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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난(魔難)이 올 때 자신을 바로잡다 (2)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마난이 닥쳐올 때 자신을 바로잡다’라는 문장은 밍후이왕 수련생의 정리를 거쳐 제12회 대륙법회에 발표되었다. 지금 이 발표는 그 후에 겪은 마난과 심성의 변화를 체험한 것이니 수련생들은 거울로 삼기 바란다.

2015년 8월 31일 나와 남편은 층층의 방해를 돌파하고 병원에서 걸어 나왔고 마치 한 세대를 거른 것 같았다. 손에는 대법책이 있고 법 중에 융해되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 남편이 나와 함께 수련하고 ‘전법륜’을 읽음에 기적은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나는 경각심을 느슨히 했고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것을 느슨하게 했다.

1. 잘못된 인식

병원에서 나왔다고 마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큰 고비, 어려움은 여전히 눈앞에 있고 구세력은 호시탐탐 노리며 손을 놓지 않고 죽어도 뉘우치려고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면 마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병업의 가상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병에 걸렸거나 불치병에 걸렸던 많은 속인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거나 혹은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면 다 낫지 않았는가? 어떤 수련생도 “안을 향해 집착을 찾아내고 사악을 해체하면 병이 나아요.”라고 했다. 그래서 집착심을 찾으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안을 향해 찾았지만 모든 것은 달라진 것이 없고 남편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다. 내 마음도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또 어지럽고 정신이 흐릿해지며 기억력이 감퇴하고 심지어 발음도 정확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려움에 떨고 좋지 않은 생각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수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많은 법공부를 했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늘 눈으로는 그의 일거일동을 훔쳐봤다. 또 손을 좀 더 높게 들지 않았는가, 또 크게 한 발자국 내디디지 않았는가? 집착할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이런 상태는 내가 세 가지 일 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데 어떻게 원만하겠는가? 법을 실증하는 것도 따라갈 수 없고!

어느 날 수련생과 의논했다. “시골에 내려가 현수막을 걸거나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저도 불러 주세요.” 그러자 그는 “지금도 부족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거절당하자 불만스러웠고 억울하여 원망했다. 저녁에 수련생이 왔는데 “우리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시골에서 주유한 장부가 똑똑하지 않는 것은(남편은 기사였다) 마음이 순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괴로웠고 많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시골로 내려가는 모든 비용을 거의 다 감당했고 크고 작은 향진 마을을 다 다녔다. 얼마나 많이 고생했는지 당신들이 아는가?’ 나는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가늠했고 안을 향해 찾지 않고 한사코 덮어 감추려고 해 수련생과 많은 틈이 생겼다.

병원에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남편은 중풍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심성이 제고되지 않았으며 마난 속에 처해 있었다. 조급하지만 나는 방법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법공부를 하고 약을 먹지 않으며 법에 부합되면 사부님께서 관할해주실 거로 생각했다. 이것은 강력히 추구하는 마음이다. 법에서 날 도와주지 않는다고 수련생도 원망했다. 수련인은 병이 없다는 것도 알고 법공부와 연공도 많이 했고 안을 향해 찾기도 했으나 상태를 개변시킬 힘이 없어 그냥 감당하기만 했다. 나는 나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고 구세력이 잔인한 수단을 써서 의지를 무너뜨리고 정력을 소모해 그것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2. 수련생의 일침[棒喝], 안을 향해 찾게 일깨우다

고비를 넘기지 못하여 괴로웠고 집착심이 많아 온통 좋지 않은 생각에 갇혀 수련생을 봐도 눈에 거슬렸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가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수련생을 배치해 나와 교류하게 해 주셨다. 수련생은 “남편이 마난에서 벗어나는데 당신이 주력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수련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장사와 수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얼 가지겠어요?” 라고 했다. 수련생의 말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무엇을 위해 왔는가?

‘만고의 기연 오직 이 한차례 위해서라’라는 한마디가 생각났다. 남편이 병업 관을 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내가 심성 관을 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러운 사람의 마음으로 대법을 가늠하고 수련생을 의심했다. 도대체 전력을 다하여 장사할 것인가 아니면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겠는가? 나는 마음을 할퀴고 뼈에 사무치게 힘든 선택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어렵게 자랐고 거기에 당문화의 사상에 물들었고 살아오면서 몇 년 동안 고생하면서 경영하고 자랑으로 여기는 장사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인생에 대해 독특한 견해가 있는데 슈퍼우먼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많은 별이 달을 에워싸는 듯한 느낌을 좋아했다.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면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야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람으로 한 손으로 사람을 잡고 한 손으로는 신을 잡고 있다. 이른바 사업이라는 게 이렇게 날 고통스럽게 할 줄이야.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법 중에서 건강한 신체를 얻기 위한 것인가, 평온한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욕망을 만족하기 위한 것인가, 자아 원만을 위해 연마하는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좋다는 것을 줄곧 증명하고 있었고 고통을 회피했고 마난을 두려워했다. 모든 것을 밖으로 보는 것은 나에게 치명적인 방해가 되었다.

나는 수련하고 싶다. 진정으로 수련하고 싶다. 그 수련생은 나에게 또 “이 몇 년 동안 진정으로 수련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마치 하나의 벼락이 머리 위로 치는 것 같았다. 나는 반복하여 자신에게 물었다. 수련하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는가? 그 수련생의 말한 것이 옳은가? 이때 진짜 나(眞我)와 가짜 나(假我)가 마음속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가짜 나, 어찌 연마하지 않았는가?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5장 공법을 한번에 했다. 7시 전에 가게에 나가 장사했고 저녁에는 법공부를 12시까지 했다. 얼마나 고생하고 정진했는가!

진짜 나(眞我), 그러나 법공부를 마음에 와 닿게 했는가? 많은 시간은 형식적이었다. 법공부를 하면 졸렸고 자정 정각 발정념까지 견지했다면 아주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짜 나, 거의 매주 현수막을 걸고 스프레이 페인트로 글을 쓰고 진상 자료를 배포했으며 차를 운전하고 나가면 저녁 늦게 돌아왔다. 드높은 기세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진짜 나, 한 일은 확실히 많다. 그러나 법을 실증한 것인가 자신을 실증한 것인가? 정념이 없이 사람의 배짱으로 일하는데 마음이 순정한가?

가짜 나, 장사할 때 자발적으로 달력, 소책자, 션윈CD를 배포했다.

진짜 나, 사람을 구하는 것을 첫 자리에 두었는가, 장사를 첫 자리에 두었는가? 물건을 사면 줬다. 속인이 기념품을 주는 것처럼.

가짜 나, 장사할 때 적극적으로 삼퇴도 권했다.

진짜 나, 탈퇴를 권하는 것도 목적이 있다. 정말로 그를 위했는가?

가짜 나, 수련하기를 가장 원하고 있다. 장사가 잘되면 사람도 많이 구할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진상을 알리는 플랫폼이다.

진짜 나, 강렬하게 추구하는 마음 있고 목적이 극히 강하다

가짜 나, 이렇게 많은 노력을 다해 수련했는데 왜 병이 낫지 않는가?

진짜 나, 사부님께서 “德(더)를 중히 여기지 않으면 병도 나을 수 없으며, 공을 연마(練)한다고 해서 무슨 병에나 다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청성해졌다. 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이 아니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다. 어제의 나는 관념, 업력, 정에 에워싸였고 오늘의 나는 먼지를 닦아 버리고 환골탈태했다.

3. 관념을 전변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여 가정의 평형을 이루다

시아버지는 ‘7.20’ 때 사악의 박해를 받아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정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시누이가 시어머니의 생활을 돌봄에 따라 시어머니는 점차 대법에서 멀어졌다. 나는 마음이 몹시 조급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으로 그녀를 일깨우고 그녀의 수련 의지를 격려해 주었다. 딸에 대한 남편의 마음을 알고 그를 돕고 마음을 써주었으며 그의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했다. 시누이에게도 성심으로 대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며 자기 생각을 내려놓았다. 시댁에 가면 여러 방면으로 일손을 도왔다. 그들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잔소리하지 않았고 언제나 웃으며 원망하지도 않았다. 남편도 인내심을 가지고 꼼꼼하게 돌보았다. 수련은 속인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다. 수련의 길에서 한 단계 올라가게 나를 도와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남편은 나를 돕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다. 남편은 깔끔한 사람이라 늘 집 안이 지저분해 집에 있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밥 한 끼 하면 세 끼 먹는다고 비웃었고 멀리 일본에 있는 딸에게 일러바쳤다. 그래서 그가 한마디 하기만 하면 마음이 심란했다. 나는 쉬운가? 하루 세끼에 빨래하고 청소해야지, 장사해야지, 팽이처럼 아침저녁으로 돌고 일마다 신경 써야지. 그러나 수련은 속인의 이치와 반대다. 마땅히 관념을 바꿔야 한다. 왜 내가 이토록 고생하고 있는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은 다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 마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고하게 자신을 믿는다.

어느 날, 남편은 가지튀김을 먹고 싶다고 했다. 할 줄 몰라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그럼 탕수육을 해달라고 했다. 먹어보기는 했지만 해본 적이 없다 생각하면서 머리를 들고 남편을 보니 눈을 부릅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요, 탕수육을 해줄게요.”라고 했다. 그는 손짓해 가며 설명했다. 1cm가량의 두께로 썰고, 튀김옷을 입히고 중불에 초벌로 튀겨 주고 다음에 센 불에 한 번 더 짧게 튀겨주고 표면이 바삭해지면 바로 건져내야 하고 소스도 만들어야 한다…… 아이고 요구가 이렇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의 설명에 따라 하다가 기름이 몸에 튀어 허둥거렸다. 이것은 밥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다.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미안해요, 다시 튀길게요.”라고 했다. 마음가짐을 바로잡은 후 무엇을 하든 싱글벙글 웃었고 날마다 수련으로 생각했다. 마음을 바로잡자 채소도 맛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성이 제고되자 남편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고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간단한 일도 할 수 있고 어떤 때는 발음이 똑똑하여 부드럽게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함께 ‘전법륜’을 배우고 단체 법공부 팀에도 참가했고 사지도 가볍게 감각이 있게 되었으며 차츰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의학적 기적을 만들었고 또한 대법의 위대함도 실증했다.

맺음말

구세력은 남편의 몸을 향해 검은손을 뻗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에 대해 잔인한 수단을 썼다. 나의 수련 의지를 무너뜨리려 했고 우리 부부를 파멸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사존께서는 이 속인의 마음이 많은 제자를 포기하시지 않으셨다. 마난의 고통 중에 있는 나에게 법리를 보여주셨고 길을 잃은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가르쳐주셨다. 연마할 줄 모르는 데에서 착실하게 수련할 줄 알게 되었다. 곤두박질치면서 사람 속에서 걸어 나왔다. 이 한차례 고통스러운 마난 중, 안일한 환경 속에서 깨달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사람의 마음과 관념을 수련해 없앴다. 구세력이 배치한 미로에서 길을 찾았고 구세력을 부정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의 일침에 감사합니다. 또다시 반본귀진의 대도(大道)에서 새롭게 걷게 되었다. 마치 ‘서유기’ 주제가처럼 ‘울퉁불퉁한 길을 밟아 평평한 대로로 만들고 험난한 길을 또 출발한다.’

원문발표: 2016년 10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5/3358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