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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고 관념을 제거하면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다

글/ 토론토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대형 차량을 빌려 법회에 참가하면서 임시로 맡은 협조인으로서의 체험

매번 법회에 참가할 때, 우리 토론토 수련생들은 대형 버스 3, 4대를 빌렸다. 근 몇 년 동안 큰 버스를 빌려오는 수련생들은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비록 짧은 며칠이지만 매년 한 두 번의 이런 기회가 있으므로 도리어 나에게 다른 각도에서 자신을 수련하게 했다. 나는 협조인의 역할은 쉽지 않고 여러 수련생을 위해 봉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많은 사람 마음을 폭로하고 닦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이득을 얻었다.

나는 처음에 매우 긴장했고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웠으며 돈을 걷을 때 계산이 틀릴까 봐 두려웠다. 세관을 지나갈 때 어떤 수련생이 혹시나 문제가 생겨 세관을 통과하지 못할 때 전체 여정에 영향을 줄까 두려웠다. 중간에서 휴식할 때 수련생을 떨어뜨릴까 봐 두려웠고 매일 아침 출발하고, 행사가 끝나면 수련생이 지각하거나 도착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한두 명의 수련생 때문에 때로는 번화한 거리에서 수련생을 기다리게 되는데 경찰은 아무 때나 나타날 수 있으니 또 운전기사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길까 봐 두려웠다. 이렇게 나는 길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다음 순서를 또 어떻게 할지 계획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총 협조인은 평온해 보였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간단하게 처리해냈다. 비록 많은 수련생이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지만 나는 자신과의 거리감을 볼 수 있었다. 이후에 나는 몇 번 큰 버스를 빌리는 과정에서 협조인의 짧은 경력이지만 나의 수련 중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작년 뉴욕법회 마지막 날 여행을 마치고 거의 모두가 제때에 약속한 시각에 차량 탑승 장소에 도착했다. 큰 버스 4대는 이미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고 모두 재빨리 출발하길 바랐다. 왜냐하면, 제일 붐비는 시간에 번화한 거리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 버스에 수련생 두 명이 오지 않았고 전화 연락도 되지 않아 다른 버스 기사 아저씨는 기다리기 싫어서 출발해 버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두 수련생을 원망했고 다른 수련생들도 이러쿵저러쿵했다. 이때 그 두 명의 수련생이 현지 수련생의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를 걸어왔다. 여행 출발지점에서 우리의 차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종착 지점에서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출발지점으로 갔는가?”라고 더욱더 불평을 털어놓았다. 나는 운전기사와 상의해서 그들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교통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라 운전기사는 난처해 했다. 나는 좋지 않은 말투로 그들에게 알아서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4시 지나서부터 6시 넘었을 때까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고 걸어서 왔어도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팀으로 나누어 주변 길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 있던 어떤 수련생들은 발정념하고 어떤 수련생은 대형버스를 탄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마음이 너무 여려서 엄하게 단속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협조인에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운전기사는 비록 사람은 좋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협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수련생에게는 핸드폰이 없어서 연락할 수 없었다. 나는 길 입구에 서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불안해졌고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고 수련생을 원망하면서 안으로 찾지 못했고 선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못을 뉘우쳤다.

사부님께서는 “어떠한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여러분은 모두 마음을 온건히 가져야 한다.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게 잘못을 바로잡는 기회를 주시고 이 망망인해에서 그들을 찾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거의 내가 이 일념을 내보내는 동시에 그들이 조급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빨리 돌아오려고 노선버스를 탔는데 길이 너무 막혔다고 말했다. 그들은 버스 안에서 몹시 조급했지만 나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사실은 수련생이 잘못한 게 아니라 우리의 사람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고 급하면 급할수록 더욱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고 신사신법하지 않았으며 안으로 찾지 않았고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버스로 올라가서 나는 모두와 자신의 인식을 교류했다. 모두 안으로 찾기 시작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활발하게 교류했다. 나는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완전히 녹아내렸고 또 그 두 수련생을 보니 귀여워 보였다. 수련생들은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앞에 가서 교류하려고 했다. 이 일로 인해 우리는 많은 체득을 얻게 되었다. 운전기사도 중간에 쉬지 않고 운전하는 바람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두, 세 시간이 흘러갔다. 갑자기 우리의 버스는 앞에 먼저 출발했던 두 대 버스를 추월한 것을 발견했다. 수련생 모두가 운전기사에게 힘을 내라고 환호했다. 또한,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마음을 닦는 것이 옳다고 격려해 주셨음을 알았다.

2. 자아를 내려놓고 타인을 성취하다

올해 뉴욕법회 전, 천국악단 협조인은 토론토(多伦多)지역 수련생들이 초대형 악기를 다른 지역 악단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도록 요구했다. 나는 악단팀 버스를 책임졌기 때문에 협조인은 나에게 큰 악기를 가져가라 했다. 그리고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출발 전, 속인의 일이 너무 바빠서 법공부, 연공이 부족했고 또 자신도 큰 악기를 들고 퍼레이드에 참석해야 했기에 예전처럼 조금만 가지고 갈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 며칠 동안 나는 큰 버스를 책임져야 한다는 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고 이 악기들을 누구에게 분배하고 어느 나라 천국악단 단원들에게 줄지, 어떻게 짧은 시간에 수련생들에게 전해주고 어떻게 악기를 운반해주며 이 악기들을 지켜줄 수 있는 30여 명의 수련생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만약 뉴욕에 도착해서 악기를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일련의 문제가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에 확실히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심태는 나에게 안으로 찾게 했고 자신은 또 사람 마음으로 이런 일들을 생각했다는 것을 발견했고 사부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일체를 배치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니 바로 홀가분해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고 모두를 이끌고 법공부하고 매 한 수련생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 임무를 반드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생각한 대로 사부님께선 이 일체를 가지런하게 배치하셨다. 나는 다만 많은 일을 차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배치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초대형 세 개와 대형 두 개를 4개 국가 천국악단 단원들에게 전해주었고 이 법기들이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수련생들이, 이 며칠 동안의 느낌을 교류하길 기다렸다. 이것 또한 내가 큰 버스를 즐겨 타는 원인이기도 하다. 매번 수련생들의 발언은 모두 내 생각이 확 트이게 했으며 진실성 있고 감동적인 교류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런 바른 인식에서 나의 구하는 마음, 자신의 느낌이 좋았다는 마음을 덮어 감췄다. 전에 모두가 교류를 잘하면 수련생들은 나를 칭찬해주었다. 나 또한 사부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완성했다고 기뻐했으며 동시에 ‘이 책임자는 괜찮네, 수련생들이 교류를 잘하고 못하고는 나의 계발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받아들였다. 비록 밖으로 배척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안에다 놓았고 이런 위사(爲私)의 경지는 이번 교류 때 저애 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끊임없이 수련생들에게 연분의 소중함을 여기고 교류하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말했는데 처음에 나는 나의 원인인 것을 몰랐다. 또 모두가 인정하는 늘 교류를 잘하는 수련생들에게 벽돌을 던져서 옥구슬을 끌어들이도록 했다. 이 수련생의 감동적인 교류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기분이 여전히 활발해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나는 몇 명의 수련생 이름을 불렀지만, 그들은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좀 짜증이 났고 좋지 않은 생각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모두 너무 피곤했는가? 나도 피곤하다. 이렇게 당신들에게 발언하라고 했는데 여전히 장애가 이렇게 많은가? 정말 할 말이 없는가? 억지로 하는 발언도 별로 재미없다. 이렇게 교류를 끝내면 당신들은 후회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고 안으로 자신의 사심을 찾게 되었다. 아울러 정념으로 제거하고 즉시 이런 마음을 폭로했다. 나는 진심으로 모두가 나의 이런 바르지 못한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길 바라며 마음을 털어놓고 같이 제고하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수련생들의 교류는 활발해졌다.

이때 마침,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법을 얻었고 아주 훌륭했었지만 도리어 이 몇 년 사이 속인 사회 미혹 속에 빠졌었다는 한 소년 수련생이 앞으로 나왔다. 영어와 능숙하지 않은 중국어로 그가 전에 망망하고 고통스럽고 몸부림쳤던 경험을 진지하게 교류했고 이번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의 감동을 교류했다. 통역하는 수련생도 아주 정확하게 그의 느낌을 통역했다. 차 위에 있던 수련생들은 그를 위해 환호하고 박수했다. 그의 어머니도 앞으로 나와서 발언했다. 잇따라 20여 세 정도 되는 몇 명의 수련생들도 그들의 경력을 교류했는데 감동적이었다. 나는 자신이 집착에 이끌리지 않고 교류를 끝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기뻤다. 나는 협조인의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도 되고 일마다 협조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아를 내려놓을수록 모두의 능력은 가장 거대하게 발휘할 수 있고 심지어 자아를 희생하고 타인을 성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 자신의 주변에 법과 연분이 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생과 중생을 선하게 대하다

나의 딸은 4살 때부터 나를 따라 수련했고 6살 때 캐나다로 왔다. 박해가 시작한 후, 딸은 나를 따라 곳곳을 따라다녔고 도처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두 번이나 나를 따라 제네바로 갔었고 9살 때 나를 따라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들었다. 또 여러 번 미국법회와 여러 집회 그리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딸은 처음으로 천국악단에 참여한 어린 수련생 중의 한 명이다. 또한, 잘못 깨달았을 때(偏悟) 줄곧 나의 옆에서 나를 도와 구세력이 안배한 검은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했고 정체의 생명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생명이다.

하지만 나의 수련상태는 곤두박질치면서 줄곧 철저하게 가족에 대한 정을 돌파하지 못했다. 딸은 커가면서 대법에서 점점 멀어졌고 나를 따라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딸은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고 반박심이 매우 강했다. 사유방식도 다른 사람과 달랐고 말을 해도 급소를 찔렀고 때로는 딸의 말이 칼처럼 뼛속까지 아프게 했다. 나는 되도록 심성을 지키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딸과 똑같이 하지 않았기에 줄곧 자신은 안으로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딸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는가? 여전히 화를 내고 우울했다. 나는 나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기에 잘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조급해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딸은 자기 심태가 좋을 때도 나는 딸에게 포용한다고 말했다.

근 몇 개월까지 사부님의 설법 법회에 참여하고 수련생들의 교류에 참여하면서 나는 갑자기 알게 되었다. 자신이 이전에 일체 안으로 찾은 것은 표면에서 찾았던 것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2] 나는 이 생명에 대해서 사실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뿐, 딸 표면의 표현으로부터 반대로 자신을 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왜 늘 이런 표현을 하는가?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으로 옮겼을 때, 자신이 이전에 무엇이 안으로 찾는 것인지에 대해 아예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신변에 있는 두 생명 – 남편과 딸은 나의 집착을 알게 하려고 끊임없이 나의 앞에서 ‘연기하고 고통스럽게 연기했다’. 나는 도리어 그들을 원망했다. 깨달음이 너무 차하고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고 쟁투심도 어찌 이렇게 심한가. 또 걸핏하면 그들과 싸우기도 했다. 때로는 왜 나의 옆에 이 두 생명을 배치했는가, 다른 집 아이들은 그렇게 귀여운데 라고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나는 알았다. 그들이 표현해낸 것은 사실은 나의 집착심을 확대한 판(版)이었다. 나에게 나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하려고 나에게 연기해 주었다는 것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늦게 되어서야 이 점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위 가족들과 수련생들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고 비록 그들은 이런 배치를 모르고 있지만 나는 반드시 잘 수련해서 이 생명의 고생스러움에 떳떳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이렇게 생각할 때, 아무 때나 무조건으로 자신을 찾았을 때, 상대방은 즉시 태도를 바꿨다. 나는 그가 나의 마당에서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고 나의 태도도 때로는 연극 같은 개변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 오타와, 뉴욕, 몬트리올, 캘거리에 가면서 전에는 남편을 향해 모두 ‘당신이 어떻게 말하든지 나는 갈 것이다’라는 일념을 정했다. 남편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때로는 한숨만 쉬곤 했다. 이번에는 나는 남편에 대한 이해심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도 이 몇 년 동안 쉽지 않았다. 이 생명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대법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그가 기뻐하지 않으면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고 나는 진지하게 고칠 것을 생각하고 이런 심태에서 그에게 알려줬을 때, 남편은 매우 평온했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예전과 같이 나와 웃고 말했다. 딸도 마찬가지로 딸이 화를 낼 때, 나는 즉시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자신을 안으로 찾아보고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내심으로부터 딸의 말이 매우 옳다고 칭찬해줬다. 나는 왜 발견 못 했는가? 딸도 바로 자신의 태도가 나빴다고 사과했다. 나는 이렇게 재빨리 관을 넘었다. 하지만 나도 자신의 정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딸이 늘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서길 바랐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특히 정법 기간에, 우주 중의 모든 정부(正負) 생명은 다 이번 정법 중에서 구도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최고의 층층의 무량하고 거대한 신, 특히 그것의 그런 세계의 중생을 포함해서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세간과 삼계 내에 발 하나를 들여놓았는데, 그것들이 이 만겁(萬劫)에도 만날 수 없는 목숨을 구할 기회를 놓치려 하겠는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모두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표현형식은 세간의 논리로 인식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아주 겸손해야 한다. 당신이 나를 구해 주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드리고, 내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여,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이 세워지고,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면,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모두 이렇게 한다.”[3]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반드시 일체 망념을 내려놓고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는 것을 조금 알았다. 마치 사람을 구해서 배에 태우려면 그 위덕과 경지를 닦아야 이 배를 잘 만들 수 있고 중생들이 배에 올라탈 생각이 있어야만 정말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선 중생에게 가장 좋은 귀결점을 안배하실 것이다. 주위에 법을 위해 온 생명은 구세력이 배치했든 사부님께서 장계취계하여 배치하셨든지 모두 대법제자의 수련을 둘러싸고 온 것이다. 대법제자가 정말 시시각각 안으로 찾고 주위의 일체를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고 다른 사람을 비추지 않는다면 자신이 잘 닦는 동시에 또 이 생명을 구도하고 그들 배후의 무수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수련생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가 표현한 것은 그의 진실한 상태가 아닐 수 있다. 그가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나를 닦으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표현만 보고 자신을 닦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에게 그런 식으로 표현해서 나의 집착을 폭로하게 하신 것이다.

최후 우리는 사부님의 간절한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길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6년 캐나다 파룬따파수련심득교류회)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미국중부법회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6년 8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8/3325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