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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교수 ‘파룬궁수련자는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사람’

글/ 칭다오 파룬따파 제자

[밍후이왕] 나는 파룬따파를 20년 수련했고 날마다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걸어가고 있다. 날마다 평범해 보이지만 마음속 변화는 몹시 컸다. 파룬따파가 나를 개변했고 사부님께서 나를 육성해 주셨다. 아래에서는 내가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선 것과 수련 중 한국인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작은 이야기만 하려 한다.

나는 이렇게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1996년 7월 나는 갑자기 졸도해 병원에 가게 됐다. 주임의가 내 병을 보았는데 나는 당시 머리가 맑았으나 말을 할 수 없었는데 의사는 내가 ‘정신병’이라면서 가족들에게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라고 했다. 나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정신병원에 절대 가지 않겠다는 표시는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내 의견을 존중해 나를 집에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병원에서 나올 때 의사가 남편에게 무슨 물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았고 남편이 집에 와서 그 물건을 안방에 감추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흘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전신에 힘이 없어 화장실마저 가기 힘들어 그저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때 갑자기 의사가 남편에게 건네주었던 물건이 생각났다. ‘무엇일까?’ 몹시 호기심이 났다. 어디서 생긴 힘인지 나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그 물건을 어디에 감췄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히려 종이로 몇 번을 싼 ’전법륜’이란 책을 곧장 찾아냈다. 나는 오후에 그 책을 다 읽었는데 기적이 나타났다. 내 병이 대번에 다 나았던 것이다. 나는 물만두가 먹고 싶어 자전거에 아들을 싣고 식당에 나가서 물만두를 사먹었다. 이때부터 나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을 걷게 됐고 일신에 병이 없고 가벼웠다.

1997년 나는 현 병원의 병실청소 일을 하게 됐다. 사부님 요구대로 마음을 닦고 선행을 하면서 진정으로 환자를 배려했다. 나는 언제나 인내심 있게 환자 및 가족에게 위생을 지켜 좋은 위생습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었고, 성심으로 그들을 위해 봉사했다.

나는 아파서 처음으로 병원을 찾은 농촌 환자나 가족들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그들이 의사, 간호사와 아주 잘 협력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청소를 아주 깨끗하게 해 그들에게 좋은 치료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환자 및 가족들은 며칠 안 되어 나와 친숙하게 되고 심지어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병원에서 미화원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할 때마다 환자와 가족은 나에게 최고 점수를 주었다. 병원 미화원의 영예는 항상 나에게 있었다. 정공과 리 주임은 매번 우리 과에 와서 조사할 때면 내가 전 병원에서 일등이라고 칭찬했다.

본과의 주임, 수간호사는 나를 아주 긍정하면서 임시직원인 나에게 병원과 정식 계약을 하자고 했다. 또한 계약을 그들의 과로 지정해 내가 일할 수만 있다면 더는 과를 떠나지 않게 하려 했다. 그런데 다른 과의 과주임의 아내도 임시직원이어서 이 일은 틀어지게 됐다. 나는 마음에 두지 않고 사부님 말씀대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랐다. 이후에 집에서 장사를 하게 되어 남편이 도와달라고 해서 나는 병원을 떠나게 됐다.

수련은 나에게 명리를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남을 배려하며 너그럽고 대범한 사람이 되도록 해 비할 바 없는 행복을 느끼게 했다.

한국인 교수 ‘파룬궁수련자는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사람’

2005년 7월 소개로 칭다오 모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 집에서 일하게 됐다. 나는 청소하고 시장을 봐서 밥을 해주는 일을 하면서 교수의 옷과 이불을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오는 일을 했다.

이런 일은 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처음에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근무시간에 갑자기 집으로 와 내가 뭘 하는지 살펴보았다. 그가 서랍에 돈을 놓으면 나는 물건을 사고 교수에게 결산보고를 했다. 석 달이 지난 후 교수는 더는 결산 검사를 하지 않았고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 반에 퇴근하면서 중간에 집에 살피러 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나의 신앙을 몹시 존중했고 집안일을 모두 나에게 맡겼다. 나는 그에게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의 통역사는 30대 현지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교수에게 “아주머니가 연마하는 파룬궁은 중국 대륙에서는 금지된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교수는 “내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건데요”라고 말했다. 교수가 평소 가족들과 밖에서 식사할 때 통역사는 교수에게 “아주머니와 같이 가나요?”라고 물으면 교수는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이면 한 집 식구니 함께 가야지”라고 했다. 그가 차를 몰고 외출할 때면 언제나 나에게 차문을 열어주고 내가 차에 탄 후에야 그는 차를 몰고 갔으며 하차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했다. 교수 친구들은 한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대학 교수였다. 식사할 때면 교수는 늘 그들에게 열정적으로 나를 소개한다. “아주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참 좋습니다. 날마다 가부좌를 아주 오래 하는데 전 정말 탄복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도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중국인들 앞에서는 함부로 내가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전에는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마친 후에는 버스를 타고 칭다오시 곳곳에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린다. 어떤 때는 내가 외출하려 할 때 교수가 집에 있어 나갔다 오겠다고 인사하면 나에게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말한다. 그의 집에서 5년 동안 일하면서 나는 대법자료를 칭다오 구석구석에 배포해 대법의 복음을 전해주었다.

교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금속막대기를 수치가 표기되어 있는 자석판에 드리우고 사람의 심령을 측정하기를 즐긴다. 일반적인 속인은 많아야 200정도이고 통역사는 700, 교수는 800, 또 예수는 1200이라고 했다, 그들은 측정할 때마다 나에게 측정하라면서 심령 점수가 높을수록 신의 심령에 가깝다고 했다. 나는 이는 불이법문 문제에 관련되는 것이라 여겨 줄곧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 번은 통역사가 나에게 “아주머니는 감히 측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측정하면 200점도 넘지 못할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전법륜’ 책 속의 사부님 사진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법을 실증해 그들에게 대법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임을 보여줘야 하겠습니다. 사부님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파룬따파 제자이며, 대법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며 모든 것은 제 사부님께서 안배하십니다. 저는 측정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들이 측정하기를 원하니 그럼 측정해 보겠습니다. 측정결과는 당신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나는 금속막대기를 가볍게 자판에 놓았다. 막대기가 재빨리 돌더니 순간 원심으로 신속하게 돌아서 어디에 드리웠는지 전혀 볼 수 없었고, 자판상의 수치를 훨씬 초과해 전혀 계산할 수 없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예수의 수치보다 몇 배를 초과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했다. “이는 신분, 지위, 관직, 지식수준, 사업귀천과 모두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이 심령 측정 방법이 정확하다면 심령이 불성에 접근할수록 수치는 자연적으로 높게 마련입니다.”

이때부터 교수 집안 모든 사람들은 특별히 나를 존경했다. 특히 버릇이 고약해 나를 그녀 침대, 물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던 그 통역사도 나를 다르게 보고 나에게 그녀와 함께 하며 자신을 보호하게 했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별 수 없이 그녀가 잠이 든 후에야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 그녀는 나를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저녁에 발정념, 연공을 해야 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라고 하면 그녀도 별 수 없이 나를 놓아주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교수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수는 나를 가지 못하게 하면서 나에게 그냥 있으라고 했다. 그는 “이전에 고용했던 사람은 성실하지 못해 돈을 많이 쓴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또 물건을 훔쳤습니다.”라고 했다. 병원에서 교수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병원에 있었던 기간에도 월급을 그대로 주었다.

2010년 7월 교수는 캐나다 대학으로 가게 되어 그는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하면서 “저는 당신 같은 이런 훌륭한 집사를 찾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이 결혼해야 하고 집안일도 있어 함께 가지 못한다고 완곡히 사절했다. 작별할 때 교수는 “제가 가기 때문에 당신이 실업을 당했군요. 당신에게 한 달 치 월급을 더 드리겠으니 다시 일자리를 찾아보세요.”라고 말하면서 교수는 친히 차를 몰고 100km 밖에 있는 우리 집으로 나를 실어다주었다.

5년 동안 함께 살면서 교수와 그 고약한 여 통역사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느끼게 했고, 파룬따파의 초범성을 실증했다. 교수는 대법 책을 달라면서 캐나다에서 다시 파룬따파 제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후에 교수와 그의 딸이 나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의 딸은 흥분해서 말했다. “아빠가 절 데리고 가서 션윈을 봤어요! 정말 훌륭했어요! 션윈 공연을 본 사람만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 수 있어요, 정말 신 같았어요!”

2015년 교수가 중국에 와서 나와 여 통역사를 호텔로 초청했다. 그는 또 나에게 함께 캐나다에 가자고 했다. 나는 손녀가 곧 출생하게 되어 그의 염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고향 수련생들과 협력해 전심전력으로 대법을 실증하면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장발표: 2016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17/3378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