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칠순을 넘은 대법제자로 17년 정법노정 중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대법의 지도하에 오늘까지 걸어왔다. 자신의 수련체득을 써내 사존께 보고하려 한다. 정확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1. 법을 얻다
나의 고집스러운 관념 때문에 법을 접촉해서부터 진정으로 법을 얻기까지 5년이 걸렸다. 94년 가을, 어느 날 귀가 길에서 연공하러 가는 이웃 부부를 만났다. 그녀는 “저희와 함께 연공하러 갑시다!”라고 했다. 속으로 집으로 가는 김에 가자고 생각했다. 연공장에 도착했는데 마침 제2장 공법 포륜(抱輪)을 하고 있었다. 옆에 서서 따라 연공했다. 금방 손을 들었는데 누가 날 밀고 앞으로 가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공했다. 4장 공법을 다하고(그들 부부가 다 병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는 심장병이 심해 늘 구급치료를 했다.) 그들 둘에게 “형수님, 이 공법은 대단합니다. 절대 떠나지 말고 꼭 견지해 연마해요. 3개월 안에 형님 부부 병이 다 나을 것이라고 보증해요”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는 가지 않았다.
95년 어느 날, 아침 단련을 하고(태극권을 연마했음) 집으로 돌아가는데 사람들이 앉아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 옆에 앉아 따라서 가부좌를 했는데 몸이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연공을 다 한 후 “이건 무슨 공법이기에 이렇게 대단해요?”라고 물었더니 파룬궁이라고 했다. 또 “오늘 마침 돈을 내고 책을 사는데 당신도 40위안을 내요. 먼저 돈을 내면 책을 줘요”라고 했다.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을 듣자 ‘또 사기꾼이구나. 금방 물어봤는데 벌써 돈을 내라고?’라고 생각하며 다시는 가지 않았다. 이번에야 아침 단련 장소 주변에 전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고 공법을 소개하는 현수막이 매우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로 다시는 본 적이 없다. 1998년 9월 어느 날 점심 12시쯤이었다. 일하고 있는데(바느질집을 하고 있음) 눈을 뜰 수 없고 잠을 자고 싶었다. ‘왜 이러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낮에 자는 습관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는데 재봉틀에서 일어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이때 하늘을 떠받치고 땅에 우뚝 선 두 큰 신선이 나타났는데 한쪽에 하나씩 내 팔을 부추기고 가자 나는 “당신들 뭘 해요?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라고 외쳤다. 왼쪽에 선 큰 신선은 왼손으로 앞 아래쪽을 가리키면서 “유리강을 건너시오”라고 했다. 나는 “유리강이 뭐죠?”라고 물었다. 그는 “도착해서 한번 보면 알 것이오”라고 했다.
다가가 보니 강은 전부 모난 유리조각이었다. 마치 부서진 자동차 유리 같았다. 고개를 들고 보니 항성계가 있고 은하계가 있고 뒤돌아보니 인간세상은 이미 먼 곳에 있었다. 인간세상을 보니 혼탁한 공기에 차량 왕래가 끊이지 않았으며 바닥에서 3cm 높이의 작은 사람이 왔다 갔다 했다. 이렇게 멀리 왔으니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슬리퍼 밖에 신지 않았다. 이걸로 어떻게 건너지! 발이 찔려 찢어지지 않을까? 그 둘은 또 나를 재촉했다. 나는 “건널게요! 그런데 어떻게 건너가야 할지는 생각해야죠”라고 하자 그는 “아무것도 신을 수 없고 슬리퍼도 벗어야 하오”라고 했다. ‘벗으라고 하면 벗자, 퇴로가 없는데 죽기 살기로 하자’고 생각하고 슬리퍼를 양쪽으로 내던지고 어떻게 갈지 머리를 들고 봤다. 가로 건너면 앞의 하늘이 너무 낮고 좁아 재미없어 보였고 오른쪽 앞 사선으로 건너면 하늘이 높고 땅이 넓었으며 하늘에 큰 바퀴가 걸려 있었으며 좌우로 돌고 있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다. 거기로 간다고 말하며 건너갔다. 이때 옆에 있던 큰 신선이 전부 사라졌다. 이때 앞은 끝도 보이지 않은 늪지로 변하자 나는 울고 후회했지만 돌아갈 수 없고 죽어도 건너야 했다. 시험 삼아 앞으로 갔는데 갈수록 아래로 빠지자 두려웠다. ‘이렇다가 여기서 죽겠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라고 생각하고 엎드려 밖으로 기어갔고 또 변두리에서부터 서쪽으로 오랜 시간 기어갔다. 끝에 도착하자 5cm 넓이 작은 담벼락이 있었는데 위에는 쇠울타리로된 그물벽이 있었다. 난 그물벽을 잡고 발을 5cm 넓은 작은 담벼락 위에 놓고 조금씩 어렵게 앞으로 갔다. 중간에 시련이 아주 많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물러서지 않았고 다행히 순조롭게 지나왔다. 좀 휴식하고 서서 또 앞으로 갔는데 이때 앞에 또 9개의 수정석이 나타났다. 녹색에다 투명하고 반들반들하고 반짝였다. 또 어떻게 지날지 걱정했다.
갑자기 어릴 적에 들었던 신화이야기가 생각났다. 천상의 선녀가 한 속인과 결혼했는데 4년 후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기 전에 남편이 언제 또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선녀는 지성이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떠났다. 또 2년이 지났고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선녀를 찾으러 떠났다. 도중에서도 9개 수정석산에 부딪혔는데 지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아내여, 금생에 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산 앞에서 죽으면 다음 생에 봐요”고 말하고 머리를 박았는데 무의식에 머리를 만져보니 죽지 않았고 고개를 들고 보니 큰 대문이 하나 나타났으며 잇달아 그 문도 전부 열렸다. 이렇게 그는 지나갔고 자신의 소원을 성취했다.
이것을 생각하자 그가 지나갈 수 있으면 나도 지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위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손을 얹으면 계단 하나가 생겼다. 이렇게 줄곧 올라왔고 그 큰 바퀴와 아직 두 사람 키만한 거리가 남았는데 계단이 없어졌다. 나는 또 울었고 절망하면서 “끝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더 올라갈 수 없어”라고 말하며 또 내려왔다. 이때 한 큰 신선이 왔는데 “가시오, 도와드리겠소”라고 말하는 동시에 내게 손을 내밀었는데 나는 그의 손바닥에 서 있게 됐고 단번에 날 큰 바퀴로 보내줬다. 천당에 온 느낌이었는데 기뻐하는 사이에 돌아왔다.(전후 3초 만에 전 과정을 끝냈다)
신께서 나보고 이후의 길을 선택하라고 하신 것으로 이것은 신께서 날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계속할 수 없고 거기에 앉아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한 동료가 와서 옷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나는 공교롭게도 그만두려고 한다고 했다. 그녀는 왜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상한 꿈을 꿨다며 온 과정을 그녀에게 서술해줬다. 그녀는 “아, 파룬궁과 인연이 있군요! 간 곳은 아마 파룬세계일 거예요”라고 했다. 그리고 나보고 그녀를 따라 파룬궁을 연마하자고 했다. 나는 지금 아직 가기 싫고 먼저 책을 빌려서 좀 보게 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래요, 가져다줄게요”라고 했다. 나는 “함께 가요”라고 했다.
책을 모두 13권(2권의 수련이야기)을 가져왔고 일주일 시간을 내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않고 울면서 몇 번이나 봤다. 드디어 평생 아무리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다 풀었다. 책을 펼치고 사부님 법상을 봤을 때 통곡했다. ‘이 분이 바로 내가 평생 어렵게 찾고 기다렸던 분이 아니신가? 꿈속의 큰 신선은 바로 이 분이 아니신가? 깨달음이 너무 나빴구나. 사부님, 이 못난 제자를 받아주세요! 사부님이시여, 꼭 잘 수련하겠습니다. 저에게 3개월만 주세요. 이쪽 사람과 일을 전부 처리할게요. 너무 많은 기타 공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문화대혁명 후기부터 뭐든 배웠고 또 태극권을 20년 넘게 배웠기에 몸이 너무 난잡합니다. 이런 것들을 갖고 가면 연마할 수 없어요.’ 나는 아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사부님을 따라 가겠다고 맹세했다. ‘사부님을 꼭 따라 가겠습니다. 불바다로 뛰어들고 칼산에 올라도 연마하겠습니다.’
이 기간에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이때 많은 반대를 받았고 가족, 그리고 동료들도 연마하지 말라고 했다. 가족에게 이미 마음을 먹었고 뭘 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말려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누구도 날 막지 못하고 꼭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오고 사부님께 심혈을 끼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했다.
수련하겠다고 결정하자 시시각각 고험이 왔다. 첫 번째 고험은 바로 이익에 대한 마음이다. 당시 이미 대법 책을 공개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게 했는데 한 서점에서 아직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서점에 사러 갔는데 불법 복제판이었다. 나는 10권을 샀는데 집에 돌아와 계산해 보니 책 두 권 값을 주지 않았다. 안 된다, 대법을 수련했으므로 돈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동을 받은 서점 주인은 사부님 법상을 하나 주고 감사를 표했다. 나는 기뻐하며 받았다.
잇달아 또 한 번 생사의 고험을 넘었다. 어느 날 제5장 공법을 연마하는데 입정하자 경찰봉을 쥔 한 경찰이 발로 내 왼쪽 다리를 차면서 “일어나, 일어나”라고 했다. 나는 눈을 뜨고 “뭘 하는 거예요? 왜 차요?”라고 했다. 그는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 걸 몰라? 머리를 들고 앞을 봐”라고 했다. 무의식으로 고개를 들고 보니 앞에 한 줄로 선 대법제자들이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참수당하고 있고 있었다. 나는 “그깟 목을 자르는 건가요! 제 차례가 되면 불러요”라고 했다. 좀 지나 발로 날 찼다. “왜 또 차요?” “당신 차례야.” “그럼 목을 베요, 움직일 필요 없어요.” 그는 칼을 들고 내 목을 자르자 머리가 떨어지고 피가 멀리 튕겨 나갔지만 몸은 까딱하지 않고 거기에 앉아서 가부좌를 했고 나의 원신은 훨훨 날아 왼쪽으로 날아갔다. 입정에서 나온 후 아주 진실했는데 이 생사의 관을 잘 넘겼다고 기뻐했다.
2.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다
3개월 후인 1999년 1월 1일부터 정식 수련하기 시작했다. 매일 견지해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법공부하고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봤다. 매일 기뻐했고 책을 많이 보고 싶었고 한번 보면 한번 기록해놓았다.
한 수련생이 “이것은 유위(有爲)가 아닌가요? 추구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얻어야 해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기록하지 않고 이삼일에 한번 씩 봤다. 이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신체를 정화해주셨는데 관정해주실 때 아주 편안했다. 정말로 한 가닥 뜨거운 흐름이 온몸을 통과하는 것 같았고 몸이 매우 상쾌했고 계단을 오를 때 누가 밀어주는 것 같았다. 언제나 법을 늦게 얻었다고 놓친 시간을 보충하려 했다.
이 기간에 아주 생생한 꿈을 꿨다. 많은 수련생과 함께 큰 배에 올랐는데 바람이 없고 만원이 되어 더는 올라올 수 없었다. 이때 하늘에서 시커먼 큰 막이 내려오자 한가닥 빛도 없었고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도 보이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숨을 죽이고 있고 물 뿌린 듯 조용했다. 이때 ‘출항!’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세게 흔들렸고 여기저기 부딪혔고 파도를 따라 곤두박질했다. 옆에 있는 수련생이 풍덩풍덩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자신의 사상이 없어진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배가 움직이지 않자 나도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큰 막이 서서히 벗겨졌고 태양이 떠올랐으며 날씨가 화창했다. 고개를 숙여보니 3분의 2의 사람이 떨어졌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때 나도 깨어났다.
큰 재난이 올 것이니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웠다. ‘7.20’부터 사람을 잡아가기 시작하자 이후에 수련생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 연공장에 20여 명이 있었는데 절반 이상 사람이 책을 바쳤고 어떤 사람은 소위 ‘보증서’를 쓰고 연마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바치지 않았고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 늦게 들어와 아는 수련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젊은 한 수련생(재직)을 찾아가 그녀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그녀는 내게 강판에 글자를 새길 줄 아느냐고 물었다. 5년 반만 공부해 모른다고 했다. 그녀가 가르쳐주겠다고 하자 나는 동의했다.
우리는 강판에 진상을 새기고 스스로 인쇄하고 배포했다. 이후에 젊은 수련생은 일자리가 없어질까 봐 이사하고 감히 날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도움이 없자 너무 느렸다. 그리하여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시장에서 나일론 천과 페인트를 사서 혼자서 현수막을 만들고 나가서 여기저기 걸었지만 남의 눈을 피하면서 하지 않았다. 이후에 수련생과 연락하자 수련생이 진상 스티커를 줬고 나는 나가서 붙였다. 한번은 100장을 들고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는데 나갔고 정거장, 전봇대에 붙였다. 길에서 경찰차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봤는데 조금 걷자 잠복근무하고 있는 것을 봤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연관시키지 않았고 마치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계속 붙였다.
이때 앞 작은 나무 뒤에서 30여세의 키는 180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오더니 “뭘 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표어를 붙여요”라고 했다. “무슨 내용인데요?” “혼자 봐요.” “이리로 와요, 이야기 좀 합시다.” “무슨 말할 것 있어요?”라고 앞으로 걸어가자 그는 “멈춰요!”라고 했다. 마침 녹색 신호등으로 변해 건너편으로 뛰어가자 바로 빨간 신호등으로 변했다. 이때 속으로 아직 스티커 3장이 남았는데 이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계속 붙이는 것을 보자 그는 또 쫓아왔다. 마침 다 붙이고 나는 달아났다. 그는 뒤에서 도망갈 곳이 없다고 외쳤다. 뒤돌아보니 아직 10여 미터 먼 곳에 있었다. 속으로 ‘넌 거기에 서서 움직이지 마라, 날 따라잡지 못한다’라고 생각했다. 하이힐을 신고 또 500미터를 달리고 길모퉁이를 돌자 많은 사람이 길가에 앉아 바비큐를 먹고 있었고 오른쪽 작은 나무 뒤에는 난간벽이었다. 그가 날 잡으라고 외치면 어떻게 가겠는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작은 나무 뒤에 웅크리고 앉아 겉옷을 벗어 치마바지 주머니에 넣고 묶었던 긴 머리를 풀어헤쳤고 미리 준비해둔 안경을 끼고 짧은 옷을 입어 딴 사람처럼 변장했다. 띠를 매는 척하며 웃으며 대범하게 걸어나왔다. 마침 갓길 돌 위에 서서 사방으로 둘러보는 그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는 웃었고 나도 웃었지만 그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이때야 그가 표준 경찰 차림이고 무전기와 경찰봉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나중에 두려워했다. 집에 도착한 후 사부님께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못했습니다. 걱정하게 해드렸습니다. 이후로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범 같은 기세에 쟁투심으로 하면 무모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수련해낼 수 있겠는가? 비슷한 이런 일을 여러 차례 만났지만 무사했다. 이것은 한 가지 사례다.
3. 법을 베껴 쓰고 외우며 심성을 닦다
이렇게 좋은 법은 외워둬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법을 내 생명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 생명을 주신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2001년부터 법을 외우려고 시도했는데 방법이 정확치 않아 외우려고 할수록 외울 수 없었다. ‘전법륜’은 법이고 속인의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4년에 이르러 사부님께 무릎 꿇고 맹세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견지해 법을 외워내겠다고 했다. 이전에 1년 동안 외웠는데 왜 외우지 못했을까? 집착을 가지고 추구하는 마음으로 외웠기 때문에 외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이 마음을 내려놓고 1강부터 9강까지 반복적으로 암송했다. 12번까지 외웠을 때 자꾸 법을 외우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사부님께 맹세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감히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외우겠다는 약속을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도 모르게 법을 대뇌에 넣어뒀다. 비록 줄줄이 외울 수 없지만 이미 익숙하게 기억했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으로 수련을 지도할 수 있었으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 알았다. 법은 내게 지혜를 열어줬고 법은 내게 담을 키워줬으므로 머리가 영민하고 법리가 똑똑하며 진상을 알리는 중 자유자재 했고 각종 갑작스러운 위험에 대응할 수 있었다.
법을 외우는 데만 만족하지 않았다. 2006년부터 법을 베껴 쓰기 시작했는데 ‘전법륜’을 1년에 한 번씩 외우면서 베껴 썼고 지금까지 베껴 쓰고 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사부님의 각지 설법이 하나 발표되면 하나씩 베껴 썼다. ‘홍음’, ‘홍음2’, ‘홍음3’의 가사를 익숙하게 외워 마음에 새겨뒀고 ‘홍음4’는 4번 베껴 썼고 10번 읽었다. 신경문이 발표되면 적어도 10번은 봤고 짧은 경문은 16번 익숙하게 외웠다. 법을 외우고 베껴 쓰는 중 수확이 매우 많았고 동시에 심성도 제고됐고 승화됐다.
예를 하나 들겠다.
한번은 ‘심성제고’ 한 단락을 외울 때 마침 가정관을 넘고 있었다. 나의 임금카드 때문에 남편과 싸워서 보름이나 서로 말하지 않았다. 돈을 진상자료를 만드는데 쓸까 봐 그는 한 푼도 내게 주지 않았고 그에게서 돈을 받아써야 했다. 임금카드를 반드시 내게 줘야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빼앗아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 한 단락 법을 아주 익숙하게 외웠는데 그때는 어떻게 해도 외우지 못했고 외울수록 더욱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어떻게 된 거지?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네. 멈추고 원인을 찾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들자 ‘심성제고’란 네 글자가 보였다. 갑자기 심성제고를 해야 할 때가 됐고 싸우면서 법을 외우는 것은 사부님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한다. 때로는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이 이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바로 집착심으로서, 곧 이런 방법으로 당신에게 이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문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 “납득이 됐습니다. 갖지 않고 그와 싸우지 않겠습니다. 전생에 그에게 진 빚이고 이런 방법으로 갚는 것일 겁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그 한 단락 법을 외우자 익숙하게 외웠고 지금까지 생생하다. 마음을 내려놓자 심성도 올라왔고 공도 따라 올라왔으며 환경도 변했다. 남편에게 “납득이 됐어요. 임금카드를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당신이 가져요. 아마 당신에게 진 빚일 거예요. 빚을 갚는다고 생각할게요”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저도 납득이 됐어요. 가져가요”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주는 거예요? 그러면 매달 100위안을 꺼내 진상자료를 만드는데 사용할 게요. 이것도 당신의 위덕이에요. 임금카드는 돌려줄게요”라고 했다. 그는 동의했다. 내가 얻어낸 것은 돈이 아니라 권리고 대법을 수련하는 권리다. 그도 다시는 날 상관하지 않았다. 그때 임금이 겨우 몇 백 위안 밖에 안됐다. 사부님께서 “무릇 연공(煉功) 중에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나타나면, 당신이 아직도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 당신 자신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4. 진상을 알릴 때 당신을 관심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지 말라
진상을 알리는 것은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고 매일 이야기가 있다. 예를 몇 가지 들겠다. 한번은 한 중년 여성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녀는 아주 듣기 좋아했다. 삼퇴를 알렸을 때 그녀 집에 도착했다. 단번에 그녀는 방향을 바꾸어 갔다(자전거를 타 매우 빨랐다). 집으로 도착한 후 매우 후회했다. ‘왜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는가.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 그녀를 따라갔으면 탈퇴시켰을 텐데’하며 스스로 원망했다. 아주 자책했고 다시는 인연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고 사부님께 맹세했다. 보름 후에 또 그녀를 만났고 기쁘게도 그녀 세 식구가 다 탈퇴했다.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렸다.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고 난 사부님의 배치만 들었을 뿐이다.
한번은 정거장에서 진상을 알렸다. 41세 예쁜 여경을 만났는데 몸에 어울리지 않은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속으로 꼭 이 여자에게 진상을 알리겠다고 했다. 다가가 “이렇게 예쁘신데 어찌 이런 옷을 입었어요? 미의 점수가 떨어지게요”라고 했다. 그녀는 엄숙한 얼굴로 “경찰이에요, 이걸 입지 않으면 뭘 입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오늘은 일요일인데 갈아입고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죠, 아직 젊으니까요. 늙으면 기회가 없어요”라고 했다. 계속해서 직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거기에 파룬궁(수련생)이 있어요. 제 한 친척이 파룬궁(수련생)인데 교도소에 수감됐어요. 그녀들은 다 좋은 사람이니 만나면 꼭 잘 대해줘요”라고 했다. 그녀는 흉악스럽게 “파룬궁(수련생)인가요? 믿지 않겠지만 지금 당장 잡아 교도소로 보낼 수 있어!”라고 했다. 나는 “믿어요, 동생, 사실 젊고 예쁘고 선량해보여서 알려주는 것이에요. 잘못을 해 자기를 해칠까 봐 걱정해서 그래요. 만약 진짜로 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 동생 한 사람만 구하는 것이 아니고 온가족을 구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로 절 교도소에 보내 몇 년 있게 해도 가치가 있어요. 진심이에요. 외조카(역시 경찰) 말인데 그에게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듣지 않아 결과 지금 업보를 받아 50세를 금방 넘었는데 일할 수 없게 됐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외조카가 누군데요?”라고 물었다. 그리하여 외조카 이름,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알려주자 그녀는 믿었고 바로 얼굴이 밝아지더니 “언니는 참 착해요, 우리 그곳에는 지금 파룬궁이 없어요. 예전에 모두 이송됐고 지금 우리 교도소에 사형수와 중범죄자 뿐이에요. 저는 사무실에서 일해요. 하신 말씀을 믿어요”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당원이지요, 탈퇴시켜줄게요”라고 했다. 그녀는 동의했다. 그녀가 먼저 버스에서 내렸는데 내리기 전에 그녀의 아들도 당원이서 지금 동북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아들도 탈당시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어떤 경찰은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탈퇴하라고 하면 그는 피해다니지만 쫓아다니면서 많이 탈퇴시켰다. 재직경찰도 있고 제2선으로 물러선 사람, 퇴직한 사복 경찰도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날 한 번 찾으면 그 때마다 진상을 알렸다. 3개 지역사회에서 살았었는데 다 고발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변함없이 가는 곳마다 진상을 알렸다. 2개 지역사회에서 여러 번 날 찾았다.
첫 번째 지역사회에서 처음으로 날 찾을 때 바로 가오룽룽(高蓉蓉)이 지명수배 당했을 때다. 나는 고소당했다. 곳곳에 ‘파룬궁(수련생) 한 명을 고소하면 500위안, 현장에서 붙잡으면 1,000위안 보상한다’고 붙여있었다.
어느 날 지역사회 주임이 우리 남편을 찾아와 이 일을 말하고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았다. 이튿날 남편 몰래 지역사회에 갔다. 주임은 “마침 잘 왔네요, 누가 당신을 고발했어요. 그녀는 500위안만 받고 1,000위안은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현장에서 봤는 데도요. 우리 지역사회의 명예를 위해 그녀에게 500위안을 줘야합니다. 아니면 그녀가 파출소에 고발하겠다고 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주임, 잘 들어요. 제 목숨은 500위안에 팔지 않아요. 그녀가 돈이 필요하면 절 찾아오라고 해요, 1만 위안도 줄 수 있어요. 한 말은 꼭 지킵니다”라고 했다. 말할 때 목소리는 꽤 컸기 때문에 주임은 “소리 좀 낮춰요. 저 방에 경찰이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가 들으면 더 좋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는 “당신이 이런 태도라면 우리도 해결할 수 없어요. 그녀에게 당신의 뜻을 전달하는 수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러면 감사하죠”라고 했다. 이후에 이 일은 흐지부지됐고 다시는 날 찾지 않았다.
두 번째 지역사회에서도 여러 번 날 찾았다.찾을 때마다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마지막 한 번 날 찾아왔을 때의 일이다.
날 찾는다고 알고 내가 찾아갔다. 방에 들어가자 주임은 “마침 잘 왔네요. 누가 당신을 고발했어요. 한번 확인해봅시다”라고 했다. 나는 “말해요”라고 했다. 다음은 우리의 대화다.
주임: “지역사회에서 당신이 전단지와 CD를 배포했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나: “지역사회에서 배포하지 않았어요. 복도에 집어던지면 너무 아까워요. 그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주임: “그럼 어디에 가서 배포해요?”
나: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배포해요.”
주임: “누구에게 줘요?”
나: “가지겠다면 누구나 줘요.”
주임: “달라고 하는 사람 있어요?”
나: “이렇게 좋은 물건인데 왜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겠어요. 어디에 가든 서로 달라고 해요, 얼마 가져가면 그만큼 나눠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
주임: “그럼 오늘 또 갔어요?”
나: “갔어요.”
주임: “지금 몸에 아직 있어요?”
나: “있어요, 갖고 싶으시면 CD 두 장 드릴게요.”
그리고 CD 두 장을 꺼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리게 일부러 크게 말했다.
이때 그는 놀라서 목소리도 변했고 손도 떨었다. “빨리 가져가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이후로 당신을 찾지 않을 테니 당신도 찾아오지 말아요. 날 설득할 순 없어요.”
몇 년 지났는데 그는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다.
전 사무실 7명 중 5명이 ‘삼퇴’했고 현임 7명 중에는 아직 한 사람도 탈퇴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파룬궁을 모함하기 위해 집집마다 다니며 서명하고 보증서를 쓰라고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찾아가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서명을 진행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집집에 대법을 비방하는 2권의 책을 나눠주려 했는데 내가 찾아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들도 배포하지 않았다. 이후로 다시는 대법제자에게 불리한 일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아침시장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데 한 중년 남자가 흉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왜 이렇게 해요?” 어떤 변명을 들어도 그가 사람을 때릴 것 같았다. 그리하여 웃으며 “목숨을 걸고 군자를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격동하지 않고 조용하게 “이렇게 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라고 했다. 알았다. 그는 대법제자의 가족이라서 이런 것이고 그는 날 위한 것이었다. “미안해요, 걱정을 끼쳐드리게 했습니다.” 그는 “꼭 안전을 주의하세요!”라고 했다. 이 일은 날 일깨워줬고 꼭 잘하고 가족에 대한 상처를 감소시키겠다고 맹세했고 시시각각 마음에 새겨뒀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과정 중 수중의 자료를 빼앗아 도와서 배포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배포하면서 “모두 파룬궁을 믿고 공산당을 믿지 마요”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날 보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한번은 배포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수중의 자료를 머리 위로 높이 들고 흔들면서 큰소리로 “빨리 와 봐요, 중국 가장 큰 뉴스예요!”라고 했다.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택시를 태워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협박을 받았을 때 곤경에서 구원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안전을 주의하라고 당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선량한 사람이 날 격려해줬다.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매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고 장소, 환경을 가리지 않고 급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으며 선량을 지켰다.
5. 진상을 전하는 중 나타난 기적들
1) 한번은 도시와 농촌 경계 지역에 가서 진상을 알리려고 백여 명 분 진상자료를 가져갔다. 자전거를 타고 왕복하는데 1시간 넘게 걸리는데 그날 3곳에 배포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4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해 몇 개 시계를 모아놓고 확인한 결과 확실히 45분이었다. 마음이 매우 격동했다. 어쩐지 귓가에 바람이 일고 차량과 같이 지나갈 때 주변에 무형의 병풍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다른 공간으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사부님께서 물을 주셨다. 한번은 베이징으로 가는 차표를 샀는데 가기 전에 남편이 발견하고 숨겼다. 집으로 돌아온 후 차표가 보이지 않고 집에 다른 사람이 없자 직접 남편에게 달라고 했다. 혼자만의 차표가 아니고 두 사람 차표였기에 반드시 가져가야 했다. 그는 주지 않고 태웠다고 했다. 그가 태울 수는 없고 주지 않을 뿐이다. 빨리 주지 않으면 기차를 놓친다. 그리하여 창문을 열고 밖을 향해 큰 소리로 “베이징으로 가려고 해요, 차표를 줘요!”라고 했다. 그러자 겁이 난 그는 날 때리며 방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걸었다. 어디에서 나온 큰 힘인지 한발로 차자 문이 열렸다. 내가 화를 내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차표를 돌려주고 한마디 했다. “파출소 경찰보고 수갑을 갖고 당신을 찾아가라고 할 거야!” 그가 진짜로 이런 일을 할까 봐 차표를 수련생에게 보내주고 따로 갔다. 역전에 도착하니 마침 12시였고 십 몇 분이면 기차는 떠난다. 앉아서 생각했다. ‘사부님이시여,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참지 않았는데 잘못했을까요,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갈 수 없어요. 사부님, 용서해주십시오.’ 이때 왼쪽 윗 방향에서 누군가 물 한 병을 건네줬다. 하늘색 미존(Mizone)이었다. 물을 받아 쥐고 누가 준 것인지 돌아서서 보니 사부님께서 천천히 몸을 돌리고 왼쪽 뒤 위쪽 방향으로 천정까지 가서 사라지셨다. 당시 감동해 소리를 내어 울었는데 주변 사람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시간이 되자 수련생도 도착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하지 않았군요”라고 했다
3) 사부님께서 구해주셨다. 그 겨울은 가장 추웠는데 최저온도가 34도, 35도였다. 한번은 진상자료를 보내는 중 8층 건물 아래까지 왔다. 바람이 매우 강해서 이 8층 건물 꼭대기에서 역청을 끓이는 큰 널판자가 내 머리꼭대기를 향해 떨어졌다. 갑자기 한 가닥 힘이 자전거와 나를 단번에 큰 길 맞은편으로 옮겨놓았다. 뒤돌아보니 저녁 9시라 길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감동을 받은 나는 울었다.
4) 사부님께서 큰 복숭아를 먹으라고 주셨다. 한번은 진상자료를 보내는데 아침 7시가 넘어 집을 떠났고 오후 2시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어지럽고 별이 보였으며 매우 배고팠다. 아침에 무엇을 먹었기에 금방 점심이 지났는데 이렇게까지 배고프지? 원래 아침에 밥을 덜었는데 뜨거워 식혔다 먹자고 생각하고 먼저 가져가려는 물건을 준비하고 옷을 입자 나갔고 밥 먹는 것을 새까맣게 잊었던 것이었다. 생각 중 눈앞에 싱싱하고 큰 복숭아가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하지도 않고 가져와 한 입 먹었다. 와, 정말 달콤했다! 눈을 감고 맛본 후 삼키고 또 한 입 먹으려고 눈을 떠보니 복숭아가 없어졌다. 이때 한 가닥의 에너지가 온몸을 통과했고 금방 배고픈 느낌은 완전히 없어져 조금도 힘들지 않게 됐다.
문장을 쓸 줄 모른다. 다만 수련의 실화, 즉 일기다. 최후의 길을 잘 걷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3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3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5/3369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