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청풍
[밍후이왕] 한번은 나와 두 수련생이 나가 대면해 진상을 알렸다. 병원 복도에서 25세쯤 되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히죽거리며 전화로 나를 신고를 하고 자기 옆자리 앉으라고 했다. “아주머니 여기에 앉아 계시고 가지마세요.” 나는 분노를 억제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놈의 악당 감히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을 신고해? 만약 깡패가 네 옆에 앉아 있으면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니? 좋은 사람을 업신여기다니.’ 당시 나는 그의 따귀를 때리고 지옥으로 넣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법제자는 선해야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하며 속인 중에서 대법제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면 안 된다. 당시 나는 화를 참고 일어나 젊은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고 “아주머니는 네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단다.” 경찰이 오면 다른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는데 영향 줄까봐 두려워 조용히 동료 수련생 옆으로 가서 젊은 남자가 나를 신고했으니 먼저 가라고 했다. 그 수련생은 의아해하며 웃으며 젊은이를 보았다. 젊은이는 오만스럽고 싸우려는 기세였다. 수련생은 나를 끌고 가려 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수련생은 말했다. “기다리면 뭐해요? 두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교란당하면 안 됩니다.”
수련생을 따라 계단을 내려왔다.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리는 함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수련생은 하늘을 보고 말했다. “비가 오네요. 하늘이 대법제자가 박해를 당할까 봐 비가 내리게 해서 경찰이 오지 못하게 하네요.”
비를 피할 때 수련생은 나에게 말했다. “안으로 잘 찾아보세요. 당신은 너무 억세요. 누구도 당신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고 누가 당신에 대해 말하면 싸우죠. 당신과 오래 동안 다녔지만 당신을 비평한 적이 없어요. 당신은 이유 없이 대들어요.” 나는 속으로 듣고 인정하지 않고 반대로 화가 나서 웃었다. “당신이 본 것은 모두 표면이에요. 내가 부족해도 구세력은 나를 박해 할 자격이 없어요. 구세력은 내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교란할 수 없어요. 제 집착심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제거돼요. 제가 당신에게 대드는 것은 당신을 위한 거예요. 안 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안으로 찾고 제고할 수 있겠어요.” 옆에 있던 다른 수련생이 말했다. “보세요. 당신 또 그러네요. 그러니 누구도 당신에게 말할 수 없어요.” 나는 “물론이죠. 그러면 어떻게 경찰을 패배시킬 수 있겠어요?”
아, 스스로 자신의 집착심을 말하고 말했다. ‘패배’ 두 글자는 자신의 강대한 쟁투심을 폭로했다. 자비심이 없고 ‘진선인’을 빗나갔다. 나는 늘 “제갈량이 설전으로 군웅(群雄)을 이긴다”는 식이었고 파출소를 뛰쳐나와 득의양양해했다. 사부님께서는 ‘진선인’을 수련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왜 ‘참음’을 잊었는가? 참음을 해내지 못하면 어찌 선을 해낼 수 있는가? 다행히 억지로 참았다. 그러지 않으면 그 젊은이는…… 그도 공산당에게 속은 생명이다. 그에게도 기회를 줘야 않겠는가? 아!
수련생은 옆에서 웃었다. “수련인은 무엇을 수련하죠? 당신이 수련해 하늘에 올라가면 부처와 말다툼을 하겠네요?” 나도 듣고 웃었다. “파내버려야죠. 이 물건을 꼭 파내버려야 합니다.” 수련생은 “우리도 있으니 모두 함께 파내버리죠”라고 말했다. 나는 또 이치를 잡고 옆 수련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도 파내야 합니다. 반드시 법을 외워야 합니다.” 수련생은 “좋아요, 외웁시다, 꼭 외웁시다.”
집에 돌아간 후 ‘전법륜’을 외웠다. 갈수록 이 집착심이 정말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오늘 수련생이 옆에 없었다면 경찰이 오면 한 차례 말다툼을 할 것이고 구세력의 속임수에 한 번 더 말려들었을 것이다. 가족도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내가 또 죽어도 포기하지 않으니 가족이 하는 수 없이 돈으로 해결할 것이다. 그런 후 나는 득의양양해하고 가족은 오히려 두렵고 놀라워한다. 다시 나를 집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결국 개인의 영웅주의를 실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했다. 이것은 구세력의 속임수다. “당신의 제자가 이름을 떨치게 하고 자신을 실증하게 하고 속인도 모두 그녀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나는 그것을 똑똑히 알고 부정하며 이후부터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하고 묵묵히 중생을 구하고 사부님의 사명을 완성할 것이다.
법을 외우면서 나는 또 하나의 집착심을 찾았다. “왜 다른 사람이 나를 비평할 때 사부님의 법으로 상대방을 반박하는가? 수련 이후 모든 시간을 이용해 법을 외웠다. 길을 가면서 밥을 먹으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잠을 자기 전에 한번 또 한 번 ‘전법륜’을 외웠다. 매우 익숙하게 외웠을 때 한 시간에 1강을 외울 수 있고 가부좌와 결인을 하고 눈을 뜨지 않고 책도 뒤지지 않고 멈추지도 않으며 단숨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강을 배우는데 두 시간도 걸리지 않고 글자도 몇 글자 틀리지 않았다. 비록 수련생 앞에 가 과시하지는 않았지만 뼛속에 다른 수련생이 나보다 수련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때로 수련생을 도와주려 했다. 출발점은 좋은데 법에 부합되지 않고 심지어 법에서 빗나가며 법을 파괴해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집착심은 봄에 현지에서 발생한 한 가지 일에서 비로소 발견됐다.
올해 봄에 현지 몇몇 수련생이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타지의 남녀 두 수련생을 청해 교류했다. 말은 수련생들을 도와 관을 넘기고 수련생의 마음 매듭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수련생들은 그들이 말한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특히 나를 불러 듣게 했다. 나는 가서 듣고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또 다른 사람의 장을 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떠났다. 집에 돌아와 의혹이 생겼다. 타지의 두 수련생들은 대법을 해석했다. 사부님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관점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런 후 결론은 대법제자는 오늘날 병업이 없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나는 감히 인정하지 못했다. 법에서 이해했는데 수련한 일부분은 격리됐고 남은 수련되지 않은 부분은 업력과 집착심이다. 그러므로 속인 중에서 계속 수련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은 원만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수련을 내려놓을 수 없다.”[1] 그녀가 이런 결론을 얻은 것은 법에서 빗나간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의 관점을 실증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대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그 수련생의 말은 현지 수련생에서도 논쟁을 일으켰다. 연설은 난법이라는 것이다. 당시 한 편의 심득을 쓰려 했다. 하지만 자신이 잘 듣지 못한 것 같아 걱정돼 주저하고 쓰지 않았다. 며칠 전 그 타지의 두 수련생이 마난을 당했다. 남자 수련생은 박해받아 살해당했다. 나는 아주 놀랐다. 구세력은 틈만 있으면 노린다. 두 수련생은 법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수련생을 도와 관을 넘게 하려 했지만 방식에서 옳지 않았고 대법에서 빗나가자 구세력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오늘 이 교훈을 생각하니 몇 년간 자신의 이해로 대법을 해석한 집착심을 찾았다. 나는 교사이므로 습관적으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한다. 늘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 하기에 법을 이야기할 때, 혹은 논쟁이 있으면 끊임없이 말한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남기지 않고 전부 쏟아버린다. 역시 일종 법을 빗나간 행위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일을 法輪大法(파룬따파)의 것으로 간주하여 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당신이 전한 것은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아니며, 당신은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당신의 생각에 따라, 당신의 사상에 따라 말한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고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떠한 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법을 말할 수 없다.”[2]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대법(大法) 중에서 무엇을 깨달았든지 모두 끝없는 법리가 한 층차 중에 존재하는 법리의 한 점에 불과한 것으로, 이로써 법 또는 법의 어느 한 부분, 심지어 어느 한마디 말에 대해서도 정의(定義)를 내릴 수 없다. 만약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한다면, 말이 나오자마자 죄업(罪業)이 이루어지는지라, 중한 자는 심중(深重)하기가 산과도 같고, 하늘과도 같으니, 어찌 수련할 것인가? 대법(大法)을 뜯어고치고 따로 수작하는 자는 그 죄가 크기로 끝이 없으니, 생명이 악업(惡業)을 갚을 때, 층층이 깡그리 소멸하는 고통은 영원히 끝이 없는 것이다.”[3]
만약 앞의 두 수련생의 연설이 난법이면 법에서 백보 빗나간 것이다. 나는 백보를 빗나가지 않아도 단지 50보, 혹은 한 보나 두 보 빗나간 것이다. 얼마 빗나가든지 모두 빗나간 것이고 구세력은 호시탐탐 우리가 빗나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빗나간 기타 수련생도 적지 않다. 이 한 편의 글을 써 자신을 바로 잡고 수련생 여러분들이 거울로 삼기를 바란다.
정확하지 않는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를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건의’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정론’
문장발표: 2016년 9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2/334303.html