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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데 입각해 영원히 소침하지 말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단지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네.” 이 시에서는 한 가지 이치를 말했다. 만약 한가지 일 혹은 한 가지 물건을 똑똑히 보아내려면 그 속에 있지 말아야 비로소 똑똑히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국면 혹은 어느 한 세부적인 절차 속에 빠지거나 심지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수련인이 문제를 보면 전체적으로 보아야 하고 큰데 입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사람을 봄에 그의 일시적인 표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반 인생과정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그의 과거 역사를 보아야 하고 심지어 이 생명의 근원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생명은 절대 다수 모두 법을 얻으러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생명이 오늘 무슨 나쁜 일을 했거나 혹은 무슨 부족함이 있어도 이 생명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이 각도와 기점에 서서 사람을 보면 사람 눈에 의해 국한되지 않고 흉금은 또 더욱 커지고 일부 작은 일에 얽매여 빠지지 않게 된다.

수련인은 일시적 안일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 자신을 봄에 있어서 멀고도 홍대한 기초에 서서 보아야 한다. 우주의 역사에서 우리 대법제자가 마침 무척 중요한 역사적 관두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 자신도 거대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즉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현재 처해있는 위치와 현재 해야 할 일들이다.

아울러 이 일체에 이러한 기회, 즉 대법제자가 정법 중에서 수련할 수 있고 중생이 구도될 기회가 있게 된 것은 사부님께서 모진 어려움을 마다하시고 파멸될 구우주를 구원하시는 가장 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깊고 깊은 역사적 배경 하에서,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 하에서 일체 중생은 구도될 희망이 있게 됐다. 불은호탕으로 사부님의 자비를 형용할 수 없고 우리는 모든 언어를 다 해도 형용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 모두 과거 역사의 언어이기 때문이고 과거의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었다. 천상의 신도 이러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은 그가 이 우주 중의 생명이기만 하면 모두 사부님께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이 현재 생존할 수 있음은 사부님께서 중생에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가 현재 어떠한 단계에 있어야 하는가? 개인적인 깨달음은 이미 정법이 막바지에 도달했고 심지어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지만 많은 수련생들이 오히려 소침해졌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마땅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최후일수록 더욱 느슨히 할 수 없고, 최후일수록 더욱 법공부를 잘해야 하며, 최후일수록 정념이 더욱 강해야 한다.”[1] 정법의 형세는 돌비맹진(突飛猛進)하고 인간세상의 사악들이 앞 다투어 붙잡히거나 기타 형식으로 업보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제자는 오히려 느슨해졌고 심지어 자신의 사명을 잊고 속인과 혼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깨달았다. 소침은 역시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제자 표면 사람의 관념도 이용당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사상은 아주 취약하고 협소해 막다른 골목에 쉽게 빠져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부 수련생은 강제적으로, 혹은 고문 속에서 이른 바 ‘전향’한 후 신심을 잃었고 심지어 자포자기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사실 당신은 무슨 ‘전향하든 전향하지 않든지’ 간에 반드시 앞을 향해 보아야 하고 교훈을 받아들인 후 노력해 이후의 길에서 바르게 걸어야 한다. 오로지 당신이 법을 생각할 수 있고 혹은 법공부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배워야 한다. 기회와 인연은 얻기 힘들고 그 낡은 배치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또 일부 수련생은 한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해 자책 속에 빠지고 심지어 오랜 시간 그 속에 빠져있다. 그것 또한 사람의 일면이 넘어가지 못한 것이고 스스로 어떤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마음속으로 늘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사실 당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 원인을 찾은 후 이후에 잘하면 된다. 시간을 쓸모없는 자책 속에서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이는 올바른 반성과 다름).

또 한 가지 상황이 있는데 이것 또한 자신이 부딪힌 것이고 자신이 어느 한 방면에서 늘 잘하지 못하고 대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자 후회하기 시작하고 다음에 잘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한동안 지나 옛 병이 도지듯 또 범하자 이번에는 신심이 좌절당했고 자신이 안 된다고 느낀다. 한동안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하고 한동안 정진했지만 또 저지르며 계속 반복되는 것이 어찌된 일인가? 자신은 분명히 잘하려고 생각하지만 관건적 시각에는 왜 안 되는가? 자신도 줄곧 사고하지만 원인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원인을 생각해내지 못해도 다행히 여전히 세 가지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아마도 이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바 관건은 그곳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넘어지면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온갖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 경주에서 일부 선수는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처한 것인지를 모른다(미혹에서 닦는 것과 같음). 앞장섰는지, 아니면 뒤떨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늘 넘어지고 이 달리는 속도마저 아주 빠른 편이 아니다(스스로 빠르지 않다고 느낌). 이런 상태에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안 되는 것이 아닌 가고 느끼고 이렇게 달려도 순위에 오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점차적으로 소침해져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지 않는다. 심지어 걸어가고 마음속으로 어차피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경주를 포기한다.

사실 당신 생각에 어떻게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당신은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라톤’ 항목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는 얻기 힘든 기회이고 이후에 더는 참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려야 하고 달리지 못하겠으면 걷다가 힘이 생기면 다시 달리고 바로 이렇게 견지해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한 가지 일에서 혹은 몇 가지 일에서 잘하지 못했다고 소침해지지 말고 우리는 지극히 특수하고 심원하고 홍대한 배경에 처해있다. 우리가 이런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는데 당신이 오로지 이 ‘마라톤’ 항목의 일원이라면 당신은 이미 대단한 것이고 당신이 몇 번 넘어져도, 당신은 자신이 어떻게 안 된다고 여겨져도, 당신은 얼마나 어렵게 느껴져도 당신은 모두 끝까지 견지해야 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잘해야 한다. 그러한 시시콜콜한 세부적인 것들의 영향을 받지 말고 당신이 어떠한 환경 조건에 처해도 당신은 모두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영원히 소침해지지 말아야 한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제1위다. 개인의 감수 느낌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속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개인의 득실, 성패, 감수, 느낌 모두 내려놓아야 하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잘 닦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이것 또한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2]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마도 당신으로 하여금 소침해지게 하는 것이 바로 구세력의 배치이고 당신이 진짜로 소침해지면 구세력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이다. 때문에 ‘순위’를 매기지 말고 보답을 바라지 말며 더욱이 일시적으로 한 가지 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큰데 입각해 일체 인간세상의 이치를 초월하고 일체 낡은 배치를 초월하고 일체를 초월하는 의지를 닦아내야 한다. 비록 계속 넘어져도 영원히 주눅 들지 말고 소침해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은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도되는 기연은 우리가 영원히 소중히 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법의 자비는 일체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부님의 홍은(洪恩)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영원히 신심으로 충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캐나다 법회에’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문장발표: 2016년 9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9/3351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