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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법제자는 왜 안으로 찾을 수 없는가(3)

[밍후이왕] (전 편에 이어)

7. 정념으로 모순을 대하고 다른 각도에서 중생구도를 말함

서로 다른 모순은 서로 다른 집착심을 폭로하는데 모순은 이런 작용을 한다. 예를 들면 마치 전쟁처럼 적이 숨어 있으면 그들을 찾아서 소멸해야 하는데 함정을 만들어 적을 유인해야 그들을 소멸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비유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단지 이런 뜻을 표현하려 한다. 그러므로 모순이 나타날 때 대법 제자가 법에 서서 안으로 자신을 찾고 모순이 폭로하는 집착심을 찾아야 제거할 수 있고 층차도 제고 할 수 있다.

모순에서 개인의 옳고 그름이 표현되지만 일 자체의 옳고 그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그것은 상황을 덧씌우는 것일 뿐 함정처럼 집착심을 폭로하는 작용을 한다.

중요한 것은 대법제자가 법에 서서 문제를 보고 모순이 나타난 목적을 똑똑히 알아야 하며 집착심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미시적인 집착심이 제고되면 대법제자는 제고된다. 더욱 미시적이면 대응되는 층차는 더욱 높고, 더욱 미시적인 집착심이 모순에서 폭로되면 대법제자는 제고되고 상응되는 층차는 더 제고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 층차에서 대응되는 방대한 천체 범위와 위의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은 모두 법에 동화되고 곧 구도 된다. 그들은 새 우주의 생명으로 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정법 기간에, 우주 중의 모든 정부(正負) 생명은 다 이번 정법 중에서 구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최고의 층층의 무량하고 거대한 신, 특히 그것의 그런 세계의 중생을 포함해서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세간과 삼계 내에 발 하나를 들여놓았는데, 그것들이 이 만겁(萬劫)에도 만날 수 없는 목숨을 구할 기회를 놓치려 하겠는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모두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표현 형식은 세간의 논리로 인식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아주 겸손해야 한다. 당신이 나를 구해 주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드리고, 내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여,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이 세워지고,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면,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모두 이렇게 한다.” [1]

이 점에서 보면 안으로 찾고 집착심을 제거하여 자신을 제고해야 하는데, 안으로 찾지 않고 집착심을 방임하면 제고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대법제자가 대표하는 방대한 천체 범위 내의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존재와 멸망 그리고 대법제자의 구도를 기다리는 구 우주의 헤아릴 수 없는 고층 생명군, 더욱 고층 생명군의 존재와 멸망에도 관계된다.

그러므로 중생구도의 각도에서 말하면 안으로 찾는 것은 대법제자 개인 사상 속의 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아니다. 그 층에 이르러 상응하는 수련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층의 대응하는 방대한 생명군은 구도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정법 중에서 구 우주에 따라 사라진다.

중생구도는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모순 그 자체는 소중한 것이다. 모순의 발생을 일으키려면 기연이 필요하고 어떤 기연은 바로 한 번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집착심은 아주 강하고 완고하다. 한 번의 모순에서 제거하지 못하고 몇 번에 걸쳐야 비로소 제거하게 된다. 전에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데 반년이 걸렸다. 그래도 자신은 만족하지 않고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속으로 그리 떳떳하지 않다. 자신의 집착심을 제거해야 할 때 모순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한 것 같고, 아쉽다.

8. 나의 회고

걸어 나오면서 법에서 완전히 깨달음으로 수련한 사람으로 자신이 최초 소침에서 어떻게 걸어 나오고, 어떻게 두려운 마음에서 걸어 나오며, 어떻게 자신이 각종 내외 교란, 저애와 곤란에서 견정하게 걸어 나오고, 자신이 사존께서 말씀하신 법에서 어떻게 착실히 수련하고 법의 요구에 따라 해내고, 집착심과 각종 관념에서, 구세력과의 거듭되는 교전에서 어떻게 그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번잡한 속인 사회에서 미혹되지 않고 시시각각 청성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애를 썼고 얼마나 많은 방법을 생각해 냈는지 모른다.

어렵고 의기소침할 때 자신을 위로, 격려해 주고, 잘할 때 자신을 칭찬해주어 자신이 더욱 잘 걸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에게 거듭 요구하여 목표를 정하고 법의 요구에 맞지 않을 때, 태만해지고 잘못을 할 때 자신을 엄격히 비평해야 한다.

갈등 중에서, 어려움 중에서, 방해 중에서, 마난 중에서, 발생한 일 중에서 되도록 깊이 사고하고 안으로 찾는 중에서 자문한다. “왜? 왜? 왜?”

집착심 하나를 제거하는데 어떤 대법 제자는 일념이면 그것을 제거하는데 어떤 것은 1개월 어떤 것은 일 년을, 사용해야 하고 어떤 것은 몇십 년을 제거해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심지어 어떤 것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그것을 찾지도 못한 것이 있다. 왜? 자신에 대한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11-대법 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완결)

원문발표: 2016년 10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9/336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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