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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화를 제거하고 진상 알리기를 더 잘하다

글/ 호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2016년 뉴욕법회설법’을 배운 후, 마음이 아주 무거웠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중국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당문화를 제거하는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게다가 장기적인 당문화의 영향 이것도 확실히 엄중한바, 사유방식과 사람의 행위가 이 세계상의 사람과 도무지 맞지 않는다.”[1]고 특별히 지적하셨다.

아래에 이 방면의 교훈과 약간의 체험을 말하려 하니 여러 수련생이 참고하기 바란다.

호주에 온 이후 3년 동안, 나는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엄동설한이든 혹서든 상관없이 거르지 않고 명소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나의 심성도 제고되었다. 쟁투심, 원한,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조바심, 급하게 이루고자 하는 마음 등 각종 사람의 마음이 갈수록 약해졌다. 그러나 사부님의 설법에 비춰보니 나에게는 쉽게 찾지 못한 아주 많은 당문화의 사유가 있었고 이는 중생을 구도하는 데 일정하게 부정적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예를 들면 명소에서 진상을 알리는 이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풍파를 겪었는데 갈등도 있었다. 모순이 생길 때마다 수련생이 주의하지 않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라고 먼저 생각했다. 사실 나는, 수련생이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생각했고 대법제자의 노래를 부르면서 진상을 알리고 녹음을 틀어놓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진상을 알리려면 여러 가지 형식으로 해야 하고 볼륨을 높인 것은 관광객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수련생이 재능이 있고 정념이 족하다고도 생각했다. 나도 아주 듣기 좋아했으며 또 즐겼다. 명소의 관리원이 제지했을 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후에야 그것이 서양인들의 조용하게 휴식하는 생활습관에 부합하지 않고 명소의 관리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부님의 설법을 배운 후에야 이것들은 모두 당문화의 사유이고 표현이며 우리의 행위가 이 사회에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심각하게 알게 되었다. 강한 ‘자아(자의식)’로 인해 다른 사람의 느낌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중생을 구하겠는가!

또 하나는 명소의 관리원이 진상을 알지 못하고 우리에 대한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고 원망했다. 잔디 위로 천 명, 만 명이 지나다니는데 우리가 진상 게시판을 설치하면 왜 안 되는가? 또 영어를 아는 수련생들이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라고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자신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안으로 찾지 않았고 제고할 기회를 놓쳐 모순은 더 커졌다.

이번에 사부님의 뉴욕법회설법을 배운 후, 당문화 사유의 위해성을 알았고 열심히 안으로 찾자 나의 당문화 사유의 표현이 아주 심하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래에 예를 하나만 들겠다. 진상을 알리는 편리를 위해 지난 2년 동안 나는 게시판을 잔디 위에 놓았다. 몇 번이나 명소의 관리원이 제지했지만 나는 관리원이 오면 치우고 그녀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와서 단속하지 않기에 다음날 나는 또 잔디 위에 게시판을 설치했다. 이렇게 그녀와 공방전을 펼치면서도 내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정념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이 당문화의 사유가 아닌가? 자신의 목적만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바로 당문화가 길러낸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사유가 그대로 해외까지 온 것이다. 이것은 진선인(眞善忍)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 그래도 관리원이 진상을 알지 못해 우리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자신은 정념이 강한데 다른 사람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강한 ‘자아’는 정말로 적반하장이다. 다른 사람의 관할지역에서 다른 사람의 관리에 복종하지 않고 기율과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이겠는가? 그 관리원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것이 대법에 먹칠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이것은 명소의 관리원과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정정당당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서 늘 일부 번거로움이 나타나 진상을 알리는 힘과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그 때문에 전체의 협조에서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 오늘 그것을 분석하여 당문화의 사유와 표현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자신의 심태를 순정하게 하여 중생구도를 더 잘해야 한다.

중국 관광객에게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늘 일부 쉽게 느끼지 못하는 당문화 표현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사람을 구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관광객을 따라 다니며 진상을 알리는데 어떤 때는 관광객의 반감을 일으킨다. 완전히 상대방의 입장이나 느낌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당문화 사유의 표현은 모두 중생을 구도하는 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수련 중에서 나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자아’의 근본에서부터 자아를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당문화의 사유방식을 완전히 제거했다. 당문화의 사유가 나타나지 않고 자아의 방해가 없어야만 자신이 더 순결해지고 정념이 더 강해질 수 있다. 하는 말의 에너지도 더욱 미시적일 것이며 속인의 머릿속에 있는 나쁜 요소도 더 많이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더욱 커서 대법에 진정으로 동화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중생구도의 서약을 이행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다.

이상은 나의 얕은 인식이니 적절치 못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지적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6년 뉴욕법회설법’

문장발표: 2016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1/3342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