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츠후이(慈慧)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에 대한 평어’에서 “악경(惡警)과 나쁜 사람을 폭로하고 사회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공포(公布)하는, 이런 방법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악인을 두려워 떨게 하는 더할 수 없는 큰 작용을 일으켰다. 동시에 또한 현지에서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민중들에게 사악의 박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폭로와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또 거짓말에 해를 입고 기만당한 민중을 구도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다. 중국의 전체 대법제자와 신수련생이 모두 이 일을 잘하기를 희망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우리 지역에서 많은 수련생이 불법으로 체포당해 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박해를 반대하고 수련생들을 구조하는 중에서 처음에 놀라고 겁이 나서 벌벌 떨던 데서부터 점차 두려운 마음을 극복했고 동정심과 정의로부터 경지가 높아진 자비를 느꼈으며 할 줄 모르던 데서부터 점차 성숙해졌고 걸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를 떠날 수 없었다.
끊임없는 법 공부와 사부님의 깨우침을 통해 이 길을 가는 것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구조에 참여한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수련생들이지만 수련생들이 박해당하기만 하면 나는 모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무사(無私)함이 새 우주표준에 부합되고 이 표준에 도달해야만 구세력의 배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내가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수련생들을 구조한 경험을 써서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고 진상을 알리다
2009년, 우리 지역의 수련생 A가 국가보안대에 납치되어 컴퓨터 등 물품을 몰수당했다. 우리는 먼저 수련생 A의 남편을 찾아가기로 했고 그녀의 남편이 나서서 사람을 요구할 것을 희망했다. 수련생 A의 남편은 엔지니어이고 19년 동안 설계한 도면 파일이 모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다. 컴퓨터는 그에게 아주 중요했다. 나는 그 당시 아주 긍정적으로 그녀의 남편에게 말했다. “컴퓨터를 꼭 찾아올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같이 갈게요.” 그는 “가지 마세요, 당신도 함께 잡힐 수 있어요. 공산당은 도리를 따지지 않아요.” 반나절이나 말해도 그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후에 우리는 이웃의 한 수련생의 아들이 납치되자 그녀(어머니)가 공안, 검찰, 법원에 진상을 알려 나중에 아들을 구조해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수련생을 모셔 와서 우리와 함께 가서 진상을 알릴 것을 요구했다. 수련생 A의 남편도 마침내 가서 사람을 요구하는 데 동의했다. 이것은 우리 지역 전체가 함께 나서서 공안, 검찰, 법원에 가서 진상을 알린 첫 번째 사례이다.
국가 보안대로 가기 전날 저녁 나는 온밤 잠을 자지 못했고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공안, 검찰, 법원의 사람들이 ‘진, 선, 인’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에 불법으로 구치소에 감금되었고 경찰이 수련생을 때리는 것을 직접 보았으며 나도 경찰에게 맞았었다. (사부님의 경문을 외웠기 때문) 또한,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은 국가 보안대에 가서 몰수당한 재물을 요구했다가 불법적인 형을 받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사지가 떨렸다.
다음날, 국가보안대 계단을 오를 때 내 다리가 떨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자신에게 “정말 못났다. 진상을 알리러 왔는데 무엇이 무서운가?”라고 말했다. 그때 나와 함께 온 수련생을 보았는데 그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두렵지 않게 됐다. 국가보안대 대장과 말할 때 나의 두려워하는 모든 물질이 전부 사라졌다. 그 당시 나는 보안대장에게 “안녕하세요. 여기서 일한 지 아주 오래돼 파룬궁수련생들을 상대한 지도 오래되었을 것이고 그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네요. 당신은 그들과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어찌 모질게 좋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나요?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데 만약 타지에서 만난다면 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눈물을 흘릴 거예요. 문화대혁명 이후를 보세요, 그 좋은 사람을 박해한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을 800여 명이나 윈난(雲南)에 끌고 가서 비밀리에 총살했다고 보도되었어요. 그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요. 대장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지 않기를 바랄게요.” 대장은 나의 말을 들은 후, 물을 따르는 손이 몇 번 떨렸고 방안에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대화 중에서 우리는 대장의 전화번호를 얻어냈고 수련생의 남편은 몇 번 전화하여 나중에 컴퓨터를 찾아왔다.
컴퓨터를 찾아온 것은 내가 후에 공안, 검찰, 법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데 자신감을 더해 주었다. 나와 타지 수련생은 여러 번 협력하여 공안, 검찰, 법원에 직접 가서 진상을 알렸고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변호사계에 진상을 알려 수련생들을 걸어 나오게 하다
2011년, 우리지역에서 두 수련생이 납치되었고 당지 수련생들은 공동으로 자금을 거두어 베이징에서 변호사 둘을 청했다. 그 당시 수련생을 구조하는 희망을 변호사에게 의지했었는데 결과는 두 수련생이 억울하게도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그 당시 우리 지역에서 공안, 검찰, 법원에 갈 수 있는 수련생들이 아직 아주 적었다. 나는 만약 더 많은 수련생이 참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했다. 그 당시, ‘밍후이주간’에 기타 지역의 수련생들이 그 지역 변호사계에 진상을 알리는 문장이 실렸고 나에게 큰 계발을 주었다. 나는 협조인 수련생을 찾아가 상의하면서 우리 지역의 변호사계 인사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럼 우리도 진상을 알리자고 말했고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리하여 당지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으로 협조할 것을 통지했다.
다음날, 우리는 두 명의 수련생의 1심 판결문 복사본 및 사전에 써놓은 상소문을 가지고 재심을 맡을 변호사를 청한다는 명의로 현지 변호사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먼저 변호사에게 상소문을 넘겨서 보게 한 후 다시 1심 판결문을 보게 했다. 변호사는 수련생이 불법으로 5년형을 받은 것을 보고 아주 분개하였고 바로 그의 동료에게 전화해서 “모모 법관은 너무 말이 아니다. 파룬궁수련생이 무엇을 했다고 집에서 잡아가서 5년형을 내렸어.”라고 말하면서 물었다. “너는 이 2심의 안건을 맡을 거야?”라고 했고 전화 저쪽에서 들리는 말은 “이 세월에 파룬궁 안건은 감히 맡지 못하겠어, 위에서 압력을 가하니 그래도 베이징의 변호사들이 대단해, 감히 맡아!”라고 했다.
이렇게 더 많은 수련생이 나와서 참여했고 많은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가서 더 많은 변호사에게 진상을 알렸다. 돌아가서 모두 교류했다. 수련생은 “이번에 나와서 진상을 알린 것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이후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알려서 모두 함께 갑시다.”라고 말했다.
법관이 다시는 파룬궁의 안건을 맡지 않겠다고 하다
두 수련생이 불법으로 형을 선고받은 후, 수련생들은 상의하여 스티커로 국가 보안대 대장과 주심 법관의 악행을 폭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우선 그들의 집 주소와 가족들의 이름 및 직장, 그다음 그들이 파룬궁을 박해한 악행을 수집하고 그들의 사진을 첨부하여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붙였다. 악행이 드러난 후, 우리는 그들에게 전화하여 이렇게 한 목적을 알리고 그들에게 좋지 않으니 그들이 다시는 파룬궁제자들을 박해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그 법관은 압력을 느꼈고 ‘610’ 그 무리가 그에게 파룬궁에게 형을 내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악인 명단에 올랐는데 몹시 화가 나서 다시는 파룬궁 안건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후에 그 법관은 전근해갔고 정말로 다시는 박해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국가보안대 대장은 권고를 듣지 않고 여전히 계속 사람을 잡았고 후에 중병에 걸려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일을 통해 나는 현지의 악인과 악행을 폭로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자비이고 그들이 다시는 대법제자들을 박해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 보안대 책임자가 진상을 열심히 듣다
2014년 7월 초, 우리 지역의 여 수련생 B가 납치되었고 우리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당일 오후 3시가 넘었다. 우리는 그쪽의 수련생을 찾아가서 상황을 알아보려 했지만, 수련생이 납치되었다는 것만 알았지 수련생이 어디에 갇혔는지는 몰랐다. 우리는 114에 전화해서 당지 파출소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문의하여 B수련생이 갇힌 곳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파출소로 갔다.
나와 한 수련생은 파출소에 들어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한 경찰이 오른손으로 나의 코를 가리키며 독하게 말했다, “다음엔 당신을 잡을 거야.” 나도 오른손을 내밀어 나를 가리키는 그 손을 치우며 웃으면서 말했다. “손을 내리세요, 경찰은 나쁜 사람을 잡는 건데 당신은 왜 좋은 사람을 잡아요? 파룬궁은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말이지요.” 그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파출소 안에 있는 큰 문은 잠겨 있었다. 함께 온 수련생은 밖에 나가 문자를 보냈고 나는 파출소 홀에 서 있었다. 그때 3명의 사복 경찰이 들어왔는데 가운데 사람은 두목으로 보였다. 그가 다시 나올 때 “파룬궁을 데려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국가보안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그의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먼저 사람을 데려가지 마세요, 10분 동안만 제 말을 들어보세요.” 그는 말하라고 했고 나는 “여기 서서 어떻게 말해요, 앉아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했다.
우리는 긴 의자에 앉았고 나는 그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경찰 동생,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에요, 감옥은 나쁜 사람을 가두고 살인방화범을 가두는 곳이에요. 좋은 사람을 가둘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공산당의 정책은 가루를 다 빻고 나면 당나귀를 죽이는 것이지요, 보세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그 좋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인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은 800여 명이나 비밀리에 윈난(雲南)으로 끌려가서 총살을 당했어요, 이 역사는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았어요, 당신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지 않기를 바라요,” “역사는 바로 거울이지요, 당신은 제발 공산당의 총으로 이용당하지 않기를 바랄게요, 사실,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안은 반드시 경사와 복이 따르고 원한을 많이 쌓은 집안은 재앙이 따른다는 말은 참 잘 말했어요. 노인들은 모두 부자는 3대를 넘지 못한다고 말하지요, 그러면 왜 북송의 판중옌(範仲淹)의 집은 800년 동안 부유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네 글자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적덕행선(積德行善)이지요, 삼자경에도 몇 구절이 있지요, 더우옌산은 방법이 좋아 다섯 아들을 모두 유명하게 키워냈죠. 왜 더우옌산의 다섯 아들은 모두 큰 벼슬을 하고 과거에 급제했을까요? 그것도 사실은 네 글자로 개괄하면 적덕행선이지요.” 그때 그 두목은 “나는 공산당의 밥을 먹고 일하는 사람이기에 방법이 없습니다. 윗선의 명령을 집행해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사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 총구멍을 1cm 높게 들고 있으면 돼요. 파룬궁 문제에 대해 당신의 집행 권한 범위 안에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돕고 놓아줄 수 있으면 놓아주면 되지요, 만약 내가 말한 대로 한다면 당신은 자신과 자손들에게 덕을 쌓는 것이지요.”라고 했다.
나는 또 “인터넷으로 ‘뉘른베르크 대심판’과 ‘도청 풍파(竊聽風暴)’ 두 가지 영화를 볼 것을 건의해요. ‘뉘른베르크 대심판’에서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을 말했고 그 명령을 집행한 군관들은 심판당했으며 1945년 11월 심판 전에 히틀러와 그를 따르던 고위급들은 자살한 사람들은 자살하고 실종된 사람들은 실종되어 27명만 심판을 받았지요. 그중, 20명은 사형당했고 3명은 무기 도형에 처했으며 2명은 20년 형, 1명은 15년 형, 1명은 10년 형에 처했습니다. 계속해서 심판받고 기소당한 것은 그 당시 나치 독일을 위해 전쟁 자원을 제공한 사람들이었지요, 예를 들면 공업가, 군 종사자, 수용소 의사, 구치소와 일부 유명하지 않은 전범자 등이지요.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죄로 기소됐고 800여 명이 사형에 처해졌으며 많은 간호사가 교수형을 당했지요. ‘도청 풍파’에서는 1984년의 동독을 말했는데 한 경찰이 한 작가의 집에 도청기를 설치한 후, 도청된 내용을 그의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작가를 보호해주고 도와주었는데 지하에서 편지봉투를 붙이게 했지요. 4년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서 그는 영웅이 되었어요. 이 영화는 7개 부문의 큰 상을 받았지요. 사실은 한마디 말인데 즉, 관직에 있으면 수행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앞으로 당신도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신도 파룬궁 이 문제에서 봐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의 말을 듣고 나서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치법률위원회 서기가 ‘당신의 깨우침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다
2016년 3월, 나는 밍후이왕에서 모 지역 20여 명의 대법제자들이 장쩌민을 고소했다고 붙잡혔고 두 명의 수련생은 불법으로 법정심판을 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그 지역의 정치법률위원회 서기에게 전화해서 내가 지금의 형세에 대해 분석해 줄 테니 들어보라고 하며 저우융캉(周永康) 가족은 재산을 몰수당했고 참형에 처해졌다고 말했다. 저우융캉의 엄마는 목매달아 자살했고 셋째 동생은 중앙 순찰대에 잡혀가서 벽에 부딪혀서 죽었으며 그의 아들 저우빈(周濱)은 잡혀서 18년형을 받았고 재산 3억5천 위안을 몰수당했다. 또 그의 아내 자샤오화(賈曉曄)는 9년형을 판결받았고 재산 100만 위안을 몰수당했으며 그의 비서 저우번순(周本順)은 잡혔다고 말하면서 표면적인 원인은 부정부패지만 사실은 파룬궁을 박해해서 응보 받은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가 재판을 받은 날짜는 2015년 6월 10일로 파룬궁을 박해한 ‘610’이 설립된 1999년 6월 10일의 16년 후인 그 날에 무기도형을 받았다는데 그래도 우연인지 물어서그것은 응보이며 또 그에게 보시라이(薄熙來)에 대해 분석해주었다. 보시라이는 10억 위안으로 랴오닝(遼寧) 감옥을 건립해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했는데 최후엔 그가 감옥에 갇혔으며 그것도 역시 응보라고 알려주었다. 신불(神佛)의 제자를 박해한 것에 대한 응보이고 대법제자들을 박해한 것에 대한 응보라고 알려주면서 빨리 불법으로 재판받은 2명의 대법제자들을 풀어주고 더는 대법제자들을 박해하지 말라고 했다.
정치법률위원회 서기는 그것은 법률의 절차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시라이 뒤를 따라가지 말라고 하면서 지금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앞장을 선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갔다. 아직도 그들의 명령을 집행하느냐고 하면서 군자는 위험한 벽 밑에 서지 않는 것인데 아직도 모르겠느냐, 눈을 씻고 똑바로 보라며 장기를 두는 것처럼 멀리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후에 그 지역의 수련생들과 교류했고 그들은 박해받은 수련생들을 위해 변호사를 청해주었으며 우리는 각종 형식으로 공안, 검찰, 법원에 진상을 알렸는데 아주 좋은 효과를 보았다.
순찰대에 박해 자료를 부치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중공 순찰대의 소식을 보았고 속으로 나는 늘 박해받아 죽은 수련생들과 감옥의 수련생들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전화를 했는데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고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는 중앙 순찰대라고 말했다. 나는 모 시의 대법제자인데 순찰대에 상황을 반영하려 한다면서 우리 지역의 수련생들이 현지 공안, 검찰, 법원 부문으로부터 20여 년간 박해받았는데 중앙 순찰대에서 이 일을 관리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럼 자료를 부쳐 보내라면서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시에서 박해받은 20여 명의 자료와 현재 불법으로 감옥에 갇힌 수련생들의 명단 그리고 또 현지 보안대 대장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범죄 사실 등 자료를 순찰대에 부쳤다.
인터넷에 제보하면서 진상을 알리다
나는 또 일부 대법제자를 박해한 공안, 검찰, 법원과 ‘610’ 인원들의 자료를 정리해서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제보하고 법을 위반한 범죄사실을 제보하여 사악이 극도로 겁먹게 했다. 인터넷에 제보한 후에 인터넷에 자동으로 제보 검색번호가 나타났다.
나는 그 제보 검색번호를 복제했고 컴퓨터에 문자를 만들어 내용을 툴의 메일 안의 목록에 저장했다. 내용은 중앙 조직부에 모 지역 보안대 대장 모모가 좋은 사람을 박해하여 돈과 재물을 강탈한 사실을 신고한 검색번호 등이다. 또 현지의 공안, 검찰, 법원의 번호를 저장해 놓은 다음 제보내용을 당지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에게 보냈다.
동영상과 문자를 보내는 방법은 거의 같았고 밍후이왕에서 박해받은 음성 내용을 다운받아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휴대전화에 넣고 현지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에게 보냈다.
다른 지역의 수련생들이 걸어 나오도록 촉진
정법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왔지만 박해는 아직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어떤 지역에는 수련생들이 납치되어 박해받을 때 모두 아주 침묵하고 박해받은 가족들도 대법에 저촉되게 하며 어떤 수련생들은 박해를 반대하고 수련생들을 구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어려움이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보기에 위험이 적은 일을 하려하고 자신이 능력이 모자라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중생이 구원되는 희망인데 우리가 누구를 바라는가? 만약 우리가 나서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며 박해를 제지하지 않으면 환경은 개변되지 않는다.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생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이 항목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는 박해를 좀 심하게 받은 지역에 가서 현지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그들이 위의 방법으로 박해를 반대하도록 도와주었다. 많은 수련생이 이 항목에 참여하기를 원했고 현재 비교적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수련생을 구조하기 위해 나는 공안, 검찰, 법원에 가서 경찰들에게 십여 차례 진상을 알린 경력이 있고 그동안 네 차례나 꿈에서 잡힌 적이 있는데 그중 3차례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기에 풀려났다. 한번은 정념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것은 내가 아마 반박해를 하는 이 길에서 잘했기에 현실에서의 겁난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내가 수련하는 중에서의 일부 반박해와 진상을 알린 경험인데 수련생들과 나누려고 적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수련생 문장에 대한 평어’
원문발표: 2016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3/336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