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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진정한 선(善)을 닦아내지 못했을까?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2년 운 좋게 법을 얻었다. 대법 수련 중에서 두드러진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모순에 부딪히거나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내심에 충격을 받았을 때 나는 진정으로 ‘선’을 잘하지 못했다. 대법 표준과 요구로 가늠해보면 한 번도 모순 속에서 진정한 선을 체현하지 못했다. 어떤 땐 선량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사실 진정하게 충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간단하게 나의 성격이 좋지 않다거나 그다지 관용할 줄 모른다는데 그쳐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을 향해 찾자 많은 집착을 찾아냈다. 질투심, 쟁투심, 과시심,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등, 하지만 다음 충격이 오면 또 ‘법을 수호한다.’, ‘정체를 위한다.’ ‘수련생을 책임지기 위한다.’ 는 등 구실로 선량하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어떤 땐 이렇게 하는 것은 그나마 ‘진(眞)’은 행한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땐 ‘인(忍)’도 애써 해냈다고 생각했으며 어떤 땐 겉보기엔 옳지 않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런 것이 아니다. 수련생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도 아주 빨리 본인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문제가 줄곧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했다.

최근 깨달은 것은, 왜 대법제자는 반드시 선을 닦아내야 하는가? 대법이 만든 모든 생명의 근본 특성은 모두 선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층차의 생명의 선은 모두 원용(圓容)하고 통할 수 있지만 변이된 생명이 산생한 각종 관념, 집착과 업력의 본질은 모두 악이다. 악은 서로 포용하지 못하고 악과 악 사이는 괴멸될 때까지 영원히 서로 배척하고 투쟁하고 상처를 준다. 당신이 선량하면 대응한 생명이 선량하고 악해지면 상응한 악을 일으키기 때문에 수련에서 진정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량해야 한다. 진정한 선을 행하려면 우선 생명의 본질 이외의 잡다한 것, 폐물을 제거해야 한다. 사실 한 사람이 마음의 충격을 받았을 때 어느 층차의 선에 도달할 수 있으면 그(그녀)도 반드시 상응한 층차의 진과 인에 도달한 것이며 그(그녀)의 심신도 그 층차까지 순정해진 것이다.

내가 왜 진정하게 ‘선’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바로 내가 너무 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정하지 않기 때문에 ‘선’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과 ‘인’도 해내지 못한 것이다.

심신의 순정은 무조건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은 결과이다. 수련생들은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이 법보는 수련 중의 모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다. 끊임없는 각종 상태의 안으로 찾는 과정은 소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이 아주 괴롭고 심지어 뼈를 발라내는 것 같은 아픔일 수 있지만 이 과정은 안으로 찾는 습관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진정하게 안으로 찾는 습관이 형성되면 안으로 찾는 것이 다시는 그렇게 피동적이고 어쩔 수 없으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로 자연적이다.

대법제자의 생명은 만고의 행운으로 대법을 얻어 정법시기에 대법을 실증하고 금강 불멸의 생명으로서 영생하는 신우주로 승화되는 것인데 바로 무조건 대법에 따라 안으로 찾고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 법공부, 착실한 수련에서 법리를 깨닫고 진정하게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다.

지금은 수련 중에 안으로 찾는 것이 비할 바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했다. 어떻게 해야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진정하게 사부님을 존중하고 법을 존경하는 것일까? 어쩌면 아주 짧게 남은 수련의 길에서, 봉착한 모든 관과 난을 소중이 여기고 제고될 수 있는 모든 기회로 삼아 진정하게 자신의 집착, 사람 마음, 관념을 찾아내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진정하게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법을 더 잘 실증할 수 있고 사전 서약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옅은 인식이니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6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9/3364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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