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념으로 위기를 제거하다

-마싼자와 네이멍구 노동 교양소의 경험

글/ 대륙 대법제자 밍쓰

[밍후이왕] 중국 공산당의 불법적인 노동교양소가 폐지된 지 몇 년이 되었다. 이것은 사부님의 노정에 나타난 천상 변화이고 대법제자가 조사정법하고 전 세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반(反)박해를 하고 사악을 폭로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이 한 기간의 역사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기나긴 14년 동안 잔혹한 노동교양소에서 수많은 박해를 겪은 대법제자, 그들의 감동적이고 눈물겨운 반(反)박해는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자취는 불멸하지 않고 영원히 역사 속에 남아있다.

2007년에 나는 랴오닝 마싼자 여자 노동교양소에 강제로 감금되었고 2012년에 네이멍구 노동 교양소에 또 감금되었다. 이 두 곳은 악명이 높고 지옥 같은 소굴이다. 나는 4년여 동안 많은 것을 보았고, 신체검사도 매우 많이 받았다. 당시 내가 겪은 것들을 써내니, 역사의 증거로 삼길 바란다.

1. 정념으로 고문을 넘기다

2008년 5, 6월, 노동교양조례를 외우는 것을 거부한 일부 수련생을 노동교양소 제3대대에서 1, 2대대로 옮겼는데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한 수련생이 “추석 정오에 전체 수련생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자고 제2대대 수련생이 의견을 제출했어요.” 또 “당신이 선두로 외치면 제가 바로 외치고 다른 사람도 함께 외칠 것이에요.”라고 했다. 밤 12시 발정념 때 끈에 묶여 있는 종이를 봤는데 끈이 천천히 풀어지더니 종이가 펼쳐졌다. 이것은 내가 체결한 서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안의 내용을 알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명백한 일면은 서약은 아주 신성하고 엄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울었다. 추석날 정오, 일어서서 강한 정념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대법 제자를 박해하면 죄가 된다!’라고 외쳤다. 어제 그 수련생이 두 번째로 외쳤다. 잇따라 전체 수련생이 함께 외쳤다. 소리는 하늘을 찔렀고 노동교양소에 울려 퍼졌다.

약이 바짝 오른 경찰은 ‘괘에 올리기(上大掛)’ 고문을 했다. 두 손을 넓게 늘어놓고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하여 십자형으로 묶고 쇠꼬챙이를 가지고 비난하며 찔렀다. 수련생들은 모두 나와서 질책했고 오후에 노역할 때 사람을 석방하라고 항의했다. ’괘에 올리기’ 고문으로 어깨의 두꺼운 피부가 벗겨지고 피멍이 들었다. 약 3시간 후에 대대장 A는 날 풀어 주었다.

수련인의 심성은 같지 않고 경지도 다르며 인내력도 다르다. 10월 초 제1, 2대대의 수련생은 단체로 매달 서명 심사를 제지하자고 했다. 이번에 사악은 충분한 준비를 했고 모든 경찰을 동원해 대법제자를 구타하고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으며 ‘괘에 올리기’ 고문을 했다. 전 대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욕하는 소리, 고함을 치는 소리, 탁탁 전기봉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광경은 아주 참혹했다.

내 차례에 흉악한 남자 경찰은 나를 무참히 구타했고 대대장은 전기봉으로 등과 목에 충격을 가했다. 하지만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방에 끌고 들어가 ‘괘에 올리기’ 고문을 했다. 한 남자가 신발로 나의 얼굴을 때렸다. 그가 한번 때리면 한번 권했다. “당신 탈당하세요. 자신에게 퇴로를 남겨야 해요.” 그가 세 번 때리면 나는 세 번 권했다. 그는 부끄러운 표정을 하고 때리지 못했다. 또 다른 남자 경찰이 달려들어 나의 얼굴을 세 번 때렸다. 그에게도 세 번 권했다. 이어 그들은 나에게 ‘괘에 올리기’ 고문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고통스러워 괘에서 의식을 잃었다. 한 수련생이 나에게 알려 주었는데 당시 나의 왠선(元神)이 육체를 떠나 그를 찾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그를 바라만 보았다고 했다. 그는 고통스러워 머리를 파이프에 부딪치고 싶었다고 했다. ‘괘에 올리기’ 고문은 이튿날까지 이어졌는데 고문에 견딜 수 없어 타협했다.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한 후 복도를 걸을 때 한 수련생이 괘에 석상처럼 걸려 있는 것을 보았고 공간장은 조용했다. 이 수련생은 반드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는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한 이튿날 사악이 그를 풀어 주었다.

또 한 수련생은 ‘괘에 올리기’ 고문을 8일간 당했어도 타협하지 않고 넘어왔다. 수련생은 모두 그에게 탄복했다. 다른 한 수련생은 반(反)박해 하고 노역을 거부했다. 경찰은 그를 ‘괘에 올리기’ 고문을 6일간 했다. 그 후 그는 나에게 말했다. 매달려 있을 때 마지막에 그는 완전히 고통이 사라졌고 매달려 있는 것은 텅 빈 껍질인 것 같고 신체는 괘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악은 그를 움직이지 못하여 6일 후 그를 풀어주고 상관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더는 노역을 한 적이 없고 남는 많은 시간으로 법공부와 발정념을 했다. 우리 정체가 걸어온 간고한 그 나날에 대단한 전례가 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1] 그 수련생은 이런 정도로 수련했다. 수련생은 백 분의 백 신사신법(信師信法)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냐? 수련생은 마난 속에서 사부님을 생각하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면 수련생은 심태가 순정하고 마음이 정지된 물과 같고 아무것도 없다. 수련생은 두려움도 없고 원망도 없고 고생도 없다. 단지 사악한 생명에 대한 자비와 연민이다. 수련생은 정념이 족하고 자신이 대법으로 다져졌다고 생각하고 위대한 신이라고 생각했기에 사악은 근본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 법에 부합되어 정정당당하게 걸어왔다.

이 전에는 심사로 수련생이 박해, 고문을 받는 일이 많았다. 한 수련생은 오른쪽 팔이 끊어졌고 구타를 당해 코피가 났다. 후에 형세는 점차 변화가 생겼고 박해도 적어졌다.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한 후 상처를 입은 신체는 반달이 넘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후에 대대장에게 엄정 성명을 썼다. 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신체에 에너지가 돌고 열이 나며 얼굴도 불그레하고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넘어져도 일어나게 격려해 주시고 계속 전진하게 해 주셨다.

2012년 3월 내가 거주하는 곳의 경찰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일부 진상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저우융캉(周永康)을 고소하라고 했다. 당시 형세를 보면 아직 성숙되지 않았고 수련생의 정체 협력이 없었다. 많은 대법제자는 아직도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마땅히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양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 공개서신을 보냈다. 인민 대표 대회에 서신을 보내는 과정에서 납치당했고 몇 번에 걸쳐 나는 불법적으로 네이멍구 노동교양소에 감금당했다.

마싼자가 인간 지옥이면 네이멍구는 지옥 중의 한 층이다. 반(反)박해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나온 동료 수련생과 나는 수없이 구타를 당했고 고압 전기봉에 목이 충격을 받아 물집이 생겼으며 갈비뼈는 2개가 부러졌다. 여러 번 ‘파룬따파하오’를 외친다고 입을 막아 질식할 뻔했다. 겨울에 찬물로 목욕해야 했고 고문에 시달려 2, 3일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간고한 세월에서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격려해 왔다. “많은 대법 제자들이 감당한 것 역시 아주 거대하고 위덕도 크다. 그러나 당신들은 왜 그처럼 크게 감당해야 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는다. 왜 그는 이처럼 심하게 박해 당하는가? 아마 그의 배후에 있는 많은 생명을 위해 감당하고 있을 수 있고, 그가 보호하고 그가 구도하려는 생명이 너무나 크고 너무나 많을 수 있으며, 어쩌면 자신의 요소와 그가 구도하려는 생명의 요소 탓일 수 있고, 업력 혹은 감당한 역사적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일 수 있으며, 그리고 어쩌면 풀지 못해 쌓인 원한, 전혀 풀 수 없도록 굳어 버린 매듭(死結) 때문일 것인데, 어떤 것은 오직 사람의 생명으로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로소 박해 중에서 이런 복잡하고도 복잡한 형식이 조성된 것이다.”[2] 이번 박해는 나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심으로 인해 초래했다. 이지적이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과시심, 이기려는 쟁투심,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위덕을 세우고 구하는 마음,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만하는 마음이 있다.

허튼 생각을 하고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들뜬 마음, 이런 마음의 근원은 정이고 이기심이다. 마침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견정한 마음으로 걸어지나 왔다. 2013년 중순에 네이멍구 노동 교양소는 잇따라 사람을 석방했고 연말에 내가 마지막으로 거기에서 걸어 나왔다. 한때 떠들썩했던 흑굴은 조용해졌다.

2. 정념으로 위기를 제거하다

“미친 사악 4년 돌풍에, 키를 단단히 잡고 항로를 잃지 않았네, 대법 제자는 마난을 겪으며, 중압(重壓)에도 의지 변치 않았네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3] 사악이 비록 박해하지만 우리의 정념이 법에 부합되면 사부님과 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어느 하루 대대에서 갑자기 몸을 수색한다고 했다. 당시 노동교양소에 이상한 요괴 바람이 불어 문도 닫지 못했다. 내 주머니에는 사부님의 신경문 ‘모래를 일다’가 있었다. 나는 태연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경문을 보고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자. 더는 사부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게 하지 말자. 그리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게 해야 한다. 전에 그들은 수색하여 경문을 가지고 있는 수련생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는데 대대장은 단지 조용히 몇 마디 말을 하고 나를 놓아주었다.

노동교양소에서 색종이를 만드는데 종이에 염료를 분사한다. 염료는 독이 있는 화학제품이다. 장기간 독해 물질을 흡입하니 잔기침을 하고 가래에 피가 보였다.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수련인 이기에 상해 받을 수 없다. 결과 며칠 후 나아졌다. 의외로 머리카락은 더욱 검고 윤기가 흘렀다. 어떤 일이든 정념으로 대하면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된다.

’7.20’이 다가왔다. 마침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지 10년이다. 나는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어느 날 오후 교도관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그들은 음식에 독을 넣었는데 독약의 작용으로 목구멍에서 많은 가래가 나왔고 하마터면 질식해 죽을 뻔했다.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당한 후 입꼬리는 비뚤어졌고 침은 입 옆으로 흘러나왔다. 온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사부님, 저를 구해 주세요!” 내 마음이 큰소리로 외치니 파룬이 즉각 돌아 침도 흐르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또 한 번 구해 주셨다.

9월 나와 다른 수련생은 단식으로 반(反)박해를 했다. 경찰은 매일 우리 둘에게 음식물을 주입했다. 1달 후, 어느 날 오전에 경찰이 ‘괘에 올리기’ 고문을 했다. 고통스러워 다리는 경련이 일어났고 구역질이 나 토했다. 그들은 나에게 사부와 대법을 욕하라고 했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대법 제자를 박해하면 죄가 된다.”라고 외쳤다. 후에 사오한 사람이 전향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준비된 ‘삼서’를 꺼내 나에게 서명을 하라고 했다. 나는 ‘불사르라’ 라고 일념을 보냈다. 즉시 한줄기 탄 냄새가 났다. 다른 공간의 삼서는 타 버렸다. 사악은 밤 12시에 나를 풀어줬다. 구타를 당한 후 나는 허리를 굽히고 걸어야 했다. 두 팔 관절은 움직이지 못했다. 옷을 벗을 수 없어 며칠 동안 옷을 입은 채 잠을 잤다. 어느 하루 여자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 그 모양이 뭐니? 그래도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렇다. 그들에게 대법제자가 기가 죽었다는 것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허리를 펴고 정정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결과 굽어진 허리는 반듯하게 세워졌다. 여자 경찰은 말했다. “일념이면 바로 잡네.”

2012년 중국 공산당 양회 기간에 나는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하라는 공개서신을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 보냈다. 서신을 건네는 과정에서 납치되었다. 처음에 베이징 여자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었다. “파룬따파하오.”를 외쳐 대대장은 나에게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다. 하루 종일 참고 저녁에는 아랫배가 공처럼 부풀어 올라왔고 고통스러워 잠을 잘 수 없었다. 기타 노동교양소의 감금된 사람들은 나를 위해 슬퍼했다. 그들은 나에게 방에서 해결하고 참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랫배가 터져도 방에서 해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 주면 안 된다. 밤 12시가 지난 후 담당 경찰이 웃으며 다가와 나를 도와준다고 했다. 경찰은 나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복도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바꾸고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돌아오고 다른 사람의 수면에 영향주지 말라.”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3. 전향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다

한번은 경찰의 사주를 받은 사오한 A수련생이 우리들을 ‘전향’ 시키러 와 나와 다른 두 수련생을 찾아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무엇을 말했는데 나는 듣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공간장이 시끄러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그는 말을 바꾸어 박해가 시작될 때 법을 실증하러 가서 경찰 앞에서 강(江) 언니(중국에서 말하는 영웅 인물)처럼, 유(劉) 모모처럼 했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딸이 그에게 한 첫 번째 말은 “오, 영웅이 왔네요.”였다. 나는 즉시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내가 수련하는 것은 자비인데 어떻게 영웅으로 수련했는가?” 이 말을 듣고 나는 똑똑히 알게 되었고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나도 영웅으로 수련한 것이 아닌가? 쟁투심이 있는가? 갑자기 자신의 공간장을 바로 잡은 느낌이고 아주 조용했다. 이때 A도 느낌에 흠칫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다. 그에게 안으로 자신을 찾는다고 말했다. 다른 한 수련생도 진동을 느꼈다. 우리 세 명의 공간장은 모두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A의 목적은 우리를 ‘전향’ 시키러 왔지만 기점이 다르고 그의 말을 듣고 우리에게 일으키는 작용도 다르다. 후에 사부님의 신경문 ‘문안’ ‘모래를 일다’를 본 후 두 번이나 자발적으로 A를 찾아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그런 사악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말은 비교적 전략 있게 했다. 그는 알아 들었다. 대법 수련의 정념을 인정했다. 2011년 집에 돌아온 후 밍후이왕에서 그는 마싼자에서 경찰이 핍박해 눈길에서 2시간 걷게 했다고 했다. 그는 마침내 대법으로 돌아왔다.

추석 날 나는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진선인(真善忍), 대법 제자를 박해하면 죄가 된다.” ‘괘에 올리기’ 고문을 3시간 한 후 대대장 A는 나를 풀어 줬다. 그는 오늘 집에 돌아가 가족과 만나고 내일 당직을 할 때 나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만능열쇠라는 것이 생각나 단번에 응했다. 이튿날 저녁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진지하게 듣고 마지막에 그는 말했다. “당신의 동료 수련생이 나에게 이 일을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 권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대법 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가장 큰 죄이기에 이런 일을 하면 안 됩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괘에 올리기’ 고문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고 일을 하러 나가 작업장에 누워 있었다. 그것을 보고 대법제자가 겪는 깊은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대대장은 이 광경을 보고 두 손으로 자신의 눈과 얼굴을 가렸다. 그의 인성이 살아났다.

12월 나는 마싼자 교도소 소장에게 10여 장이나 되는 진상 편지를 썼다. 한 수련생에게 보여주니 좋다고 했다. 하루는 진상 편지를 쓰는데 대대장 B가 수색 중에 한참 보다가 사무실로 압수해 가져갔다. 내가 다시 작업장에서 그를 만났을 때 얼굴 혈색은 누런색이었는데 후에 피부는 밝아졌고 눈도 맑아졌다.

4. 장쩌민을 고소

마싼자에서 나는 1달 더 연장 감금되었다. 2010년 3월 노동 교양소를 나온 그 날 밤하늘에 아름다운 광경이 나타났다. 마치 자신의 최초 집인 것 같았다. 한 수련생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마 사부님께서 고무 격려해 주신 것이다.

집에 돌아와 법공부를 통해 특히 사부님의 ‘밍후이왕 10주년 법회에서 설법’에 중국 공산당을 해체하고 박해 중지에 관한 답안을 보고 나는 장쩌민을 고소하겠다고 결심했다. 2011년 나는 준비를 한 후 고소장을 썼다. 한 수련생이 나를 도와 인쇄했다. 나는 베이징 시의 최고법원과 검찰원에 제출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나는 낙심하지 않고 수련생과 함께 두 번째로 베이징시 최고법원과 검찰원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또 거절당했다. 돌아오는 길에 베이징은 심한 폭우가 내렸고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곳곳이 물에 잠겼다. 며칠 후 나는 시 고등 검찰원에 제출했는데 마침내 접수되었다. 후에 검찰원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당신의 장쩌민 고소를 우리는 관여할 수 없지만, 당신은 아래 계층의 경찰을 고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결국은 검찰원에서 이 고소장을 봤다. 그도 또 상사에게 보여 줄 것이고 또 여기저기 전했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우리가 마난, 고통을 받는 것은 사실 작은 일이다. 오랜 역사의 세월 중에서 각자(覺者)의 눈물 한 방울은 씁쓸하고 마르지 않는 눈물 같았다. 그것을 들여다보니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라는 것을 발견했다. 찾지 않을 때는 그는 조용히 거기에 누워 단지 담담한 기억만 남겨 준다. 대법제자가 될 수 있고 조사정법, 중생 구도의 사명을 지키는 것은 한 생명의 전대미문 기연이며 장엄하고 신성하다. 사부님이 우리에게 장래 비할 바 없는 아름답고 뛰어난 위덕과 영광을 성취하게 한 것이고 또 영원하다.

주:

[1]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정념정행’

[2]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년 설법’

[3]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사도은’

원문발표: 2016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화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0/3357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