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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사실의 문장작성과 단어 선택에 주의하자

-폭로성 문장이 발표된 후 수련생이 보복의 박해를 받는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한 변호사가 “박해를 폭로한 한 편의 문장이 밍후이왕에 발표된 후 당사자 수련생이 구치소에서 보복성 박해를 당했다.”라고 언급했다. 변호사가 그 문장을 찾아내어 그 파급 경위를 설명했는데, 수감되어 있던 그 여자 수련생이 구치소에서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하는 등 야만적인 고문 학대를 당했다고 전했다. 폭로성 문장에서 지적된 내용은 “모 여자 경찰관의 표면은 지극히 위선적이다.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내어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 변호사는 “이 문장이 발표된 후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해당 여자 파룬궁수련생이 보복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식하지도 않았는데도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했고, 나중에는 식사도 제공받지 못했다 ….”

나의 개인적인 인식으로 볼 때 그런 문장을 써서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은 수련자의 자비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수련생을 때리고 괴롭히는 경찰을 말할 때는 가급적 자비로운 마음과 평화로운 말투로 표현해서 그들에게 이해관계를 설명해줘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잘못된 악행에서 선행을 계발해낼 수 있게 해야 하며, 그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투로 비난해서 수감돼 있는 수련생에게 보복의 상처를 유발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악랄한 언어로 그녀들을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교란과 파괴임을 발견하면 실제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가급적 평화롭고 자비로우며 선량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악이 사람을 이용할 때 사람 자신은 흔히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비록 이용당하는 사람이 늘 사상이 좋지 못한 사람이거나 혹은 좋지 못한 사상을 나타내는 사람일지라도). 다른 공간의 사악의 교란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격하게 정념(正念)으로 제거해 버려야 한다.” [1]

박해를 폭로하고 악행을 저지하는 글을 쓰는 방법은 마땅히 구체적인 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하되, 감정적이거나 사실을 확대시키는 용어로 상대방을 자극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법으로 그들에게 납치되어 합숙훈련대에 수용되어 강제노역을 당할 때 겹겹이 둘러싸인 험악한 환경을 타파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람을 욕하고 구타하며, 화장실 출입을 금지시키는 등등의 상황을 지적하는 서신을 고발함에 투서했다. 그렇지만 보복당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 경찰로부터 존중받고 신뢰를 얻었으므로 비교적 좋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소굴에서 풀려난 후에 납치당한 수련생을 위해 관련 책임자에게 일부 진상편지를 썼는데, 모두 구체적으로 사람과 사건을 지적해서 건의했다. 예를 들면, 모모 교도관은 교도소 규칙을 외우지 않은 수련생을 침대에 묶는 등등의 잘못된 문제를 지적해주었다. 나중에 석방되어 나온 수련생이 “그 교도관은 ‘편지를 받았다.’라고 하면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지도 않았잖아요?’라고 말했는데, 그는 나에게 화해하러 온 것입니다(이 수련생은 침대에 묶였었다).”라고 말했다. 수련생이 매우 똑똑히 봤는데 그 교도관은 내가 보낸 편지를 마음으로 읽었다고 했다. 그 여자 교도관은 과거부터 많은 수감자를 두려워 떨게 한 교도관이었다.

밍후이왕에 발표된 폭로문장들은 많은 독자를 상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610’ 사람들을 고려해야 하고 다음은 구치소와 교도소의 교도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내외 수많은 유력 인사가 알게 하려는 그 고려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총적으로 말해서 한 편의 문장은 수많은 독자를 상대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 플랫폼을 이용해 ‘610’ 책임자 등 각 관련 기관원들에게 박해당하고 있는 수련생들의 면면을 알게 해서 선량한 마음이 나오게 해야 한다.

설사 그들이 좋지 않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사건을 만들어 내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성품을 추악한 단어와 문장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을 밖으로 밀어 내는 것과 같다.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정확하고 또 좋은 결과로 유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면전에서나 또는 서신으로 진상을 알리더라도 수련자로서의 품격을유지해야 한다. 수련인은 중생을 선화(善化)하는 것이 아닌가? 악의적이고 추악한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매 한 글자 한 문장을 쓰더라도 모두 중생을 구도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우연히 만난 사람, 생활 중에서 만난 사람, 일하는 중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하여 여러분은 모두 진상을 알려야 한다. 바로 인간 세상에서 총총히 한번 지나가는 중에 미처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자비를 상대방에게 남겨주어야 한다.” [2]

상상해 보라. 만약 책임진 그 파출소장이 바로 우리 앞에 있을 때 그 사람을 행해 “겉모습과 다르게 지극히 위선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없다. 우리는 매우 친절하게 대하면서, 사건의 이해득실을 생각하며 설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한 편의 문장을 쓰고, 한 통의 편지를 쓸 때도, 바로 그 사람 앞에서 말하듯이 진심으로 그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물론 어떤 수련생은 “사악한 자들이 겁을 먹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사악에게 겁을 먹게 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미혹의 공간 중에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과거와 미래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직 최대한으로 구도할 뿐이다. 문장의 매 한 구절을 작성할 때 구도하는 마음을 갖고 쓴다면 효과는 다를 것이다.

천박한 나의 인식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들이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정진요지2-정법(正法)과 수련’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각지설법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6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2/3371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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