전법륜’을 받쳐 들었고, 몸과 마음은 또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중앙기관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압력이 몹시 컸지만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고 종래로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공간장을 청리해 주셨음을 알고 있었고 또한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나에게 위기를 해결해 주셨다. 나는 자신에게 대법제자의 풍모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일터에서 일할 것을 요구했더니 오히려 나에 대한 사람들의 존중과 호평을 얻었다.
예전의 수련생이 연이어 수련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법 공부 팀을 다시 회복하려고 준비한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온 하늘에 저녁노을이 곱게 물든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감동됐다. 우리는 옳게 한 것이다. 이는 우리에 대한 사부님의 긍정과 기대인 것이다.
6. 불법의 위엄
중앙기관에서 운동을 벌리는 것은 일수다. 특히 어떤 노간부는 상급에서 한 마디 명령이 어디를 가리키기만 하면 바로 친다.
전력을 다해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사람도 연달아 악보를 받았다.
기관에서 파룬궁 비판을 주관했던 사람은 40대의 젊은이였다. 막 부임했기에 노력하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한 대법제자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 주면서 경고했다. 절대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지 말라고. 그러나 그는 권고를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좌담회를 조직하고 파룬궁을 모욕했다. 일 년 후 그는 갑자기 몸이 불편해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이미 간암 말기였고, 일 년 후 고통스럽게 세상을 떴다.
다른 한 국장급 간부는 파룬궁 박해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책임진 부서에 파룬궁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부서의 사람을 조직하여 감시를 자행하다가 나중에는 이 수련생을 전향반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또 전 기관 대회에서 경험을 소개하고 목청껏 비판하면서 그녀의 각오를 과시했다. 얼마 안 되어 그녀의 딸이 해산할 때 뇌암을 발견했고 그녀는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딸은 암 병원에 보냈다. 아기는 집에 와서 젖을 달라고 울어댔고, 딸은 병원에서 어렵게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중에 아기가 두 돌 생일 때 세상을 하직했다.
한 사람은 원래 신체가 아주 좋았는데 늘 해외여행을 했다.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지 얼마 안 되어 부부 모두 췌장암에 걸려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또 한 노간부는 비판회에서 아주 발광적으로 사부님을 욕했다. 얼마 안 되어 뇌혈전에 걸려 더는 다시 말할 수 없게 됐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 더 들지 않겠다.
신변에서 발생한 이런 여러 사례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비참한 최후는 참으로 사람을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지해 불법에 죄를 지은 것이다. 이로부터 자신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책임감과 긴박감을 더 깊이 느끼게 됐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초학원지>병을 떼고 몸을 건강히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5/3372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