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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하는 법문 찾던 대만 교수, ‘전법륜’ 백번 읽어(3)

글/ 쉬페이안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서)

수련 기연의 소중함 체험

매일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며 점차 심성을 제고한 후 갈수록 수련하는 기연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부귀영화는 사람의 덕으로 바꿔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생의 정력과 소중한 청춘을 다해 사람이 구하려는 각종 행복,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고, 자녀가 출세하며, 원만한 가정과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다가 생명이 급격히 쇠퇴해지면 그 모든 것이 가져갈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일생의 희망과 추구는 어떠한 가치도 없게 된다. 속인이 명리정에 대한 추구도 모두 헛된 것이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하는 것은 이미 태어나기 전 하늘의 신들이 당신의 업력에 따라 배치해 놓은 것으로 함부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법(正法) 수련에서 사람은 얼마만큼 정신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만큼 수확하는 것으로 절대 헛되지 않다. 더욱 신기한 것은 정법 사부님께서 당신을 위해 배치한 인생의 길은 가장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향상(向上)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만약 정말로 수련해 원만하면 마지막에 기다리는 결과는 모두 가장 좋은 것이다.

속인은 명리정을 얻기 위해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고생을 한다고 해서 꼭 얻는다는 보장도 없고 만족해도 즐거움은 짧고 순간적이다. 수련인은 고생을 하면, 심지어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신의 층차를 제고할 수 있고 수시로 수련인만이 지닐 수 있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린 그 찰나, 매우 편안하고 기쁘다. 때로 각 층차의 법리가 펼쳐지는 신성함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고 새로운 층차의 이치를 깨달으면 매우 기쁘다. 정신적으로 충실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육신도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된다. 이것은 일반 물질세계의 속인 욕망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집착심을 제거하면 가장 맛있는 과실이 영원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층차의 끊임없는 돌파와 제고는 수련인이 마음을 닦는 매 단계에서 지불한 노력에 대한 대가다.

나는 아주 늦게 법을 얻었지만 지금은 우주 정법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인류는 진상이 크게 나타남과 동시에 대재앙이 올 그 시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날이 언제 오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구해야 할 시간은 긴박하다. 사람을 구하는 힘도 수련인의 층차에 따라 결정된다. 예전에 각종 개량식으로 변이된 수련 법문에서 굽은 길을 걸은 경험과 교훈을 쌓아 알지만, 정법 수련은 그리 쉽게 얻는 게 아니다. 정법 사부님의 시시각각 지도하심은 그렇게 신성한바,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을 굳게 먹고 끝까지 수련해야 한다. ‘전법륜’과 각지 설법을 몇 번 읽어 법리 표준은 정확히 거기에 있지만 자신의 눈은 높으나 능력이 낮아 이치를 안다 해도 해내기는 어렵다.

물론 정법 수련 그 자체는 어렵다. 인류 역사의 생사고비에서 우주 다른 공간에서 정법 수련자에게 강제로 교란과 고난을 가했다. 이런 교란은 물질세계의 이치에 부합되게 시시각각 숨어서 손을 쓴다. 영화, 미디어를 포함해 인터넷, 핫뉴스 등은 당신의 주의력을 끈다. 또 각 방면의 인정과 사람 마음의 집착심, 가정관계의 유지, 직장에서 사람마음의 엉킴 등등을 포함한다. 수련자가 그런 것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이끌려 신의 길에서 굽은 길을 더 많이 걷게 되고 여러 번 넘어진다. 아무리 의지가 확고해도, 인간세상의 행복을 탐하지 않고 물질적 즐거움을 탐하지 않으며 외부 교란을 배척한다 해도, 법에서 대조하면 자신의 온몸에 있는 결점과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크게 깨닫게 된다. 생생세세 윤회환생하면서 나쁜 사람마음의 집착심에 물든, 새 우주의 법리로 된 사유방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모두 함께 제거해야 한다.

맨 처음 나는 색욕심과 부부간의 행복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색욕은 수련인에 대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死關)이다.”[1] 제일보는 색욕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는 본래 속인 중에서 색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일반 사람보다는 도덕이 고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색욕심을 제거하려니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색욕심이 끈적끈적한 흑색물질은 장기적으로 영화와 미디어로부터 시작해서 내 공간장을 오염시켰다. 내가 법을 읽으면 한 무더기 이상한 화면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사부님께서 말씀한 것처럼 “사람은 마치 하나의 용기(容器)와도 같아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다. 사람이 눈, 귀를 통하여 보고 듣는 것은 모두 문예작품 중의 폭력, 색정(色情), 아귀다툼과 현실사회 중의 이익 다툼, 금전만능 관념이나 기타 마성(魔性)적인 표현 따위로서, 담은 것은 모두 이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람은 곧 진정하게 나쁜 사람이다.”[2] 당시 수련인이 보지 말아야 할 문장과 화면, 영화, TV 스토리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이를 사람마다 모두 정상으로 보며 선동하고 심지어 그 속에 재미를 느낀다. 그것은 인류의 도덕을 신속히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색욕심을 똑똑히 보았기에 이 세상 사람들 마음의 오염정도를 볼 수 있다. 사부님께서 왜 “현재 사람의 도덕이 아주 무섭게 타락해가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3]라고 하셨는지 마침내 체험할 수 있었다. 힘껏 법을 읽고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강제로 주입된 볼 수 없는 정보를 씻어버리려 하며 사상업의 교란을 배척한지 1년 후에야 차마 볼 수 없는 그런 화면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법을 얻기 전에는 인류사회가 어떻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찌됐던 지구는 매일 돌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수련 후 뒤돌아보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은 인류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가만 보지 말라. 인류의 도덕 수준이 크게 미끄러지고, 세상 기풍이 날로 떨어져 오직 이익만 탐내고 있지만, 우주의 변화는 인류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속인의 표준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속인이 이 일이 옳다고 한다 해서 당신이 이것에 따라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속인이 좋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이 아니고, 속인이 나쁘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도덕 표준이 비뚤어진 시대에는 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다! 한 수련인으로서 우주의 특성으로 가늠해야만, 비로소 무엇이 진정 좋고, 무엇이 진정 나쁜가를 변별해 낼 수 있다.”[4]는 것을 점차 알게 됐다.

두 번째는 과시심과 질투심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다. 이것은 진수제자의 대금기다! 파룬따파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 집착심이 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서히 법공부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사람 마음이 모두 있었다. 단지 이전에는 그들이 나타나지 않고 숨은 채 내 생명의 가장 원시적인 순정함을 파괴하고 있었다. 알면 노력해서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수련을 막 시작했기에 층차의 제한으로 집착심을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단지 표면뿐이고 더욱 은폐되어 있던 자아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수련은 끊임없이 더욱 순정한 방향으로 제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깨끗해진 느낌이고 더는 난잡한 잡념이 생기지 않았다. 머릿속의 대량의 쓰레기를 제거한 후 이 물질신체는 가벼워졌고 상대적으로 더욱 전일하게 연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속인사회에서 온화하게 처세하고 다른 사람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도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다.”[5]를 훈련시켰다. 나는 책을 많이 봐서 경전 중의 어구나 고사를 인용하는 말재주가 있다.(이치를 말하는 것은 교사의 본업이기 때문) 남편과 모순이 있을 때 나는 늘 우세를 점해 쉽게 상대방을 말로 이겼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고 겉으로만 복종할 따름이다!”[6] 이전에 나는 남편의 결점이 자신보다 많다고 생각했기에 매번 충돌하고 난 뒤에는 독선적인 태도로 이치를 이용해 충고하는 습관이 있었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다”를 한 후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즉, 내 결점은 남편 못지않았다. 남편이 나를 질책해도 나는 참고 대꾸하지 않으며 다투지 않고 구실을 찾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표면상 자신이 잘못이 없어도 부드럽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게 1년을 수련하자 마침내 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비난할 때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부족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내가 대꾸하지 않자 즉시 선하게 나를 대했고 점차 충돌은 적어졌다. 나는 사부님의 법에 감사드렸다. 나는 성장해서 처음으로 스스로 반성할 수 있었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수련인의 쟁투심, 과시심, 비판심 등 제거하기 어렵고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자신의 자세를 낮추자 상대방 입장에 서서 문제를 불 수 있고, 자신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지 않고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말로 개변시키려 하거나, 그를 설득하려 할 때, 당신이 한 말에 아무리 이치가 있어도, 다른 사람이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한 말 속에는 당신의 모든 사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속인 중의 각종 칠정육욕, 나아가 당신이 집착하는 것이 너무 많아, 당신이 한 이 말 속에는 모두 복잡한 사상이 들어 있어, 당신의 말로 하여금 그리 큰 힘이 없게 했으며 아주 분산되게 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말할 때 흔히 자신의 관점에 섰고, 그것은 우주의 법에 꼭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점에서 말하자면 또 진리의 힘이 없다. 남에게 무엇을 말할 때, 또 자신의 것을 보호하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것을 더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이 하는 말은 목적이 있고 또 불순해지면, 한 말이 아주 가벼워진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으로 사상이 청정해질 수 있을 때, 혹은 당신이 집착하는 마음이 갈수록 적어져 잡념이 더욱 적어졌을 때, 당신이 한 말에 힘이 실리는 것을 당신은 발견하게 된다.”[7]

이후 나는 수구와 마음을 닦는 방면에서 명확하게 제고할 수 있었다. 더욱 큰 충돌이 있어도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고 격렬한 언어와 악언으로 대하지 않는다. 내 공간장에서 다른 사람을 정복하려는 것이 사라졌고 상대방보다 우세를 차지하려는 생각이 사라졌다. 이런 나쁜 물질이 제거된 후 더욱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자비로 사람을 대하는 층차에 올라갔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느낌은 온화하고 평온하기를 희망하고 자신이 얼마나 총명하고 능력이 있는지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자비를 체험

대법제자의 사명은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는 말은 반드시 자비로워야 하고 반드시 초범적인 경지를 체현해야 사람이 진상을 듣고 싶어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더욱 높은 층차에 이르렀을 때 당신의 사상은 갈수록 순정해져서 당신 사상이 내보낸 것이나 해낸 말은 아주 깨끗하다. 더욱 깨끗할수록 더욱 단순하며 우주의 이 층 이치에 더욱 부합된다. 한 말은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관통할 것이고, 사람 의식의 깊은 곳까지 미칠 것이며, 그의 생명의 더욱 미시적인 곳에까지 미칠 것인데,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요해질 수 있는 것은 하나의 경지(境界)의 체현이다.”[7] 나는 마침내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거듭 제자에게 법공부를 잘 하고 마음을 잘 닦으라고 하신 이유를 알게 됐다. 그렇지 않으면 바른 에너지가 없어 세인의 부정적 사상을 개변할 수 없고 내심에서 우러나는 자비가 없으면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매번 설법에서 우리에게 거듭 안으로 찾으라고 충고하셨다! 처음에는 정말로 어려웠다! 매 사람은 사람과 모순이 생길 때 속인의 반응은 가장 먼저 밖으로 찾고 타인의 잘못과 책임을 찾는다. 동시에 구실을 빌어 자신의 책임을 떠민다.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 속인의 마음을 바꾸려면 정말로 어렵다! 사람의 생각을 거꾸로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찾으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을 지키지 못할 때 엉망진창이 된다. 쉽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마음속의 손가락은 상대방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법에서 일사일념을 수련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충돌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안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고 표면상 자신이 잘못이 없는 듯해도 진지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마음이 간접적으로 촉진한 것이거나 혹은 자신이 마땅히 제고해야 한다고 경계하는 것이다.

물론 내 층차는 한계가 있기에 매일 밍후이왕을 보고 밍후이라디오 교류 문장을 듣고 법회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진지하게 사고하고 수련생과 함께 나눈다. 그리고 자문해 본다. ‘만약 이런 유사한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법에 부합되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수련생의 수련 교훈에서 나도 배워야 한다. 수련생은 무사무아의 표준으로 할 수 있기에 나도 할 수 있다. 이 무형 중의 도움은 내 심성을 수련시킬 수 있다. 수련인은 매일 한꺼번에 상황을 만나지 않기에 수련생의 상황과 대조하고 자신이 있는 심성 층차에서 검사하고 자신이 끊임없이 정진하게 한다. 나는 밍후이왕을 설립하게 하시고 전 세계 수련생이 함께 교류하는 장소를 개창해주신 사부님의 고심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밍후이왕 문장에서 사부님을 회상하는 문장을 여러 번 보고 나는 감동의 눈물이 나왔다. 자비롭고 위대한 정법 사부님께서는 무조건 수련생에게 지불하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관귀족이든, 평민백성이든, 사업가든, 농민이든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동등하게 대하시며 열심히 가르치는 태도는 사람 중의 계층과 빈부귀천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셨다. “천백 년, 억만년, 그가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왔든지 실은 모두 최후의 이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생일세 혹은 어느 한 가지 일을 잘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구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부가 한 생명을 볼 때는 한 생명의 전 과정을 본다. 역사상 그가 아주 많은 좋은 일을 했으며, 심지어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도 많은 업적을 다졌는데, 금생에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구도하지 않을 것인가?”[8] 사람은 모두 생생세세 윤회에서 죄업을 지었고, 금생에 당신이 밥을 빌어먹어도 당신의 전생은 사람에게 존경받던 왕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문을 크게 열고 대법이 홍전하면, 당신이 이 문에 들어서면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제도하고 무조건 당신을 위해 생생세세 원한을 해결해 주신다.

사부님께서는 비록 매 대법제자 옆에 계시지 않지만 진수제자는 사부님의 법신이 수시로 각종 방식으로 미혹 중의 제자를 점화해주시고 도와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때로 마음속에 고민이 있는데 ‘전법륜’을 펼치거나 각지 설법을 읽으면 답안이 즉시 모 단락과 경문에 있다. 정말로 신기하다. 때로 생활에서 번거로움을 만나면 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면 외부적인 교란 요소는 사라진다. 한번은 한 활동에 참가하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지만 사부님께서 더욱 빠른 공간으로 가게 하셨다. 이런 신기한 경험은 대법제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밍후이왕 문장에서 천목이 열려 있는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미소를 지으며 제자를 보고 계신다고 말했다! 제자가 잘못을 할 때,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사람과 충돌할 때, 모순이 생길 때 사부님께서는 엄숙한 표정으로 연화좌에 앉아계신다. 제자의 수련상태가 좋을 때는 사부님께서 제자 집에 우담바라 꽃이 피게 해 제자를 격려해 주신다. 혹은 제자가 층차를 제고할 때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보게 하신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지켜보고 계신다. 지금 대다수 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한 것 같고, 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을 때 ‘전법륜’을 펼치고 감히 사부님의 법상을 보지 못한다. 자신이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없다. 하지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넘어졌다면 다시 기어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대단한 것이니, 다시금 잘하라.”[9] 이는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도하시느라 아주 고생스럽다는 것을 제자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고생스러운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하시기 위해 각 천체, 우주의 각 공간 층차에서 온 각종 고난과 교란과 부딪혀야 하신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신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각 천체가 다시 결합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소멸되고 와해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런 정사대전의 격렬한 장면은 그들의 서술을 봐도 이미 놀랍다. 나는 마침내 대법수련자마다 그런 무조건적인 자비심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게 됐다.

신수련생으로서 나는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수련 중 3가지 일을 잘하려 한다. 수면시간을 4-5시간으로 줄이고 더욱 많은 시간으로 사람을 구하려 하고, 속인사회의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피한다. 하지만 기타 일도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가정이 중요하지 않고 사회가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가정과의 관계를 평행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의 형식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말했다.”[10] 나의 이해는 사람과 접촉하면서 심성을 수련하고 의지를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왕래를 극단적으로 피하지 않는다. 자신이 마땅히 가정,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는 지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어디에서나 다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11]

법을 얻은 지 2년이 됐을 때 나는 마침내 9일 학습반에 참가했다. 열정적인 수련생들은 매월 정각에 학습반을 열고 무료로 파룬궁을 가르치고, 명을 구하지 않고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날씨가 어떻든지 10년을 하루같이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심 없는 공헌과 지불을 보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지도하고 참을성 있게 동작을 바로 잡아주어 감사했다. 나는 연속 3번 9일 강의를 들었다. 내 연공동작은 점차 표준에 도달했다. 사부님의 배치와 수련생의 가지 아래 나도 공을 가르치는 봉사 대열에 참가했다. 사부님의 배치에 아주 감사드리고 신수련생이 정진하는 노수련생에게 배우고 함께 정진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여기에서 특히 밍후이왕에 감사드린다. 나에게 밍후이왕은 난세의 금광이다. 그는 가장 꾸밈없는 언어, 간결하고 밝은 홈페이지를 디자인했고, 읽기 좋은 방식으로 수련인의 내심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전문 끝)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법에 용해되다’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미국 서부국제법회’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7]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8]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8-2008년 뉴욕법회설법’

[9]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16년 뉴욕법회설법’

[10]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7-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1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휴스턴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인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4/3328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